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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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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펠릭스 호세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전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과 KBO 리그에서 활약했다. 1988년 MLB에 데뷔하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뉴욕 양키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에서 뛰었으며, 1989년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1999년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2001년에는 KBO 역대 최고 출루율과 장타율을 기록했다. 2006년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했지만, 2007년 시즌 중 해고되었고, 이후 독립 리그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1999년 대구 대첩 사건과 배영수 폭행 사건 등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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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호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펠릭스 호세
미 독립 리그 바이퍼스 시절 (2008년 6월 14일)
본명도밍고 펠릭스 안두하르 호세
로마자 표기Domingo Félix Andújar José
출생일1965년 5월 2일
출생지산토도밍고
포지션우익수
투구/타석우투/양타
프로 입단1984년
MLB 경력
데뷔 (MLB)1988년 9월 2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마지막 경기 (MLB)2003년 9월 2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소속 팀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8–199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0–1992)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3–1995)
뉴욕 양키스 (200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2–2003)
올스타1991년
타율.280
홈런54
타점324
KBO 경력
데뷔 (KBO)1999년 4월 3일
마지막 경기 (KBO)2007년 5월 10일
소속 팀롯데 자이언츠 (1999)
롯데 자이언츠 (2001)
롯데 자이언츠 (2006–2007)
타율.309
홈런95
타점314
골든 글러브1999년
기타 리그 경력
소속 팀몬클로바 스틸러스 (1997)
타바스코 캐틀멘 (1997 - 1998)
나슈아 프라이드 (1998)
멕시코시티 레드 데빌스 (2002)
멕시코시티 레드 데빌스 (2003)
멕시코시티 레드 데빌스 (2004)
오아하카 워리어스 (2005)
푸에블라 패로츠 (2007)
랭커스터 반스토머스 (2007)
링컨 솔트독스 (2008)
캘거리 바이퍼스 (2008)
(2009)
신장185 cm
체중93 kg

2. 선수 경력

기타
석타
수득
점안
타2

타3

타홈
런루
타타
점도
루도루
실패희생
타희생
플라이볼
넷고의
사구4
구삼
진병

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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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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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988년OAK8662210031100000010.333.333.500.8331989년2061573112001350100400132.193.246.228.474



1989년 시리즈 우승으로 월드 시리즈 반지를 받았다.

호세의 능력은 높게 평가되었고, 1990년에 계약 기간이 만료된 지명 타자 데이브 파커와 애슬레틱스는 재계약하지 않았고, 비어 있는 지명 타자 자리에 칸세코가 이동했기 때문에 호세에게 외야 레귤러 자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8월 말까지 타율 .264, 홈런 8개, 타점 39로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고, 포스트 시즌을 준비하는 애슬레틱스는 윌리 맥기를 카디널스로부터 영입하는 대신 호세를 방출했다. 1990년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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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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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OAK/STL126458426541131611116452126212405819.265.311.385.696



1990년, 애슬레틱스는 계약 기간이 만료된 지명 타자 데이브 파커와 재계약하지 않았고, 비어 있는 지명 타자 자리에 호세 칸세코가 이동했기 때문에 펠릭스 호세에게 외야 레귤러 자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호세는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고 (8월 말까지 타율 .264, 홈런 8개, 타점 39), 포스트 시즌을 준비하는 애슬레틱스는 8월 말에 교타 외야수 윌리 맥기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부터 영입하는 대신 호세를 방출했다.[1]

1991년, 호세는 시즌 초부터 활약하여, 4월의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뿐만 아니라 MLB 올스타전 출전 선수로도 선출되었고, 시즌 전체 타율 .305, 홈런 8개, 타점 77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다음 해 1992년에도 호세의 타격 능력은 건재하여, 5월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를 획득하는 동시에 시즌 전체에서도 타율 .295, 홈런 14개, 타점 75로 전년과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장타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카디널스는 장거리 타자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그 해 시즌 오프, 그렉 제프리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적했다.

연도소속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루 실패희생타희생플라이볼넷고의사구4구삼진병살타타율출루율장타율OPS
1990년OAK/STL126458426541131611116452126212405819.265.311.385.696
1991년STL15462556869173406824977201205508211312.305.360.438.798
1992년13155150962150223142207528121040811009.295.347.432.779



1993년 로열스로 이적했다. 로열스에서의 첫 해는 타율 .253으로 부진했지만, 1994년에는 타율 .303, 홈런 11개, 타점 55로 뛰어난 타자임을 과시했다. 1995년 5월, 성적 부진으로 로열스에서 방출되었다.

