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 남문
1. 개요
경상좌수영성 남문은 조선시대 수군영성 남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홍예와 홍예기석, 그리고 좌우 10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으며, 수영공원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성문 양쪽에는 박견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왜구를 감시하던 경상좌수영성의 임무를 상징한다. 이러한 박견 형태의 석물 배치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이며, 1993년에 해체 및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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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구의 문화유산 -
경상좌수영성지
경상좌수영성지는 경상좌도 수군 총 지휘관이 있던 진영으로, 1652년 부산포로 옮겨진 후 1895년까지 사용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성은 1692년 재건된 것으로, 방어 시설을 갖추었으나 현재는 성벽과 남문, 홍예문만 남아있다. -
대한민국의 문 -
관문성
관문성은 신라 성덕왕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어진 산성으로, 모벌군성 또는 모벌관문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우박천을 기준으로 산과 산을 연결하여 축조되었고, 긴 길이로 인해 '신라의 만리장성'이라고도 불린다. -
대한민국의 문 -
근정문
근정문은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의 정문으로, 1395년에 건립되어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876년 재건되었으며, 국가 의례가 거행되던 장소로 보물 제812호로 지정되었다. -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
고려사
《고려사》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1451년까지 편찬된 총 139권의 기전체 역사서로, 고려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종과 김종서 등의 감독하에 완성되었으나,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역사적 객관성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
부산 충렬사
부산 충렬사는 부산박물관 소장 문화재인 동래무청선생안, 경상좌수영선생안, 다대진선생안 등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2. 역사
2.1. 일제강점기와 이후
3. 구조
현재 앞뒤의 홍예(虹霓, 성문, 수문, 다리 등을 무지개 모양으로 쌓은 것)와 홍예기석(虹霓基石, 홍예석을 쌓기 위해 가장자리에 기둥처럼 놓은 돌)이 남아 있고, 홍예기석과 같은 높이의 성벽이 좌우 10m 정도 남아 있다.
전면 홍예기석 앞에는 같은 크기의 사각형 돌기둥 위에 박견(拍犬) 한 쌍이 양쪽에 나란히 서있다. 이러한 박견 형태의 석물이 성문 옆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다른 지역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독특하다. 전면 좌측에는 수령 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 오랜 세월에 홍예석이 조금씩 침하되어 붕괴될 우려가 있어 1993년 8월 해체․보수하였다.
3.1. 박견
박견(拍犬)은 성문 양쪽에 배치된 개 조각상 한 쌍이다. 사각형 돌기둥 위에 나란히 서 있는 박견은 왜구를 감시하던 경상좌수영성의 임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성문 옆에 이러한 형태의 석물을 배치한 것은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이다. 전면 좌측에는 수령 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