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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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라열은 2006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되었으나, 이력 허위 기재 및 숨겨진 경력으로 인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다양한 이력을 주장했지만, 상당수가 허위로 밝혀졌고, 특히 성인 게임 업체 직원이라는 사실을 숨긴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탄핵 절차를 거쳐 2006년 6월 탄핵되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스타트업 사업가로 활동하며 현재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힐스톤 파트너스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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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라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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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황라열 |
로마자 표기 | Hwang Ra-yeol |
출생일 | 1977년 8월 13일 |
학력 | 서울대학교 자퇴 |
경력 | 제49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블록체인 투자 회사 대표 |
직업 | 기업가 |
2. 초기 경력
황라열은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6년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대학교 디자인과에 입학했으나 자퇴했다. 이후 해병대 복무 중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 2000학번으로 입학했다.[2] 2006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인디밴드 리더, 과외 교습, 나이트클럽 삐끼, 합기도 사범 등 다양한 경력을 내세웠다.[3] 그러나 이후 이력 상당수가 허위로 밝혀져 논란이 되었고, 이는 탄핵 절차의 공식적인 시작점이 되었다.[4][30] 한편, 당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던 도박 게임 바다이야기를 만든 지코프라임의 직원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5]
2. 1. 이력 논란
황라열은 2006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다양한 이력을 소개했으나,[3] 이후 상당수가 허위로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4] 총학생회장 당선 이후 불거진 이력 위조 논란은 탄핵 절차의 공식적인 시작점이 되었다.[30]황라열이 제시한 이력 중 논란이 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30]
- 포항 외국인 노동자 인권위원회 회장: 《시사저널》은 황라열이 외국인 노동자 인권 운동을 했다는 이력 역시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였다.[31]
- 고려대학교 의예과 특례 입학: 고려대학교는 황라열의 입학 지원 자체가 없었음을 확인하였다.[34]
- 잡지 《레베카》, 《한겨레21》 수습기자: 《한겨레21》은 자체 조사 결과 황라열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혔고,[33] 《오마이뉴스》는 《레베카》 수습기자 주장 역시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하였다.[35]
- 무예타이 자격증, 백댄서 이력: 이력의 허위 또는 과장이 컸다는 논란이 있었다.[34] 무도계에서는 황라열이 주장한 프로선수 자격증이 허위라는 입장이 나왔다.[36]
황라열은 이력 논란에 대해 언론의 오보나 관련 기관의 기록 누락 탓으로 돌렸으나,[32] 청문회를 통해 일부 과장과 허위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37] 그러나 사과문에 억울함을 호소하여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37] 청문회 이후에도 언론 오보 및 기록 누락 주장을 반복했다.[39]
3.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1980년대 이후 한국 대학 총학생회는 학생 운동의 구심점이었으나, 1990년대부터 학내 문제에 집중하며 영향력이 감소했다. 1993년 결성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운동권으로 불리며 비운동권과 경쟁했다.[6]
서울대학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총학생회 활동에 대한 관심이 줄고, 1998년부터 2005년까지 투표율 저조로 선거가 무산되는 경우가 잦았다. 2006년 3월 재선거에 황라열은 반(反) 운동권을 내세워 후보로 등록했다.[7][8]
한편, 2005년 11월 황우석 사건으로 서울대학교는 시위 장소가 되었고, 황우석 지지자들의 시위는 2006년 4월까지 이어져 학생들의 교내 시위에 대한 염증을 유발했다.[9]
3. 1. 당선
2006년 4월 황라열은 투표율 저조로 무산되었던 총학생회장 선거 재선거에 서프라이즈(Suprise) 선거운동본부 정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는 "비(非) 운동권도 아닌 반(反) 운동권"이라 주장하여 주목받았고, 특이한 경력을 선거 운동의 중요 홍보 수단으로 삼았다.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그의 경력을 연일 소개하며 선거를 홍보하였다.[10][8][11] 황라열의 주요 공약은 한총련 탈퇴였고, 황라열과 부후보 송동길을 제외하고는 선거운동원이 한 명도 없었으며, 선거자금을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45.75%라는 비교적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12] 언론들은 황라열의 독특한 이력을 보도하며 새 총학생회장이 비운동권 또는 반운동권이라는 점을 부각하였다.[13]황라열은 당선 이후 학교 측에 학생을 "고객"으로 여기는 서비스 향상 등을 요구하였다.[14]
3. 2. 갈등
2006년, 황라열이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학내 여러 사안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다. 황라열은 반(反) 운동권을 표방하며 당선되었는데, 당시 서울대학교 각 단과대학 학생회는 대부분 "운동권"으로 평가받는 학생들이 맡고 있어 갈등이 예상되었다.[15]황라열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탈퇴를 선언하고 학내 집회를 제한하려 하자, 총학생회와 단과대학 학생회들은 본격적으로 충돌하였다.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들은 이 갈등에서 황라열의 입장을 두둔하였다.[15]
갈등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 사안에서 두드러졌다.
