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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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여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김정일의 딸이자 김정은의 여동생이다. 1987년 출생으로, 스위스 유학,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 전공 등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10년 이후 김정일의 후계자 지명,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남북정상회담 수행 등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펼쳤다. 2021년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대외 담화를 통해 한국과 미국을 비판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북한의 공포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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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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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김여정 |
한자 | 金與正 |
로마자 표기 | Kim Yŏjŏng |
출생일 | 1988년 9월 26일 |
출생지 | 평양직할시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본관 | 전주 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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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
출신 학교 | 김일성종합대학 |
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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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 |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부장 직무대리 |
임기 | 2014년 11월 13일 ~ 2015년 7월 24일 |
주요 경력 | 당 중앙위원 당 중앙정치국 후보위원 |
가족 관계 | |
부모 | 김정일(부) 고용희(모) |
형제자매 | 김정남(이복 오빠) 김설송(이복 언니) 김정은(동복 오빠) 김정철(동복 오빠) |
친인척 | 최룡해(시부) 최현(시조부) 리수용(사돈) |
기타 | |
종교 | 무종교 (주체 사상) |
거주지 | 평양 |
2. 생애
김여정의 출생 및 성장 과정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다. 2011년 이전까지는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2011년 1월 14일 싱가포르 공연장에서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이 KBS에 포착되었다.[103][104] 또한, 친아버지 김정일 사망 후 영결식장에서 포착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조선로동당 비서실에서 비서로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10월 3일, NK지식인연대는 김정은이 건강 문제로 자취를 감춘 직후 소집된 당 정치국 긴급회의를 김여정이 주관했다고 밝혔다.[108] 같은 해 11월 27일, 조선중앙TV는 김여정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차관급)이라고 소개했다.[24] 12월 11일에는 김여정이 조선노동당 서기실장(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111]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고위급 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하여 김일성 직계 후손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34]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에서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친서를 전달하고 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했다.[37]
김여정은 로동당 중앙위원회 행사과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2015년 1월 초 최룡해의 차남 최성과 결혼했다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미성년 시절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회고록에 따르면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다. 김여정은 평양 북교외의 북한 최고 지도자의 대저택에서 자라 세상과는 단절된 삶을 보냈다.[7] 8살이나 9살 무렵의 사진을 보면 현재의 날카로운 용모와는 달리, 볼이 통통한 얼굴에 초커 목걸이를 하고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93] 그녀는 어머니 고용희와 마찬가지로 춤을 좋아하는 소녀였다.[93] 아버지 김정일은 자녀들 중에서 김정은과 김여정에게 정치가의 자질이 있다고 여겼다.[7] 아버지는 머리가 빠른 그녀를 "귀여운 우리 여정이", "여정 공주"라고 부르며 귀여워했고, 지도자의 그릇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7]
1996년 4월부터 2000년 말까지 오빠 김정은과 함께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했다.[8] 김정은은 "박은", 김여정은 "정승"이라는 가명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 스위스 대사관 직원의 자녀로서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배웠다고 한다. 스위스 유학 당시 사진은 2010년 6월에 공개되었다.[9] 그녀는 베른에서 초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을 마치고, 그 후에는 전속 가정교사를 두고 교육을 받았다.[7]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한 것은 2007년 무렵으로 추정되며, 여기서는 물리학을 전공했다.[8]
3. 가계도
4. 정치 활동
2015년 5월, 한국 국정원은 김여정이 임신하여 5월에 출산할 것으로 파악했다.[112]
2016년 5월 20일, 김여정(당시 29세)이 북한 권력 서열 2위인 최룡해(당시 66세)에게 반말을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114]
2017년 1월 12일, 미국은 김여정을 인권 침해 연루 혐의로 제재 대상에 지정하고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미국인과의 거래를 금지했다.[31]
2020년 6월 16일, 김여정의 도발 발언 후[116] 4일 만에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 170억 원이 투입된 개성시 소재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
