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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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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사카 유지는 1956년 도쿄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일본 출신 학자이다. 세종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독도 영유권 연구에 매진,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독도 관련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특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일본 고지도를 분석하여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며, 관련 논문 발표 및 증거 자료 수집·공개 활동을 지속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홍조근정 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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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씨명호사카 유지
원어명保坂祐二
출생일1956년 2월 26일
국적대한민국
출생지일본 도쿄도
정당무소속
배우자있음 (한국인)
자녀2남 1녀
학력
대학원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수료
대학교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과교수
경력
주요 경력세종대학교 교수
세종대학교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더불어시민당 최고위원 겸 당무위원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

2. 약력


  • 1956년 도쿄도에서 출생.
  • 도쿄 대학 공학부 금속공학과 재학 중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한 내용을 접하고, 일본의 한국과 아시아 침략 이유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36] 졸업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유학.
  • 1988년 5월 25일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 입국,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한국어학당에서 9개월간 한국어 연수 후 1989년 2월 최우수상 수상.
  • 1989년 3월, 고려대학교 정외과 3학년 편입, 대학원 진학을 위한 선수과목 이수.
  • 1990년 3월,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진학, 석·박사 과정 후 1998년 세종대학교 교수로 임용(전공은 비교정치).
  • 석사 학위 논문: <후쿠자와 유키치와 조선개화파>, 박사 학위 논문: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분석-조선, 만주, 대만을 중심으로>.
  • 1998년부터 독도 영유권 연구 시작, 독보적인 독도 연구자로 알려짐.
  • 2003년 8월, 대한민국 귀화.
  • 2005년,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대응,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 출간.[41]
  • 2009년 5월, 세종대학교 부설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취임.
  • 2014년 5월, "러스크 서한에 관한 논문" SSCI급 논문으로 발표.[56]
  • 2015년 3월,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 임명 (일본 출신 최초).[58]
  • 2018년 6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논문 “Journal of Law and Judicial System”에 게재.[62]
  • 2021년 5월, 하버드 대학교 램지어 교수 논문 반박 논문 SSCI 국제저널 “Journal of East Asia and International Law”에 게재.[67]
  •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부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자문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역임), 한국 외교부 독도대책위원회 자문위원,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상임이사, 한국 국회도서관 자문위원 및 홍보대사, 해양박물관 홍보대사, 동아시아평화학회 회장, "조국애, 독도사랑"호주연합회 고문,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독도와 동아시아(dokdoandeastasia.com)" 웹사이트 운영자(현직) 등.
  • 2020년 3월, 『신친일파-「반일종족주의」의 거짓을 파헤친다』 출간.

2. 1. 생애 초기

保坂 祐二|호사카 유지일본어는 1956년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역사 공부를 좋아했으나, 렌즈 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도쿄 대학 공학부 금속공학과에 진학했다.[35] 도쿄 대학교 재학 중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한 내용을 접하고 일본이 왜 한국과 아시아를 침략했는가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36] 졸업 후 한국으로 건너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했다.

1988년 5월 25일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한국어학당에서 9개월간 한국어를 연수하고 1989년 2월 최우수상을 받으며 수료했다. 1989년 3월 고려대학교 정외과 3학년에 편입, 도쿄대 전공과 다른 분야를 공부하며 1년간 대학원 진학을 위한 선수과목을 이수했다. 1990년 3월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8년 세종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전공은 비교정치).[3]

정치학 석사 학위 논문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조선개화파>, 박사 학위 논문은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분석-조선, 만주, 대만을 중심으로>이다.