2000년에 롯데와 메이저 리그 구단의 제안을 저울질 한 끝에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3] 5년 만에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지만,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나 부진 시 백업 요원으로 기용되어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다. 20경기에서 타율 .241, 1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1]

연도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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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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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희생
플라이

고의
사구
4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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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NYY20322947001105010120091.241.281.345.626



2002년 애리조나에서 13경기에 출장하여 5안타 2홈런 4타점을 기록했고,.263의 타율과 .360의 출루율 .579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1]

2003년에는 18경기에 출전하여 6안타,1홈런 6타점에 .333의 타율과 .500의 출루율 .566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1999년 한국 프로 야구의 제2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한국으로 건너왔다. 타율 0.327, 36홈런, 122타점으로 괄목할 만한 활약을 펼쳤다. 호세의 활약은 타선의 폭발을 유도하여, 롯데는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팀이 1승 3패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5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플레이오프의 흐름을 바꾸었다. 3승 3패로 팽팽해진 최종전 7차전에서는 2점을 뒤쫓던 6회 초에 노장진으로부터 반격의 불을 지르는 솔로 홈런을 날렸다. 이미 5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시리즈의 흐름을 바꾼 호세였기에, 3승 1패의 우세를 뒤집힐 불안감에 흥분한 삼성 팬들이 잇따라 그라운드에 물건을 던졌다. 그중, 생수병이 호세의 급소를 강타했다. 호세는 격분하여 삼성 팬들이 모여 있던 스탠드에 배트를 던졌다. 이로 인해 폭도화된 삼성 팬들과 롯데 선수가 방호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노려보며 난투 직전의 소동이 벌어져, 진압을 위해 경찰 병력까지 출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대구 대첩'''"이라고 불린다. 호세는 퇴장 처분을 받았지만, 경기는 이 후 롯데가 역전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했다.

팀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게 되면서, 호세에 대한 징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한국시리즈 흥행을 고려한 한국야구위원회의 재정으로, 한국시리즈 출전은 허용하고, 이듬해 정규 시즌에서 10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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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롯데13246293151293362941221237951198.327.000.0000.000



2001년 롯데에 다시 입단하였다. 1999년에 부과된 출장 정지 처분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두고 다시 논란이 일었으나, 한국야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000년 시즌 1년간 한국에서 뛰지 못한 기간에 처분된 10경기를 포함하여, 이 해에는 개막전부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해 삼성과의 경기에서 배영수에게 받은 사구에 분노하여 그에게 폭행을 가했다.

그 해, 117경기에 출전하여 367타수, 90득점, 123안타, 20개의 2루타, 2개의 3루타, 36홈런, 255루타, 102타점, 7도루, 4번의 도루 실패, 127개의 볼넷, 1개의 4구, 72삼진, 4병살타를 기록하였다. 타율은 0.335, 출루율은 0.503, 장타율은 0.695, OPS는 1.198을 기록했다. 타격 4위, 득점 7위, 홈런 2위, 타점 3위, 볼넷 1위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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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롯데1173679012320236255102741724.335.6951.198



2001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롯데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하지만, 메이저 리그 구단들의 제안이 없어 2005년 12월 18일 롯데와 계약하며 5년 만에 한국 야구에 복귀했다. 2006년 시즌에는 12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7, 22홈런, 78타점을 기록하며 홈런 2위, 타점 4위, 볼넷 2위에 올랐다. 그러나 2007년 시즌에는 23경기에서 타율 .256, 1홈런, 12타점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고, 시즌 도중 해고되었다. 이후 독립 리그나 리가 메히카나 데 베이스볼을 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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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롯데122415591152102220278328428313.277.000.000.000
2007년2386522401291200140123.256.000.000.000



애슬레틱스는 펠릭스 호세가 활동하는 동안 3번 연속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호세는 그 해 어떤 포스트시즌 로스터에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팀의 1989년 시리즈 우승으로 월드 시리즈 반지를 받았다.