- '''집회 제한:''' 황라열은 면학 분위기 조성을 이유로 중앙도서관 앞 아크로 광장에서의 집회를 불허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경찰력 동원도 고려했다.
- '''집회 중 부상 학생 지원:'''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 관련 시위 도중 부상당한 학생들에 대한 치료비 지원 문제를 두고 총학생회와 단과대학 학생회 간 의견이 대립했다. 총학생회는 "불법 집회" 참여자에 대한 지원 불가 입장을, 단과대학 학생회는 공동 결의로 참여한 집회에서 발생한 부상은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탈퇴 선언:''' 황라열은 한총련 탈퇴를 선언했고, 보수 언론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학내에서는 의견 수렴 없는 일방적 탈퇴라는 비판과 함께, 이미 1998년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불신임 결의 이후 사실상 탈퇴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적 선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 '''48대 총학생회의 회계 운영 문제:''' 황라열 측은 48대 총학생회가 축제 대행업체 선정 과정에서 운동권 인맥을 통해 부당 거래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49대 총학생회 역시 같은 업체와 동일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났다.
3. 2. 1. 집회 제한
황라열은 면학 분위기 조성을 이유로 중앙도서관 앞 아크로 광장에서의 집회를 불허하겠다는 공약을 하였고,[16] 이를 위해 경찰도 동원하겠다고 발언하였다.[17] 황라열의 집회 제한 주장은 학내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서울대학교의 학내 집회 갈등은 4·19 혁명 기념 집회를 계기로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 이 해 4·19 기념 집회는 총학생회가 불참한 가운데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이 참여하는 총운영위원회의 결정으로 아크로 광장에서 열렸다. 집회를 전후로 총학생회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논쟁이 이어졌다.[18][19]3. 2. 2. 집회 중 부상 당한 학생의 지원 문제
2006년 5월 4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 경기도에서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지면서 시위대 200여 명이 부상당했다. 경찰은 방패를 휘두르고 찍는 등 시위 대응 지침을 어긴 과잉 진압을 하였다.[20] 이 시위에 참여했던 서울대학교 학생 10명도 체포되었으나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다. 한편, 벌금 등의 처벌을 받은 학생들을 돕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21]서울대학교 학생들도 이 집회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입었다. 시위 중 다친 학생들의 치료비를 학생회비로 지원할 것인지를 두고 총학생회와 단과대학 학생회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총학생회는 "불법 집회"에 개인적으로 참여한 학생은 지원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단과대학 학생회는 공동 결의로 참여한 집회에서 발생한 부상은 지원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한 단과대학 학생회장이 자신을 부상자 명단에 포함시킨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22]
3. 2. 3. 한총련 탈퇴 선언
2006년 5월 10일, 황라열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탈퇴를 선언하였다.[23] 대학교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 선언은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민감한 주제였기 때문에 언론들이 주목하였고, 중앙일보 등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이를 "새 시대"의 상징으로 해석하며 황라열의 입장을 두둔하였다.[15]- 동아일보 사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5110058 “학생활동의 ‘새 시대’ 여는 서울대 總學”]
- 문화일보 사설 [https://web.archive.org/web/20041015081851/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 “대학가의 脫한총련 도미노”]
- 세계일보 사설 [https://web.archive.org/web/20070930152303/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605101638000211 “용기있는 서울대의 한총련 결별”]
- 조선일보 사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5/10/2006051070617.html “동료와 시대에 버림받은 한총련 ”]
- 헤럴드경제 사설 [https://web.archive.org/web/20041015081851/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 “실사구시 추구의 총학생회장”]
이에 대해 한총련은 황라열의 탈퇴 선언은 서울대학교 49대 총학생회에서만 유효하며, 한총련 정관상 차기 50대 총학생회는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자동으로 회원 신분이 부여된다는 입장을 보였다.[23] 한편, 황라열의 한총련 탈퇴 선언과 함께 부총학생회장 송동길은 48대 총학생회의 회계 부정을 주장하였다.[23]
