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몬 히로아키
1. 개요
구몬 히로아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1989년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졸업 후 후루카와 일렉트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쇼난 벨마레, 요코하마 FC를 거쳐 2002년 은퇴했다. 쇼난 벨마레 시절에는 '구몬식 승리 방정식'으로 불리는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주며 1994년 천황배, 1995년 아시아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스카우트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히로아키 쿠몬 |
|---|---|
| 본명 | 공문 유명 |
| 로마자 표기 | Hiroaki Kumon |
| 출생일 | 1966년 10월 20일 |
| 출생지 | 가나가와현, 일본 |
| 신장 | 169cm |
| 포지션 | 수비수 |
| 연도 | 1982–1984 |
|---|---|
| 클럽 | 가마쿠라 고등학교 |
| 연도 | 1985–1988 |
| 클럽 |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 |
| 연도 | 1989–1992 |
|---|---|
| 클럽 | 후루카와 전기 |
| 출장 | 20 |
| 득점 | 0 |
| 연도 | 1992–1998 |
| 클럽 | 벨마레 히라쓰카 |
| 출장 | 140 |
| 득점 | 2 |
| 연도 | 1999–2002 |
| 클럽 | 요코하마 FC |
| 출장 | 84 |
| 득점 | 0 |
| 총 출장 | 244 |
| 총 득점 | 2 |
| 팀 | 후루카와 전기 |
|---|---|
| 대회 | JSL컵 |
| 연도 | 1990 |
| 팀 | 벨마레 히라쓰카 |
| 대회 | 천황배 |
| 연도 | 1994 |
-
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 동문 -
전영택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개신교 목사인 전영택은 1919년 한국 최초의 문학 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단편소설 〈화수분〉, 〈소〉 등의 대표작을 남겼으며, 개신교 관련 간행물 발행, 중앙신학교 및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한국문인협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 동문 -
심명섭
심명섭은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한 목사로, 조선임전보국단에 참여하고 황민화 기독교를 옹호하는 글을 기고했으며, 광복 후 동생 심훈의 시집을 간행했으나 한국 전쟁 중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일본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 -
고지마 노부유키
고지마 노부유키는 쇼난 벨마레,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은퇴한 축구 골키퍼 선수로, 쇼난 벨마레 시절 천황배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일본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 -
야마구치 다카유키
야마구치 다카유키는 1973년 도쿄도 출생으로,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예선에 참가한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구몬 히로아키는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후루카와 일렉트릭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첫 시즌부터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으며, 1992년 고향 팀 후지타 인더스트리즈로 이적하여 1993년 리그 우승과 함께 팀의 J1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1994년부터는 1994년 일왕배와 1995년 아시아컵 위너스컵 우승에 공헌했다. 1998년 시즌 후 재정 문제로 팀에서 방출되었고, 1999년 요코하마 FC로 이적하여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며 J2리그로 승격시켰다. 2002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1. 후루카와 일렉트릭 /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 (1989-1992)
구몬은 아오야마가쿠인대학(Aoyama Gakuin University)을 졸업하고 1989년 일본축구리그 소속 클럽인 후루카와 일렉트릭(Furukawa Electric)에 입단하여, 첫 시즌부터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다.
2.2. 후지타 / 쇼난 벨마레 (1992-1998)
1992년, 구몬은 고향 팀인 일본축구리그 클럽 후지타 인더스트리즈로 이적했다. 이 클럽은 1993년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994년부터 J1리그로 승격되었다. 1994년, 구몬은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일왕배와 1995년 아시아컵 위너스컵 우승에 기여했다.