2. 2. 학술 및 연구 활동


  • 1988년 도쿄 대학 공학부 금속공학과 졸업 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계기로 한국으로 유학,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35][36]
  • 1998년부터 세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비교정치를 전공했다.
  • 1998년부터 독도 영유권 연구를 시작하여 독보적인 독도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40][41]
  •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대응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기되지 않은 일본 고지도를 다수 발굴, 저서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를 출간했다.[42][43][44]
  • 2009년, 세종대학교 부설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 2009년, 저서 《우리역사 독도》가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9월의 읽을 만한 책> 역사 부문에 선정되었다.
  • 2010년, 1877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작성한 "대일본전도" 원본을 공개, 독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되었음을 지적했다.
  • 2014년, "러스크 서한에 관한 논문"이 SSCI급 논문으로 발표되었다.[56] 이 논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상 독도가 일본 영토로 확정되었다는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 2015년, 독립기념관의 비상임이사로 임명되었다.[58]
  • 2018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논문 ‘Examining Japan's Legal Responsibility regarding the 'Comfort Women' Question – with a Focus on the Kato Statement and the Kono Statement’를 국제저널 “Journal of Law and Judicial System”에 게재했다.[62]
  • 2021년, 하버드 대학교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관련 논문에 대한 반박 논문 ‘Contracting for Sex? “True Story”of the so-called “Comfort Women”during World War II’를 SSCI 국제저널 “Journal of East Asia and International Law”에 게재했다.[67]

2. 3. 기타 활동

호사카 유지는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부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자문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역임), 한국 외교부 독도대책위원회 자문위원,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상임이사, 한국 국회도서관 자문위원 및 홍보대사, 해양박물관 홍보대사, 동아시아평화학회 회장, "조국애, 독도사랑"호주연합회 고문,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독도와 동아시아(dokdoandeastasia.com)" 웹사이트 운영자(이상 현직) 등으로 활동했다.[56]

2015년 1월에는 KBS 객원논설위원으로 위촉되었고,[57] 같은 해 3월에는 한국 천안 소재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로 임명되었다. 이는 일본 출신으로는 처음 있는 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58] 같은 해, 경상북도청 독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59]

2017년 9월에는 세종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밝히는 문서 공개” 기자회견을 개최했고,[60] 2018년 4월에는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1」 (황금알 출판사) 출판기념 기자회견을 세종대 소극장에서 열었다.[61]

2020년 3월에는 『신친일파-「반일종족주의」의 거짓을 파헤친다』(봄이 아트북스)를 출간했다. 이 책 출판 후,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 국내 단체들이 세종대 정문 앞에서 “호사카 유지는 이간질 중단하고 한국 떠나라”라는 시위를 개최하기도 했다.[64]

3. 주요 주장 및 연구

호사카 유지는 도쿄 대학 공학부 졸업 후 대한민국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8년부터 세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35][36]

일본제국주의의 민족 동화 정책 연구를 바탕으로 역사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연구한다. 특히 독도 문제에 있어 일본 주장을 일관되게 비판하며,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강조한다.[5]

2001년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교과서 검정 통과 및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했고,[37] 2003년 아소 다로의 "창씨개명은 한국인이 원해서 실시한 것"이라는 망언을 반박했다.[38]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강조하며, '위안부'가 성노예였음을 명확히 한다. 2007년 경향신문 칼럼에서 일본 정부의 '위안부' 부정 움직임을 비판했고,[47] 같은 해 중국 상하이 사범대학에서 관련 강연을 했다.[48]

2009년 세종대학교 부설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으로 취임,[50] 미국, 호주 등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를 강연했다. 2010년 김장훈과 '독도의 진실' 웹사이트를 제작, 독도 홍보에 나섰다.[52]

2012년 KBS 스페셜 독도 다큐에 출연, 일본 자민당 의원과 독도 영유권 논쟁을 벌였고,[53]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관련,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시 일본이 독도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는 문서를 남겼다고 밝혔다.[54]

2014년 러스크 서한 논문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상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일본 주장을 반박했다.[56] 2017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일본 정부 법적 책임 문서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고,[60] 2020년 『신친일파』를 출간했다.[64] 2021년 존 마크 램지어 교수 '위안부' 논란에 반박 논문을 발표했다.[66][67]

3. 1. 독도 문제

1990년대 후반에 독도에 대한 한일 간의 견해 차이를 크게 느껴 양국의 주장과 제시 자료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측 주장에 왜곡과 자료 은폐가 많다는 것을 간파하고 이후 독도 영유권 문제에 있어 새로운 논리와 자료를 제시해 오고 있다.[5]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자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은 일본 고지도, 독도가 한국 땅으로 기재된 일본 제작 조선 지도 등을 다수 공개했다. 독도 연구에 있어 자료 발굴과 논리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005년 4월,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자음과모음)를 출간하여 독도가 빠져 있는 일본 고지도를 다수 공개했다.[40][41]