황라열은 자신의 공약에 따라 한총련 탈퇴를 선언했다고 주장했지만, 학내에서는 반발이 있었다. 우선 별도의 의견 수렴 없는 일방적인 단체 탈퇴는 월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24] 또한, 1998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불신임 결의[25] 이후 사실상 탈퇴한 상태였기 때문에, 황라열의 탈퇴 선언은 정치적인 선전일 뿐이며 보수 언론의 한총련 죽이기에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24] 《시사저널》은 실제로 가입한 적도 없는 단체를 탈퇴한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띄워주는 것은 "촌극"이라고 보도하였다.[31]
황라열의 한총련 탈퇴 선언은 이후 이어질 탄핵이 발의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한편, 당시 정운찬 총장은 "(서울대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가) 좋은 방향일지는 몰라도 대학생들이 너무 사회 의식이 없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평가했다.[26]
3. 2. 4. 48대 총학생회의 회계 운영 문제
황라열과 부총학생회장 송동길은 48대 총학생회가 축제 대행업체를 선정할 때 운동권 인맥을 통해 부당 거래를 했다고 주장했다.[27] 그러나 황라열이 이끈 49대 총학생회 역시 같은 대행업체와 동일한 계약을 체결했다.[28]총학생회는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세금계산서를 발급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후원금을 받기 위해 대행업체에 세금계산서 발급을 의뢰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운동권 깎아내리기"를 위한 부풀리기라고 평가했다.[27]
4. 탄핵
황라열은 당선 이후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갈등을 겪었고, 한총련 탈퇴 선언이 도화선이 되어 탄핵에 직면하게 되었다. 황라열이 탄핵된 주된 이유는 그가 밝힌 이력 가운데 상당수가 거짓이거나 과장이 심했고, 밝히지 않은 이력 중에는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수 있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29]
황라열은 2006년 5월 10일 한총련 탈퇴를 선언하였다.[23] 대학교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는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보수 언론들은 이를 "새 시대"의 상징으로 해석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 동아일보 사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5110058 “학생활동의 ‘새 시대’ 여는 서울대 總學”]
- 문화일보 사설: [https://web.archive.org/web/20041015081851/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 “대학가의 脫한총련 도미노”]
- 세계일보 사설: [https://web.archive.org/web/20070930152303/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605101638000211 “용기있는 서울대의 한총련 결별”]
- 조선일보 사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5/10/2006051070617.html “동료와 시대에 버림받은 한총련 ”]
- 헤럴드경제 사설: [https://web.archive.org/web/20041015081851/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 “실사구시 추구의 총학생회장”]
그러나 학내에서는 황라열의 일방적인 한총련 탈퇴 선언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별도의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다는 점과 1998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불신임 결의[25] 이후 사실상 탈퇴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선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24] 《시사저널》은 가입한 적도 없는 단체를 탈퇴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촌극"이라고 평가했다.[31]
한총련 탈퇴 선언과 함께 제기된 48대 총학생회의 회계 부정 주장 역시 갈등 요인이었다. 황라열과 부총학생회장 송동길은 48대 총학생회가 축제 대행업체 선정 과정에서 운동권 인맥을 통해 부당 거래를 했다고 주장했으나,[27] 황라열의 49대 총학생회 역시 같은 대행업체와 동일한 계약을 체결했다.[28] 세금계산서를 발급할 수 없는 비영리 단체인 총학생회의 입장에서 후원금 수령을 위해 대행업체에 세금계산서 발급을 의뢰한 것을 "운동권 깎아내리기"로 부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27]
황라열은 자신이 속한 기업인 지코프라임으로부터 5000만원의 후원금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덕성 논란과 대가성 의혹에 휩싸였다. 황라열은 실제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받기로 약속받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이전에 "받았다"고 밝힌 내용과 배치되어 논란이 증폭되었다.[41]
4. 1. 탄핵안 가결
