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 (후한)
1. 개요
곽진은 후한 시대의 인물이다. 어려서 소두율을 익혔으며, 연광 연간에 상서가 되었다. 125년 손정이 강경을 죽이고 순제를 옹립할 때 우림을 이끌고 염경을 격살하여 공을 세웠고, 정영후에 봉해졌다. 이후 하남윤, 정위를 역임했으나 면직되었고, 129년에 사망했다. 곽진은 순제에 의해 소무후로 시호되었으며, 아들 곽시가 작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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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년 사망 -
오스로에스 1세
오스로에스 1세는 파코루스 2세에게 반기를 들고 왕위를 찬탈하여 볼로가세스 3세와 경쟁하며 파르티아 서부 지역을 장악했으나, 로마의 침공과 볼로가세스 3세와의 권력 다툼 끝에 왕위를 잃고 사망한 파르티아의 왕이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후한의 열후 -
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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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열후 -
조식 (조위)
조식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로, 조조의 아들이며 조비와의 후계 다툼에서 밀려 정치적으로 불우했지만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건안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곽진은 후한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소두율(小杜律)을 공부했다. 태위부에 임명되었고, 연광 연간에는 상서(尙書)가 되었다.
125년 순제 옹립 당시 중황문(中黃門) 손정이 중상시(中常侍) 강경(江京)을 죽이고, 곽진은 우림을 이끌고 위위 염경을 죽이는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상서령(尙書令)이 되었고, 태부와 삼공들은 곽진의 공적을 전한의 성양경왕과 같다고 칭송하며 정영후(定潁侯)에 봉하고 식읍 2천 호를 내렸다. 이후 하남윤을 거쳐 정위로 승진했다가 면직되었다.
영건 4년(129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곽시가 작위를 이었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생활
어려서 집안 대대로 전수된 소두율(小杜律)을 익혔다. 태위부에 벽소되었고, 연광 연간에 상서(尙書)가 되었다.
125년 (연광 4년) 11월, 중황문(中黃門) 손정이 중상시(中常侍) 강경(江京) 등을 살해하고 순제를 옹립하자, 곽진은 우림의 사졸을 이끌고 위위 염경을 격살했다. 곧 상서령(尙書令)이 되었고, 태부와 삼공들이 곽진의 공적을 전한의 성양경왕과 같다고 칭송하여 정영후(定潁侯)에 봉해지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이후 하남윤을 지냈고, 정위로 옮겨졌다가 면직되었다.
2.2. 순제 옹립과 공적
어려서 집안 대대로 전수된 소두율을 익혔다. 태위부에 벽소되었고, 연광 연간에 상서(尙書)가 되었다.
125년 순제를 옹립할때, 중황문(中黃門) 손정이 중상시(中常侍) 강경(江京)을 죽이고, 곽진은 우림을 이끌고 위위 염경을 죽여 공을 세웠다. 곧 상서령(尙書令)이 되었고, 태부와 삼공들이 곽진의 공적을 전한의 성양경왕과 같다고 칭송하여 정영후(定潁侯)에 봉해지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이후 하남윤을 지냈고, 정위로 옮겨졌다가 면직되었다.
2.3. 사망과 후계
영건 4년(129년)에 곽진이 죽자, 아들 곽시가 작위를 이었다. 곽진의 장남 곽하는 작위를 이을 예정이었으나, 막내 아우와 함께 도망쳤다. 수년 후, 대홍려의 명에 따라 주군의 추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출두하여 봉해졌고, 관직을 역임하여 정위에 올랐다. 사후에 성후(成侯)로 시호되었다. 곽진의 아들 곽정 또한 법률에 밝았으며, 정위에 올랐다.
3. 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장남 | 곽하 | 작위를 이을 예정이었으나 동생과 도망쳤다. 대홍려의 명으로 주군의 추격을 받고 출두하여 봉해졌다. 정위에 올랐으며, 사후 성후(成侯)로 시호되었다. |
| 차남 | 곽정 | 법률에 밝았으며, 정위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