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부 도시아쓰
1. 개요
난부 도시아쓰는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사망한 형의 뒤를 이어 난부 가문 43대 당주가 되었다. 도쿄 제국 대학 재학 중 이케다 테루토모 후작의 딸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으며, 조각과 서도에 능했다. 1914년 모리오카시에 난부 주물 연구소를 설립하고, 난부 철기 개량에 기여했으며 인재 육성에도 힘썼다. 장남의 사망으로 데릴사위를 맞이했으며, 1930년 위궤양으로 45세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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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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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
일본의 백작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
일본의 백작 -
오쿠마 시게노부
오쿠마 시게노부는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이자 교육자로, 두 차례 총리대신을 역임하며 재정 개혁, 철도 건설, 헌법 제정, 와세다 대학 설립 등에 기여했으나, 제국주의적 정책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등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 -
난부씨 -
모리오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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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부씨 -
모리오카번
모리오카번은 난부씨가 700년 가까이 통치한 번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영지를 인정받아 조카마치를 건설했으나, 보신 전쟁 패배 후 영지 몰수와 재정난을 겪다 폐번되었다.
2. 경력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전사한 형 도시 아키의 뒤를 이어 난부 가문 제43대 당주가 되었다. 도쿄 제국 대학 재학 중인 1907년 구 돗토리번 주지 이케다 테루토모 후작의 셋째 딸 이쓰코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도시쓰네 부부는 예술에 조예가 깊어 도시쓰네는 조각과 서도를, 이쓰코는 일본화와 죽세공 등을 즐겼다. 또한 부부는 구로다 세이키, 고미 세이키치, 이시카와 도라지 등의 화가에게 서양화를 배웠다. 1914년에는 모리오카시에 '난부 주물 연구소'를 설치하고, 도쿄 미술학교 주금과 출신인 마쓰하시 무네아키를 소장으로 맞이하는 등, 난부 철기의 개량 발전에 공헌했다. 또한 학생들에게 급여 제도를 마련하는 등, 인재 육성에도 공헌했다.
1928년 장남 난부 도시사다가 18세로 사망했기 때문에, 1929년 이치조 사네테루 공작의 셋째 아들 도시히데(도시히데로 개명)를 장녀 난부 미즈코의 데릴사위로 맞이했다.
1930년 1월 1일, 위궤양으로 급서했다. 향년 45세.
2.1. 가계 계승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전사한 형 도시 아키의 뒤를 이어 난부 가문 제43대 당주가 되었다. 도쿄 제국 대학 재학 중인 1907년 구 돗토리번 주지 이케다 테루토모 후작의 셋째 딸 이쓰코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도시쓰네 부부는 예술에 조예가 깊어 도시쓰네는 조각과 서도를, 이쓰코는 일본화와 죽세공 등을 즐겼다. 또한 부부는 구로다 세이키, 고미 세이키치, 이시카와 도라지 등의 화가에게 서양화를 배웠다. 1914년에는 모리오카시에 '난부 주물 연구소'를 설치하고, 도쿄 미술학교 주금과 출신인 마쓰하시 무네아키를 소장으로 맞이하는 등, 난부 철기의 개량 발전에 공헌했다. 또한 학생들에게 급여 제도를 마련하는 등, 인재 육성에도 공헌했다.
1928년 장남 난부 도시사다가 18세로 사망했기 때문에, 1929년 이치조 사네테루 공작의 셋째 아들 도시히데(도시히데로 개명)를 장녀 난부 미즈코의 데릴사위로 맞이했다.
1930년 1월 1일, 위궤양으로 급서했다. 향년 45세.
2.2. 결혼과 예술 활동
2.3. 난부 철기 발전 기여
난부 도시아쓰는 1914년 모리오카에 '난부 주물 연구소'를 설치하고, 도쿄 미술학교 주금과 출신인 마츠하시 무네아키를 소장으로 맞이하는 등, 난부 철기의 개량 발전에 공헌했다. 또한 학생들에게 급여 제도를 마련하는 등, 인재 육성에도 공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