2006년 6월 12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를 열고 황라열 총학생회장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하였다.[1] 재적 의원 82명 중 56명이 출석하여 51명의 찬성으로 탄핵안이 통과되었다.[1]탄핵 절차는 황라열의 이력 관련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황라열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면서 "포항 외국인 노동자 인권위원회 회장", "고려대학교 의예과 특례 입학", "잡지 《레베카》, 《한겨레21》 수습기자" 등의 이력을 제시하였으나,[30] 성인 게임 업체 지코프라임 직원이라는 정보는 누락하였다.[5]
2006년 5월 말, 《시사저널》은 황라열이 성인 게임 업체의 현직 팀장으로 재직 중이며, 다른 이력들에도 의문이 있다고 보도하였다.[31] 이후 이력들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황라열은 언론의 오보 탓으로 돌렸으나,[32] 《한겨레21》과 고려대학교는 황라열의 주장이 거짓임을 확인하였다.[33][34] 다른 이력들 역시 허위이거나 과장이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34][31][35][36]
청문회에서 황라열은 이력의 일부 과장과 허위를 시인하고 사과했지만,[37] 사퇴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38] 이후에도 언론 보도와 관련 기관의 기록 누락을 주장하며[39] 법적 대응을 언급하기도 하였다.[40] 황라열은 사퇴를 거부하였고,[38] 이는 학내 반발을 더욱 키워 탄핵안 발의로 이어졌다. 2006년 6월 8일 청문회에서도 황라열은 언론의 책임을 주장하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재차 확인하였다.[42]
결국 서울대학교 전체학생대표자 회의는 41명의 연서로 총학생회장 탄핵안을 발의하였다. 탄핵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47]
- 선거 기간 허위 이력 기재
- 한총련 탈퇴 선언 과정에서의 비민주적 행위
- 학내 구성원 간의 단결 저해
탄핵 찬반 논의 과정에서 "운동권의 음모"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전체 학생 투표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48] 곧 종강과 방학이 시작되므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투표 결과 찬성 51명, 반대 3명, 기권 2명으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황라열은 탄핵 결과를 "담담히 수용하겠다"고 밝혔다.[48]
4. 2. 탄핵 이후
황라열은 당선 이후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계속 갈등을 겪었고, 한총련 탈퇴 선언이 도화선이 되어 탄핵에 직면하게 되었다. 황라열이 탄핵된 주된 이유는 그가 밝힌 이력 상당수가 거짓이거나 과장이 심했고, 밝히지 않은 이력 중에는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수 있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29]2006년 6월 12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를 열었다. 재적 의원 82명 중 56명이 출석했고, 출석 의원 과반수인 51명의 찬성으로 황라열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1]
황라열 탄핵 절차는 그의 이력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며 "포항 외국인 노동자 인권위원회 회장", "고려대학교 의예과 특례 입학", "잡지 《레베카》, 《한겨레21》 수습기자" 등의 이력을 제시했으나,[30] 도박 게임 '바다이야기' 개발 회사인 지코프라임 직원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5]
2006년 5월 말, 《시사저널》 신호철 기자는 황라열이 성인 게임업체 팀장직을 겸임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다른 이력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31] 《시사저널》은 황라열이 학생회장 당선 이후에도 지코프라임 팀장으로 재직 중임을 확인했다.[31]
이후 황라열은 외국인 노동자 인권위원회 회장, 고려대 의예과 특례 입학, 수습기자 경력 등에 대한 의혹 제기에 대해 언론의 오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 적이 없으며, 해당 기관의 기록 누락이나 다른 사정이 있었다고 해명했다.[32] 그러나 《한겨레21》은 자체 조사 결과 황라열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혔고,[33] 고려대학교 역시 황라열의 입학 지원 자체가 없었음을 확인했다. 무예타이 자격증, 백댄서 이력 등도 허위이거나 과장이 심했다. 그가 제출한 이력 대부분이 허위였던 것이다.[34] 《시사저널》은 황라열이 외국인 노동자 인권 운동을 했다는 이력 역시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31] 《오마이뉴스》는 《레베카》 수습기자였다는 주장 역시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35] 황라열의 이력 논란은 무도계까지 번져, 그가 주장한 프로선수 자격증이 허위라는 주장이 나왔다.[36]
결국 청문회를 거친 황라열은 이력 일부에 과장과 허위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문에서도 억울함을 호소하여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37] 청문회 이후 황라열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탄핵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38] 그러나 황라열은 청문회 이후에도 언론의 오보 또는 관련 기관의 기록 누락을 주장했다.[39] 특히 서울대학교 학내 신문인 《대학신문》 취재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대응을 주장하기도 했다.[40]
