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미네번
1. 개요
나가미네번은 1616년 에치고에 세워진 일본 에도 시대의 번이다. 마쓰다이라 다다테루가 영지를 몰수당한 후, 마키노 다다나리가 5만 석 영주로 부임하여 나가미네 번을 통치했다. 2년 후, 마키노 다다나리는 나가오카 번으로 옮겨가면서 나가미네 번은 다카다번 영지에 편입되어 폐지되었다.
| 국명 | 나가미네 번 (長峰藩) |
|---|---|
| 번 종류 | 후다이 |
| 석고 | 1만 석 |
| 거성 | 나가미네 성 |
| 존속 기간 | 1649년 ~ 1679년 |
| 번주 가문 | 오쿠다이라 씨 |
| 폐번 이후 | 오시 번에 편입 |
| 현재 소속 | 무사시 국 사이타마 군 교다 시 |
|---|
| 성립 | 오쿠다이라 다다마사가 무사시 국 사이타마 군 내에서 1만 석을 받아 성립 |
|---|---|
| 1649년 | 다다마사가 미카와 국 가모 군에서 이봉되어 나가미네 번을 세움 |
| 1679년 | 오쿠다이라 마사아키라가 고즈케 국 우마야바시 번으로 이봉되어 폐번 |
| 오쿠다이라 가문 | 初代: 오쿠다이라 다다마사 (奥平忠昌) 2대: 오쿠다이라 마사요시 (奥平昌能) 3대: 오쿠다이라 마사아키라 (奥平昌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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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지마 히소카
마에지마 히소카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우편 제도 창설과 근대화에 기여하여 "우편의 아버지"로 불리며, 한자 폐지론 주장, 에도 천도 건의, 철도 부설 기안, 신문 사업 육성, 육운 원회사 창립, 해운 정책 건의, 우편 저축 및 우편환 시스템 도입, 훈맹원 설립 지원, 도쿄 전문학교 설립 지원 등 일본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사회적 불평등 심화에 대한 비판과 정치적 유산에 대한 재평가 또한 존재하는 인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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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다번
다카다번은 에치고국에 위치했던 번으로, 마쓰다이라 다다테루가 다카다 성을 건설하며 시작되어 여러 다이묘 가문이 통치하다가 사카키바라 씨를 거쳐 폐번치현되었고, 간분 대지진과 에치고 소동, 보신 전쟁 등의 사건을 겪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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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국
사도국은 7세기 후반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설치된 행정 구역으로, 여러 군으로 구성되어 에치고국에 병합되기도 하고 독립하기도 하였으며, 막부 시대에는 수호가 파견되는 등 다양한 시설과 관직이 존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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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미번
소미 번은 미조구치 요시카쓰가 개창한 에도 시대의 번으로, 요시카쓰의 자손들이 번주를 이어가다 마사치카 대에 영지가 몰수되어 폐지되었다.
2. 역사
겐나 2년(1616년) 마쓰다이라 다다테루가 개역된 후, 마키노 다다나리가 5만 석 영주로 에치고에 들어오면서 나가미네 번이 세워졌다. 다다나리는 오사카 전투에서 세운 공으로 추가 봉토를 받았다. 그러나 겐나 4년(1618년), 다다나리는 나가오카 번으로 옮겨갔고, 나가미네 번은 다카다번에 편입되어 2년 만에 폐지되었다.
2.1. 번의 성립과 폐지
겐나 2년(1616년) 7월, 에치고를 다스리던 마쓰다이라 다다테루가 영지를 몰수당한 뒤, 마키노 다다나리가 5만 석 영주로서 에치고에 들어와 나가미네 번을 세웠다. 다다나리는 이전에 고즈케 오고 번 2만 석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오사카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추가로 봉토를 받아 나가미네로 옮겨오게 되었다. 일설에는 당시 나가미네에 성과 조카마치가 조성되어 있지 않아서, 다다나리는 어쩔 수 없이 오고에 있으면서 나가미네성의 축조와 조카마치 건설에 힘썼다고 한다.
그러나 겐나 4년(1618년), 다다나리는 에치고 나가오카 번 6만 4천 석 영지로 추가로 봉토를 받아 옮겨갔고, 다다나리와 그 가신들은 나가미네 성을 미완성인 채로 놔두고 오고에서 바로 나가오카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단, 다다나리의 둘째 아들 다케나리(武成일본어, 훗날 요이타번의 시조가 되는 마키노 야스나리)가 겐나 3년(1617년) 나가미네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나가오카에 전하는 이사 명부에 적혀 있어, 오고에서 바로 나가오카로 옮겨갔다는 전승에는 검토가 필요하다.
그 후 나가미네 번은 다카다번 영지에 편입되어 2년 만에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