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 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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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토 분지로는 일본의 지질학자이다. 이와미 국(현재의 시마네현) 출신으로, 도쿄 대학 이학부 지질학 및 채광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 후 도쿄 제국 대학 강사로 활동했다. 1891년 노비 지진 발생 후 단층 지진설을 발표하고 네오다니 단층 사진을 통해 활단층의 모습을 기록했다. 고토석은 일본인 이름이 붙여진 최초의 광물이다. 그는 일본지질학회에서 다양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으며, 유황 광상, 조선 북부 지세, 지진, 알칼리암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고토 분지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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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분지로, 지질학, 고생물학 및 광물학 교수
출생일1856년 4월 8일
출생지이와미 국 쓰와노 (현 시마네 현 가노아시 군 쓰와노 정)
사망일1935년 3월 8일
국적일본
분야지질학
암석학
광물학
화산학
지진학
직장도쿄 제국대학
모교도쿄 제국대학
학문적 경력
지도교수(정보 없음)
제자(정보 없음)
알려진 업적(정보 없음)
수상(정보 없음)
기타 정보
종교(정보 없음)
비고(정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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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및 경력

1891년 노비 지진 발생 후 약 2주 뒤 현지 조사에 참여,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단층 지진설을 발표했다. 조사 당시 촬영된 네오다니 단층 사진은 1893년 고토의 논문에 게재되어 활단층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사진의 촬영자에 대해서는 오가와 잇신, 세코 야스타로, 쿠사카베 킨베이 등 여러 설이 있다.

와타나베 타케오는 1939년 최초로 일본인의 이름이 붙여진 광물인 고토석(kotoite, Mg3(BO3)2)을 발표하면서 고토의 이름을 붙였다. 그의 묘소는 다마 영원 (14-1-9)에 있다.

고토 분지로의 위계와 훈장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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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내용
1886년 7월 8일종6위
1897년 10월 30일정5위
1901년 3월 20일종4위
1911년 6월 20일종3위
1920년 7월 20일정3위
1896년 12월 25일훈6등 서보장
1900년 12월 20일훈4등 서보장
1910년 6월 24일훈2등 서보장
1920년 6월 25일훈1등 서보장

2.1. 초기 생애와 교육

이와미 국(현재의 시마네현) 쓰와노에서 태어났다. 번교인 양로관에서 한학과 란학을 배웠다. 1870년, 15세 때 번에서 대학 남교(후의 개성학교, 도쿄 대학)에 공진생으로 상경하여 영어, 이학을 배우고 졸업했다. 1877년(메이지 10년), 창립된 지 얼마 안 된 도쿄 대학 이학부 지질학 및 채광학과에 진학하여 1879년(메이지 12년) 도쿄 제국 대학 이학부 지질학 및 채광학과의 첫 졸업생이 되었다. 나우만 등에게 배웠다.

1880년, 독일에 유학하여 라이프치히 대학교, 뮌헨 대학교에서 유학 후, 1884년, 29세 때 귀국하여 도쿄 제국 대학 이학부 지질학과 강사로 취임했다. 독일 유학 중인 1883년(메이지 16년) 도쿄 대학 지질학과와 지질 조사소 관계자에 의해 지학회(후에 도쿄 지학 협회와 합병하여 오늘에 이른다)가 결성되었고, '지학회지'가 1885년에 창간되었다.

2.2. 도쿄 대학 및 독일 유학

이와미 국(현재의 시마네현) 쓰와노 출신이다. 번교인 양로관에서 한학과 난학을 배웠다. 1870년, 15세 때 번에서 대학 남교(후의 개성학교, 도쿄 대학)에 공진생으로 상경하여 영어, 이학을 배우고 졸업했다. 1877년(메이지 10년), 창립된 지 얼마 안 된 도쿄 대학 이학부 지질학 및 채광학과에 진학하여 1879년(메이지 12년) 도쿄 제국 대학 이학부 지질학 및 채광학과의 첫 졸업생이 되었다. 나우만 등에게 배웠다.

1880년, 독일에 유학하여 라이프치히 대학교, 뮌헨 대학교에서 유학한 후, 1884년, 29세 때 귀국하여 도쿄 제국 대학 이학부 지질학과 강사로 취임했다. 독일 유학 중인 1883년(메이지 16년) 도쿄 대학 지질학과와 지질 조사소 관계자에 의해 지학회(후에 도쿄 지학 협회와 합병)가 결성되었고, 1885년에 '지학회지'가 창간되었다.