황라열은 "사과문을 발표한 이상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사퇴를 거부했다.[38] 이는 학내 반발을 더욱 키웠고, 결국 탄핵안이 발의되었다. 2006년 6월 8일 열린 청문회에서 황라열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이 일부 있지만 오보를 낸 언론의 책임이 더 크며 사퇴할 의사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42] 언론 역시 황라열의 탄핵 가결 여부를 주목했다.[43][44] 황라열의 허위 이력에도 불구하고 호의적인 보도를 했던 보수 언론들도[45][15] 이후 황라열이 계속해서 억울함을 호소하자 등을 돌렸다.[46]
서울대학교 전체학생대표자 회의는 41명의 위원 연서로 총학생회장 탄핵안을 발의했다. 탄핵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47]
- 선거 기간 중 허위 이력 기재
- 한총련 탈퇴 선언 과정에서의 비민주적 행위
- 학내 구성원 간의 단결 저해
탄핵 찬반 논의에서 국어국문학과 박영민은 '운동권의 음모'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전체 학생 투표로 탄핵을 결정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대다수 대의원들은 곧 종강과 방학이 이어지므로 학생 전체 투표는 무리라고 판단, 전체학생대표자회의 결정에 따라 탄핵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어진 투표에서 찬성 51명, 반대 3명, 기권 2명으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황라열은 탄핵 결과를 "담담히 수용하겠다"고 밝힌 후 자리를 떠났다.[48]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최초의 탄핵이었고, 황라열이 독특한 이력으로 당선된 점, 한총련 탈퇴로 이슈가 되었다는 점 때문에 언론은 황라열의 탄핵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49] 탄핵 직후 학내 게시판인 스누라이프에서는 탄핵 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48]
황라열 탄핵 이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보궐선거 없이 부총학생회장 송동길을 권한대행으로 임명했으나, 이는 학칙 위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50] 《서울대저널》은 6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탄핵 자체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도가 낮았다고 보도했다. 설문 조사 결과, 탄핵 이후에야 탄핵 소식을 들었다는 학생이 62%였다.[51] 《서울대저널》은 이를 근거로 탄핵 절차에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고 지적했지만, 설문 조사 대상이 계절학기 수강자였다는 점에서 전체 학생의 인지도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건의료노조의 서울대 내 집회 과정에서 송동길 총학생회 권한대행과 집회 참가자 사이에 폭력이 발생했고, 이는 다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대결 구도로 번졌다.[52] 황라열 탄핵 이후에도 소위 운동권의 지지세는 제자리였고, 이어진 선거는 다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도를 보였다. 비운동권 후보들 간의 선거 연대를 주장한 후보도 있었지만, 다른 후보들은 이러한 인위적 통합에 동의하지 않았다.[53]
여러 우려 섞인 사회의 시각과 달리, 황라열 탄핵 이듬해인 2007년 서울대학교는 비교적 평온한 한 해를 보냈다. 학생들의 총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51대 총학생회는 3년 만에 재투표 없이 당선자를 냈다.[54]
4. 3. 파장
황라열은 당선 이후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갈등을 겪었고, 한총련 탈퇴 선언을 계기로 탄핵에 이르게 되었다. 황라열이 밝힌 이력 중 상당수가 거짓이거나 과장되었고,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수 있는 내용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탄핵되었다.[29]2006년 6월 12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를 열어 탄핵안을 가결하였다. 재적 의원 82명 중 3분의 2 이상인 56명이 출석하였고, 출석 의원 과반수인 51명이 찬성하였다.[1] 황라열은 사퇴를 거부하며 학내 반발이 커졌고, 결국 탄핵안이 발의되었다. 2006년 6월 8일 청문회에서 황라열은 언론의 책임을 주장하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42] 언론은 황라열의 탄핵 가결 여부에 관심을 보였다.[43][44] 보수 언론들은 초기에는 황라열에게 호의적이었으나,[45][15] 이후 황라열의 주장에 등을 돌렸다.[46]
서울대학교 전체학생대표자 회의는 41명의 연서로 총학생회장 탄핵안을 발의하였다. 탄핵 사유는 다음과 같다.[47]
- 선거 기간 중 허위 이력 기재
- 한총련 탈퇴 선언 과정에서의 비민주적 행위
- 학내 구성원 간의 단결 저해