1994년 후반, 쇼난 벨마레 돌풍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일본축구리그 시절부터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던 벨마레는 J리그 승격 직후 수비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구몬이 왼쪽 수비수로 배치되면서 수비가 안정되어 연승을 거두었다. 구몬이 출전 정지였던 2경기에서는 모두 패했을 정도로 그의 수비력은 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구몬식 승리 방정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3. 요코하마 FC (1999-2002)
1999년, 구몬 히로아키는 일본축구리그(Japan Football League)의 신생 클럽인 요코하마 FC(Yokohama FC)로 이적했다. 요코하마 FC는 1999년과 2000년에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J2리그(J2 League)로 승격했다. 구몬은 2002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은퇴 후
현재 요코하마 F・마리노스의 스카우트 담당 강화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4. 개인 기록
구몬 히로아키는 선수 시절 여러 축구 리그와 컵 대회에 참가하여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다음은 구몬 히로아키의 개인 통산 기록을 정리한 표이다.
구몬은 1990년 코니카컵에서 1경기, 1991년 코니카컵에서 5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4.1. 클럽 기록
| 클럽 경기 기록 | 리그 |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 J리그컵 | 총계 | ||||||
|---|---|---|---|---|---|---|---|---|---|---|
| 시즌 | 클럽 | 리그 | 출전 경기 수 | 득점 | 출전 경기 수 | 득점 | 출전 경기 수 | 득점 | 출전 경기 수 | 득점 |
| 1989/90 | 후루카와 일렉트릭 | JSL 디비전 1 | 6 | 0 | 2 | 0 | 8 | 0 | ||
| 1990/91 | 5 | 0 | 3 | 0 | 8 | 0 | ||||
| 1991/92 | 9 | 0 | 1 | 0 | 10 | 0 | ||||
| 1992 | 후지타 인더스트리즈 | 풋볼 리그 | 10 | 0 | - | 10 | 0 | |||
| 1993 | 10 | 1 | 1 | 0 | 5 | 0 | 16 | 1 | ||
| 1994 | 벨마레 히라츠카 | J1리그 | 28 | 1 | 5 | 0 | 0 | 0 | 33 | 1 |
| 1995 | 27 | 0 | 2 | 0 | - | 29 | 0 | |||
| 1996 | 10 | 0 | 1 | 0 | 14 | 0 | 25 | 0 | ||
| 1997 | 32 | 0 | 3 | 1 | 5 | 0 | 40 | 1 | ||
| 1998 | 23 | 0 | 2 | 0 | 1 | 0 | 26 | 0 | ||
| 1999 | 요코하마 FC | 풋볼 리그 | 19 | 0 | 2 | 0 | - | 21 | 0 | |
| 2000 | 18 | 0 | 2 | 0 | - | 20 | 0 | |||
| 2001 | J2리그 | 26 | 0 | 0 | 0 | 3 | 0 | 29 | 0 | |
| 2002 | 21 | 0 | 2 | 0 | - | 23 | 0 | |||
| 총계 | | 2 || 20 || 1 || 34 || 0 || 298 || 3 | |||||||||
* 기타 공식 경기
1990년: 코니카컵 1경기 0득점
1991년: 코니카컵 5경기 0득점
5. '구몬식 승리 방정식'
1994년 후반 쇼난 벨마레 돌풍의 주역이었다. 일본풋볼리그(재팬 풋볼 리그) 시절부터 이와모토 테루오, 나가라하시 아키라에 의한 초공격적인 양 사이드백 전진 스타일을 취했던 벨마레였지만, J리그(일본 프로 축구 리그)에서는 통하지 않았고, J리그 승격 직후인 1994년 J리그 산토리 시리즈에서는 많은 실점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와모토를 공격형 미드필더(본래는 MF) 위치로 올리고, 구몬을 왼쪽 사이드에 배치하자, 본래의 공격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비가 안정되어 연승을 거두었다. 구몬이 출전 정지였던 2경기에서는 모두 패했고, 이 2패가 없었다면 우승할 가능성이 높았다(우승은 베르디 가와사키). 승점 차는 3점, 득실점 차는 동률이었다. "구몬식(公文式) 승리 방정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수비력을 갖춘 사이드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