2021년 1월, 김여정은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과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직에 유임되지 못했다. 같은 해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보궐 선출되었다.[82][83][84]
5. 주요 활동 및 역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활동에 김정은을 수행하며 보좌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을 "남쪽에서 스타가 되었다"고 언급하자 얼굴을 붉히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51]
2020년에는 한국과 미국을 향한 담화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3월에는 "한국 대통령府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라며 한국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고,[69] 3월 22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서 친서를 받았음을 알렸다. 이러한 담화는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숨기고 한국에 강경한 자세를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70]
2020년 6월, 한국의 탈북자 단체가 북한 풍선전단을 살포한 것에 대해 비판 성명을 냈으며, 이후 남북 관계가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며칠 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실제로 폭파되었다.[75]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 당과 정부의 고위직을 모두 맡게 되었다.[82][83][84]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가 제안한 비핵화 협상에 따른 경제 지원 구상에 대해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비난하며 강하게 반발했다.[85]
5. 1. 2010년대 초반
2010년 9월, 김여정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조선로동당 대표 회의에서 추대된 김정은과 함께 지도자들의 기념사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10] 2011년 2월에는 오빠인 김정철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에릭 클랩튼의 콘서트를 관람하고 차에 타는 모습이 한국방송공사에 의해 포착되었다.[11][12]
아버지 김정일의 장례식 때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8]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있다고 여겨졌으나,[13][14][15][16] 2014년 3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당시 북한 국영 매체에 의해 처음으로 이름이 보도되었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 간부"로 소개되며 정장 차림으로 투표하는 사진이 보도되었다.[17][18] 이때 조선중앙통신 중국어판 등에서는 한자 표기로 '''김여정(金与正)'''을 사용했다.[3][4] 같은 해 3월 30일, 한국의 연합뉴스는 2013년부터 노동당 서기실장 직책에 있었다고 보도했다.[19]
5. 2. 2010년대 후반
2015년 1월 2일, 연합뉴스는 김여정이 최룡해의 차남인 최성과 결혼했다는 견해를 보도했으나,[26] 2016년 4월 방북한 후지모토 켄지는 김정은과 김여정을 만났을 때 김여정이 아직 미혼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27][28] 2017년 당시에는 수년 전에 결혼하여 2015년에 출산했다는 설이 있으며, 남편은 대학교수이고, 소위 혁명가 2세는 아니라는 설이 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고모(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이 권력을 잡았던 것으로 미루어 김정은이 유력자나 정치와 가까운 사람이 여동생의 남편이 되는 것을 꺼렸다고 분석된다. 그러나 2020년 보도에서는 남편이 최룡해의 차남이라고 알려졌으며, 한국 정부 관계자는 최룡해가 장인이라고 언급했다.[29]
2016년 5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당내 서열은 43위였다.[30]
2017년 1월 11일, 미국 재무부는 인권 침해에 연루되었다며 김여정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미국 내 자산 동결과 미국인과의 거래를 금지했다.[31]
2017년 10월 7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후보로 선출되었다.[32] 당내 서열은 25위 전후였다.[33]
2018년 2월 9일부터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평창올림픽에서는 김영남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했으며, 이는 김일성의 직계 후손으로서는 최초의 방한이었다.[34] 이때 조선노동당 당내 서열 2위인 김영남이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 입실할 때 입구에서 김여정의 입실을 기다리고, 착석할 때 중앙석을 김여정에게 양보하려는 등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실질 2인자", "실력자", "대물", "혈족의 권위" 등으로 보도되었다.[35][36] 이듬날 10일 한국 대통령 문재인과의 회담에서는 김정은의 특사로 친서를 문재인에게 전달하고 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했다.[37] 또한 11일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할 때는 김영남보다 상석인 문재인의 오른쪽 옆자리에 착석하여 관람했다.[38] 이 방한에 대해 북한 측은 한국에 김여정을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직함으로 소개했고, 김여정이 부부장에서 승격했음이 확인되었다.[39]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도 김정은을 수행하여 오빠를 보좌했다. 김여정은 2월에 특사로 방한했기 때문에 주목도가 높았다. 회담 중에 한국 대통령 문재인이 김여정에 대해 "남쪽에서 스타가 되었다"고 소개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고, 김여정이 얼굴을 붉히는 장면이 있었다.[51]
2018년 6월,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김정은을 김영철과 국제부장 리수용 등과 함께 수행했다.[56]
5. 3. 2020년대
2020년 3월 3일, 김여정은 자신의 이름으로 담화를 발표하여 "한국 대통령府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라며 한국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였다.[69] 같은 해 3월 22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친서를 받았음을 밝혔다. 이러한 담화들에 대해 "경제 제재와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숨기고, 한국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어필하기 위한 것"[70], "미국을 향한 담화는 북한 외무성, 한국을 향한 담화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발표하기 때문에 김여정 부부장이 3월에 두 개의 담화를 발표한 것은 이례적"[71]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2020년 4월 11일, 당 정치국 회의에서 정치국 후보로 복귀하였다.[72] 같은 해 5월 1일에는 순천 인산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였는데, 단상에서의 좌석 순서로 볼 때 김여정이 김덕훈이나 박태성보다 상석에 착석하여 정치적 서열이 높음을 확인했다.[73]