탄핵 찬반 논의에서 "운동권의 음모"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전체 학생 투표로 탄핵을 진행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대다수 대의원들은 곧 있을 종강과 방학 때문에 학생 전체 투표는 무리라고 판단하여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였다. 투표 결과 찬성 51명, 반대 3명, 기권 2명으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황라열은 탄핵 결과를 "담담히 수용하겠다"고 밝힌 후 자리를 떠났다.[48]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최초의 탄핵이었고, 황라열의 독특한 이력과 한총련 탈퇴로 인한 이슈 때문에 언론은 황라열의 탄핵을 비중 있게 보도하였다.[49] 탄핵 직후 학내 게시판인 스누라이프에서는 탄핵 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48]
황라열 탄핵 이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보궐선거 없이 부총학생회장 송동길을 권한대행으로 임명하였으나, 이는 학칙 위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50] 한편, 《서울대저널》은 6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탄핵 자체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도가 낮았다고 보도하였다. 탄핵 이후에야 탄핵 소식을 들었다는 학생이 62%였다.[51] 《서울대저널》은 이를 근거로 탄핵 절차 역시 의견 수렴이 부족하였다고 지적하였지만, 설문 조사 대상이 계절학기 수강자였다는 점에서 전체 학생의 인지도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건의료노조의 서울대 내 집회 과정에서 송동길 총학생회 권한대행과 집회 참가자 사이에 폭력이 발생하였고, 이는 다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대결 구도로 논쟁거리가 되었다.[52] 황라열 탄핵 이후에도 이른바 운동권의 지지세는 제자리였고, 이어진 선거는 다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도를 보였으며, 비운동권 후보들 간의 선거 연대를 주장한 후보도 있었지만 다른 후보들은 이러한 인위적 통합을 달가워하지 않았다.[53]
탄핵 이후 여러 우려 섞인 사회의 시각과 달리, 황라열 탄핵 이듬해인 2007년 서울대학교는 비교적 평온한 한 해를 보냈다. 학생들의 총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51대 총학생회는 3년 만에 재투표 없이 당선자를 내었다.[54]
황라열의 탄핵은 당시 황우석 사건, 신정아의 허위 이력 논란 등과 함께 한국 사회의 신뢰성 문제와 사회적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었다.[55][56] 《미디어오늘》은 황라열의 당선에서 탄핵까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며 "꿀만 보면 달려드는 벌떼"같다고 평가했다. 황라열의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하면서 사회적 이슈 만들기에만 급급했을 뿐, 앞뒤 상황에 대한 사실 확인도 없고 탄핵 이후에도 반성이 없다는 이유였다.[57] 탄핵에 참여한 학생들 역시 이를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갈등으로 보는 것을 경계하면서 사회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거짓말이 더욱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한다.[58]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서울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큰 뉴스 가치를 지녔겠냐며, 한국 사회가 서울대학교를 너무 특별하게 취급한다는 평가와[59] 이른바 운동권으로 불리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프레임이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라는 평가가 있었다.[60]
5. 자퇴 이후
황라열은 2007년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여러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임직원으로 재직하였다.[61] 2016년에는 요즈마 그룹의 판교 요즈마 캠퍼스 센터장으로 임명되었다.[66] 현재는 블록체인 업계 힐스톤 파트너스의 대표이다.[67]
5. 1. 음악 활동
2006년 총학생회 회장으로 재학 중일 당시에도 지코프라임의 개발자로서 댄스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62] 2007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SK 와이번스 치어리더들이 참여한 앨범 《하이라이트》의 작사, 작곡, 프로듀서를 맡았다고 밝혔으나,[63] 당시 《하이라이트》의 제작은 에이치에스컴이 진행하였고 노래는 리메이크 위주의 응원가였다. 또한 발매 당시 신곡이었던 〈랄랄라송〉의 작사는 치어리더들이 진행하였다.[64] 《하이라이트》의 제작을 소개하는 노컷뉴스의 기사에 "나열"이 앨범 프로듀서를 맡았다고 소개하고 있어[64] 앞의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은 과장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5. 2. 사업가
