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기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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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훈기는 1980년대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삼각 잠수함 투수였다. 1988년 10승을 기록하며 팀을 대표했으나, 시즌 막판 부상으로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했다. 1989년 개막전 선발 투수로 활약했으나, 시즌 막판 부상으로 준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했고, 1989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이후 초등학교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2009년 두경부암으로 사망했다. 통산 4시즌 동안 19승, 12패, 평균자책점 3.44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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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선수명김훈기
등번호49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대한민국
사망일2009
투구
타석
수비 위치투수
프로 입단 연도1986년
드래프트 순위1986 삼성 1차지명 3순위
첫 출장1986년 / KBO
마지막 경기1989년 / KBO
경력삼성 라이온즈 (1986년 ~1989년)
대표 국가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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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생활

김훈기는 1986 시즌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되어 입단하면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1. 삼성 라이온즈 시절

김훈기는 1986시즌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되어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에는 10승(7선발승)을 달성하며 1980년대 삼성을 대표하는 잠수함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시즌 막판 허리 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삼성은 김훈기의 허리 부상과 방위병 복무 문제, 그리고 주전 2루수 김성래의 시즌 막판 무릎 부상까지 겹치면서 플레이오프에서 3패로 탈락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이듬해인 1989년에는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하기도 했으나, 시즌 막판 부상의 영향으로 준플레이오프에는 나서지 못했다. 이로 인해 삼성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대구)에서만 승리했을 뿐, 1차전과 3차전(모두 인천 원정)에서 패배하며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김훈기는 1989 시즌 종료 후 부상 등의 이유로 은퇴하였다.

3. 은퇴 이후

1989년 시즌 후 부진으로 인해 방출되었다. 이후 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 두경부암으로 사망했다.

4. 통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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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밀어서 보기
연도팀명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률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1986삼성3.38300010-0.0003589030143
19874.022420353 (8위)-0.37536580.2825417224236
19882.75 (5위)276(7위)3 (2위)10 (9위)53 (10위)-0.6674721181028233504436
19894.141020610-0.85722150483234142423
통산4시즌3.44641031912600.6131093256.22411690148711498

*굵은 글씨는 리그 10위권 이내 기록.

5. 여담

* 컴투스 프로야구에서 이름이 개명되었는데, 가명은 김고기이다.
* 마구마구2021 모바일 버전에서도 가명으로 처리되었는데, 카드 등급은 레어이고, 가명은 김수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