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 (1944년)
1. 개요
김영일은 1944년 출생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1961년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9년간 복무 후 라진 해운대학을 졸업하고 육해운부에서 근무하며 육해운부 부장, 육해운상을 역임했다. 2007년 내각 총리에 임명되었으나, 2009년 화폐 개혁 실패로 2010년 해임되었으며, 이후 청진시 항만장으로 전출되었다.
| 이름 | 김영일 |
|---|---|
| 출생일 | 1944년 5월 2일 |
| 출생지 | 함경남도 |
| 사망일 | 알려지지 않음 |
| 사망지 | 알려지지 않음 |
| 모교 | 라진해운대학 |
|---|
| 소속 정당 | 조선로동당 |
|---|---|
| 직책 | 내각총리 |
| 임기 시작 | 2007년 4월 11일 |
| 임기 종료 | 2010년 6월 7일 |
| 전임자 | 박봉주 |
| 후임자 | 최영림 |
| 상급자 |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 |
| 기타 직책 | 육해운상 |
| 육해운상 임기 시작 | 1994년 |
| 육해운상 임기 종료 | 2007년 4월 11일 |
| 군 복무 | 1961년 ~ 197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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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총리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총리 -
강성산
강성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두 차례에 걸쳐 내각 총리를 역임하며 합영법 제정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김정일 시대에 실각한 후 사망하여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2. 략력
1961년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9년간 복무한 후, 라진 해운대학을 졸업하고 육해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1980년 육해운부 부부장(차관)을 거쳐 1994년에는 육해운부 부장(대신)에 임명되었고, 1998년 내각 개편 후에도 육해운상 직위를 유지했다.
2007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 총리로 선출되었으나, 2010년 6월 해임되었다。 이후 청진시 항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1. 군 복무 및 해운 분야 경력
1961년에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9년간 군 복무를 했다. 퇴역 후 라진 해운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육해운부(성에 해당)에서 근무했으며, 1980년에는 육해운부 부부장(차관)에 취임했다. 1994년, 육해운부 부장(대신)에 취임했다. 1998년 9월 헌법 개정으로 정무원(정부)이 내각으로 개편되자 육해운부는 육해운성으로 개칭되었고, 김영일은 계속 육해운상(대신)에 취임했다. 육해운부장·상 재직 중, 김은 항만·부두 및 조선소 건설 등에서 실적을 올렸다.
2007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5차 회의에서 내각 총리에 선출되었다. 전임자인 박봉주가 경제 개혁 실패로 총리에서 해임되었기에, 김영일은 경제 재건을 기대받았다. 그러나 2009년에 실시한 화폐 개혁(디노미네이션)이 실패했기 때문에, 2010년 6월 7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3차 회의에서 총리에서 해임되었다。
총리 해임 후에는 청진시 항만장으로 전출되었다. 이 직위는 부국장급으로, 사실상의 강등 인사였다.
2.2. 내각 총리 재임 및 해임
2007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5차 회의에서 내각 총리로 선출되었다. 전임자인 박봉주가 경제 개혁 실패로 총리에서 해임되었기에, 김영일은 경제 재건을 기대받았다. 그러나 2009년에 실시한 화폐 개혁(디노미네이션)이 실패했기 때문에, 2010년 6월 7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3차 회의에서 총리에서 해임되었다。
총리 해임 후에는 청진시 항만장으로 전출되었으며, 이 직위는 부국장급으로 사실상의 강등 인사였다.
2.3. 총리 해임 이후
총리에서 해임된 후에는 청진시 항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직위는 부국장급에 해당하여, 사실상 강등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