1991년 카디널스에서 내셔널 리그 올스타 팀에 선발되었다. 1991년 4월과 1992년 5월에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86-87 시즌에 데뷔하여 14개의 홈런을 기록한 후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로 이적하기 전까지 도미니카 프로 야구 리그에서 티그레스 델 리세이에서 1997–98 시즌까지 활약했으며, 2005년 11월 19일 이 클럽에서 리그 기록인 60번째 홈런을 기록했다.[1]

2000년에는 뉴욕 양키스와 계약하여 5년 만에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지만,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나 부진 시 백업 요원으로 출전 기회가 적었다. 2001년에는 다시 롯데에 입단했다. 1999년에 부과된 출장 정지 처분 적용을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한국야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000년 시즌 한국에서 뛰지 못한 기간에 처분된 10경기를 포함하여 개막전부터 출전할 수 있었다. 이 해 삼성과의 경기에서 배영수에게 받은 사구에 분노하여 폭행을 가했다.

2002년에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롯데와의 이중 계약이 밝혀지면서 롯데에서 해고되었다. 같은 해 리가 메히카나 데 베이스볼의 멕시코시티 레드스에서 뛰었지만 9월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하여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다. 2003년에도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주로 대타로 18경기에 출전했다.

2005년 12월 18일, 롯데와 계약하며 5년 만에 한국 야구계에 복귀했지만,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2007년 시즌 도중에 해고되었다. 이후 독립 리그나 리가 메히카나 데 베이스볼을 전전했다.[3] 2009년 독립 리그인 노던 리그의 샴버그 플라이어스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롯데에서의 활약 이후, 부산 팬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매년 시즌 오프에 롯데 구단과 메이저 구단의 제안을 저울질하고, 이중 계약도 하여, 한국에서는 그의 태도를 좋지 않게 보는 팬과 관계자도 많았다.

2013년 6월 25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의 이벤트 참석을 위해 6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2. 1. 미국 메이저 리그 (MLB) 경력

기타
석타
수득
점안
타2

타3

타홈
런루
타타
점도
루도루
실패희생
타희생
플라이볼
넷고의
사구4
구삼
진병

타타
율출

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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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988년OAK8662210031100000010.333.333.500.8331989년2061573112001350100400132.193.246.228.474



1989년 시리즈 우승으로 월드 시리즈 반지를 받았다.

호세의 능력은 높게 평가되었고, 1990년에 계약 기간이 만료된 지명 타자 데이브 파커와 애슬레틱스는 재계약하지 않았고, 비어 있는 지명 타자 자리에 칸세코가 이동했기 때문에 호세에게 외야 레귤러 자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8월 말까지 타율 .264, 홈런 8개, 타점 39로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고, 포스트 시즌을 준비하는 애슬레틱스는 윌리 맥기를 카디널스로부터 영입하는 대신 호세를 방출했다. 1990년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소속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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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
실패
희생
희생
플라이

고의
사구
4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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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OAK/STL126458426541131611116452126212405819.265.311.385.696


2. 1. 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시절

기타
석타
수득
점안
타2

타3

타홈
런루
타타
점도
루도루
실패희생
타희생
플라이볼
넷고의
사구4
구삼
진병

타타
율출

율장

율O
P
S1988년OAK8662210031100000010.333.333.500.8331989년2061573112001350100400132.193.246.228.474



1989년 시리즈 우승으로 월드 시리즈 반지를 받았다.

호세의 능력은 높게 평가되었고, 1990년에 계약 기간이 만료된 지명 타자 데이브 파커와 애슬레틱스는 재계약하지 않았고, 비어 있는 지명 타자 자리에 칸세코가 이동했기 때문에 호세에게 외야 레귤러 자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8월 말까지 타율 .264, 홈런 8개, 타점 39로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고, 포스트 시즌을 준비하는 애슬레틱스는 윌리 맥기를 카디널스로부터 영입하는 대신 호세를 방출했다. 1990년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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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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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희생
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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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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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OAK/STL126458426541131611116452126212405819.265.311.385.696


2. 1. 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1990년, 애슬레틱스는 계약 기간이 만료된 지명 타자 데이브 파커와 재계약하지 않았고, 비어 있는 지명 타자 자리에 호세 칸세코가 이동했기 때문에 펠릭스 호세에게 외야 레귤러 자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호세는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고 (8월 말까지 타율 .264, 홈런 8개, 타점 39), 포스트 시즌을 준비하는 애슬레틱스는 8월 말에 교타 외야수 윌리 맥기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부터 영입하는 대신 호세를 방출했다.[1]

