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원 (법조인)
1. 개요
김상원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판사, 대법관, 변호사, 대학교수 등을 역임했다. 이천농업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에 합격했다. 해군 법무관으로 복무했으며, 서울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동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대법관을 역임했다. 대법관 퇴임 후에는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다양한 사회 단체에서 활동했다. 주요 판결로는 백화점 변칙 세일 사건 유죄 판결 등이 있으며, 한국법률문화상, 황조근정훈장, 청조근정훈장 등을 수상했다.
| 이름 | 김상원 |
|---|---|
| 한자 표기 | 金祥源 |
| 로마자 표기 | Gim Sang-won |
| 출생일 | 1933년 4월 30일 |
| 사망일 | 2024년 2월 24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변호사, 판사 |
| 주요 활동 | 대한민국 대법원 대법관 |
|---|---|
| 임기 시작 | 1988년 7월 11일 |
| 임기 종료 | 1994년 7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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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출생 -
아키히토
아키히토는 1933년 쇼와 천황의 장남으로 태어나 1989년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2019년 퇴위하고 상황이 되었으며, 어류학자로 활동하며 아시아 국가에 대한 사죄와 국민과의 소통에 힘썼다. -
1933년 출생 -
박승재
박승재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양대학교 교수 및 한국정치학회 이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
이천시 출신 -
차지철
차지철은 5·16 군사 정변에 가담하여 정계에 입문한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국회의원을 지내다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재직하며 권력 남용으로 비판받았고 10·26 사건 때 김재규에게 살해당했다. -
이천시 출신 -
이경재 (1941년)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인 이경재는 동아일보 기자,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공보처 차관을 거쳐 4선 국회의원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환경 및 방송통신 분야에서 활동했고 한나라당 주요 당직을 맡았다. -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동문 -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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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동문 -
허문도
허문도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신군부에 발탁되어 언론 통폐합을 주도하고 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3. 경력
김상원은 법조, 학계, 사회단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 시기 | 내용 |
|---|---|
| 1956년 |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 |
| 1957년 |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
| 1957년 ~ 1960년 | 해군 법무관 |
| 1960년 ~ 1970년 | 서울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 판사 |
| 1970년 ~ 1975년 | 서울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등 부장판사 |
| 1975년 ~ 1981년 | 서울고등법원 부장 및 수석부장판사 |
| 1981년 ~ 1988년 | 변호사 개업 |
| 1988년 ~ 1994년 | 대법관 |
| 1994년 ~ 1995년 |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 법과대학 객원연구원 |
| 1996년 | 웨스턴신학대학교(W.E.S) 명예 인문학박사 학위 |
| 1997년 ~ 1998년 | 대한변협 회원이사 |
| 1996년 ~ 2002년 | 호서대학교 교수 (민법, 민사소송법) |
| 1997년 ~ 2000년 | 한남대학교 교수 (민법, 민사소송법) |
| 1999년 | 민사소송법 및 민사집행법 개정 특별위원회 위원장 |
| 1999년 ~ 2000년 | 환경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 |
| 2002년 | 호서대학교 명예법학박사 학위 |
| 2000년 ~ 2004년 | 내셔널트러스트운동 공동대표 |
| 2000년 ~ 2008년 |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재단 이사장 |
| 2000년 ~ 2010년 | 재단법인 일가기념사업재단 이사장 |
| 2008년 ~ 2010년 | 한국기독교 화해중재원 원장 |
| 현재 | 한기총 법률고문단 공동회장 |
| 현재 | 극동방송 운영위원회 고문 |
| 현재 | 한국자연환경국민신탁법인 신탁평의회 의장 |
| 현재 | (사)세계도덕재무장(MRA/IC) 한국본부 총재 |
| 현재 | 법무법인 한누리 고문변호사 |
| 현재 | (학) 운화학원 이사장 |
| 현재 | (학) 호서학원 이사장 |
3.1. 법조 경력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해군 법무관으로 복무했다. 1960년 서울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근무를 시작하여 1970년까지 판사로 재직했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는 서울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했다.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및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했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판사 재임용을 거부하여 변호사로 개업했다. 1988년 노태우 정권 하에서 이일규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대법관에 임명되어, 1994년 7월 10일까지 대법관으로 재직했다.
