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포천
1. 개요
굴포천은 칠성약수터에서 한강까지 흐르는 하천으로, 과거에는 원통천, 직포천, 굴포 등으로 불렸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운하 건설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산미 증식 계획의 일환으로 대규모 수리 사업이 진행되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일부 구간이 복개되었으나, 2008년 부평구청 인근 구간이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다. 산곡천, 세월천 등 여러 지류를 포함한다.
2. 이름
굴포천의 명칭은 시대와 구간에 따라 다양하게 불려왔다. 원래는 발원지인 칠성약수터부터 목수통까지를 원통천(圓通川), 목수통에서 현재의 평동 일대까지를 직포천(直浦川), 평동부터 한강까지를 굴포(掘浦)라고 불렀다. 그러나 현재는 이 모든 구간 전체가 ‘굴포천’이라는 이름으로 인식되는 실정이다. ‘굴포’는 ‘흙을 파낸 개울’이라는 뜻이며, ‘직포천’은 조선 중종 때에 굴착과 직강화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이름이다.
1698년경의 《부평부읍지》에는 직포, 대교천(大橋川)에 관한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과 여지도서(1700년대)에도 동일한 내용이 있다. 그 밖에 ‘큰 개울’이라는 의미의 한내로 불리기도 하였다.
1911년경의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당산면 동양리(현 계양구 동양동) 당미다리ᄀᆡ(堂山橋川), 경기도 부평군 당산면 평리(현 계양구 평동) 웃벌말ᄂᆡ(上野里川), 아레벌말ᄂᆡ(下野里川), 평리ᄀᆡ(坪里川)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지리상 모두 굴포천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2.1. 어원
2.2. 역사적 기록
3. 역사
3.1. 중세
고려 고종 때,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수로인 손돌목(孫乭項)이 험하여 배가 지나기 어렵자 그곳을 우회하고자 최이가 김포에서 부평을 지나 황해로 바로 이어지는 일종의 운하 건설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훗날 원통이고개라 불리게 되는 만월산 기슭의 화강암 암반지대를 굴착할 기술이 부족하여 실패하였다.
조선 중종 때 우의정이던 김안로 역시 한강에서 시작하여 부평 방향으로 40리 가량을 굴착하였으나, 원통이고개에 이르러 실패하여 황해까지 수로를 연결하지는 못하였다. 이때 “이 고개가 아니면 물길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원통하다” 하고 탄식하여 ‘원통이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3.2. 일제 강점기
일제강점기에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굴포천 일대에 대규모 수리 사업이 진행되었다. 1922년 5월 2일 설립을 신청하고 1923년 4월 9일 설립된 부평수리조합은 1923년 4월부터 1925년 3월까지 굴포천을 막아 물을 공급하는 공사를 진행하여 1941년 기준 4,120정보 면적에 관개 혜택을 주었다.
이 사업으로 김포군 김포면 신곡리에 배수갑문을 설치하여 한강물을 동부간선수로, 서부간선수로 등으로 흐르게 하고, 굴포천을 개수하여 배수로로 사용하였다. 동부간선수로와 서부간선수로는 한강에서 남쪽으로 0.1퍼밀 기울어져 물 공급이 용이하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김포군 양서면 개화리에서 고촌면 전호리까지, 고촌면 전호리에서 김포면 신곡리까지 제방을 축조·개수하고, 부평평야를 관통하는 중앙도로를 신설하였다.
부평수리조합 창설은 경성과 인천에 사는 일본인 대지주들이 주도하였다. 한다 젠시로(半田善四郞), 입송청일(笠松淸一) 등 6명이 조합을 창설했으며, 초대 조합장은 황해사(黃海社) 사장 마츠야마 츠네지로(松山常次郞)였다. 마츠야마는 한다 젠시로와 함께 조합 설립을 주도했으나, 황해사에 기대어 모든 권리를 장악하였다. 이로 인해 부평수리조합의 관개 사업은 부실한 설계와 시공으로 이어졌다.
1925년 3월 공사 준공에도 불구하고 그해 여름 수해로 일대가 큰 피해를 입었고, 365,850원의 보수 공사 후에야 제대로 물 공급이 가능했다. 당시 제방 붕괴로 2만 6천여 정보가 물에 잠기고, 계양면과 부내면에서 가옥이 무너지거나 유실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부실 공사 사실은 1927년 마츠야마 등이 배임 및 불법행위 혐의로 고소되면서 알려졌다.
총독부는 마츠야마 등에게 공사비 14만 원을 내게 하는 대신 형사 책임을 면하게 하고, 1927년 8월 공사 개조 명령을 내렸으나, 책임 문제로 공사가 지연되어 1928년 5월부터 1929년 5월까지 진행되었다.
3.3. 대한민국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굴포천의 일부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주로 도로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직강화 공사가 진행되어 콘크리트 제방이 호안을 감싸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부평지역 도시개발사업으로 부평구청 이후 지류 구간이 끊어져 부평 미군부대 철수 및 재개발 시 복원할 계획이다. 2008년 11월, 부평구청 앞부터 인천광역시-경기도 도계까지의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준공되었다.
4. 지류
굴포천은 여러 지류 하천들을 포함한다. 주요 지류로는 산곡천, 세월천, 청천천, 동수천, 목수천, 돌내, 삼정천, 계산천, 여월천, 귤현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