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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문수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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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포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년)에 축성된 요새로, 강화 갑곶진과 함께 강화해협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신라 혜공왕 때 명칭이 정해졌으며,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때 외세의 침략에 맞서 격전을 치렀으며, 현재는 해안 쪽 성벽과 문루는 소실되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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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문수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김포 문수산성
김포 문수산성
이름김포 문수산성
로마자 표기Gimpo Munsusanseong
문화재 정보
국가대한민국
유형사적
지정 번호139
지정일1964년 8월 29일
해지 여부해당 사항 없음
주소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산36-1
소유 구분국유, 공유, 사유
수량해당 사항 없음
면적203,511m2
시대조선시대

2. 역사

1694년(숙종 20년)에 축성된 문수산성은 강화 갑곶진(甲串鎭)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였다. 1866년 병인양요1871년 신미양요를 거치며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격전지 중 하나였다.[1]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강화성을 함락시킨 후, 한성근이 이끄는 조선 수비군이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에는 덕포진에서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미국 함대에 포격을 가해 격퇴하였으나, 이후 미군 해병대에 의해 초지진 등이 함락되기도 하였다.

2. 1. 축성 및 조선 후기

1694년(숙종 20)에 축성된 문수산성은 강화 갑곶진(甲串鎭)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이다. 산성 명칭은 신라 혜공왕 때 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203511m2이고, 둘레는 약 2.4km이다. 문수산성은 강화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으로,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門樓)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2] 1866년 병인양요 때 외세의 침략에 맞서 격전을 치렀던 곳 중 하나였다.[1]

2. 2. 병인양요 (1866년)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성을 함락시켰다. 프랑스군은 서울 진격을 위해 육전대를 투입, 문수산성을 공격했으나, 김포 출신 한성근이 이끄는 수비군에 격퇴당했다.[3]

2. 3. 신미양요 (1871년)

1871년에 신미양요가 일어나 미국 함대가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와 광성진 전투가 벌어졌다. 강화 쪽의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이곳 덕포진(지금의 대곶면)에서 일제히 포격을 가해 미군을 격퇴시켰다.[3]

그 뒤 미국 함대는 인천 방면으로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북상해 해병대가 초지진 등을 함락시켰다.[3]

2. 4. 일제강점기 및 이후

1964년 8월 29일, 문수산성은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203511m2이고, 둘레는 약 2.4km이다. 강화 갑곶진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의 험준한 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으로,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있다.[2]

참조

[1] 간행물 한국의 산성 한국콘텐츠진흥원 2012
[2] 웹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
[3] 간행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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