2006년 10월, 19세기에 독도를 한국 땅으로 표기한 일본 고지도 2점을 공개했다. 하나는 1882년 제작된 《조선국전도》(朝鮮國全圖)이고, 다른 하나는 1883년에 제작된 《대일본전도》(大日本全圖)이다. 같은 날 울릉도독도박물관을 방문하여 이 지도 2점을 기증했다.[17]

2006년, 〈하야시 시헤이도(林子平圖)와 독도〉라는 논문에서 1785년에 일본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가 작성한 《삼국접양지도》에 그려진 동해 한가운데의 두 섬 중 울릉도(죽도<竹嶋>로 기재) 옆에 있는 작은 섬이 독도라는 사실을 최초로 문헌으로 명백히 증명했다. 두 섬은 한반도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조선의 소유(朝鮮の持也)'라고 적혀 있다.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삼국통람여지도노정전도의 죽도 부근

  • 1785년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삼국접양지도'에는 울릉도(죽도)가 그려져 있으며, 그 북동쪽 근방에 있는 작은 섬과 함께 한반도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또한 이 섬의 왼쪽에는 조선의 영토라고 적혀 있다. 호사카는 이 북동쪽 근방의 작은 섬을 현재의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라고 보고, 당시 이미 조선령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하야시 시헤이가 지도를 제작할 때 당시 일본에서 널리 사용되던 나가쿠보 세키스이의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1779년)를 참고했다고 하며[8], 시헤이의 지도에 그려진 울릉도(죽도) 북동쪽 근방의 작은 섬은 세키스이의 지도에 기재된 마쓰시마이며, 시헤이는 이 두 섬을 명확하게 조선 영토로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9] (세키스이의 일본 지도에는 마쓰시마, 즉 '현재의 다케시마'가 기재되어 있으며, 일본 본토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있어 일본령의 근거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또한 호사카는 시헤이의 지도가 1854년에도 막부오가사와라 제도의 영유권을 미국과 다툴 때 사용된 일본의 공식 지도였으므로, 당시 일본 정부는 현재의 다케시마를 조선령으로 인정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10][11][12]


2008년 2월 22일, 일본 측에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맞춰 1894년에 일본에서 작성된 고지도 2점을 공개했다. 두 지도 모두 독도가 한반도와 같은 색깔로 칠해져 있고 일본 열도와는 명백히 구별된다. 두 지도는 《신찬조선국전도》(新撰朝鮮國全圖)와 《일청한 조선변란상세지도》(日淸韓 朝鮮變亂詳細地圖)이다. 《신찬조선국전도》는 1882년에 스즈키 케이사쿠(鈴木敬作)가 제작한 《조선국전도》에 색칠만 한 지도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외무성 관리이자 독도 연구가인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는 1966년에 출판한 저서에서 당시의 도명(島名) 혼란을 정리하면서 앞서 언급한 《조선국전도》에 나타난 다케시마(竹島)와 마쓰시마(松島)는 옛날 그대로 명칭을 사용한 지도여서 그 두 섬은 바로 울릉도독도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그 지도에 색칠만 한 《신찬조선국전도》의 두 섬도 울릉도독도이며 조선령으로 채색되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18][19][20]

2008년 5월, 1854년에 일본이 미국과 오가사와라 제도의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였을 때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기재된 하야시 시헤이의 《삼국접양지도》(1785)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여 미국 측을 이겨낸 역사적 사실을 공표하여, 하야시의 지도가 일본의 공식 지도로서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호사카 교수는 한국만화가협회의 요청에 따라 한국의 대표적인 만화가인 이현세와 함께 '독도 사랑'이라는 만화를 《조선일보》에 5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 만화는 2008년 10월 20일부터 24일까지 연재되었으며, 조선일보 문화면에 실렸다.[68][69][70][71][72]

2009년 2월 23일, 호사카 교수는 우산도의 산봉우리가 그려진 조선 시대 고지도 2점을 공개했다. 그는 이런 지도를 통해 우산도울릉도 동쪽 2km에 위치한, 산봉우리가 없는 죽도가 아닌, 확실하게 독도라고 주장했다. 한국이 조선 시대에 독도에 대한 영유 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었던 것으로 증명된다고 밝혔다.[73]

