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부 노부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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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난부 노부치카는 1776년 기하타 난부 노부요시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800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문을 계승했다. 1819년 모리오카번주 난부 도시타카로부터 막부의 허가를 받아 시치노헤번을 입번했으나, 도시타카 사후 조카를 보좌하기 위해 모리오카번 정에 참여했다. 이후 조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벌어진 후계자 문제에 관여했는지 불분명하며, 1821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가독은 장남 난부 노부히로가 이었다.

난부 노부치카
기본 정보
씨족남부 씨
시대에도 시대 후기
생년월일안에이 5년 11월 1일 (1776년12월 11일)
사망일분세이 4년 11월 25일 (1821년12월 19일)
가명 (통칭)슈제이
관위종5위하리마노카미
막부에도 막부하타모토 요리아이세키
섬긴 주군도쿠가와 이에나리
무쓰시치노헤 번주
가족 관계
아버지남부 노부요시
어머니남부 노부오키의 딸
형제자매노부치카, 야마구치 나오하루 (우네메)
배우자정실: 미즈노 다다아키라의 딸
계실: 곤도 히사요의 딸
자녀노부타카, 딸 (마에다 도시카즈 계실)
기타
특기 사항1대 시치노헤 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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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난부 노부치카는 안영 5년(1776년) 11월 1일, 소보신 지배를 맡은 5000석의 기하타(旗本)인 난부 노부요시(히젠노카미)의 아들로 태어났다. 간세이 12년(1800년) 아버지 노부요시가 사망하자 가독을 이었다. 난부 마사노부(난부 시게노부의 아들)를 시조로 하는 기하타 난부 가문의 5대 당주였다.

분세이 2년(1819년) 12월, 노부치카는 아버지의 사촌이자 본가인 모리오카번난부 도시타카로부터 막부의 허가를 받아 가증을 받고, 내분이면서 1만 1000석의 정부다이묘로서 모리오카 신덴번(후의 시치노헤번)을 입번했다.

분세이 3년(1820년) 난부 도시타카가 사망하고, 6촌 조카인 어린 난부 기치지로(리요)가 본가를 계승하자, 노부치카는 그를 보좌하기 위해 막부의 허가를 받아 모리오카로 가서 번 정치에 참여했다. 그러나 분세이 4년(1821년) 8월, 기치지로 리요는 쇼군에게 고멘을 마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번 중역들은 비교적 나이와 풍모가 매우 닮았던 젠타로를 대역으로 세워 "리요"로 옹립하고, 9월에 젠타로가 본가 가독을 이었다. 11월 15일, 젠타로는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에게 알현하여 번주로 인정받았지만, 그 직후 노부치카는 46세로 사망했다. 이 사건에 노부치카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가독은 장남 노부히로가 이었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안영 5년(1776년) 11월 1일, 소보신 지배를 맡은 5000석의 기하타(旗本)인 난부 노부요시(히젠노카미)의 아들로 태어났다.

간세이 12년(1800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잇는다. 난부 마사노부(난부 시게노부의 아들)를 시조로 하는 기하타 난부 가문의 당주로서는 5대째에 해당한다. 분세이 2년(1819년) 12월, 아버지의 사촌이자 본가인 모리오카번난부 도시타카로부터 막부의 허가를 받아 가증을 받아, 내분이면서 1만 1000석의 정부다이묘로서 모리오카 신덴번(후의 시치노헤번)을 입번했다.

2.2. 시치노헤번 입번

분세이 2년(1819년) 12월, 난부 노부치카의 아버지의 사촌이자 본가인 모리오카번난부 도시타카막부의 허가를 받아 난부 노부치카에게 가증을 하였다. 난부 노부치카는 내분이면서 1만 1000석의 정부다이묘로서 모리오카 신덴번(후의 시치노헤번)을 입번했다.

분세이 3년(1820년)에 난부 도시타카가 사망하고, 6촌 조카인 어린 난부 기치지로(리요)가 본가를 계승하여, 난부 노부치카는 그를 보좌하기 위해 막부의 허가를 받아 모리오카로 가서 모리오카번 정치에 참여한다. 그러나 난부 기치지로(리요)는 분세이 4년(1821년) 8월, 쇼군에게 고멘을 마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번 중역들은 비교적 나이도 비슷하고 풍모도 매우 닮았던 젠타로를 대역으로 세워 "리요"로 옹립하고, 9월에 젠타로가 본가 가독을 이었다. 그리고 11월 15일에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와 알현하여 번주로 인정받았지만, 그 직후 난부 노부치카는 46세로 사망했다. 이 사건에 난부 노부치카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2.3. 모리오카번 번정 참여와 후계자 문제

분세이 3년(1820년), 난부 도시타카가 사망하자 6촌 조카인 어린 난부 기치지로(리요)가 본가를 계승했다. 노부치카는 기치지로를 보좌하기 위해 막부의 허가를 받아 모리오카로 내려가 모리오카번 번정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분세이 4년(1821년) 8월, 기치지로는 쇼군에게 고멘을 마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번 중역들은 비교적 나이와 풍모가 매우 닮았던 젠타로를 대역으로 세워 "리요"로 옹립하고, 9월에 젠타로가 본가 가독을 이었다. 11월 15일, 젠타로는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에게 알현하여 번주로 인정받았지만, 그 직후 노부치카는 46세로 사망했다. 이 사건에 노부치카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2.4. 사망과 가독 승계

분세이 3년(1820년), 난부 도시타카가 사망하자 6촌 조카인 어린 난부 기치지로(리요)가 본가를 계승하였다. 노부치카는 그를 보좌하기 위해 막부의 허가를 받아 모리오카번으로 가서 번 정치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분세이 4년(1821년) 8월, 기치지로 리요는 쇼군에게 고멘을 마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번 중역들은 비교적 나이와 풍모가 매우 닮았던 젠타로를 대역으로 세워 "리요"로 옹립하고, 9월에 젠타로가 본가 가독을 이었다. 11월 15일, 젠타로는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에게 알현하여 번주로 인정받았지만, 그 직후 노부치카는 46세로 사망했다. 이 사건에 노부치카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가독은 장남 노부히로가 이었다.

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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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이름비고
아버지난부 노부요시
어머니난부 노부오키의 딸
정실미즈노 타다히로의 딸
계실곤도 히사모치의 딸
장남난부 노부히로
마에다 토시카즈 계실

3.1. 부모

* 난부 노부요시 (부)
* 난부 노부오키의 딸 (모)

3.2. 배우자

* 정실: 미즈노 다다히로의 딸
* 계실: 곤도 히사모치의 딸

3.3.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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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관계비고
난부 노부히로장남
마에다 토시카즈 계실


(변경 사항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