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부 노부노리
1. 개요
난부 노부노리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초대 번주 난부 노부치카의 장남으로 태어나 1822년에 가문을 계승했으며, 1858년에 성주격이 되었다. 친아들 난부 노리카타가 있었으나, 양자를 들여 난부 노부타미가 가문을 이었다. 1862년에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난부 노부노리
기본 정보
| 씨명 | 난부 씨 |
|---|---|
| 가명 (통칭) | 주세 |
| 관위 | 종5위하단바노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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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
| 출생 | 분카 2년 (1805년) 11월 |
| 사망 | 분큐 2년 8월 12일 (1862년9월 5일) |
| 주군 | 이에나리 → 이에요시 → 이에사다 → 이에모치 |
| 번 | 무쓰시치노헤 번 번주 |
| 부모 | 아버지: 난부 노부치카, 어머니: 불명 |
| 형제자매 | 노부노리, 마에다 도시카즈 계실 |
| 배우자 | 정실: 모리 나가요시의 딸 |
| 자녀 | 노부카타 |
| 양자 | '노리아쓰', 노부타미 |
관직 및 작위
| 관위 | 종5위 하단바노카미 |
|---|
기타 정보
| 별명 | 주세 (통칭) |
|---|
번주 정보
| 전임자 | 난부 노부치카 |
|---|---|
| 후임자 | 난부 노부타미 |
| 직책 | 시치노헤 번 번주 |
| 대수 | 2 |
| 임기 | 1822년 ~ 18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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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오카번은 난부씨가 700년 가까이 통치한 번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영지를 인정받아 조카마치를 건설했으나, 보신 전쟁 패배 후 영지 몰수와 재정난을 겪다 폐번되었다.
2. 생애
분카 2년(1805년) 11월, 초대 번주 난부 노부치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분세이 4년(1821년)에 부친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듬해 분세이 5년(1822년) 정월에 뒤를 이었다. 안세이 5년(1858년)에 성주격이 되었다. 분큐 2년(1862년) 8월, 향년 58세로 사망했다.
친아들로 난부 노리카타가 있었지만, 가에이 연간에 본번 번주인 토시요리의 4남 킨아츠를 양자로 삼았다. 그러나 안세이 연간까지는 양자를 노부타미로 바꾸어, 노부타미가 계승했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분카 2년(1805년) 11월, 초대 번주 난부 노부치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분세이 4년(1821년)에 부친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듬해 분세이 5년(1822년) 정월에 뒤를 이었다.
2.2. 번주로서의 활동
분세이 4년(1821년) 부친이 사망하여, 이듬해 분세이 5년(1822년) 정월에 가독을 상속받아 번주가 되었다. 안세이 5년(1858년) 성주격이 되었다.
친아들로 난부 노리카타가 있었지만, 가에이 연간에 본번 번주인 난부 도시요리의 4남 긴아쓰를 양자로 삼았다. 그러나 안세이 연간까지 양자를 노부타미로 바꾸었고, 노부타미가 가독을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