1877년의 태정관 지령에 의해 "다케시마 외 1도에 관해서는 본방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이해할 것"으로 결정되었고, 태정류전 제2편에는 "일본해 내 다케시마 외 1도를 판도 밖으로 정함"이라고 기록된 것에 관해, 태정관 지령문의 '외 1도'에 관한 내용을 분석했다. 태정류전에서 "다케시마"는 현재의 울릉도의 지세와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고, "마쓰시마"는 주위가 약 30(약 3.3km)이며 대나무나 수목이 없고 물고기와 짐승(강치)이 잡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 점을 들어, 이 문서 안의 "외 1도"는 마쓰시마, 즉 현재의 다케시마(독도)이며, 태정관이 현재의 다케시마(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태정류전에는 "마쓰시마"는 "오키에서 다케시마(울릉도)로 갈 때, 동일한 항로상에 있으며, 오키에서 약 80(지상의 거리로는 약 320km, 그러나 그는 당시 해상의 거리로서의 리는 현재의 해리에 가까웠다고 주장한다)의 거리이다"라고 적혀 있는 문장을 지적하면서, 17세기 이래 일본인들은 많은 문서에서 오키와 마쓰시마의 거리를 약 70-80리로 기록해 왔다는 문헌적 사실과, 리를 해리로 이해했을 경우 80리는 약 148km가 되어 실제 오키~다케시마(독도) 간의 거리 157km에 가까워지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거리적으로도 "외 1도(마쓰시마)"는 현재의 다케시마(독도)라고 주장한다.

2006년 10월,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일본 정부 스스로가 인정한 1877년 태정관 지령문에 대해 연합뉴스와 함께 일본 정부에 질문서를 보냈고, 일본 정부가 사실상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46]

2012년, 호사카 교수는 1965년 6월 22일 한일 기본 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함께 조인된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의 분쟁 해결에 관한 교환 공문》에 "양국 정부는 별도의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양국 간 분쟁은 우선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해결을 도모하여 그것이 안 될 경우 조정에 의해 그 해결을 도모한다"라고 규정되었다고 하면서, 일본이 독도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74]

2012년 5월, 호사카 교수는 일본 외무성이 주장하는 내용, 즉 1951년 8월 미국은 '러스크 서한'을 주미 한국 대사관에 보내 "독도는 1905년 이후 일본 시마네현 오키 섬의 소관이고 그전에 한국이 독도를 영유한 적도, 독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한 사실도 없다"라는 이유로 독도를 사실상 일본 영토로 인정했다는 내용에 대해, "러스크 서한은 다른 연합국 사이에서 합의된 내용이 아니라 미국의 독단에 의해 한국 정부에 보내진 비밀 문서이기 때문에 미국의 견해로 간주된다 하더라도 결코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결론이 될 수 없는 문서"라고 주장했다. 즉, 러스크 서한독도를 일본 땅으로 증명한 문서라는 일본 측의 견해는 사실 오인과 왜곡임을 미국의 기타 비밀 문서들을 인용해서 증명했다.[75]

2012년 8월 24일, 노다 요시히코 총리(당시)가 일본 국회에서 공표한 ‘독도가 일본 땅인 3가지 이유’에 대한 반박문을 영어와 일본어로 작성해 일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정부 기관, 유명 언론사, 각종 주요 기관, 대학교 등에 보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일본 측 주장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독도 분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55]

2014년 5월, 일본 측이 주장하는 '독도 일본 영토의 증거'인 러스크 서한을 비판한 SSCI 논문을 발표하여 서양권에서도 주목받았다.[56]

이후 호사카 교수는 독도가 한국 땅으로 기재되어 있거나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 일본 측 고지도 등을 절대다수 발견하여 그때마다 이를 논문 등으로 발표하면서 언론에도 공개했다.[42][43][44]

독도 문제에 관해서는, 일관되게 일본의 주장을 비판하며,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 측이 한국 측 주장의 많은 부분을 왜곡하거나 완전히 은폐하며, 또한 일본 측의 독도에 관한 영유권 주장은 표면적인 사실을 진실인 양 정보 통제하고 있으며, 공개되지 않은 사료나 진실이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3. 2.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호사카 유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강조하고, '위안부'가 성노예였음을 분명히 하는 입장이다.

