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포성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개운포성은 외황강과 울산만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의 성곽이다. 조선 전기부터 수군 기지로 활용되어 세조에서 중종 시기까지 경상좌수영 소속으로 동남해안 방어를 담당했다. 1459년 동래 부산포의 수영이 개운포로 옮겨와 1592년까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었으며, 임진왜란 시기 3차례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전선창이 설치되어 선박을 건조하는 장소로 활용되다가 1895년 수군 해산과 함께 폐지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울산 남구의 문화유산 - 처용암
처용암은 신라 헌강왕과 처용의 만남에 대한 설화가 담긴 곳으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처용 설화와 관련된 문화적 의의를 지닌다. - 울산광역시의 기념물 - 서생포 만호진성
서생포 만호진성은 조선 시대 초기에 축성되어 울산읍성을 보호하던 수군 진성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함락된 후 폐성되었고, 정유재란 이후에는 서생포왜성으로 옮겨져 유지되다가 현재는 성벽 일부와 해자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 울산광역시의 기념물 - 남목마성
남목마성은 울산광역시 동구 남목동에 위치한 조선 시대 성곽으로, 왜구 침입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고, 비교적 잘 보존된 자연석 성벽으로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동구에서 관리하며 주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된다. - 울산광역시의 성 - 운화리성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운화리에 위치한 운화리 성지는 대운산 지맥을 따라 타원형으로 축조되었으며, 자연석과 흙으로 쌓은 높이 2~3m의 성벽과 석단 시설을 통해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산성이다. - 울산광역시의 성 - 울산왜성
울산왜성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울산에 축성한 왜성으로, 도산왜성이라고도 불렸으며 현재는 학성공원으로 조성되어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석축 일부가 남아 있는 곳이다.
개운포성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개운포성지 정보 | |
![]() |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 81번지 일원 |
종류 | 기념물 |
지정 번호 | 6 |
지정일 | 1997년 10월 9일 |
면적 | 21,899m2 |
참고 | 울산 성암동 |
2. 역사
개운포는 조선 전기부터 만호가 주둔하였으며, 세조에서 중종 시기까지 경상좌수영 소속으로 낙동강 이동 지역 동남해안을 방어하는 수군 기지였다.[1] 1459년(세조 5) 동래 부산포의 수영이 개운포로 옮겨와 1592년(선조 25)까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었다.
1656년(효종 7) 중구 학성공원 아래에 있던 전선창(戰船廠, 선소)이 개운포로 옮겨왔다. 성안 마을이 철거되기 전에는 이곳을 '선수마을'이라고 불렀다. 전선창은 1895년 수군이 해산될 때 폐지되었다.[1]
2. 1. 조선 전기: 수군 기지
개운포는 조선 전기부터 수군의 만호가 주둔하였으며, 세조에서 중종 시기까지 경상좌수영 소속으로 낙동강 이동 지역 동남해안을 방어하는 수군 기지였다.[1]1459년(세조 5) 동래 부산포의 수영이 개운포로 옮겨와서 1592년(선조 25)까지 개운포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 水軍節度使營)이었다. 수영이 동래 해운포로 이전된 이후 개운포에 다시 만호진이 운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임진왜란 시기 개운포에서 3차례 정도의 전투가 있었다는 점에서 개운포가 지속적으로 전략적 군사 거점 지역으로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1]
2. 2.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
1459년(세조 5) 동래 부산포의 수영이 개운포로 옮겨와서 1592년(선조 25)까지 개운포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 水軍節度使營)이었다.[1] 수영이 동래 해운포로 이전된 이후 개운포에 다시 만호진이 운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임진왜란 시기 개운포에서 3차례 정도의 전투가 있었다는 점에서 개운포가 지속적으로 전략적 군사 거점지역으로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1]2. 3. 임진왜란 시기
개운포는 조선 전기부터 수군의 만호가 주둔하였으며, 세조에서 중종 시기까지 경상좌수영 소속으로 낙동강 이동 지역 동남해안을 방어하는 수군의 기지였다.[1]1459년(세조 5) 동래 부산포의 수영이 개운포로 옮겨와서 1592년(선조 25)까지 개운포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었다. 수영이 동래 해운포로 이전된 이후 개운포에 다시 만호진이 운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임진왜란 시기 개운포에서 3차례 정도의 전투가 있었다는 점에서 개운포가 지속적으로 전략적 군사 거점지역으로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1]
2. 4. 조선 후기: 전선창 설치
1656년(효종 7) 중구 학성공원 아래에 있던 전선창(戰船廠)이 개운포성으로 옮겨왔다. 전선창은 전쟁에 쓰이는 선박을 만드는 곳으로, '선소(船所)'라고도 불렸다. 성안의 마을이 철거되기 이전에는 이곳을 '선수마을'이라고 불렀다. 전선창은 1895년(고종 32) 수군이 해산될 때 폐지되었다.[1]3. 지리적 특징
개운포성은 외황강과 울산만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둘레는 약 1264m이다. 남북으로 긴 타원형의 성곽이며, 평지와 산지의 특성을 모두 갖춘 평산성(平山城)이자 성 안에 골짜기를 가지고 있는 포곡성(抱谷城)이다.[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