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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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중업은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1988년 사망한 대한민국의 건축가이다. 일본 요코하마 국립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건축을 배웠다. 귀국 후 김중업 건축연구소를 설립하여 부산대학교 본관, 주한 프랑스 대사관, 유유산업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1962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65년 프랑스 슈발리에 훈장, 1985년 대한민국 산업 근로 훈장을 받았다.

김중업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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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본명김중업
로마자 표기Gim Jungeop
한자 표기金重業
출생1922년 3월 9일
출생지일제강점기 평안남도 평양부
사망1988년 5월 11일 (향년 66세)
사망지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국적대한민국
직업건축가
학력
가족
경력
주요 건축물삼일빌딩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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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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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은 1922년 평양 진향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제강점기 당시 평안남도 강동군, 중화군, 성천군의 군수를 지낸 김영필(金永弼)이다. 이복형으로 서예가 김광업이 있다. 1928년 경림보통학교에 입학, 1939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일본 요코하마 고공 건축과에 입학하여 나카무라 준페이를 사사, 1941년 12월 졸업했다. 학교 선배인 사카모토 토시오의 소개로 1942년 1월부터 1944년까지 마츠타히라타설계에서 근무했다. 1942년 5월 12일 평양에서 김병례(평양서문여고 졸)와 결혼 후 다시 일본에서 생활했으며, 1944년 4월 귀국한다.

귀국 후 평남도청 기수로 3개월 근무, 조선비행기제작주식회사에서 근무, 1945년 조선주택영단(LH의 전신) 기수로 재직했으며, 1949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교수가 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부산으로 피난하여 김환기, 이중섭 등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1회 유네스코 국제 예술가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회의장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고 인사를 나누었으며, 회의가 끝나고 전쟁 중인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프랑스로 가서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를 방문, 견습생으로 시작해서 정직원이 되어 1956년까지 일한다.

귀국과 함께 김중업 건축연구소를 설립,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개인전을 가졌다.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 있었고 홍익대학교 건축 도시계획연구소의 초대 소장이 된다. 1988년 5월 11일에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강남성모병원에서 향년 6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3. 활동

김중업은 1956년부터 국전 심사위원, 1961년 문화재 보존위원과 문화자유회의전 준비위원, 1965년 현대작가초대전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1962년에는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3.1. 르 코르뷔지에와의 만남

195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1회 유네스코 국제 예술가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회의장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회의가 끝난 후, 전쟁 중인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프랑스로 가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를 방문, 견습생으로 시작해서 정직원이 되어 1956년까지 일했다.

4. 주요 작품

김중업은 부산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도서관(현 외국어교육관), 서강대학교 본관, 주 대한민국 프랑스 대사관, 주태국 한국 대사관, 태양의집, 유유산업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 뉴욕 세계박물관회 한국관, 31 빌딩, 단암빌딩, 안국빌딩, 니제르 도자기공장, FNCB 지점장 주택(현 시티은행 뱅크하우스) 등을 설계했다.

4.1.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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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의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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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작품명위치비고
1958서강대학교 본관서울
1960주 대한민국 프랑스 대사관서울
1965서여성병원
1966유엔 기념 공원 정문부산
1966제주대학교 본관제주철거
196931 빌딩서울
1985세계 평화의 문서울
부산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도서관(현 외국어교육관)
주태국 한국 대사관
태양의집
유유산업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
뉴욕 세계박물관회 한국관
단암빌딩
안국빌딩
니제르 도자기공장
FNCB 지점장 주택(현 시티은행 뱅크하우스)

4.2. 안양 김중업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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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김중업 박물관은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으며, 김중업이 설계한 옛 ㈜유유산업 안양공장을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유유산업 공장은 그의 초기 작품으로 공장 건물에 조각 작품을 접목시키는 등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다. 현재 그가 설계한 건물 중 김중업관과 문화누리관 등 4개 동이 남아있으며, 이를 리모델링하여 전시관 및 사무동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5. 수상

김중업은 1962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6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고, 198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산업 근로 훈장을 받았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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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장위동에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