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문수산성
1. 개요
김포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년)에 축성된 요새로, 강화 갑곶진과 함께 강화해협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신라 혜공왕 때 명칭이 정해졌으며,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때 외세의 침략에 맞서 격전을 치렀으며, 현재는 해안 쪽 성벽과 문루는 소실되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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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의 문화유산 -
김포 덕포진
덕포진은 김포시에 위치한 조선 시대 군사 요새로, 강화해협 방어와 외세 침략 대비를 위해 설치되었으며, 현재는 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교육적 공간으로 활용된다. -
김포시의 문화유산 -
장릉 (조선 원종)
장릉은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과 인헌왕후의 무덤으로, 인조반정 이후 추존되어 능으로 격상되었으며, 현재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로 경관 훼손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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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반도
김포반도는 경기도 김포시를 중심으로 한강 하류에 위치하며, 평야 지형이 주를 이루고 역사적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현재는 김포시와 인천광역시 검단구에 걸쳐 위치해 있으며, 경인 아라뱃길 건설과 2026년 인천광역시 행정체제 개편으로 지리적, 행정적 변화를 앞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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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포천
굴포천은 칠성약수터에서 한강까지 흐르는 하천으로, 과거에는 원통천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에 운하 건설 시도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수리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산업화 시대를 거쳐 일부 복개되었으나 2008년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다. -
경기도의 성 -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양 도성을 방어하는 요충지였으며, 백제 시대에 처음 축조된 후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숙종 때 대대적으로 개축되어 석성으로 완공되었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훼손되었으나 현재는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인 유적이다. -
경기도의 성 -
고양 행주산성
고양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행주대첩 격전지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산성으로, 백제 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추정되며 조선 시대에 축조되었고, 현재 사적 제56호로 지정되어 권율 장군 관련 유적과 기념비가 있으며, 행주대첩 기념 문화제를 비롯한 다양한 축제가 개최된다.
2. 역사
1694년(숙종 20년)에 축성된 문수산성은 강화 갑곶진(甲串鎭)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였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거치며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격전지 중 하나였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강화성을 함락시킨 후, 한성근이 이끄는 조선 수비군이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에는 덕포진에서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미국 함대에 포격을 가해 격퇴하였으나, 이후 미군 해병대에 의해 초지진 등이 함락되기도 하였다.
2.1. 축성 및 조선 후기
1694년(숙종 20)에 축성된 문수산성은 강화 갑곶진(甲串鎭)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이다. 산성 명칭은 신라 혜공왕 때 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203511m2이고, 둘레는 약 2.4km이다. 문수산성은 강화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으로,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門樓)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외세의 침략에 맞서 격전을 치렀던 곳 중 하나였다.
2.2. 병인양요 (1866년)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성을 함락시켰다. 프랑스군은 서울 진격을 위해 육전대를 투입, 문수산성을 공격했으나, 김포 출신 한성근이 이끄는 수비군에 격퇴당했다.
2.3. 신미양요 (1871년)
1871년에 신미양요가 일어나 미국 함대가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와 광성진 전투가 벌어졌다. 강화 쪽의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이곳 덕포진(지금의 대곶면)에서 일제히 포격을 가해 미군을 격퇴시켰다.
그 뒤 미국 함대는 인천 방면으로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북상해 해병대가 초지진 등을 함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