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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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비 지진은 1891년 일본 혼슈 중부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7,273명의 사망자와 17,175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14만 채 이상의 가옥이 파괴되었다. 지진은 노비 단층대의 활동으로 발생했으며, 네오다니 단층에서 최대 7.6m의 수평 변위와 6m의 수직 변위가 관측되었다. 기후현과 아이치현을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전통 가옥뿐 아니라 근대 건축물과 교량도 붕괴되었다. 지진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쳐 단층지진설이 제기되었고, 오모리 공식이 발표되었다. 노비 지진은 일본의 지진 방재 대책의 중요성을 일깨웠으며, 지진재해 예방 조사회 발족의 계기가 되었다.

노비 지진
지도 정보
지진 정보
네오다니 단층에서 볼 수 있는 단층애
네오다니 단층에서 볼 수 있는 단층애
현지 시각06:38 (현지 시각)
현지 날짜1891년 10월 28일
진앙기후현 모토스군 니시네오촌 (현재의 모토스시)
좌표35.6°N 136.6°E
깊이10km
유형사경-미끄럼 단층
최대 지반 가속도0.41 g (400 Gal)
단층네오다니 단층
명칭
일본어 명칭濃尾地震 (Nōbi Jishin)
美濃・尾張地震 (Mino-Owari Jishin)
岐阜大地震 (Gifu Daijishin)
濃尾大地震 (Nōbi Daijishin)
한국어 명칭노비 지진
미노-오와리 지진
기후 대지진
노비 대지진
규모
표면파 규모8.0
모멘트 규모7.5
피해
사망자7,273명
부상자17,175명
산사태약 10,000건
영향 지역미노국, 오와리국
진도
최대 진도7
최대 진도 지역후쿠이현 이마다테군 사바에정, 아이치현 하구리군 오타시마촌, 히가시카스가이군 가치가와촌
기타
여진3,000회 이상
관련 사건신묘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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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노비 지진 강도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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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진 발생 배경

일본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 지진과 쓰나미 기록이 많다. 1854년 안세이-난카이 지진 이후 지진 문제는 일본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고,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서구화를 추진했다.

일본 정부는 외국인 전문가(요토이)를 초빙하여 현대화를 추진했고, 일본의 잦은 지진은 지진학 연구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1876년 존 밀른이 도쿄 제국 공과대학 교수로 초빙되었고, 1880년 지진 이후 지진학을 집중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지진은 일본 지진학회 설립을 촉발했고, 이후 일본은 자체적인 지진 관측 시스템(일본 기상청)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시스템과 1891년 지진은 오모리 후사키치가 여진 쇠퇴 법칙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했다.

일본 열도는 태평양판유라시아판 아래로 섭입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해구와 함께 복잡한 지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혼슈 북부와 홋카이도북아메리카판의 일부로 간주되며, 오호츠크 미소판이라고 불리는 지각판의 남서쪽 경계는 이토이가와-시즈오카 구조선으로 알려져 있다. 혼슈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이 지역은 단층 활동이 활발하지만, 대규모 지진을 발생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쪽의 아테라, 미보로, 아토츠가와, 노비 단층 등에서는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745년 덴표 지진과 1586년 덴쇼 지진도 이 지역에서 발생한 큰 규모의 지진이었다.

2.1. 지진 발생 메커니즘

노비 지진은 료하쿠 산지에서 노비 평야 북부에 걸쳐 있는 노비 단층대의 활동으로 발생했다. 네오다니 단층, 우메하라 단층, 온미 단층 등 여러 단층이 동시에 움직였으며, 총 길이는 약 76km에 달했다. 특히 네오다니 단층은 최대 수평 변위 7.6m, 수직 변위 6m를 기록하며 지표면에 큰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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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진의 활동은 후쿠이현 경계에서 기후현을 거쳐 아이치현까지 이어지는 거대단층 외에도 지표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노비 단층대의 분기단층인 기후-이치노미야 단층 등 총 5개 단층이 한꺼번에 움직였다고 가정하는 지진모델이 유력하며 이들을 모두 합칠 시 총 지진 모멘트 M0 = 1.5×1020N・m (Mw 7.4)이다.

이번 지진이 일어난 단층의 북북서쪽 연장선상에는 1948년 후쿠이 지진을 일으킨 후쿠이 단층대가 있으며, 남남동쪽 연장선상에는 1945년 미카와 지진을 일으킨 후코즈 단층이 있다.

