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무라 모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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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무라 모토키는 2006년 발생한 나카타니 아유미 살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다. 피해자인 나카타니 아유미는 도쿠야마 공업고등전문학교 연구실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되었으며, 수사 과정에서 후지무라 모토키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후지무라는 도주 후 자살한 채 발견되었으며, 언론은 그의 실명 공개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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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무라 모토키 | |
---|---|
사건 개요 | |
명칭 | 야마구치 여자 고센생 살해 사건 |
공식 명칭 | 해당 없음 |
장소 | 일본 야마구치현 슈난시 도쿠야마 공업 고등전문학교 |
날짜 | 2006년 8월 28일 |
시간 | 해당 없음 |
개시 시각 | 해당 없음 |
종료 시각 | 해당 없음 |
시간대 | UTC+9 |
개요 | 해당 없음 |
원인 | 해당 없음 |
수단 | 비닐 끈 |
무기 | 비닐 끈 |
공격 측 인원 | 1명 |
표적 | 고센의 여학생 |
사망 | 1명 |
부상 | 해당 없음 |
행방불명 | 해당 없음 |
피해자 | 고센의 여학생 |
손해 | 해당 없음 |
범인 | 고센생 남학생 (당시 19세) |
혐의 | 강간치사, 살인 |
동기 | 음란 목적 |
관여 | 해당 없음 |
방어 | 해당 없음 |
대처 |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서류 송검 |
사죄 | 해당 없음 |
배상 | 해당 없음 |
관할 | 야마구치현 경찰 (수사본부・슈난 경찰서) |
관련 인물 | |
이름 | 후지무라 모토키 |
2. 나카타니 아유미 살해 사건
2006년 8월 28일, 도쿠야마 공업고등전문학교 연구실에서 재학생 '''中谷步|나카타니 아유미일본어'''(당시 20세)가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9][1] 사건 발생 후 같은 학교 학생인 '''후지무라 모토키'''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10],[11]
같은 해 9월 7일, 후지무라는 사건 현장 인근 산속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12] 경찰은 후지무라가 나카타니를 살해한 후 자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으며, 10월 31일 피의자 사망 상태로 사건을 검찰에 서류 송치했다.[13] 이후 11월 27일, 검찰은 피의자 사망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2. 1. 사건 발생
2006년 8월 28일 오후 3시경, 도쿠야마 공업고등전문학교의 한 연구실에서 이 학교 토목건축공학과 5학년에 재학 중이던 '''中谷步|나카타니 아유미일본어'''(당시 20세)가 짐 묶는 비닐 끈으로 목이 졸려 살해된 채 교직원에게 발견되었다.[9][1]사건 당일은 여름 방학 기간이었으나, 나카타니는 구마모토 대학 3학년 편입 시험에 합격하여 졸업 연구 및 기말 시험 준비를 위해 자율적으로 등교해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다.[1] 부검 결과 사인은 목 부위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되었으며, 사망 추정 시각은 8월 28일 오전 10시 30분에서 정오 사이였다. 목 이외의 다른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2]
사건이 발생한 연구실은 잠겨 있어 밀실 상태였고, 열쇠는 해외 출장 중인 담당 교수를 제외하고 해당 연구실 소속 학생 5명 전원이 가지고 있었다.[1] 야마구치현 경찰은 연구실 근처 학생들이 특별한 소리를 듣지 못한 점 등을 토대로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황을 청취한 결과, 연락이 두절된 같은 연구실 소속의 19세 남학생 후지무라 모토키가 유력 용의자로 떠올랐다.[1][10],[11] 후지무라는 평소 통학용으로 사용하던 혼다제 파란색 오토바이가 없어졌고 집에 귀가하지 않은 상태였다.[10],[11][1]
후지무라는 사건 전날 피해자에게 전자 메일로 "과제를 알려 달라"고 연락해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 피해자의 손톱 밑에서는 저항 과정에서 묻은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의 혈액과 피부 조각이 발견되었으며,[1] 시신의 옷 일부가 흐트러져 있었다.