1991년, 호세는 시즌 초부터 활약하여, 4월의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뿐만 아니라 MLB 올스타전 출전 선수로도 선출되었고, 시즌 전체 타율 .305, 홈런 8개, 타점 77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다음 해 1992년에도 호세의 타격 능력은 건재하여, 5월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를 획득하는 동시에 시즌 전체에서도 타율 .295, 홈런 14개, 타점 75로 전년과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장타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카디널스는 장거리 타자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그 해 시즌 오프, 그렉 제프리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적했다.

연도소속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루 실패희생타희생플라이볼넷고의사구4구삼진병살타타율출루율장타율OPS
1990년OAK/STL126458426541131611116452126212405819.265.311.385.696
1991년STL15462556869173406824977201205508211312.305.360.438.798
1992년13155150962150223142207528121040811009.295.347.432.779


2. 1. 3.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절

1993년 로열스로 이적했다. 로열스에서의 첫 해는 타율 .253으로 부진했지만, 1994년에는 타율 .303, 홈런 11개, 타점 55로 뛰어난 타자임을 과시했다. 1995년 5월, 성적 부진으로 로열스에서 방출되었다.

2. 1. 4. 뉴욕 양키스 시절

2000년에 롯데와 메이저 리그 구단의 제안을 저울질 한 끝에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3] 5년 만에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지만,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나 부진 시 백업 요원으로 기용되어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다. 20경기에서 타율 .241, 1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1]

연도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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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NYY20322947001105010120091.241.281.345.626


2. 1. 5.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2002년 애리조나에서 13경기에 출장하여 5안타 2홈런 4타점을 기록했고,.263의 타율과 .360의 출루율 .579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1]

2003년에는 18경기에 출전하여 6안타,1홈런 6타점에 .333의 타율과 .500의 출루율 .566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부진한 성적으로 2년동안 단 14개의 홈런밖에 치지 못했다

2. 2. 한국 프로 야구 (KBO) 경력

기타
수득
점안
타2

타3

타홈
런루
타타
점도
루도루
실패볼
넷4
구삼
진병

타타
율출

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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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999년롯데13246293151293362941221237951198.327.000.0000.000



2001년 롯데에 다시 입단하였다. 1999년에 부과된 출장 정지 처분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두고 다시 논란이 일었으나, 한국야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000년 시즌 1년간 한국에서 뛰지 못한 기간에 처분된 10경기를 포함하여, 이 해에는 개막전부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해 삼성과의 경기에서 배영수에게 받은 사구에 분노하여 그에게 폭행을 가했다.

그 해, 117경기에 출전하여 367타수, 90득점, 123안타, 20개의 2루타, 2개의 3루타, 36홈런, 255루타, 102타점, 7도루, 4번의 도루 실패, 127개의 볼넷, 1개의 4구, 72삼진, 4병살타를 기록하였다. 타율은 0.335, 출루율은 0.503, 장타율은 0.695, OPS는 1.198을 기록했다. 타격 4위, 득점 7위, 홈런 2위, 타점 3위, 볼넷 1위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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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롯데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하지만, 메이저 리그 구단들의 제안이 없어 2005년 12월 18일 롯데와 계약하며 5년 만에 한국 야구에 복귀했다. 2006년 시즌에는 12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7, 22홈런, 78타점을 기록하며 홈런 2위, 타점 4위, 볼넷 2위에 올랐다. 그러나 2007년 시즌에는 23경기에서 타율 .256, 1홈런, 12타점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고, 시즌 도중 해고되었다. 이후 독립 리그나 리가 메히카나 데 베이스볼을 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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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1. 1999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