도쿄 제국 대학의 교수였던 고토 분지로는 지표에 나타난 단층의 영향을 보고, 갑작스러운 단층 활동이 지진의 원인이며 단순한 이차적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3. 피해 상황


1891년 10월 28일, 기후현아이치현을 중심으로 발생한 노비 지진은 메이지 시대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기록되었다. 이 지진으로 인해 7,273명이 사망하고 17,175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4만 채 이상의 가옥이 파괴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진앙지 인근 지역에서는 산사태와 화재가 겹쳐 피해가 더욱 컸다. 당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으로는 '격렬'(진도 7)에 해당하는 지역이 광범위하게 분포했다.

당시 일본 내의 지진 관측은 중앙기상대 및 측후소와 등대, 군제 등의 위탁관측소에서도 이루어져 일본 중앙기상대로 보고되었다. 당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은 '열진'(현대의 진도6), '강진'(현대의 진도 4-5), '약진'(현대의 진도 2-3), '미진'(현대의 진도1) 4단계였지만 매우 강한 경우에는 '격렬'한 지진으로 보고하였고 기준보다 약간 약한 경우에는 '초(稍)열진' 등으로 등급을 구분하였다.

다음은 노비 지진 당시 강진 이상을 느낀 일본 각지의 진도 분포를 나타낸 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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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지방관측소
격렬호쿠리쿠 지방이마다테군 사바에정
도카이 지방하구리군 오타시마촌・히가시카스가이군 가치가와촌
강렬호쿠리쿠 지방요시다군
도카이 지방도키군 도키쓰정
긴키 지방사카타군 나가하마정・가모군 하치만정
고신 지방고후시스와군 가미스와정
호쿠리쿠 지방사카이군 미쿠니정・뉴군 아사히촌・오노군 오노정・난조군 다케후정쓰루가군 쓰루가정
도카이 지방구조군 하치만정가모군 오타정가니군 미타케정・무기군 고즈치정・시모이시즈군 다카스정・후와군 다루이정가모군・나카군・호이군 고유촌아쓰미군 도요하시정하즈군 니시오정지타군 한다정기타시타라군 다구치촌・히가시카모군・아이치군 아쓰타정구와나군 구와나정・안키군 시로코・아하이군 우에노정쓰 측후소・이이타카군 마쓰사카정이나베군 오이즈미하라촌・아노우군 신정미나미무로군 기노모토정
긴키 지방구마노군 구미하마촌・다케노군 아미노촌오토쿠니군 무코정소라쿠군 기즈촌오사카 측후소・니시나리군 가와키타촌・사카이시・와카에군야오촌・시키사이군 다카오카촌・나라현
초열도카이 지방사야군 가케가와정니시카모군 고로모촌・스즈카군 가메야마정
주고쿠 지방오쿠군
최강호쿠리쿠 지방미쓰이 은행 쓰루가 지점 (사설)
도카이 지방미에군 욧카이치정


다음은 노비 지진으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 상황을 정리한 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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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상황 (우사미 다쓰오, "신편 일본 피해 지진 총람" 도쿄 대학 출판회(1987)에서 인용)
지방명인적 피해 (명)가옥 피해 (동)기타 (곳)
사망자부상자전괴반괴산사태
미노4,88912,31170,04830,9949,929
오와리2,3314,55067,77143,57029
기타533144,3585,760266
합계7,27317,175142,17780,32410,224


진앙지 인근에서는 지진의 흔들림으로 산의 나무가 모두 쓰러져 민둥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전신선이 끊어진 탓에, 노비 지진의 피해 상황은 즉시 파악되지 못했다. 오사카 아사히 신문은 호외를 통해 히코네, 요카이치 이동으로의 전신이 불통이며, 난바 방적 공장이 붕괴되었다고 보도했다. 도쿄에서는 상황 파악이 더욱 늦어져, 도쿄 매일 신문에서는 가나자와와 요코하마에서 대지진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정보가 점차 정확해지면서 피해 규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노비 지진의 소식은 해외에도 전해져, 런던타임스지에서도 보도되었다. 일본을 여행하던 중 오사카에서 지진을 겪은 메리 제인 비커스테스는 가족들로부터 안부 확인 전보를 받기도 했다.

윌리엄 버튼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카메라로 피해 상황을 기록하여,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들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2021년, 기후현은 흑백 사진을 컬러화한 이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3.1. 주요 피해 지역

오모리 후카이치가 처음으로 그린 미노-오와리 지진의 진도분포에서는 나고야시 등을 중심으로 한 아이치현에서 기후현, 후쿠이현 내 넓은 지역에서 진도 6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은 총 4단계로 최대 진도가 현대의 진도 6을 넘어서는 정도였고, 네오다니 단층 위에 위치한 모토스군, 기소 삼강 합류점에선 주택이 100% 파괴된 곳도 있었다. 네오다니촌에서 시작해 기후현 서부에서 아이치현에 걸친 넓은 지역에서 가옥 붕괴율이 90%를 넘었으며 에치젠미카와 일부 지역인 미노, 오와리에서 진도7 급의 진동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노비 평야가 있는 기후현아이치현 외에도 인근의 시가현후쿠이현에도 피해가 있었다. 기후시와 인근 지역은 화재까지 일어나 피해가 더 커졌다. 기후의 괴멸을 전한 1보에서는 "기후, 없어지다"(기후나쿠나루, 岐阜、無くなる)라는 보도로 전했다.

