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필 매해파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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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홍도 필 매해파행도는 김홍도의 풍속화 중 하나로, '젓갈을 파는 할미'라는 뜻을 지닌 작품이다. 30대 김홍도의 정교한 묘사력이 돋보이며, 노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문 예로 평가받는다. 강세황의 화평이 함께 전해져 작품의 가치를 더하며, 안산 지역의 바닷가 풍속을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병풍이었으나 현재는 액자로 개장되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가치를 지닌다.

김홍도 필 매해파행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문화재 정보
이름김홍도 필 매해파행도 (金弘道筆賣醢婆行圖)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김홍도 필 매해파행도
국가대한민국
위치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유형유형문화재
번호421
지정일2017년 12월 7일
시대조선후기 (18세기)
소유자이화여대 박물관
참고 사항규격: 71.5×37.4cm
문화재청 ID21,0421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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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정 사유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최고의 화원화가 김홍도의 풍속도 중 하나로, 그의 30대 시절 정교한 묘사력이 잘 드러난 대표작이다. 특히, 당시 사회에서 주목받기 어려웠던 노동하는 여성들의 실제 모습을 친근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김홍도의 스승이자 당대의 저명한 문인화가였던 강세황의 화평(畫評, 그림에 대한 평)이 함께 전해져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강세황의 화평 내용을 통해 이 그림이 경기도 안산 지역의 바닷가 풍속을 담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어, 당시 지역 생활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러한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종합할 때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3. 유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조사보고서

이 작품은 김홍도의 풍속도 중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매해파행(賣醢婆行)'이라는 제목은 '젓갈을 파는 할미'라는 뜻으로, 그림 상단에 있는 표암 강세황의 화평에서 따왔다. 강세황의 화평은 이 그림이 김홍도가 젊은 시절 경기도 안산에서 보았던 풍경을 그린 것임을 시사하며, 이는 특정 지역의 풍속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그림은 김홍도가 30대에 그린 작품으로, 그의 정교한 묘사력이 잘 드러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노동하는 여성들의 실제 모습을 친근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문 사례로 주목받는다. 강세황의 화평이 더해져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김홍도는 이 주제를 여러 번 그렸던 것으로 보이며, 유사한 구도의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행려풍속도병>에도 포함되어 있다.

원래 병풍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액자로 개장되어 있다. 화면은 상당히 변색되어 감상에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큰 손상은 없는 상태이다. 다만,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장래에 보존 수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할 때, 이 작품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3.1. 강세황의 화평

이 작품의 상단에는 표암 강세황의 화평(畫評, 그림에 대한 평)이 별지에 쓰여 붙어 있다. 김홍도의 여러 걸작에 강세황의 화평이 곁들여진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하여 가치를 더한다. 작품의 제목인 '매해파행(賣醢婆行)' 즉, '젓갈 파는 할머니의 행차'라는 뜻 역시 이 화평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강세황의 화평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전에 바닷가(안산)에 살 때 젓갈을 파는 아낙네들이 길을 가는 것을 항상 보았다. 아이를 업고 광주리를 이고 십 여명이 무리를 지어 가는데, 바닷가에 해가 처음 떠오르고 갈매기들이 떼 지어 날아오르는 쓸쓸하고 차가운 풍경이 필묵 밖에 눈에 선하다. 지금 시끄러운 한양성 내에서 이 그림을 보내 더욱 사람으로 하여금 시골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한다. 표암 적다(余曾居海畔 慣見賣醢婆行徑 負孩戴筐 十數爲群 海天初旭 鷗鷺爭飛 一段荒寒風物 又在筆墨之外 方在滾滾域塵中 閱此 尤令人有歸歟之思 豹菴ko-Hani)

화평에서 강세황 자신이 "내가 일찍 바닷가에 살 때, 젓갈을 팔러 가는 할미들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라고 언급했듯이, 이 그림은 젊은 시절 김홍도가 안산에서 스승 강세황의 지도를 받으며 그림을 배울 당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생활 풍경을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강세황은 한양에서 이 그림을 받아보고 안산 시절의 기억과 함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음을 토로하고 있다. 이 화평은 그림의 배경이 경기도 안산 지역의 바닷가임을 알려주며,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과 지역 풍속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3.2. 유사 작품

김홍도는 마음에 드는 작품의 초본을 보관해 두었다가 여러 번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과 거의 같은 구도의 그림이 그가 1778년(34세)에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행려풍속도병>에도 포함되어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홍도는 이 주제를 특히 좋아했던 것으로 보이며, 원본에서 잘려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그림이 선문대학교 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또한, 19세기 화원 이한철이 이 작품을 모방하여 그린 그림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원래 병풍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병풍에서 분리된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으로는 리움미술관 소장의 <답상출시도>와 <전가추경도>, 그리고 미국 개인이 소장한 <공원춘효도>가 있다. 이들 작품(<매해파행도>, <답상출시도>, <전가추경도>, <공원춘효도>)은 그림의 크기와 화풍이 비슷하며, 상단에 별도의 종이를 이어 붙여 강세황의 화평(그림에 대한 평)을 적어 넣은 방식도 동일하다. 이는 화면 위에 직접 화제를 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행려풍속도병>과는 다른 점이다. 특히 <답상출시도>에는 '사능(士能)'이라는 김홍도의 서명이 남아 있어, 이 병풍이 김홍도의 30대 초기 작품임을 짐작하게 한다.