피해자는 8월 28일 오전 10시경 동급생 친구와 함께 등교했으며, 직후 다른 건물에 있는 담화실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여러 학생에게 목격되었다.[1]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경에는 피해자와 다른 여학생으로 보이는 인물이 연구실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다른 남학생(후지무라)이 목격했다.[3] 후지무라는 이전에 연구실에 있는 것이 학교 관계자에게 목격된 바 있었다.[4] 피해자는 곧 친구와 헤어져 연구실로 향했다. 약 1시간 뒤인 오전 11시경, 함께 등교했던 친구가 연구실에 가서 피해자의 이름을 불렀으나 안에는 인기척이 없고 대답도 없었다. 휴대전화 연락도 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러한 정황을 토대로 피해자가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사이 30분 동안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1][5]
야마구치현 경찰 본부는 피해자의 몸 등에서 발견된 모발의 DNA 감정 결과, 해당 모발이 후지무라의 것임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다음 날인 8월 29일, 후지무라에 대해 살인 혐의로 체포 영장을 야마구치 지방 법원에 청구했으며,[6][7] 영장이 발부되자 9월 1일 그를 살인 혐의로 전국에 지명 수배했다. 후지무라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이용해 도주한 것으로 보였다.[1]
9월 7일, 학교에서 멀지 않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의 한 산림 인근 도로변에서 후지무라의 것으로 보이는 파란색 오토바이가 발견되었다. 수색 결과, 산림 안쪽에서 후지무라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두 나무 사이에 로프를 이용해 목맴 상태였으며, 자살로 보였다. 시신은 일부 백골화가 진행된 상태로, 사건 직후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9월 7일 발간된 주간 신조 (9월 14일호)에서는 수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피해자 시신에서 정액이 검출되었다고 보도했다. 후지무라의 자택에서는 다수의 "강간물" 비디오 및 DVD가 발견되었으며, 특히 실제 강간 장면을 담아 경찰에 적발된 '바키 사건'으로 유명한 '바키 비주얼 플래닝'의 비디오를 거의 전부 소장하고 있었다.
야마구치현 경찰 수사본부는 후지무라가 사건 전날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메일을 보낸 점, 자택에서 범행에 사용된 비닐 끈을 가져온 점 등을 근거로 "확정적인 살의가 있었다"고 단정했다. 10월 31일, 경찰은 사망한 후지무라를 강간치사 및 살인 혐의로 야마구치 지방 검찰청에 서류 송치(피의자 사망)했다. 피해자의 부모는 "강간치사" 죄명에 대해 "사실을 제대로 전해 주었으면 한다"고 경찰에 요청했다. 이후 11월 27일자로, 피의자 사망으로 기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불기소 처분되었다.
2. 2. 수사 과정
2006년 (헤이세이 18년) 8월 28일, 한 여대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친구 여대생이 수상하게 여겨 교원과 함께 찾고 있었다. 당일은 여름 방학 중이었지만, 여대생은 구마모토 대학 3학년 편입 시험에 합격하여 연구실에서 졸업 연구나 전기말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 자율 등교하고 있었다[1].오후 3시경, 여대생이 소속된 연구실에서 찾고 있던 여대생이 짐 묶는 비닐 끈으로 목이 졸린 채 바닥에 쓰러져 사망해 있는 것을 찾고 있던 여성 직원이 발견했다[1]. 사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 사망 추정 시각은 8월 28일 오전 10시 30분~정오경. 목 이외의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2].
이 연구실에는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 밀실 상태였다. 또한,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연구실 열쇠는, 일본 국외로 출장 중인 여성 교원 외에, 이 연구실에 소속된 5명 전원이 열쇠를 소지하고 있었다[1].
야마구치현 경찰은 연구실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수상한 소리를 듣지 못한 점 등으로 보아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교직원과 학생들로부터 상황을 청취한 결과, 연락이 두절된 소년이 부상했다[1].
범인으로 보이는 소년은 전날 전자 메일로 "과제를 알려 달라"고 전해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손톱에는 저항할 때 묻은 것으로 보이는 범인의 혈액과 피부 조각이 남아 있었다[1]. 시체의 의복에는 일부 흐트러짐이 있었다.
또한 피해자는 사건 직전, 현장 연구실에 혼자 있는 것을 목격되었다. 피해자는 8월 28일 오전 10시경, 동급생 여대생과 등교. 그 직후, 연구실과 별동에 있는 담화실에서 피해자와 여대생 등이 담소하는 것을 다른 여러 학생이 목격했다[1]. 같은 날 10시 30분경,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성과 피해자가 연구실 쪽으로 걷는 것을 다른 남학생이 목격했다[3]. 남학생은 이전에 연구실에 있는 것을 학교 관계자에게 목격되었다[4].
