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지
1. 개요
경상좌수영성은 경상좌도 수군을 총지휘하던 진영으로,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겨 1652년 부산포에 자리를 잡았고, 1895년 군사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성은 1692년 좌수사 문희성이 다시 쌓은 것으로, 둘레 약 2,785m, 높이 4m 규모였으며, 4개의 우물, 성문, 수구를 갖추고 옹성과 치성으로 방어력을 강화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로 동쪽 해안을 방어했다. 일제강점기에 관리가 소홀해져 대부분 훼손되었으며, 현재는 성벽, 남문, 홍예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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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구의 문화유산 -
경상좌수영성 남문
경상좌수영성 남문은 1692년에 축성된 경상좌수영성의 정문으로, 아치형 석문과 왜구 감시를 상징하는 개 조각상 '박견'이 특징이며, 하마비가 설치되어 있다. -
부산광역시의 성 -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부산, 양산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조선 중기부터 존재했으며 낙동강 하구와 동래를 방어하는 요충지로서 숙종 때 개축되었고 현재 일부 복원되어 사적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
부산광역시의 성 -
김해 죽도왜성
김해 죽도왜성은 임진왜란 때 나베시마에 의해 축조된 성으로, 낙동강 지류에 인접하여 김해 북쪽 방어의 요충지 역할을 했으며, 발굴 조사를 통해 유물이 확인되었다. -
대한민국의 폐성 -
순천왜성
순천왜성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호남 공략 거점으로 삼아 순천에 약 3개월 만에 축조한 왜성으로, 남해안 왜성들을 연결하는 군사 요충지였으며 현재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왜교성 전투와 축성 방식으로도 주목받는다. -
대한민국의 폐성 -
울산왜성
울산왜성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울산에 축성한 왜성으로, 도산왜성이라고도 불렸으며 현재는 학성공원으로 조성되어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석축 일부가 남아 있는 곳이다.
2. 역사
경상좌수영성은 경상좌도 수군의 총지휘자가 머물던 진영(鎭營)으로, 원래 부산포에 있었다. 여러 차례 위치를 옮긴 후, 1652년(효종 3년) 다시 부산포로 옮겨졌으며, 1895년(고종 32년) 구 군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성을 처음 쌓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아있는 성은 1692년(숙종 18년) 좌수사 문희성이 다시 쌓은 것이다. 성의 둘레는 약 2,785m, 높이는 4m이며, 우물 4개, 성문 4개, 수구 4개가 있었다.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 바깥에 쌓는 옹성과 치성도 갖추고 있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있었다. 모두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가 경상도 동쪽 해안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제시대 때 관리가 소홀하여 대부분 무너졌고, 현재는 성벽과 남문, 홍예문이 남아 있다.
2.1. 좌수영성의 초기 역사와 이전
경상좌수영성은 경상좌도 수군의 총지휘자가 머물던 진영(鎭營)으로, 원래 부산포에 있었다. 여러 차례 위치가 변경된 후, 1652년(효종 3년) 다시 부산포로 옮겨져 1895년(고종 32년) 군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성을 처음 쌓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아있는 성은 1692년(숙종 18년) 좌수사 문희성이 다시 쌓은 것이다. 성의 둘레는 약 2,785m, 높이는 4m이며, 우물 4개, 성문 4개, 수구 4개가 있었다.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 바깥에 쌓는 옹성과 치성도 있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와 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있었다. 모두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가 경상도 동쪽 해안을 방어하는 데 힘썼다.
일제시대 때 관리가 소홀하여 대부분 무너졌고, 현재는 성벽과 남문, 홍예문이 남아 있다.
2.2. 숙종 대의 재건과 구조
경상좌수영성은 경상도 좌도 수군의 총 지휘자가 머물던 진영(鎭營)으로, 원래 부산포에 있었다. 여러 차례 위치를 옮긴 후 효종 3년(1652) 다시 부산포로 옮겨졌으며, 고종 32년(1895) 구 군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성은 숙종 18년(1692) 좌수사 문희성이 다시 쌓은 것이다. 성의 둘레는 약 2,785m, 높이는 4m이며, 우물 4개, 성문 4개, 수구 4개가 있었다.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 바깥에 쌓는 옹성과 치성도 갖추고 있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있었다. 모두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가 경상도 동쪽 해안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3. 조선 후기 좌수영의 운영과 폐지
경상좌수영성은 경상좌도 수군의 총지휘자가 머물던 진영(鎭營)으로, 원래 부산포에 있었다. 여러 차례 위치를 옮긴 후, 1652년(효종 3년) 다시 부산포로 옮겨져 1895년(고종 32년) 군제 개편으로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있었다. 총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가 경상도 동쪽 해안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3. 구조
경상좌수영성은 원래 부산포에 있었으나 여러 번 옮겨졌고, 1652년(효종 3년) 다시 부산포로 옮겨져 1895년(고종 32년) 군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1692년(숙종 18년) 좌수사 문희성이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의 둘레는 약 2,785m, 높이는 4m이며, 성 안에는 우물 4개, 성문 4개, 수구 4개가 있었다.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 바깥에 쌓는 옹성과 치성도 있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있었다. 모두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가 경상도 동쪽 해안을 방어하는데 힘썼다.
일제시대 때 관리를 소홀히 하여 대부분이 무너졌고, 현재는 성벽과 남문, 홍예문이 남아 있다.
3.1. 성벽과 성문
경상좌수영성은 원래 부산포에 있었으나 여러 번 옮겨졌고, 1652년(효종 3년) 다시 부산포로 옮겨져 1895년(고종 32년) 군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1692년(숙종 18년) 좌수사 문희성이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의 둘레는 약 2,785m, 높이는 4m이며, 성 안에는 우물 4개, 성문 4개, 수구 4개가 있었다.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 바깥에 쌓는 옹성과 치성도 있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종군이 있었으며, 7개의 진이 소속되어 있었다. 모두 65척의 전투선과 45척의 나룻배가 경상도 동쪽 해안을 방어하는데 힘썼다.
일제시대 때 관리를 소홀히 하여 대부분이 무너졌고, 현재는 성벽과 남문, 홍예문이 남아 있다.
3.2. 부속 시설
경상좌수영성에는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4개의 우물, 4개의 성문, 4개의 수구, 옹성, 치성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 관리를 소홀히 하여 대부분이 무너졌고, 현재는 성벽과 남문, 홍예문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