2020년 6월 4일, 한국의 탈북자 단체가 북한 풍선전단을 살포한 것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성명에는 상대방을 욕하는 말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온화한 인상을 주던 기존 방침을 변경한 것으로 주목받았다.[74] 같은 해 6월 13일에는 남북 관계가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예고하였고, 3일 후 개성특별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75] 8월 25일, 한국의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김여정이 조선노동당의 조직지도부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76]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에서 제외되었지만, 당 중앙위원회 명부(138명)에서 21번째로, 당내 서열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77] 강등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며,[78] "김정은의 권력 약화를 보여준다"는 견해도 있었다.[79] 같은 해 1월 12일, 한국군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 실시를 포착했다고 발표하자, "적대적 경계심"을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했는데, 이 담화에서 직책이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바뀌어 강등이 확인되었다.[80] 3월 30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자제를 촉구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 담화에서는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소개되었다.[81]
2021년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회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보궐 선출되어,[82][83][84] 당과 정부 모두에서 고위직에 올랐다.[84]
2022년 8월, 한국 윤석열 정권이 북한 비핵화 협상 시 경제 지원을 제공하는 "대담한 구상"을 제시하자, 김여정은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비난하고 한국을 도발하는 태도를 보였다.[85]
6. 인물
김정은의 패션 코디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스위스 유학 시절 발레 레슨을 받았다.[8]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8] 일본에 밀입국한 경험이 있으며,[86] 긴자와 고급 호텔에서 1,000만 엔(1000만엔)이 넘는 쇼핑을 했다고 한다.[86] 남편은 최룡해의 차남으로 알려져 있다.[29] 한국 정부 관계자는 최룡해가 김여정의 장인이라고 언급했다.[29]
7. 정권 후계자 후보
김정일은 자녀들 중에서 김정은과 김여정에게 정치가의 자질이 있다고 여겼다.[7] NHK 스페셜[88]에서 방영된 내용에 따르면, 한때 김정일이 김여정을 김정은과 함께 후계자 후보로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해당 방송에 출연한 전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 콘스탄틴 푸리코프스키(Константин Пуриковский)는 2001년 방러(訪露)한 김정일을 수행했을 때 "자녀 중 정은과 여정이 정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앞으로 두 사람 중 한 명을 교육하여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김정은의 건강 악화설과 함께 김여정이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2019년에는 김여정 명의의 지시문이 당의 각 기관에 하달되었고, 2020년에는 북한의 화력 시위에 대한 한국의 반응을 비판하는 한편 정치적으로 중요성이 높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북한 정치 체제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또한 후계자설을 뒷받침하는 요소이다.[89][90] 김여정의 언행은 조선인민의 민생 향상을 고려하지 않고 김정은 정권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85]
8. 정치적 역할
김여정은 2010년 9월 김정일의 후계자로 조선노동당 대표 회의에서 추대된 후 공개 석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10] 공식적으로는 아버지 김정일의 장례식 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8] 2014년 3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를 통해 북한 매체에 처음으로 이름이 보도되었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 간부"로 소개되었다.[17][18]
2014년 11월 조선중앙방송은 김여정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보도했다.[24] 2016년 5월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당내 서열 43위)되었고,[30] 2017년 10월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후보로 선출되며 당내 서열 25위권으로 올라섰다.[32][33]
2018년 2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고위급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 김일성 직계 후손 최초로 한국을 방문했다.[34]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김정은의 특사로 친서를 전달하고 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했다.[37] 이후 2018년 4월 13일 김일성 생일 106주년 기념 국제예술제에 참가하기 위해 방북한 중국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부장 송타오를 맞이하는 등 대외 활동을 활발히 했다.[46]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51], 5월 7일 중국 대련 방문,[52][53]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김정은을 수행했다.[56] 2019년 2월 베트남 북미정상회담에도 동행했으나 회담은 결렬되었다.[60][61]
