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 스케카게
1. 개요
나스 스케카게는 1586년에 태어나 1656년에 사망한 인물이다. 1590년 아버지의 반역으로 가문이 몰락할 위기에 처했으나 가신의 노력으로 영지를 유지했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영지를 늘렸다. 이후 다이묘가 되어 나스 번을 세웠으나, 아들이 후사 없이 사망하여 폐번되었다. 이후 하타모토로 가문을 유지하다가, 쇼군가의 인척을 양자로 들여 가문을 다시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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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번주 -
마쓰다이라 야스나오 (히사마쓰 마쓰다이라가)
마쓰다이라 야스나오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히사마쓰 마쓰다이라 가문의 인물이며, 1648년 나스 번주가 되었다가 이세 나가시마 번으로 이봉되어 번정 재건을 위해 노력했으며, 1696년에 사망했다. -
나스번주 -
나스 스케미쓰
나스 스케미쓰는 아오키 토시나가의 차남으로 하타모토 나스 스케카게의 양자가 되어 나스 가문을 이었으며, 막신이 되어 가라스야마 번의 번주가 되었고, 후계 문제와 가라스야마 소동을 겪었지만 양자 스케노리에 의해 가문이 재건되었다. -
나스씨 -
나스 스케하루
나스 스케하루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나스 씨의 당주였으며, 호조 씨와의 협력, 오다와라 정벌 불참으로 인한 관직 박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오토기슈 발탁을 거쳐 영지를 회복하고 그의 아들이 다이묘로서 나스 번을 개척하는 데 기여했다. -
나스씨 -
나스노 요이치
나스노 요이치는 겐페이 전쟁 시기에 활약한 무사로, 야시마 전투에서 배에 걸린 부채를 명중시킨 일화로 유명하며, 시모쓰케국에서의 나스 씨 발전에 기여했다. -
1586년 출생 -
아사노 나가아키라
아사노 나가아키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섬긴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형의 사망 후 기이 기슈번을 상속받고 오사카 전투에서 공을 세워 아키 히로시마번의 번주가 되었다. -
1586년 출생 -
호소카와 다다토시
호소카와 다다토시는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아들로,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가문을 상속받아 고쿠라 번주를 거쳐 구마모토 번 초대 번주가 되었으며, 도쿠가와 가문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가문을 번성시켰다.
2. 생애
나스 스케카게는 1586년 나스 스케하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반항적인 태도로 인해 가문이 위기에 처했지만, 중신의 노력으로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에서 공을 세워 다이묘로 성장했지만, 아들 스케시게가 일찍 사망하여 가문이 다시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측실이었던 누나를 둔 아오키 도시나가의 차남 스케야를 양자로 들여 가문을 이어나갔다. 1656년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출생과 가문의 위기 (1586년 ~ 1590년)
덴쇼 14년(1586년), 나스 스케카게의 아들로 태어났다.
덴쇼 18년(1590년), 아버지 스케하루는 오다와라 호조 씨나 다테 마사무네 등과 손을 잡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반항적이었으며, 오다와라 정벌에 참진 요청에 응하지 않아 영지가 몰수되는 개역을 당했다. 그러나 나스 씨의 중신인 오타와라 하루키요가 히데요시에게 용서를 구하는 진사를 함으로써, 당시 5세였던 후지와카마루(스케카게)에게 5000석의 영지가 주어져 나스 씨는 존속할 수 있게 되었다. 스케하루도 후에 사면되어 스케카게와는 별도로 5000석을 받았다.
2.2.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 (1600년 ~ 1615년)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나스 스케카게는 동군에 속하여 이오노 스케노부 등과 함께 아이즈의 우에스기 가게카츠에 대비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후, 스케카게는 그 해 300석을 추가로 받았다. 1602년에도 1000석을 더 받았고, 일족인 다카세 야로쿠에게 200석, 오타와라 스와노모리에게 200석, 나스 하치로에게 880석, 오타와라 야지로에게 440석이 추가되어 나스 가문의 영지는 총 8080석이 되었다. 1606년 12월 25일에는 종5위하 사쿄 대부에 임명되었다.
1610년 아버지 스케하루가 사망하자, 스케카게는 유령 6000석을 이어받아 총 1만 4080석의 다이묘로서 나스 번을 세웠다. 1614년과 1615년 오사카 전투에서는 혼다 마사노부 부대에 속해, 도망자 75명의 목을 베는 공을 세웠다.
2.3. 은거와 가문의 재건 (1624년 ~ 1656년)
간에이 원년(1624년), 나스 스케카게는 은거하여 장남인 스케시게에게 가독을 물려주었다. 그러나 간에이 19년(1642년), 스케시게는 적자가 없는 채로 아버지를 앞서 사망했기 때문에 나스 번은 무사 개역(無嗣改易)이 되었다. 다만, 스케카게는 아직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5000석을 받아 하타모토(旗本)로서 나스 가문의 존속은 인정되었다.
쇼오 원년(1652년) 2월 18일, 스케카게는 아오키 도시나가의 차남을 양자로 맞아 스케야라고 칭하게 했다. 스케야와 나스 가문 사이에는 혈연이나 연고는 없었다. 스케야의 누나 오라쿠노카타(보주인)는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측실이며, 4대 쇼군 이에쓰나의 생모였다. 쇼군의 연척인 스케야는 이 때문에, 양자 결연을 맺기 전에 이미 쇼군 근신의 고쇼(扈従)로 발탁되어 봉록으로서 쿠라코메 2000俵를 지급받고 있었다. 스케카게는 이 쇼군가의 연척을 나스 씨의 양자로 삼았다. 스케야가 나스 씨의 가독을 상속하고 하타모토가 된 후에도 이 쿠라코메 2000俵의 지급은 계속되었다.
메이레키 2년(1656년) 1월 25일, 스케카게는 사망했다. 향년 7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