피해자는 곧, 여대생과 헤어져 연구실로 향했다. 약 1시간 후 오전 11시경, 이 여대생이 연구실에 가서 피해자의 이름을 불렀지만, 실내에는 인기척이 없고, 대답도 없었다고 한다. 휴대 전화에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의 점으로 보아, 오전 10시 30분부터 오전 11시까지 30분 사이에 피해자는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현 경찰은 보고 있다[1][5].
야마구치현 경찰 본부는 피해자의 몸 등에 부착되어 있던 모발을 DNA 감정하여, 모발이 이 연구실에 소속된 19세 남학생의 것이라고 판단, 다음날 8월 29일 이 학생을 살인 혐의로 체포 영장을 야마구치 지방 법원에 청구[6][7]. 즉시 발부되어 9월 1일 이 학생을 살인 혐의로 전국에 지명 수배했다.
범인으로 보이는 소년은 자신이 보유한 혼다제 파란 오토바이가 자택에서 없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여 도주했다고 보였다[1].
이후 9월 7일 학교에서 가까운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의 산림 옆에서 소년과 같은 파란 오토바이를 발견, 거기에서 들어간 산림 안에서 소년의 시신이 발견된다. 옆의 두 나무에 로프가 걸려 있어, 목맴자살로 보인다. 이 시신은 지명 수배 중이던 남학생으로 확인되었다. 시신은 일부가 백골화되어 있으며, 사건 직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9월 7일의 주간 신조 (9월 14일호)에서는 수사 관계자의 말로 시신에 정액이 부착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범인으로 보이는 소년은 "강간물" 비디오·DVD를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으며, 특히 "진짜 강간 장면"을 보여 경찰에 적발되어 바키 사건으로 유명해진 "바키 비주얼 플래닝"의 비디오는 거의 다 갖추고 있었다.
야마구치현 경찰 수사 본부는 남학생이 전날 오후 피해자의 휴대 전화로 메일을 보낸 일, 자택에서 비닐 끈을 가져온 점 등을 근거로 "확정적인 살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고, 10월 31일 사망한 동 소년을 야마구치현 경찰이 피의자 사망으로 강간 치사 및 살인 혐의로 야마구치 지방 검찰청에 서류 송치했다. 피해자의 양친은 "강간 치사"의 죄명에 대해 "사실을 제대로 전해 주었으면 한다"고 경찰에 요청했다. 이후, 11월 27일자로, 피의자 사망으로 기소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불기소 처분되었다.
2. 3. 용의자 사망
9월 7일, 사건 현장에서 5km가량 떨어진 구다마쓰(下松) 시 산길에서 후지무라의 오토바이가 발견되었고, 수십 미터 떨어진 시모노세키시의 산림 안에서 목을 매 숨진 후지무라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일부 백골화된 상태였으며, 옆 나무에 로프가 걸려 있는 등 자살 정황이 뚜렷했다. 경찰은 후지무라가 사건 직후 도주하여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12]10월 31일, 경찰은 용의자 사망 상태로 후지무라를 불구속 기소하여 검찰에 서류 송치했다. 경찰은 후지무라가 사건 전날 피해자와 만날 약속을 하고 자택에서 비닐 끈을 가져간 점 등을 근거로 계획적인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13] 송치된 혐의는 강간치사 및 살인이었으며, 피해자의 부모는 '강간치사' 죄명에 대해 사실을 제대로 반영해 달라고 경찰에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11월 27일자로 피의자 사망에 따른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2. 4. 사후 처리
9월 7일, 사건 현장에서 약 5km 떨어진 구다마쓰시(下松市|구다마쓰시일본어)의 산길에서 후지무라의 오토바이가 발견되었고, 오토바이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목을 매달아 숨진 후지무라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후지무라의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일부 백골화된 상태였으며, 사건 직후 도주하여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12]야마구치현 경찰은 10월 31일, 후지무라가 사건 전날 피해자 나카타니와 만날 약속을 했고 자택에서 비닐 끈을 가지고 나간 점 등을 근거로 계획적인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13] 같은 날, 경찰 수사 본부는 후지무라가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메일을 보낸 점, 자택에서 비닐 끈을 가져온 점 등을 근거로 "확정적인 살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고, 피의자 사망 상태인 후지무라를 강간 치사 및 살인 혐의로 야마구치 지방 검찰청에 서류 송치했다. 피해자의 부모는 경찰에 "강간 치사"라는 죄명에 대해 "사실을 제대로 전해 주었으면 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11월 27일, 야마구치 지방 검찰청은 피의자 사망으로 기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3. 언론 보도와 논란