1999년 한국 프로 야구의 제2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곳에서 타율 0.327, 36홈런, 122타점으로 괄목할 만한 활약을 펼쳤다. 호세의 활약은 타선의 폭발을 유도하여, 롯데는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1]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팀이 1승 3패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5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플레이오프의 흐름을 바꾸었다. 3승 3패로 팽팽해진 최종전 7차전에서는 2점을 뒤쫓던 6회 초에 노장진으로부터 반격의 불을 지르는 솔로 홈런을 날렸다. 이미 5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시리즈의 흐름을 바꾼 호세였기에, 3승 1패의 우세를 뒤집힐 불안감에 흥분한 삼성 팬들이 잇따라 그라운드에 물건을 던졌다. 그중, 생수병이 호세의 급소를 강타했다. 호세는 격분하여 삼성 팬들이 모여 있던 스탠드에 배트를 던졌다. 이로 인해 폭도화된 삼성 팬들과 롯데 선수가 방호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노려보며 난투 직전의 소동이 벌어져, 진압을 위해 경찰 병력까지 출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대구 대첩'''"이라고 불린다. 호세는 퇴장 처분을 받았지만, 경기는 이 후 롯데가 역전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했다.[1]

팀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게 되면서, 호세에 대한 징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한국시리즈 흥행을 고려한 한국야구위원회의 재정으로, 한국시리즈 출전은 허용하고, 이듬해 정규 시즌에서 10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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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2. 1999년 플레이오프: 대구 대첩

1999년 한국 프로 야구의 제2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한국으로 건너왔다. 타율 0.327, 36홈런, 122타점으로 괄목할 만한 활약을 펼쳤다. 호세의 활약은 타선의 폭발을 유도하여, 롯데는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1]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팀이 1승 3패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5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플레이오프의 흐름을 바꾸었다. 3승 3패로 팽팽해진 최종전 7차전에서는 2점을 뒤쫓던 6회 초에 노장진으로부터 반격의 불을 지르는 솔로 홈런을 날렸다. 이미 5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시리즈의 흐름을 바꾼 호세였기에, 3승 1패의 우세를 뒤집힐 불안감에 흥분한 삼성 팬들이 잇따라 그라운드에 물건을 던졌다. 그중, 생수병이 호세의 급소를 강타했다. 호세는 격분하여 삼성 팬들이 모여 있던 스탠드에 배트를 던졌다. 이로 인해 폭도화된 삼성 팬들과 롯데 선수 간의 난투 직전의 소동이 벌어졌고, 경찰 병력까지 출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대구 대첩'''"이라고 불린다. 호세는 퇴장 처분을 받았지만, 경기는 이후 롯데가 역전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했다.[1]

팀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게 되면서, 호세에 대한 징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한국시리즈 흥행을 고려한 한국야구위원회의 재정으로, 한국시리즈 출전은 허용하고, 이듬해 정규 시즌에서 10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1]

2. 2. 3. 2001년: 최고의 활약

2001년 롯데에 다시 입단하였다. 1999년에 부과된 출장 정지 처분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두고 다시 논란이 일었으나, 한국야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000년 시즌 1년간 한국에서 뛰지 못한 기간에 처분된 10경기를 포함하여, 이 해에는 개막전부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해 삼성과의 경기에서 배영수에게 받은 사구에 분노하여 그에게 폭행을 가했다.

그 해, 117경기에 출전하여 367타수, 90득점, 123안타, 20개의 2루타, 2개의 3루타, 36홈런, 255루타, 102타점, 7도루, 4번의 도루 실패, 127개의 볼넷, 1개의 4구, 72삼진, 4병살타를 기록하였다. 타율은 0.335, 출루율은 0.503, 장타율은 0.695, OPS는 1.198을 기록했다. 타격 4위, 득점 7위, 홈런 2위, 타점 3위, 볼넷 1위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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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4. 2006-2007년: 롯데 복귀

2001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롯데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하지만, 메이저 리그 구단들의 제안이 없어 2005년 12월 18일 롯데와 계약하며 5년 만에 한국 야구에 복귀했다.[3] 2006년 시즌에는 12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7, 22홈런, 78타점을 기록하며 홈런 2위, 타점 4위, 볼넷 2위에 올랐다. 그러나 2007년 시즌에는 23경기에서 타율 .256, 1홈런, 12타점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고, 시즌 도중 해고되었다. 이후 독립 리그나 리가 메히카나 데 베이스볼을 전전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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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기타 리그 경력

애슬레틱스는 펠릭스 호세가 활동하는 동안 3번 연속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호세는 그 해 어떤 포스트시즌 로스터에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팀의 1989년 시리즈 우승으로 월드 시리즈 반지를 받았다.