대법관 퇴임 후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 법과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는 대한변협 회원이사로 활동했다.
3.2. 학계 및 기타 경력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법과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 1996년 웨스턴신학대학교(W.E.S)에서 명예 인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대한변협 회원이사를 역임했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호서대학교에서 민법, 민사소송법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한남대학교에서도 민법, 민사소송법 교수로 재직했다. 1999년 민사소송법 및 민사집행법 개정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1999년부터 2000년 12월까지 환경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002년 호서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내셔널트러스트운동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3.3. 사회단체 활동 경력
김상원은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4. 주요 판결
* 대법관으로 재직하던 1992년 9월 14일, 신세계백화점과 롯데쇼핑 등의 변칙세일 사기사건 주심을 맡아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이들 백화점은 정상가격을 실제보다 높게 표시하고 할인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처럼 속이는 '변칙세일' 수법을 사용했다. 1심과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변칙세일은 가격조건에 관해 기망이 이루어진 경우로서 사기죄의 기망행위를 구성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이 판결은 민사재판에도 영향을 미쳐, 서울고등법원은 1992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백화점 실무자들의 사용자로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원고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백화점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내어 처음으로 피해배상을 받은 첫 사례가 되었다.
* 서울형사지방법원 단독 판사로 재직하던 1965년 3월 20일, 대통령이 황태성을 처단하지 않고 도피시키고 화폐개혁 당시 130(500원권)을 영국 조폐창에서 찾아내 공화당 사전 조직자금으로 썼고, 김대평 메모 수교 때 150을 사전에 받았다는 등의 유인물을 배부한 피고인에게 특정범죄처벌임시특례법 허위사실유포죄를 적용하여 징역 2년을 선고했다. 10월 11일에는 안양 폭발물 사건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구속된 피고인들에 대해 "검찰이 주장하는 피고가 쇠방망이로 폭약을 두드려 사고를 냈다고 하는 점에 대해 입증할 증거가 충분히 없다"며 한국탄약분해공업사 사장에게 30000KRW, 관리책임자 2명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 대전지방법원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0년 5월 29일, 기능직 공무원 채용시험 문제를 누설한 대전 철도국 기관차사무소 검수계장 등 4명에게 징역 1년~집행유예 2년까지 선고하고, 부정 합격한 9명에게 20~30을 선고했다. 10월 2일에는 "모의 투표용지를 배부했다고 하더라도 유권자의 의사를 요구한 증거가 없어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라고 하면서, 선거운동금지 기간에 마이크 사용 부분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하여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기소된 신민당원에게 무죄, 다른 피고인에게 10000KRW과 3000KRW을 각각 선고했다.
* 서울민사지방법원 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1년 11월 13일, 기차 선반에서 물건이 떨어져 다친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380000KRW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했다. 1973년 9월 14일에는 서울특별시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소유 757평에 대해 사용금지 행정처분을 하여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해 손실이 크다면서 제기한 소송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개인 소유의 땅을 수용해 공공목적으로 사용했을 때도 토지 소유권자가 이를 사용하지 못한 데 대한 손실을 보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서울시는 원고에게 17550000KRW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7년 6월 2일, 수도 불통으로 기소된 용산 제1시장번영회 회장 등 3명에 대해 "사설 수도 관리자는 사용한 자가 비록 요금을 납부하지 않았다고 해도 손괴 등의 방법으로 수도를 불통하게 해서는 안된다"면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5. 수상
| 연도 | 수상 |
|---|---|
| 2007년 | 제4회 피스메이커상 |
| 2006년 | 도덕대상 |
| 2000년 | 한국 기독교 선교대상 |
| 1994년 | 청조근정훈장 |
| 1981년 | 황조근정훈장 |
| 1974년 | 제6회 한국법률문화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