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초현
1. 개요
강초현은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로, 1995년 사격을 시작하여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여자 10m 공기소총 은메달을 획득했다. 17세의 나이로 메달을 획득하여 한동안 대한민국 사격 대표팀 역대 최연소 메달리스트였다. 2000년 월드컵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올림픽 이후 갤러리아 사격단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3년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으며, 2002년 아시안 게임과 2004년 올림픽에서 해설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5년 갤러리아 사격단에서 퇴단했으며, 2018년 체육훈장 거상장을 수여받았다.
| 국적 | 대한민국 |
|---|---|
| 출생일 | 1982년 10월 23일 |
| 출생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
| 신장 | 157cm |
| 체중 | 45kg |
| 학력 |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학사 (졸업) |
| 로마자 표기 | Gang Chohyeon |
| 한자 표기 | 姜俏賢 |
| 매큔-라이샤워 표기 | Kang Ch'ohyŏn |
| 예일 표기 | Kang Chohyen |
| 공식 표기 | Kang Cho-hyun |
| 종목 | 사격 |
|---|---|
| 세부 종목 | 공기소총 |
| 소속팀 | 갤러리아 사격단 |
| 메달 | 종류: 은메달 대회: 2000년 하계 올림픽 종목: 10m 공기소총 |
|---|
| 스포츠 레퍼런스 프로필 | 스포츠 레퍼런스 프로필 |
|---|---|
| 데이터베이스 올림픽 프로필 | 데이터베이스 올림픽 프로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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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여자 사격 선수 -
여갑순
여갑순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10m 공기소총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이다. -
대한민국의 여자 사격 선수 -
김장미
김장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25m 권총에서 예선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이다. -
체육훈장 거상장 수훈자 -
방신봉
방신봉은 1975년생 대한민국 배구 선수로, 홍익대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블로킹 실력을 인정받아 20년간 프로 선수로 활동하며 V리그 블로킹상 수상,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참가, 역대 최다 블로킹 기록 수립 등의 업적을 남긴 센터이다. -
체육훈장 거상장 수훈자 -
허정무
허정무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선수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국가대표로 104경기 30골을 기록했으며, 지도자로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두 차례 역임하며 2010년 FIFA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
2000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 -
야스나 셰카리치
야스나 셰카리치는 세르비아의 여자 사격 선수로,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으며,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
2000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 -
후안 히아
칠레의 사격 선수이자 코치인 후안 히아는 스키트 사격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고 은퇴 후에는 국제적인 코치로 활동했다.
2. 생애와 경력
2000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 이후 강초현은 한화그룹 소속 갤러리아 백화점의 갤러리아 사격단에 입단했다. 충남대학교 체육교육과에 합격했으나 입학을 포기하고, 2001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체육교육을 전공했다.
올림픽 이후 쏟아진 과도한 관심은 심리적 부담감으로 이어져 슬럼프를 겪었다. 2001년 서울과 밀라노에서 열린 ISSF 월드컵에서 각각 14위와 30위에 그쳤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했다. 2003년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이후에도 부진은 계속되었다. 2006년 광저우 월드컵 17위, 뮌헨 월드컵 80위 등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국가대표 선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2년 아시안 게임과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사격 해설을 맡으며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2015년 갤러리아 사격단에서 퇴단했고, 2018년 10월 체육훈장 거상장을 수여받았다.
2.1. 유년 시절과 선수 경력 시작
충청남도 대덕군 탄동면(현 대전광역시 유성구)에서 강희균(姜熙均)과 김양화(金良和)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강희균은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전장에서 수류탄 파편으로 인해 두 다리를 잃고 연금으로 생활하다가 1999년 7월에 사망했다. 외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유성여자중학교 재학 시절인 1995년부터 사격을 시작하였다.
유성여자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2000년 5월, 대한민국 사격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제30회 봉황기 전국사격대회에서 최대영에 이어 2위를 기록하여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그 해 7월에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제 사격 연맹(ISSF) 월드컵에 출전하여 세계 타이 기록으로 미국의 에밀리 캐루소를 0.1점차로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 해 9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2000년 하계 올림픽 여자 10m 공기소총 예선에서 올림픽 타이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후 결선에서 합계 497.5점을 획득하여 미국의 낸시 존슨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만 17세 11개월 4일의 나이로 메달을 획득하며 2024년 하계 올림픽 사격에서 반효진이 금메달을 획득하기 전까지 역대 최연소 대한민국 사격 대표 선수로 기록되었다.
올림픽 이후 한화그룹 소속의 갤러리아 백화점이 창립한 갤러리아 사격단에 입단했다. 2000년 말 충남대학교 체육교육과에 합격했으나 입학을 포기했고, 2001년 11월 고려대학교에 합격하여 체육교육을 전공하였다.
2.2. 국가대표 발탁과 올림픽 메달 획득
유성여자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2000년 5월, 대한민국 사격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제30회 봉황기 전국사격대회에서 1586점을 획득하여 1592점을 획득한 최대영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며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그 해 7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제 사격 연맹(ISSF) 월드컵에 출전하여 499.6점을 획득, 세계 타이 기록으로 미국의 에밀리 캐루소를 0.1점 차로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 해 9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2000년 하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 여자 10m 공기소총 예선에서 397점의 올림픽 타이 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했다. 이후 결선에서 100.5점을 추가하여 합계 497.5점을 획득, 미국의 낸시 존슨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만 17세 11개월 4일의 나이로 메달을 획득하며 2024년 하계 올림픽 사격에서 반효진이 금메달을 획득하기 전까지 메달을 획득한 역대 최연소 대한민국 사격 대표 선수였다.
2.3. 올림픽 이후의 선수 생활과 슬럼프
2000년 하계 올림픽 이후 한화그룹 소속의 갤러리아 백화점이 창립한 갤러리아 사격단에 입단했다. 충남대학교 체육교육과에 합격하여 입학하기로 했으나 입학을 포기했고, 2001년 11월에 고려대학교에 합격하여 체육교육을 전공하였다. 시드니 올림픽 이후 올림픽 성적에 관련된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 2001년에 서울에서 열린 ISSF 월드컵에서는 14위, 밀라노 월드컵에서는 30위에 머물렀다.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번번히 떨어지다가 2003년에 다시 국가대표로 뽑혀 같은 해 6월에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ISSF 월드컵에서 499.2점을 기록하여 중국의 두리와 대한민국의 서선화에 이어 3위를 하여 동메달을 받았다. 이후 국가대표 선수와 해설자를 병행하며 활동했으며, 2002년 아시안 게임과 2004년 하계 올림픽의 해설을 맡았다. 이후에도 부진은 계속되어 2006년 광저우 월드컵에서 17위, 뮌헨 월드컵에서 80위에 머물렀으며, 이후에도 계속 국가대표로 도전했으나 발탁되지 못했다.
2015년에 갤러리아 사격단에서 퇴단하였고, 2018년 10월 체육훈장 거상장이 수여되었다.
2.4. 국가대표 은퇴와 해설가 활동
2000년 하계 올림픽 이후 갤러리아백화점이 창단한 갤러리아 사격단에 입단했다. 올림픽 성적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 2001 ISSF 월드컵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했으나, 2003년에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ISSF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국가대표 선수와 스포츠 해설가를 병행하며 2002년 아시안 게임과 2004년 하계 올림픽 사격 경기 해설을 맡았다. 그러나 다시 부진이 이어져 2006년 월드컵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이후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2015년에 갤러리아 사격단에서 퇴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