후지무라가 범행 당시 일본 법률상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어 지명수배되었음에도 초기에는 신상 정보나 인상착의가 공개되지 않았다.[14] 야마구치현 경찰은 후지무라가 미성년자이고 재범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익명 수배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주간 신초가 9월 6일 발매된 잡지에서 '지명수배자의 정보 비공개가 이상하며, 정보 공개가 범인의 자살이나 재범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하며 후지무라의 실명과 사진을 게재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15] 이후 후지무라가 사체로 발견되자, 요미우리 신문 등 일부 주요 언론사들도 실명 보도를 시작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었다.[16] 이는 소년법에 따른 미성년자 보호 원칙과 언론 보도의 자유 및 공공의 알 권리 사이의 충돌 문제를 드러냈다. 소년법은 특정 조건 하의 미성년자에 대한 추정 보도를 금지하지만, 수배 중인 미성년자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해석의 여지가 있었고, 언론사들은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서로 다른 대응을 보였다.
이러한 실명 보도 움직임에 대해 일본변호사연합회는 9월 14일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고,[17] 일부 공립 도서관에서는 해당 기사가 실린 신문이나 잡지의 열람을 제한하기도 했다.[18] 하지만 정작 사건이 발생한 야마구치 현의 공립 도서관들은 이러한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19], 이 문제를 둘러싼 사회 내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3. 1. 실명 보도 논쟁
후지무라는 범행 후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어 지명수배되었으나, 범행 당시 일본의 법률상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수배 중에도 신상 정보나 인상착의가 공개되지 않았다.[14] 야마구치현 경찰은 후지무라가 미성년자이고 재범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익명 수배의 이유로 들었다.그러나 이러한 익명 보도 원칙은 논란을 낳았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배 중에는 성명과 얼굴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현행 소년법은 "가정법원의 심판에 회부된 소년 또는 소년일 때 범한 죄로 공소가 제기된 자"에 대한 추정 보도를 금지하고 있지만, 수배 중인 미성년자의 신상 공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따라서 법 조문상으로는 가정법원 심판 회부나 공소 제기 전까지는 신상 공개가 위법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언론사는 협정에 따라 보도를 자제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간 신초는 9월 6일 발매된 9월 14일호에서 후지무라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15] 주간 신초는 "도주하여 지명수배된 상태임에도 이름이나 인상착의가 공개되지 않는 것은 이상하며, 이를 공표하는 것이 오히려 범인의 자살이나 재범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중대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자체 판단 하에 9월 7일 얼굴 사진과 성명을 다시 게재했다. 공교롭게도 잡지 발매 당일 오후, 후지무라는 사체로 발견되었다.
후지무라의 사망 이후, 실명 보도 문제는 더욱 확산되었다. TV 아사히, 니혼 TV, 요미우리 신문 등 일부 언론은 "(익명 보도의 근거가 되는) 소년의 갱생 기회가 사라졌다"는 이유를 들며 실명 보도를 시작했다.[16] 다른 언론사들의 대응은 엇갈렸다. 아사히 신문사의 경우, 아사히 신문 본지는 익명을 유지했지만 주간 아사히는 실명을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은 소년 범죄의 익명 보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끝까지 실명 보도는 자제했다.