2007년 3월 7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당시 아베 총리가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고, 1993년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는 시도 등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비판했다.[47] 2007년 10월 17일에는 중국 상하이 사범대학에서 "일본에 왜곡당한 역사문제 : 위안부"라는 주제로 초청 강연을 했다.[48]

2014년 2월에는 세종대학교 독도종합연구소 공식 사이트인 "독도와 동아시아"를 개설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료와 분석글을 제공하고 있다. 2017년 9월에는 세종대학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밝히는 문서 공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60] 2018년 4월에는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1」(황금알 출판사) 출판기념 기자회견을 열었다.[61]

2018년 6월, 국제저널 “Journal of Law and Judicial System”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논문 ‘Examining Japan's Legal Responsibility regarding the 'Comfort Women' Question – with a Focus on the Kato Statement and the Kono Statement’를 게재했다.[62] 2019년 8월, 일본 론소샤(論創社)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단행본 『문서・증언에 의한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文書・証言による日本軍「慰安婦」強制連行)』을 출판했다.[63]

2020년 3월 출간한 저서 『신친일파-「반일종족주의」의 거짓을 파헤친다』(봄이 아트북스)에서는 내용의 60% 정도를 '위안부' 문제에 할애했다. 이 책에서 '위안부'가 성노예였음을 강조하고, 일본군과 일본 정부, 조선총독부 등이 동원 시스템을 통해 '위안부'를 전쟁터로 끌고 갔다고 주장한다. '위안부' 공창설에 대해서는, 특히 조선인 '위안부'들은 계약서 없이 전쟁터로 끌려갔다는 일본군 군의관의 증언 등을 근거로 반박한다.[64]

2021년 3월에는 하버드 대학교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관련 논란에 대해 "조선인 위안부들의 계약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소논문을 네덜란드 학회지에 제출했다.[66] 2021년 5월에는 SSCI 국제저널 “Journal of East Asia and International Law”에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한 반박 논문 ‘Contracting for Sex? “True Story”of the so-called “Comfort Women”during World War II’를 게재했다.[67]

2021년 11월, 미국의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Diplomat)>은 '위안부'는 공창이라고 주장한 이우연의 기고문을 삭제하고, '위안부'는 성노예였다고 주장한 호사카 유지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3. 3. 기타 한일 관계

호사카 유지는 한일 관계, 특히 독도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에 대한 연구와 활동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3월, 일본 정부가 왜곡된 역사교과서(새 역사 교과서, 후소샤)를 검정 통과시키고, 같은 해 8월 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 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37] 2003년 5월에는 아소 다로 당시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이 "창씨개명은 한국인이 원해서 실시한 것"이라는 망언을 했을 때, 창씨개명이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시행되었음을 자료를 통해 증명했다.[38]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을 때, 독도가 일본 영토로 기재되지 않은 일본 고지도를 다수 발견하여[40] 저서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2005, 자음과모음)를 출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구임을 지적했다.[41] 이후에도 독도가 한국 땅으로 기재되어 있거나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 일본 측 고지도를 다수 발견하여 발표하고 언론에 공개했다.[42][43][44]

2006년 4-6월, 독도에서 한일 간 충돌 가능성이 있던 시기에 방한한 일본 국회의원들(후에 총리가 된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포함)에게 한국의 독도 영유권 논리를 설명했다.[45] 2006년 10월에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일본 정부 스스로가 인정한 1877년 태정관 지령문에 대해 연합뉴스와 함께 일본 정부에 질문서를 보냈고, 일본 정부가 사실상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46]

2007년 3월 7일, 경향신문에 "일본의 억지를 이기는 법"이라는 칼럼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며, 일본 정부의 '위안부' 부정 움직임을 비판했다.[47] 2007년 10월에는 중국에서 한일 관계,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강연을 했다.[48]

2009년 5월, 세종대학교 부설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5월 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독도 심포지엄에서 논문을 발표했다.[50] 2009년 6월에는 호주에서, 2009년 7월에는 방한 중인 외국 사회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를 강연했다.

