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임진성
1. 개요
남해 임진성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은 산성으로, 민보성이라고도 불린다. 남해도의 평산포 북쪽 구릉에 위치하며, 둘레 286m의 작은 규모로 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동문과 서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동문터만 남아있고, 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 방어를 위해 사용되었으며, 16세기 중엽 이후에는 주민들의 피난처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의 173m 구간이 보수 공사를 거쳤다.
| 이름 | 남해 임진성 |
|---|---|
| 로마자 표기 | Namhae Imjinseong |
| 국가 | 대한민국 |
|---|---|
| 위치 | 경상남도 남해군 |
| 유형 | 기념물 |
| 지정 번호 | 20 |
| 지정일 | 1974년 12월 28일 |
| 주소 |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상가리 291번지 |
| 시대 | 알 수 없음 |
| 소유 | 알 수 없음 |
| 참고 | 알 수 없음 |
| 면적 | 알 수 없음 |
| 수량 | 일원 |
| 전승지 | 알 수 없음 |
| 전승자 | 알 수 없음 |
| 문화재청 ID | 23,00200000,38 |
|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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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았다 하여 민보성(民堡城)이라고도 부른다.
남해도 평산포 북쪽의 낮은 구릉에 돌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으로, 조선 초기에는 왜구의 침입을 대비해 관리를 파견하여 지켰으나, 16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지방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다. 성의 둘레는 286m이며, 동쪽과 서쪽에 문을 내었으나 현재는 동문터만 남아있다. 성 안에는 우물터가, 성벽 바깥쪽에는 해자 흔적이 있으며, 과거에는 성루, 훈병사, 감시사, 망대, 서당 등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 중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의 173m 구간은 최근 보수 공사를 거친 것이다.
2.1. 건립 배경
임진성은 민보성(民堡城)이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어 관리를 파견하여 지켰던 곳이었으나, 16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지방 주민들이 유사시에 피난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2.2. 임진왜란 시기의 역할
임진성은 민보성(民堡城)이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해도 평산포 북쪽에 뻗은 낮은 구릉에 돌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286m이다. 동쪽과 서쪽에 문을 내었는데, 현재는 동문터만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으며, 성벽 바깥으로는 주변에 물길을 돌린(해자) 흔적이 있고, 옛날에는 성루, 훈병사, 감시사, 망대, 서당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어 관리를 파견하여 지켰던 곳이었으나, 16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지방 주민들이 유사시에 피난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의 173m는 최근 보수 공사를 거친 것이다.
2.3. 현재 상태
임진성은 민보성(民堡城)이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해도 평산포 북쪽에 뻗은 낮은 구릉에 돌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286m이다. 동쪽과 서쪽에 문을 내었는데, 현재는 동문터만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으며, 성벽 바깥으로는 주변에 물길을 돌린(해자) 흔적이 있고, 옛날에는 성루, 훈병사, 감시사, 망대, 서당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어 관리를 파견하여 지켰던 곳이었으나, 16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지방 주민들이 유사시에 피난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현존하는 성벽의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173m)는 최근 보수 공사를 거친 것이다.
3. 구조
임진성은 민보성(民堡城)이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어 관리를 파견하여 지켰던 곳이었으나, 16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지방 주민들이 유사시에 피난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3.1. 지리적 특징
임진성은 남해도 평산포 북쪽에 뻗은 낮은 구릉에 돌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이다. 둘레는 286m로 작은 규모이며, 동쪽과 서쪽에 문을 내었으나 현재는 동문터만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고, 성벽 바깥으로는 주변에 물길을 돌린 해자 흔적이 있다. 옛날에는 성루, 훈병사, 감시사, 망대, 서당 등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3.2. 규모 및 시설
임진성은 민보성(民堡城)이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해도의 평산포 북쪽에 뻗은 낮은 구릉에 돌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286m이다. 동쪽과 서쪽에 문을 내었는데, 현재는 동문터만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으며, 성벽 바깥으로는 주변에 물길을 돌린(해자) 흔적이 있고, 옛날에는 성루, 훈병사, 감시사, 망대, 서당들도 있었다고 전해온다.
현존하는 성벽의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 173m는 최근 보수 공사를 거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