이러한 언론의 실명 보도에 대해 일본변호사연합회는 9월 14일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17] 또한 일부 공립 도서관에서는 해당 기사가 실린 신문이나 잡지의 열람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18] 하지만 정작 사건이 발생한 야마구치 현의 공립 도서관들은 이러한 제한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19]
3. 2. 언론사의 대응
야마구치현 경찰은 지명 수배 당시, 해당 학생이 미성년자이고 재범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익명으로 수배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수배 중인 피의자에 대해서는 성명과 얼굴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1] 소년법은 가정법원 심판에 회부되거나 소년 시절 범죄로 공소가 제기된 경우에 한해 신상 추정 보도를 금지하고 있지만, 수배 중인 미성년자에 대한 명시적인 공표 금지 조항은 없다. 법 조문상으로는 기소 전까지 공표가 위법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는 보도 협정에 따라 실명 보도를 자제했다.[1]하지만 9월 7일, 주간신조는 사건의 중대성을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소년의 얼굴 사진과 실명을 게재했다. 공교롭게도 잡지 발매 당일 오후에 소년의 유해가 발견되었다.[1] 소년의 사망 사실이 확인되자 일부 언론사의 보도 태도가 바뀌었다. TV 아사히와 니혼 TV, 요미우리 신문은 소년의 갱생 기회가 사라졌다는 이유를 들어 용의자의 실명을 보도하기 시작했다.[1]
다른 언론사들의 대응은 엇갈렸다. 아사히 신문사의 경우, 아사히 신문 본지는 익명 보도를 유지했지만, 자매지인 주간 아사히는 실명을 보도했다.[1] 한편, 산케이 신문은 소년이 발견되기 전 단계에서 소년범 익명 보도 원칙에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 사망 후에도 끝까지 실명 보도는 하지 않았다.[1]
4.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후지무라 모토키 사건 당시 일본에서는 미성년자인 용의자의 신상 공개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야마구치현 경찰은 용의자가 미성년자이고 재범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 하에 익명으로 지명 수배를 진행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배 중인 피의자에 대해서는 성명과 얼굴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본 소년법은 가정법원 심판에 회부되거나 공소가 제기된 소년에 대한 추정 보도를 금지하고 있으나, 수배 단계의 미성년 피의자에 대한 신상 공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법적으로는 기소 전 신상 공개가 위법은 아니지만, 당시 일본의 주요 언론사들은 내부 협정에 따라 보도를 자제했다.
하지만 주간신조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자체적인 판단으로 용의자의 얼굴 사진과 실명을 게재했다. 해당 주간지가 발매된 9월 7일 당일 오후, 용의자는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용의자의 사망 이후, TV 아사히, 니혼 TV, 요미우리 신문 등 일부 언론은 "소년의 갱생 기회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실명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언론사 간의 대응은 엇갈렸는데, 예를 들어 아사히 신문사의 경우 아사히 신문 본지는 익명 보도를 유지했지만, 자매지인 주간 아사히는 실명을 공개했다. 한편, 소년범죄의 익명 보도 원칙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던 산케이 신문은 용의자 발견 전까지 관련 기사를 게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실명 보도는 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나타난 일본 내 논쟁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미성년 범죄자의 신상 공개 범위와 기준 설정 문제, 현행 소년법의 적절성 및 실효성 문제, 그리고 언론이 미성년 피의자 관련 보도에서 지켜야 할 윤리적 책임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범죄 예방과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적 가치와 소년의 인권 보호 및 사회 복귀를 통한 갱생 기회 보장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원칙과 기준을 설정해야 할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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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口の女子高専生、死因は窒息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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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型一致が決め手 徳山高専事件の容疑者特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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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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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手配少年とみられる遺体とバイクを発見…山口県下松市内の山中で
http://www.yomiuri.c[...]
요미우리 신문
2006-09-07
[13]
웹인용
<徳山高専生殺害>自殺少年書類送検 殺人・強姦致死容疑で
http://headlines.yah[...]
마이니치 신문
200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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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소년법 6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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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자정부
201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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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手配の19歳を実名報道 週刊新潮、顔写真も
http://www.47news.jp[...]
교도통신/47NEWS
200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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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おことわり:事件の凶悪さを考慮し…」 読売新聞、異例の少年実名報道…山口・女子学生殺害
http://www.zakzak.co[...]
ZAKZAK
200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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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徳山工業高等専門学校の事件の実名報道に対する会長談話
http://www.nichibenr[...]
日本弁護士連合会
201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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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年の実名報道した読売新聞の閲覧を制限 「検閲になりかねない」と批判の声…大阪・豊中の図書館
http://www.sankei.co[...]
산케이 신문
20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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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山口・女子学生殺害】事件があった山口、県立・市立図書館は閲覧制限せず
http://www.zakzak.co[...]
ZAKZAK
20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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