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려
1. 개요
대홍려는 구경 중 하나로, 귀순한 이민족 관리를 담당하는 전객에서 기원했다. 전한 경제 때 대행령으로 개칭되었다가 태초 원년에 대홍려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나라에서는 전악으로 변경되었으나, 후한 시대에 다시 대홍려로 설치되어 제후와 주변 이민족을 관리했다. 종묘 의례를 주관하고 제후왕 입조 시 의례를 담당했으며, 태자, 제후 등의 책봉 시 인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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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정치인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
전한의 관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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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관료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한나라의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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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 역사
진나라 시대에 귀순한 주변 민족(만이)을 관할하는 중앙 관직인 구경 중 하나인 전객(典客)을 설치하고 승(丞)을 두었다. 전한에서도 전객을 설치하였으며, 경제 때 대행령(大行令)으로 고쳤다가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에 대홍려로 고쳤다.
속관은 다음과 같다.
각 속관에는 승 1명씩을 두었다.
신에서는 전악으로 고쳤다.
후한에서도 대홍려를 계속 설치하여 제후와 귀순한 주변 민족들을 관할했다. 대홍려는 정원 1명, 봉록은 중(中) 2천 석이었으며, 교묘에서의 의례와 제후왕이 입조하였을 때의 의례를 주관했다. 황자, 제후, 제후의 후계자, 주변 민족으로 책봉된 자는 대하에서 대홍려가 불러 인수를 수여했다. 대홍려에는 승 1명을 두었고, 봉록은 비(比) 1천 석이었다.
2.1. 진·전한
진나라 시대 중앙 관직으로, 귀순한 주변 제족(만이)을 관할하는 구경 중 하나인 전객(典客)을 기원으로 하며, 승(丞)을 두었다. 전한에서도 전객을 설치하였으며, 경제 때 대행령(大行令)으로 고쳤다가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 대홍려로 고쳤다.
속관은 다음과 같다.
각 속관에는 승 1명씩을 두었다.
2.2. 신
전악으로 고쳤다.
2.3. 후한
후한에서도 계속 설치되어 제후와 귀순한 주변 민족들을 관할했다. 정원은 1명, 봉록은 중(中) 2천 석이었다. 교묘에서의 의례를 주재하고, 제후왕이 입조하였을 때의 의례도 관장했다. 또한 황자, 제후, 제후의 후계자, 주변 민족으로 책봉된 자는 대하에서 대홍려가 이를 불러 인수를 수여했다. 승 1명을 두고, 봉록은 비(比) 1천 석이었다. 속관에는 대행령 1명(봉록 6백 석), 대행승 1명, 예랑 47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