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키 다카스에
1. 개요
구키 다카스에는 에도 시대 전기의 다이묘로, 구키 모리타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구키 요시타카의 손자이며, 동생과의 가독 다툼 이후 단바 아야베 번의 초대 번주가 되었다. 시키부쇼유에 서임되었으며, 번정에서 성하 마을 건설에 힘썼다. 이후 장남 구키 다카츠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72세에 사망하여 조안사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 씨명 | 구키 씨 |
|---|---|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 출생 | 게이초 13년 10월 7일 (1608년11월 14일) |
| 사망 | 엔포 6년 5월 25일 (1678년7월 13일) |
| 계명 | 대극원전전리부시랑공산료본대거사 |
| 묘소 | 미에현 도바시의 조안지 |
| 관위 | 종5위 하시키부소보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미쓰, 이에쓰나 |
| 번 | 단바아야베 번 번주 |
| 씨족 | 구키 씨 |
| 부모 | 구키 모리타카, 니시야마 민부 딸 류쇼인 |
| 형제자매 | 요시타카 사다타카 구키 다카스에 다카시게 히사타카 구키 다카노리 실 규쇼인 호주인 오와카 자쇼인 교치인 구키 나오타카 실 |
| 배우자 | 히지카타 가쓰시게 딸 이노우에 마사나리 딸 |
| 자녀 | 다카쓰네 사에구사 모리테루 정실 아키타 스에히사 정실 |
| 대수 | 1 |
|---|---|
| 임기 | 1633년 ~ 1674년 |
| 후임 | 구키 다카쓰네 |
-
도바번 사람 -
구키 요시타카 (에도 시대)
구키 요시타카는 1542년 구키 모리타카의 장남으로 태어나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배알하고 종5위하에 서임되었으나 가독 상속 분쟁에서 밀려 폐적된 후 동생들과 가독 다툼에서 패배, 셋쓰국으로 영지를 옮겼다가 병약함을 이유로 폐적 후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아야베 구키가 -
아야베번
아야베번은 1633년 구키 다카스에가 토바번에서 분할되어 이봉받아 성립된 도자마 다이묘 번으로, 구키 씨가 메이지 유신까지 다스리다 폐번치현 이후 아야베현을 거쳐 교토부에 편입되었으며, 번주 가문은 후에 자작, 구키 다카시게의 자손은 남작 작위를 받았다. -
아야베 구키가 -
구키 다카요시
구키 다카요시는 단바 아야베 번주 구키 다카토의 아들로, 미타 번의 번주를 상속하여 번정 개혁을 추진하고,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에 협력했으며, 메이지 시대에는 고베 지역 개발에 기여하고 시마 상사를 설립하여 상업, 도시 개발, 교육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
구키씨 -
구키 요시타카 (센고쿠 시대)
구키 요시타카는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걸쳐 활약한 구키 수군의 수장으로,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며 임진왜란에도 참전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 후 자결한 철갑선 활용의 해전으로 유명한 무장이다. -
구키씨 -
구키 히사타카
구키 히사타카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로, 구키 요시타카의 양손자이며, 상속 분쟁으로 토바번에서 산다번으로 감봉된 후 다카쓰키번의 수위를 맡았다.
2. 생애
게이초 13년(1608년), 구키 수군으로 알려진 구키 요시타카의 손자이자, 초대 시마국 토바 번주 구키 모리타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모리타카가 사망한 후, 동생 히사타카와 가독 상속 다툼이 벌어져 번내가 둘로 나뉘는 소동이 일어났다. 에도 막부는 유언장에 따라 히사타카가 상속하도록 재가했지만, 다카스에에게는 단바 아야베에 2만 석을 새로 주어 간에이 10년 3월 5일(1633년4월 13일)에 아야베 번을 건립했다.
간에이 19년 12월 30일(1643년2월 18일) 시키부쇼유에 서임되었다. 간분 원년 3월 28일(1661년4월 27일) 동생 다카시게에게 500석을 분여하여 1만 9500석이 되었다. 다카스에는 번정에서 성하 마을 건설 등에 힘썼다.
엔포 2년 11월 16일(1674년12월 13일) 장남 다카쓰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엔포 6년 5월 25일(1678년7월 13일) 72세로 사망했다. 장례는 유언에 따라 토바의 조안사에서 치러졌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분쟁
게이초 13년(1608년), 구키 요시타카의 손자이자, 초대 시마국 토바번주 구키 모리타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모리타카가 죽은 후, 동생 히사타카와 가독 상속 다툼이 벌어져 번내가 둘로 나뉘는 소동이 일어났다. 에도 막부는 유언장에 따라 히사타카가 상속하도록 재가했지만, 다카스에에게는 단바 아야베에 20000석을 새로 주어, 간에이 10년 3월 5일(1633년4월 13일)에 단바 아야베번을 건립했다.
2.2. 번주 시절과 번정
간에이 19년(1643년2월 18일) 시키부쇼유에 서임되었다. 간분 원년(1661년4월 27일), 동생 다카시게에게 500석을 분여하여 1만 9500석이 되었다. 다카스에는 번정에서 성하 마을 건설 등에 힘썼다.
2.3. 은거와 사망
엔포 2년 11월 16일(1674년12월 13일)에 장남 다카쓰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엔포 6년 5월 25일(1678년7월 13일)에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례는 유언에 따라 시마국 도바의 조안사에서 치러졌다.
3.1. 가족 관계
3.2. 자녀
| 이름 | 설명 |
|---|---|
| 구키 다카쓰네 | 장남 (1646년 ~ 1698년) |
| 불명 | 사에구사 모리테루의 정실 |
| 불명 | 아키타 스에히사의 정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