지진은 나고야 근처에서 발생했으며, 전국에서 감지되었지만, 일본 중부에서 가장 강력했다. 기후시오가키시는 주로 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으며, 오사카와 나고야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3.2. 건축물 피해

일본 전통 방식의 흙 창고는 피해가 비교적 적었지만, 나고야성 성벽이나 에도 시대 이후 역참 마을 건물 등 오래전에 건축된 건물은 물론이고, 서구 기술로 건축된 근대 건축물도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나가라강 철교 붕괴를 비롯하여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교량이나 벽돌 건물 등이 붕괴되었다. 이는 미노-오와리 지진 이후 내진 구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가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지진의 영향으로 진재예방조사회가 설치되었다.

노비 지진 피해
노비 지진 피해

농오 지진의 피해
농오 지진의 피해

가옥 피해 상황
가옥 피해 상황

노비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도카이도 본선 나가라가와 철교
노비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도카이도 본선 나가라가와 철교

아쓰타초 오와리 방적장 기계소 파괴도
아쓰타초 오와리 방적장 기계소 파괴도


다음은 지진으로 인한 건축물 및 기타 피해 상황을 나타낸 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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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상황 (우사미 다쓰오, 1987(宇佐美龍夫, 1987) 연구 기준)
지방가옥 피해기타
가옥 붕괴가옥 반파산사태
미노70,04830,9949,929
오와리67,77143,57029
기타 지역4,3585,760266
합계142,17780,32410,224


도쿄아사히 신문오사카에서 많은 가옥이 파괴되었고, 나니와 면직 공장을 포함한 여러 산업 건물이 피해를 입거나 파괴되었다고 보도했다. 나고야에서는 1,000채 이상의 일본 가옥과 기타 건물이 붕괴되었다.

4. 지진의 학술적 의의

고토 분지로는 노비 지진을 계기로 단층과 지진의 관계를 확신하여 단층지진설을 처음 주장하였다. 당시 과학자들은 크고 얕은 지진이 마그마의 지하 이동이나 지하 폭발의 결과라고 믿었으나, 도쿄 제국 대학 교수였던 고토 분지로는 지표 단층의 영향으로 갑작스러운 단층 활동이 지진의 원인이며, 단순한 이차적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모리 후사키치여진을 연구하여 본진 발생 시각과 여진 횟수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오모리 공식을 발표하였다. 노비 지진의 경우, 지진 발생 후 약 100년이 지났음에도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노비 지진 이후 14개월 동안 기후 현 기상 관측소에서는 3,000회 이상의 여진이 보고되었고, 1976년 미쿠모 타케시와 안도 마사타카의 연구에 따르면 1년에 3~4회의 지진이 여전히 감지되었다.

5. 지진 이후의 방재 대책

노비 지진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지진 방재 대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 지진예방조사회: 지진 발생 이듬해인 1892년, 일본 정부는 지진재해 예방 조사회를 설치하여 지진 연구 및 방재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지진재해 예방 조사회에서는 '지진 예지', '건물의 내진성 향상', '과거 지진사 편찬'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는 이후 도쿄 대학 지진 연구소로 이어져 일본 지진 연구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 내진 설계 강화: 노비 지진으로 인해 근대 건축물의 피해가 컸던 점을 교훈 삼아, 일본은 건축물의 내진 설계 기준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1896년(메이지 시대) 2월에 준공된 일본은행 본점의 설계는 벨기에 국립 은행을 참고하면서, 노비 지진의 교훈으로부터 내진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2층과 3층은 벽돌조 석재 붙임으로 경량화했다. 이는 이후 일본 건축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지진 방재의 날 제정: 기후현은 노비 지진 발생일인 10월 28일을 '기후현 지진 방재의 날'로 지정하여 지진 방재 훈련 및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매월 28일을 "기후현 방재점검의 날"로 지정하여 기후현민들에게 매달 방재 태세 점검을 홍보하고 있다.

6. 한국과의 관계

노비 지진은 한반도에서도 감지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이후 한국의 지진 연구 및 방재 대책 수립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