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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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상덕은 대한제국 군인으로, 1907년 한일신협약으로 군대가 해산되고 박승환이 순국하자 1천여 명의 부하 군사를 이끌고 숭례문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지휘관을 포함한 3백여 명을 사살했으며, 그의 부하들은 의병이 되어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남상덕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남상덕
원어 이름南相悳
출생일1881년
출생지경상남도 의령군
사망일1907년 8월 1일
국적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직업독립운동가
웹사이트남상덕(독립유공자 공훈록)
훈장
건국훈장 대통령장
건국훈장 대통령장
상훈건국훈장 대통령장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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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적 활동

1907년 정미7조약으로 군대가 해산되고 참령(參領) 박승환(朴昇煥)이 이에 항거하여 순국하자, 남상덕은 뜻을 같이하는 부하 군사들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봉기하였다. 그는 숭례문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 중에 전사하였으며, 그의 죽음 이후 흩어졌던 군사들 중 일부는 의병이 되어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2.1. 숭례문 전투 (1907년)

1907년 한일신협약에 따른 군대 해산 과정에서 참령(參領) 박승환(朴昇煥)이 순국하자, 남상덕은 이에 항거하여 봉기하였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부하 군사 약 1천여 명을 이끌고 숭례문 부근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전사하였다.

2.1.1. 숭례문 전투의 의의

1907년 한일신협약에 따른 군대 해산 과정에서 참령(參領) 박승환(朴昇煥)이 순국하자, 남상덕은 "장군이 나라를 위하여 돌아가셨으니 내 어찌 홀로 살기를 바라리오. 마땅히 적과 더불어 죽음을 걸고 결전하여 위로 나라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고 외치며 일본군과의 결전을 다짐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부하 군사 약 1천여 명을 이끌고 숭례문 일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이 숭례문 전투 중에 전사하였다.

이 전투에서 남상덕이 이끌던 부대는 일본군 지휘관 가지와라(梶原)를 포함한 3백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남상덕 휘하 부대에서는 남상덕을 비롯한 장교 7명과 병졸 98명이 함께 전사하였다. 비록 남상덕은 전사하고 전투에 참여했던 군사들은 흩어졌으나, 이들의 항전은 이후 의병 활동으로 이어져 전국적인 항일투쟁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숭례문 전투는 큰 의의를 지닌다.

3. 사후

1962년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