3.3. 보존 상태 및 관리

이 작품은 원래 병풍이었으나 현재는 액자로 개장되어 있다. 화면 상태는 상당히 변색되어 흐린 조명으로는 감상에 다소 지장이 있을 정도이나, 다행히 큰 손상은 없다.

다만 현재의 유리 액자는 제작된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유리와 비단 화면이 밀착되어 있어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액자를 새로 제작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조사자의 의견에 따르면, 비단이 오래되고 변색되었으며 원래 병풍으로 제작된 작품이므로 족자보다는 현재처럼 액자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새로 액자를 제작할 때는 유리와 화면 사이에 공간을 두어 재장황하는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작품의 보존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이후에는 더 이상의 훼손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장래에 보존 수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4. 작품 분석

이 작품은 김홍도의 풍속도 중 대표작 중 하나로, '매해파행(賣醢婆行)'이라는 제목은 '젓갈을 파는 할미'라는 뜻이다. 그림 상단에는 강세황의 화평(畫評, 그림에 대한 평)이 붙어 있는데, 작품의 명칭은 이 화평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강세황은 화평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가 전에 바닷가(안산)에 살 때 젓갈을 파는 아낙네들이 길을 가는 것을 항상 보았다. 아이를 업고 광주리를 이고 십 여명이 무리를 지어 가는데, 바닷가에 해가 처음 떠오르고 갈매기들이 떼 지어 날아오르는 쓸쓸하고 차가운 풍경이 필묵 밖에 눈에 선하다. 지금 시끄러운 한양성 내에서 이 그림을 보내 더욱 사람으로 하여금 시골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한다. 표암 적다(余曾居海畔 慣見賣醢婆行徑 負孩戴筐 十數爲群 海天初旭 鷗鷺爭飛 一段荒寒風物 又在筆墨之外 方在滾滾域塵中 閱此 尤令人有歸歟之思 豹菴)

강세황의 언급처럼, 이 그림은 김홍도가 젊은 시절 안산에서 강세황의 지도를 받으며 그림을 배울 때 주변에서 흔히 보았던 젓갈 파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김홍도는 마음에 드는 그림의 초본을 보관했다가 여러 번 활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작품과 거의 같은 구도의 그림이 1778년(김홍도 34세)에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행려풍속도병>에도 포함되어 있다. 김홍도는 이 주제를 특히 좋아했던 듯, 잘려나온 것으로 보이는 작은 화폭이 별도로 선문대학교박물관에 전해지기도 하며, 19세기 화원 이한철이 이 작품을 모사한 그림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김홍도의 30대 화풍, 즉 정교한 묘사력이 잘 드러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당시 사회에서 고된 노동을 했던 여성들의 실제 모습을 꾸밈없이 친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김홍도의 여러 걸작에서 볼 수 있는 강세황의 화평이 있다는 점도 작품의 가치를 더한다. 화평의 내용은 이 그림이 특정 지역인 경기도 안산 바닷가의 풍속을 보여준다는 점을 시사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원래 이 작품은 병풍의 일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리움 미술관 소장의 <답상출시도>, <전가추경도>와 미국 개인이 소장한 <공원춘효도> 등 총 4점의 작품이 크기, 화풍, 상단에 별지를 붙여 강세황의 화평을 적은 형식 면에서 일치하여 동일한 병풍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중 <답상출시도>에 김홍도의 호인 '사능(士能)' 서명이 있어, 이 작품들이 김홍도의 30대에 그려진 초기 풍속화의 대표작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작품은 병풍에서 분리되어 액자로 만들어져 있으며, 화면이 변색되었으나 큰 손상은 없는 상태이다.

5. 의의 및 평가

이 작품은 김홍도의 대표적인 풍속도 중 하나로 꼽힌다. '매해파행(賣醢婆行)'이라는 제목은 '젓갈을 파는 할머니의 행차'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김홍도가 30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그의 정교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당시 사회에서 쉽게 조명받지 못했던 노동하는 여성들의 실제 모습을 매우 친근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 서민들의 삶,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고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드문 사례로서 중요한 사회사적 가치를 지닌다.

그림 상단에는 강세황의 화평(畫評, 그림에 대한 평)이 별도의 종이에 적혀 붙어 있는데, 이는 작품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강세황은 화평에서 자신이 과거 안산의 바닷가에 거주할 때 젓갈을 팔러 다니는 여성들의 무리를 자주 보았다고 기록했다. 이를 통해 이 그림이 특정 지역(경기도 안산)의 생활 풍속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단순한 풍속화를 넘어 당시 지역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역사적 자료로서의 의미도 가진다.

이러한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작품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된다. 비록 오랜 세월로 인해 화면이 변색되는 등 보존 상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김홍도 초기 풍속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서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