2020년 3월 3일, 김여정은 자신의 이름으로 한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했다.[69] 4월 11일 당 정치국 회의에서 정치국원 후보로 복귀했고,[72] 6월 4일에는 한국 탈북자 단체의 북한 풍선전단 살포를 비판하며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예고했다.[74][75]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원 후보에서 제외되었으나 당내 서열은 유지되었다.[77][78] 같은 해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82][83][84]
김정은의 건강 악화설과 함께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89]
8. 1. 북한의 이방카 트럼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김여정은 한국 전쟁 이후 북한을 통치해 온 김씨 일가 구성원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인물이 되었다.[91] 한국 방송사들은 김여정의 모습을 생중계하며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을 방영했고, 한국 국민들은 그녀에게 강한 호감을 보였다.[91] 한국 언론은 그녀의 겸손함과 아름다운 자세를 칭찬했다.[91] 김여정은 남북한 합동 아이스하키 팀을 응원했고, 개회식에서는 한국 국가에 경례하며 기립했다.[91]김여정은 방한 중 오빠인 김정은의 친서를 가지고 청와대를 방문하여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 초청장이 담긴 파란색 폴더를 전달했다.[92] 그리고 청와대 방명록에는 "평양과 서울이 동포의 마음속에서 더욱 가까워지고 가까운 장래에 통일과 번영을 가져오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92] 김여정은 공식 석상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한국 측에 산뜻하고 솔직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언론은 그녀를 "북한의 이방카 트럼프"라고 묘사했다.[93]
8. 2. 공포 정치의 추진
2020년 11월 13일, 북한의 비밀경찰인 국가보위성 10국(전파탐지 담당) 국장 및 간부 8명이 평양시 룡성구역에 있는 국가보위성 소유의 운동장에서 처형되었다.[95] 이 처형 명령을 내린 것은 김여정으로 알려져 있다.[95] 8명은 횡령 혐의를 받았으나, 오해라고 항변했지만, 김여정은 어떠한 정상참작도 하지 않고 “당과 혁명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배신할 수도 있는 아이들”이라고 하며 처형을 단행했다.[95] 이 외에도 김여정의 명령으로 처형이 집행되었다는 정보가 북한 내부에서 여러 건 전해지고 있으며, 북한 내부에서는 이미 김여정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95]9. 대외 담화
김여정은 강경한 어조로 한국과 미국을 비판하는 담화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2020년 3월에는 한국 대통령을 향해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라고 비난했다.[69]
2020년 6월 4일에는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판하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지시했다.[74] 6월 13일에는 남북 관계가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고,[75] 3일 뒤인 6월 16일 실제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75]
2020년 7월 10일에는 북미정상회담 관련 담화에서 "미북정상회담과 같은 일은 올해 안에는 있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도 "그러나 아직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라며 여지를 남기는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표현들을 사용했다.[97]
2022년 4월 3일에는 서욱 국방부 장관을 "미치광이"라고 비난했고,[98] 4월 5일에는 선제타격론을 "망상"이라고 하며 전쟁 발발 시 남한 군대가 "궤멸, 전멸에 가까운 비참한 운명"을 겪을 것이라고 위협했다.[99]
9. 1. 저능한 생각에 경악
2020년 3월 2일, 북한은 단거리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일본해(동해)로 발사했다. 한국 대통령실은 곧바로 우려를 표명하며 발사 중지를 촉구했지만, 김여정은 다음과 같이 격앙된 어조로 비난했다.[90][94]- “남의 군사훈련에 참견하는 것은 뻔뻔함의 극치다.”
- “저능한 생각에 경악스럽다.”
- “‘건방지다’고 ‘어리석다.’”
- “행동이 3세 아이 수준이다.”
9. 2.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2020년 6월 4일, 김여정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강하게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북남 합의를 진정으로 중시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집안의 쓰레기(탈북자를 지칭)를 버리고 청소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궁색한 변명을 하기 전에 쓰레기 같은 희극을 막는 법이라도 만들어 애초부터 불쾌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96]이후 2020년 6월 16일, 북한은 대한민국과 공동으로 운영하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95][96] 대한민국이 2018년 이후 건설 및 운영에 총 170억원(약 15억 엔)을 투입한 곳이었으나, 폭파로 인한 검은 연기는 대한민국 영토에서도 관측되었다.[96]
9. 3. 의미 불명의 담화
2020년 7월 10일, 김여정은 북미정상회담 관련 담화에서 "미북정상회담과 같은 일은 올해 안에는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아직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라며 여지를 남겨 대화를 원하는 것인지 대결을 원하는 것인지 불분명한 태도를 보였다.[97] 또한, "미국인의 심리 변화, 미북정상회담의 가능성까지 시사하게 된 미국인의 심리 변화를 텔레비전 뉴스로 재미있게 보는 것은 아침 식사 시간의 시간 때우기로서는 충분히 좋았다"거나 "앞으로 미국의 독립기념일 행사를 녹화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구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의 허락을 받았다"는 등 공식 담화에 사적인 감상을 섞어 넣었다.[97]전문가들은 김여정이 정치와 외교에 대한 관심이 높고 간섭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담화를 직접 검토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담화다. 내 부하가 이런 담화를 가져왔다면, 쓸모없는 담화라고 하고 돌려보냈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97] 이처럼 질 낮은 담화는 김여정의 능력과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97]
9. 4. 미치광이
김여정은 2022년 4월 3일, 한국에서 활발하게 제기되던 선제타격론에 대해 언급한 서욱 국방부 장관을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다.[98] 4월 5일에는 선제타격론이 "망상"이라며, 전쟁 발발 시 남한 군대가 "궤멸, 전멸에 가까운 비참한 운명"을 겪을 것이라고 협박했다.[99]10. 김정일 가계도
金日成
1912~1994
金正淑
1917~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