2007년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각종 스타트업 사업을 하였다.[65] 2016년 요즈마의 판교 요즈마 캠퍼스 센터장으로 임명되었다.[66] 현재는 블록체인 업계 힐스톤 파트너스의 대표로, 주로 암호화폐공개의 자금 조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67][68]2018년 《한국경제신문》에서 블록체인 관련 칼럼을 연재하였다.[69] 2020년에는 페이스북에 "국내 가상화폐 공개의 99%는 사기"라는 글을 올렸고,[65] 체인파트너스 표철민 대표의 증권형 토큰 컨설팅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섞어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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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인디밴드 가수출신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선…백댄서·호객꾼 등 50여 이색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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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지지자 학내 시위 “도가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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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 집회와 껍데기만 남은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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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대추분교 사태 관련 서울대 학생 10명 구속영장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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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 한총련 탈퇴 선언 “모든 학생정치조직과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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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 한총련 탈퇴 선언 이후 학내·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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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총학생회 서총련 사실상 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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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장 “대학생들 나라걱정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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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의 광고대행업체 의혹 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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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의 광고대행업체 관련 의혹 제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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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장의 화려한 경력들 일부는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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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서울대 총학생회장 탄핵은 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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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동권 선본에게 공조를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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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신뢰 무너뜨리는 수많은 '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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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라열 사태, 서울대 학생사회의 썩은 고름을 터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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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사람 - “휴학 상태에서 음악작업에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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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만 추란 법 있나요?" 치어리더들, 작사에 노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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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하려다 블록체인 스캠(사기) '도장깨기'가 업이 된 사모펀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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