2.3. 주요 활동 및 업적

이와미 국(현재의 시마네현) 쓰와노에서 태어나, 번교인 양로관에서 한학과 난학을 배웠다. 1870년, 15세 때 번의 추천으로 대학 남교(후의 개성학교, 도쿄 대학)에 진학하여 영어와 이학을 배우고 졸업했다. 1877년(메이지 10년), 도쿄 대학 이학부 지질학 및 채광학과에 진학, 1879년(메이지 12년) 도쿄 제국 대학 이학부 지질학 및 채광학과의 첫 졸업생이 되었다. 나우만 등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1880년, 독일로 유학하여 라이프치히 대학교, 뮌헨 대학교를 거쳐 1884년, 29세 때 귀국하여 도쿄 제국 대학 이학부 지질학과 강사로 취임했다. 독일 유학 중이던 1883년(메이지 16년), 도쿄 대학 지질학과와 지질 조사소 관계자들에 의해 지학회(후에 도쿄 지학 협회와 합병)가 결성되었고, 1885년에는 '지학회지'가 창간되었다.

1891년 노비 지진 발생 후 약 2주 뒤 현지 조사에 참여,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단층 지진설을 발표했다. 조사 당시 촬영된 네오다니 단층 사진은 1893년 고토의 논문에 게재되어 활단층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사진의 촬영자에 대해서는 오가와 잇신, 세코 야스타로, 쿠사카베 킨베이 등 여러 설이 있다.

와타나베 타케오는 1939년 최초로 일본인의 이름이 붙여진 광물인 고토석(kotoite, Mg3(BO3)2)을 발표하면서 고토의 이름을 붙였다.

2.4. 수상 및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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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내용
1886년 7월 8일종6위
1897년 10월 30일정5위
1901년 3월 20일종4위
1911년 6월 20일종3위
1920년 7월 20일정3위
1896년 12월 25일훈6등 서보장
1900년 12월 20일훈4등 서보장
1910년 6월 24일훈2등 서보장
1920년 6월 25일훈1등 서보장

3. 학문적 기여

고토 분지로는 도쿄 대학 이학부 지질학 및 채광학과의 첫 졸업생으로, 나우만 등에게 배웠다. 1880년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 뮌헨 대학교에 유학 후, 1884년 귀국하여 도쿄 제국 대학 이학부 지질학과 강사로 취임했다.

1883년 도쿄 대학 지질학과와 지질 조사소 관계자에 의해 지학회 (후에 도쿄 지학 협회와 합병)가 결성되었고, 1885년에는 '지학회지'가 창간되었다.

3.1. 연구 분야

고토 분지로는 1891년 노비 지진 발생 약 2주 후 현지 조사를 실시, 그 결과로부터 단층 지진설을 발표했다. 1893년 고토가 발표한 논문에는 조사 시 촬영된 네오다니 단층 사진이 게재되었는데, 이 사진은 활단층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진 촬영자에 대해서는 오가와 잇신, 세코 야스타로, 쿠사카베 킨베이 등 여러 설이 있다.

와타나베 타케오는 1939년 최초로 일본인의 이름이 붙여진 광물인 고토석(kotoite, Mg3(BO3)2)을 발표했다.

3.2. 논문

고토 분지로는 여러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다음은 주요 논문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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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연도제목학술지비고
1917년유황 광상의 성인지질학 잡지[https://doi.org/10.5575/geosoc.24.291_591]
1902년조선 북부의 지세지학 잡지[https://doi.org/10.5026/jgeography.14.467]
1906년예예 지진의 진원지지질학 잡지[https://doi.org/10.5575/geosoc.13.151_117]
1910년지질학상 노견지에 의한 강농 지진진재예방조사회 보고[https://hdl.handle.net/2261/17115]
1918년알칼리암의 성인지질학 잡지[https://doi.org/10.5575/geosoc.25.142]
1920년나카이 박사 울릉도 식물 조사지질학 잡지[https://doi.org/10.5575/geosoc.27.18]
1920년이제부터는 선박에 석유 연료 시대이다지질학 잡지[https://doi.org/10.5575/geosoc.27.213]
1929년이와쓰키 지진대에 관하여 (요약)지질학 잡지
1930년지학 잡지의 유래지학 잡지[https://doi.org/10.5026/jgeography.42.562]
1897년류큐 열도 섬의 지질 구조지질학 잡지[https://doi.org/10.5575/geosoc.5.1]


고토 분지로는 1891년에 발생한 노비 지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단층 지진설을 발표했다.

4. 가족 관계

* 배우자: 고토 우메코(아리치 시나노조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