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라노코니키시 로구
1. 개요
구다라노코니키시 로구는 737년 사망한 인물로, 백제왕 창성의 아들이다. 덴무 천황의 장례에서 조부 백제왕 선광의 대리로서 뢰를 선포했으며, 다이호 율령에 따라 종5위상에 서위되었다. 이요노카미, 셋쓰노스케 등을 역임했으며 최종 관위는 종4위하였다.
| 씨족 | 구다라노코니키시씨 |
|---|---|
| 이명 | 양우 (良虞) |
| 시대 | 아스카 시대 - 나라 시대 |
|---|---|
| 출생 | 미상 |
| 사망 | 덴표 9년 7월 17일 (737년8월 17일) |
| 개명 | 없음 |
| 시호 | 없음 |
| 신호 | 없음 |
| 계명 | 없음 |
| 묘소 | 없음 |
| 관위 | 종4위하 |
|---|---|
| 직책 | 셋쓰노스케 (摂津亮) |
| 주군 | 몬무 천황 → 겐메이 천황 → 겐쇼 천황 → 쇼무 천황 |
|---|---|
| 씨족 | 구다라노코니키시씨 |
| 부모 | 아버지: 구다라노코니키시 쇼세이 (百済王昌成) |
| 형제자매 | 구다라노코니키시 로구 (百済王郎虞), 구다라노코니키시 난텐 (百済王南典), 구다라노코니키시 엔포 (百済王遠宝) |
| 배우자 | 미상 |
| 자녀 | 구다라노코니키시 젠후쿠 (百済王敬福), 구다라노코니키시 고추 (百済王胡虫), 구다라노코니키시 젠쇼 (百済王善尚) |
-
737년 사망 -
성덕왕
신문왕의 아들인 성덕왕은 36년간 신라를 다스리며 당과의 외교, 구휼 사업, 관료 기구 정비, 국방 강화 등 국내외 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
737년 사망 -
무왕 (발해)
무왕은 발해 고왕 대조영의 아들이자 발해의 2대 왕으로, 당나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산둥반도를 공격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치다 737년에 사망했다. -
구다라노코니키시씨 -
구다라노코니키시 엔포
구다라노코니키시 엔포는 백제 왕족 출신으로 일본의 관료였으며, 지토 천황 시대에 물품을 하사받고 몬무 천황 시대에 히타치 국사를 역임했으며, 최종 관위는 종4위였다. -
구다라노코니키시씨 -
구다라노코니키시 안기
구다라노코니키시 안기는 사가 천황 시대에 종5위하에 서작되었고 닌묘 천황 시대에 우병위독을 역임했으며, 838년에 사망하여 최종 관위는 종4위하였다. -
8세기 일본 사람 -
지토 천황
지토 천황은 덴지 천황의 딸이자 덴무 천황의 아내로, 덴무 천황 사후 즉위하여 아스카기요미하라령 제정, 후지와라쿄 조영 등을 통해 율령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며, 섭정 및 양위를 거쳐 태상천황이 되었다. -
8세기 일본 사람 -
사가 천황
사가 천황은 809년에 즉위하여 823년까지 재위한 일본의 제52대 천황으로, 문치주의를 장려하고 정치 개혁을 시도했으며, 한시와 서예에 능하고 구카이를 지원하여 진언종 발전에 기여했다.
2. 생애
686년 덴무 천황의 장례에서 할아버지 백제왕 선광을 대신하여 뢰를 선포했다. 691년 정월 연회에서 할아버지 선광 및 동생 백제왕 남전과 함께 우(賑わ롭게 하는 물건)를 받았다.
701년 다이호 령에 따른 위계 제도 제정으로 종5위상에 서위되었고, 703년 이요노카미에 임명되었다. 715년 정5위상, 717년 종4위하로 겐쇼 천황 말에서 겐메이 천황 초에 걸쳐 승진했으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셋쓰노스케를 역임했다.
후지와라노 무치마로가 704년 대학조에 임명되었을 때, 대학두는 백제왕 낭우였으며, 당시 천도 등의 영향으로 쇠퇴했던 대학료를 충실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치마로는 706년 대학두로 승진했기 때문에, 낭우가 대학두였다면 임기는 이 해 이전까지로 추정된다. 737년 7월 17일 졸서. 최종 관위는 산위 종4위하였다.
2.1. 관직 진출
686년 덴무 천황의 장례에서 할아버지 백제왕 선광을 대신하여 뢰를 선포했다. 691년 정월 연회에서 할아버지 선광 및 동생 백제왕 남전과 함께 우(賑わ롭게 하는 물건)를 받았다.
701년 다이호 령에 따른 위계 제도 제정으로 종5위상에 서위되었고, 703년 이요노카미에 임명되었다. 715년 정5위상, 717년 종4위하로 겐쇼 천황 말에서 겐메이 천황 초에 걸쳐 승진했으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셋쓰노스케를 역임했다.
737년 7월 17일 졸서. 최종 관위는 산위 종4위하였다.
후지와라노 무치마로가 704년 대학조에 임명되었을 때, 대학두는 백제왕 낭우였으며, 당시 천도 등의 영향으로 쇠퇴했던 대학료를 충실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치마로는 706년 대학두로 승진했기 때문에, 낭우가 대학두였다면 임기는 이 해 이전까지로 추정된다.
2.2. 대학두 역임
다이호 4년(704년)에 후지와라노 무치마로가 대학조에 임명되었을 때, 대학두는 구다라노코니키시 로구였으며, 당시 천도 등의 영향으로 쇠퇴했던 대학료를 충실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치마로는 게이운 3년(706년) 대학두로 승진했기 때문에, 구다라노코니키시 로구가 대학두였다면 임기는 이 해 이전까지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