2010년 2월, 1877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작성한 "대일본전도" 원본을 공개하며 독도가 일본 영토에서 빠져 있음을 지적했다. 같은 해 11월, 김장훈과 함께 '독도의 진실'(www.truthofdokdoo.com) 사이트를 제작하여 독도 홍보에 나섰다.[52]

2012년, KBS 스페셜 독도 다큐에 출연하여 일본 자민당 의원과 독도 영유권 논쟁을 벌였다.[53] 같은 해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인한 한일 갈등에 대해,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일본이 독도를 포기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공식 문서를 남겼다고 밝혔다.[54]

2014년 5월, "러스크 서한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상 독도가 일본 영토로 정해졌다는 일본 측 주장을 반박했다.[56]

2017년 9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밝히는 문서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60] 2018년 4월에는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1」 출판기념 기자회견을 개최했다.[61] 같은 해 6월에는 국제저널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논문을 게재했다.[62]

2020년 3월, 저서 『신친일파-「반일종족주의」의 거짓을 파헤친다』를 출간했다. 이 책 출간 후, '위안부'를 공창이라고 주장하는 단체들이 호사카 교수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64]

2021년 3월, 하버드 대학교 존 마크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관련 논란에 대해 "조선인 위안부들의 계약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소논문을 제출했다.[66] 같은 해 5월에는 램지어 교수 논문에 대한 반박 논문을 발표했다.[67]

호사카 유지는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이며, 일본군, 일본 정부, 조선총독부 등에 의해 만들어진 동원 시스템으로 인해 전쟁터로 끌려갔다고 주장한다. '위안부' 공창설에 반대하며, 조선인 '위안부'들은 계약서 없이 전쟁터에 끌려갔다고 주장한다.

4. 수상 경력

연도내용
2005년 12월외교통상부 장관 표창
2008년 8월세종대 우수교수상
2011년 6월대한민국 국회 독도특별위원회 공로상
2012년 12월KBS 감동대상 I love Korea상
2013년 2월대한민국 홍조근정 훈장
2015년 8월세종대 우수교수상
2018년 12월독도평화대상 특별상
2020년 12월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2021년 2월교육부 장관 표창


5. 저서

'''저서'''


  • 日本に絶対負けない일본어 (2002, 답계)
  • 日本帝国主義の民族同化政策分析-朝鮮、満州、台湾を中心に-일본어 (2002, J&C)
  • 現代韓国の政治と社会일본어 (공저, 2005, 매봉)
  • 日本の古地図にも独島はない일본어 (2005, 자음과모음)
  • Dreaming of Seventy Million Dok-do's영어 (2005, 도서출판 다층<영문>, 공저)
  • 日本歴史を動かした女たち일본어 (2005, 문학수첩)
  • 朝鮮の士(ソンビ)と日本の士일본어 (2007, 김영사)
  • 日本右翼思想の基底研究일본어 (공저, 2007, 보고사)
  • 33인의 외침 (2007, 독도를 사랑하는 협의회, 공저)
  • 독도 영유권에 대한 한일 및 주변국의 인식과 정책 비교 연구 (2007,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공저)
  •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의 최종 보고서 비판-일본 측 그림에 대한 비판적 고찰 (2008, 한국해양수산개발원)
  • わが歴史独島-韓日関係史から見た独島일본어 (2009, 책문)
  • 大韓民国独島일본어 (2010, 책문)
  • 大韓民国独島教科書:子供が初めて出会う独島物語일본어 (2012, 휴이넘)
  • 独島、竹島の日韓史일본어 (2016, 론소샤(論創社))
  • 独島、1500年の歴史일본어 (2016, 교보문고)
  • 日本の慰安婦問題証拠資料集1일본어 (2018, 황금알)
  • 文書・証言による日本軍「慰安婦」強制連行일본어 (2019, 론소샤(論創社))
  • 日本どんでん返し일본어 (2019, 봄이아트북스)
  • 安倍、彼はなぜ韓国を崩そうとするのか일본어 (2019, 지식의숲)
  • 新親日派일본어 (2020, 봄이아트북스)
  • 趙明河義士資料集1일본어 (2021, 봄이아트북스)
  • Dokdo, The Brilliant History of its 1500 years영어 (2021, 경상북도청)


'''번역서'''

  • 独島/竹島韓国の論理일본어 (2005, 론소샤(論創社))
  • 朝鮮戦争일본어 (2007, 론소샤(論創社))
  • 独島=竹島論争일본어 (2008, 보고사)
  • 植民地朝鮮の開発と民衆-植民地近代化論、収奪論の超克일본어 (2008, 아카시 서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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