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춘
1. 개요
남성춘은 광서성 출신의 태평천국 군 지휘관이다. 그는 배상제회에 가입하여 금전봉기에 참여했으며, 삼하진을 방어하다가 함락된 후 진옥성 부대에 속했다. 1863년 한중을 점령했으나, 천경 함락 후 청군에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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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시 출신 -
덩잉차오
덩잉차오는 중국 공산당 지도자이자 저우언라이의 배우자이며 중국 여성 운동의 선구자로, 5·4 운동 참여를 통해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혁명 활동에 헌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의장을 역임하는 등 중국 공산당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여성 해방과 지위 향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광시 출신 -
류융푸
류융푸는 중국에서 태어나 흑기군을 조직하여 베트남에서 프랑스군과 싸웠고, 청일 전쟁 이후에는 타이완에서 일본에 저항했으며, 타이난 지명과 초등학교에 이름이 사용될 정도로 존경받는 군인이다. -
태평천국의 난 관련자 -
보르지기트 셍게린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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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의 난 관련자 -
석달개
석달개는 광서성 출신의 객가인으로, 태평천국 운동의 주요 지도자로서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지도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성광왕' 칭호를 받았으나, 톈징 사변 이후 독자적인 원정을 감행하다 청군에 포위되어 능지처참을 당했고, 그의 영웅적인 면모는 후대에 영향을 미쳐 객가인들에게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
사형된 사람 -
전봉준
전봉준은 조선 말기 동학 농민 혁명의 지도자로, 부패한 관리 처벌과 일본 세력 축출 등을 주장하며 농민 운동을 이끌었으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 후 처형되었고, 그의 혁명 정신은 민주주의 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
사형된 사람 -
임꺽정
임꺽정은 조선 명종 시기에 양주와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며 관아를 습격하고 빈민을 구제한 의적으로, 관군에 체포되어 사형당했으며,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 3대 도적으로 꼽힌다.
2. 생애
남성춘은 광서성 출신으로, 일찍부터 배상제회에 가입하고 금전봉기에 참여했다. 1857년, 삼하진(三河鎭)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청나라의 도싱가가 여주에서 침공했다. 그는 급히 천경에 도움을 청했지만 천경사변의 영향으로 지원군은 오지 않았고, 삼하진은 함락당했다. 남성춘은 몸을 피해 진옥성 부대에 속했다.
1863년, 부왕 진득재, 준왕 뇌문광, 계왕 양성부와 함께 한중으로 들어가 8월에 점령했다. 그러나 이듬해 천경에서 원병 요청이 내려왔고 진득재, 뇌문광과 함께 한중에서 철수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하남성 남양, 호북성 양양을 거쳐 5월 26일에는 강서성 덕안현 수산에서 청군에 대승을 거두고, 호군통령 서보/徐宝중국어, 영총 덕륭아/德隆阿중국어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7월 19일에 천경이 함락되자 민심이 동요했고, 11월에 진득재 군이 안휘성 북부 곽산에서 패하자, 부장인 마융화가 이끄는 7만 병력이 항복하고 남성춘은 사로잡혔다. 남성춘은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의 명으로 처형되었다.
2.1. 초기 활동
남성춘은 광서성 출신으로, 일찍부터 배상제회에 가입하고 금전봉기에 참여했다. 1857년, 삼하진(三河鎭)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청나라의 도싱가가 여주에서 침공했다. 그는 급히 천경에 도움을 청했지만 천경사변의 영향으로 지원군은 오지 않았고, 삼하진은 함락당했다. 남성춘은 몸을 피해 진옥성 부대에 속했다.
2.2. 태평천국군 지휘관
광서성 출신으로, 일찍부터 배상제회에 가입하고 금전봉기에 참여했다. 1857년, 삼하진(三河鎭)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청나라의 도싱가가 여주에서 침공했다. 그는 급히 천경에 도움을 청했지만 천경사변의 영향으로 지원군은 오지 않았고, 삼하진은 함락당했다. 남성춘은 몸을 피해 영왕 진옥성 부대에 속했다.
1863년, 부왕 진득재, 준왕 뇌문광, 계왕 양성부와 함께 한중으로 들어가 8월에 점령했다. 그러나 이듬해 천경에서 원병 요청이 내려왔고 진득재, 뇌문광과 함께 한중에서 철수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하남성 남양, 호북성 양양을 거쳐 5월 26일에는 강서성 덕안현 수산에서 청군에 대승을 거두고, 호군통령 서보(슈바오), 영총 데룬가(덕륭아)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7월 19일에 천경이 함락되자 민심이 동요했고, 11월에 진득재 군이 안휘성 북부 곽산에서 패하자, 부장인 마융화가 이끄는 7만 병력이 항복하고 남성춘은 사로잡혔다. 남성춘은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의 명으로 처형되었다.
2.3. 한중 원정과 최후
광서성 출신인 남성춘은 일찍부터 배상제회에 가입하고 금전봉기에 참여했다. 1857년, 삼하진(三河鎭)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청나라의 도싱가가 여주에서 침공했다. 천경에 도움을 청했지만 천경사변의 영향으로 지원군은 오지 않았고, 삼하진은 함락되었다. 남성춘은 몸을 피해 영왕 진옥성 부대에 속했다.
1863년, 부왕 진득재, 준왕 뇌문광, 계왕 양성부와 함께 한중으로 들어가 8월에 점령했다. 그러나 이듬해 천경에서 원병 요청이 내려왔고 진득재, 뇌문광과 함께 한중에서 철수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하남성 남양, 호북성 양양을 거쳐 5월 26일에는 강서성 덕안현 수산에서 청군에 대승을 거두고, 호군통령 서보(슈바오), 영총 데룬가(덕륭아)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7월 19일에 천경이 함락되자 민심이 동요했고, 11월에 진득재 군이 안휘성 북부 곽산에서 패하자, 부장인 마융화가 이끄는 7만 병력이 항복하고 남성춘은 사로잡혔다. 남성춘은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의 명으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