1991년 카디널스에서 내셔널 리그 올스타 팀에 선발되었다. 1991년 4월과 1992년 5월에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86-87 시즌에 데뷔하여 14개의 홈런을 기록한 후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로 이적하기 전까지 도미니카 프로 야구 리그에서 티그레스 델 리세이에서 1997–98 시즌까지 활약했으며, 2005년 11월 19일 이 클럽에서 리그 기록인 60번째 홈런을 기록했다.[1]

2000년에는 뉴욕 양키스와 계약하여 5년 만에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지만,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나 부진 시 백업 요원으로 출전 기회가 적었다. 2001년에는 다시 롯데에 입단했다. 1999년에 부과된 출장 정지 처분 적용을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한국야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000년 시즌 한국에서 뛰지 못한 기간에 처분된 10경기를 포함하여 개막전부터 출전할 수 있었다. 이 해 삼성과의 경기에서 배영수에게 받은 사구에 분노하여 폭행을 가했다.

2002년에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롯데와의 이중 계약이 밝혀지면서 롯데에서 해고되었다. 같은 해 리가 메히카나 데 베이스볼의 멕시코시티 레드스에서 뛰었지만 9월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하여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다. 2003년에도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주로 대타로 18경기에 출전했다.

2005년 12월 18일, 롯데와 계약하며 5년 만에 한국 야구계에 복귀했지만,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2007년 시즌 도중에 해고되었다. 이후 독립 리그나 리가 메히카나 데 베이스볼을 전전했다.[3] 2009년 독립 리그인 노던 리그의 샴버그 플라이어스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롯데에서의 활약 이후, 부산 팬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매년 시즌 오프에 롯데 구단과 메이저 구단의 제안을 저울질하고, 이중 계약도 하여, 한국에서는 그의 태도를 좋지 않게 보는 팬과 관계자도 많았다.

2013년 6월 25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의 이벤트 참석을 위해 6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3. 은퇴 이후

호세는 2015년 도미니카 공화국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 2017년 1월, 호세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발굴되지 않은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을 찾는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인 ''America's Next Top Baseball Players''의 "스타" 코치로 선정되었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

배영수롯데를 상대로 연승 중이었으나, 호세롯데 자이언츠에 복귀한 경기에서 패배하였다. 이 때문에 호세가 돌아오자 배영수가 약해졌다는 농담이 있었으며, 호세에게 안면을 구타당한 충격에 아직도 호세를 두려워한다는 루머도 있었다.

4. 1. 배영수 폭행 사건

배영수롯데를 상대로 연승 중이었으나, 호세롯데 자이언츠에 복귀한 경기에서 패배하였다. 이 때문에 호세가 돌아오자 배영수가 약해졌다는 농담이 있었으며, 호세에게 안면을 구타당한 충격에 아직도 호세를 두려워한다는 루머도 있었다.

4. 2. 벤치 클리어링

5. 주요 기록

2001년 역대 1시즌 최고 출루율(0.503)과 장타율 1위 (0.695)를 기록했다. 1999년에는 골든 글러브 (외야수 부문)를 수상했다. 1999년 5월 29일 전주 쌍방울전에서 4회(좌), 8회(우) 1경기 좌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사직야구장에서 KBO 리그 통산 1만호 홈런을 쳤다. 1999년 6월 20일 ~ 6월 21일 사직 한화전에서는 역대 최초로 2경기 연속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2001년 6월 17일 ~ 2002년 4월 8일까지 63경기 연속 출루 신기록을 세웠다. 2007년 5월 10일 문학 SK전에서는 만 42세 8일로 역대 최고령 출장 타자 및 역대 최고령 홈런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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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4년394165613302474117459578031422901430443828628.309.437.5861.023



1991년 MLB 올스타전에 출장했고, KBO 골든글러브는 1999년에 수상하였다.

참조

[1] 웹사이트 Félix José https://www.diarioli[...] Diario Libre 2010-11-08
[2] 웹사이트 Félix José electo inmortal http://elnacional.co[...] El Nacional 2015-10-12
[3] 웹사이트 https://www.baseball[...]
[4] 뉴스 호세 퇴출, 아쉽지만 행복했다 http://sports.news.n[...] 스포츠경향
[5] 뉴스 롯데 최고 외국인 선수 호세, 6년 만에 내한 http://sports.news.n[...]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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