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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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동자협회는 19세기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독일에서는 19세기 초 탄압 속에서 해외에서 비밀결사 형태로 시작되었으며, 1848년 혁명 이후 공개적으로 설립되어 노동조합과 유사한 역할을 했다. 스웨덴의 노동자협회는 교육과 협동을 강조하는 제1파와 계급 간의 합의를 추구하는 제2파로 나뉘어 발전했으며, 핀란드에서는 온정적 자본가들이 주도하여 설립되었으나, 20세기 초 노동계급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노동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핀란드의 노동자협회는 노동자 자치기구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노동자 체육회, 회관,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문화 공동체를 형성했다.
19세기 초, 독일 노동자들은 비참한 생활 속에서 변화를 갈망했지만, 각종 탄압으로 인해 노동조합과 같은 이익단체를 자유롭게 만들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독일 노동자들은 주로 외국에서 비밀결사 형태로 협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편력직인 생활을 하며 프랑스를 자주 오가던 독일 기능직공들은 1832년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인협회를 설립했다.
[1]
서적
Berichte über die Verhandlungen der Vereinstage Deutscher Arbeitervereine. 1863–1869
Dietz, Berlin
1980
2. 독일
1848년 혁명을 거치면서 독일 내에서도 노동자협회들이 공개적으로 설립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비록 1848년 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때 설립된 노동자협회들은 1849년 이후에도 해산되지 않고 노동조합과 유사한 형태로 노동 운동을 조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이 시기 설립된 전독일노동자협회는 이후 독일사회민주당의 직접적인 전신으로 평가받는다.
독일제국 시기에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노동자협회가 성장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정부나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종교적인 어용 노동자협회(천주교노동자협회, 복음교노동자협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1][2]
3. 스웨덴

스웨덴의 노동자협회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흐름은 1850년대에 나타났으며, 노동자들이 교육과 협동 활동을 통해 단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시기 노동자협회의 기관지로는 ''Folkets röst''가 있었고, 1850년에 설립된 스톡홀름 노동자협회가 대표적이다. 말뫼, 룬드, 예테보리 등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노동자협회들이 설립되었다.
두 번째 흐름은 1866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룬드와 노르셰핑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기의 노동자협회는 계급 간의 합의를 추구하고 민족주의적이며 자본주의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인 프란츠 헤르만 슐츠델리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스웨덴에서는 에두아르드 융베리와 구스타브 악셀 크누트 하밀톤 등이 대표적인 활동가였다.
당시 여성들은 이러한 노동자협회의 회원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노동자협회를 통해 정치 활동 경험을 쌓은 스웨덴 남성 노동자들은 1880년대에 두 번째 흐름의 노동자협회 운동이 쇠퇴한 이후에도 다른 형태의 조직 활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3][4][5]
4. 핀란드

핀란드의 노동자협회는 19세기 후반, 노동자들의 협조를 구하고 문화 및 교육 기회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온정적인 자본가들의 주도로 설립되기 시작했다. 핀란드 최초의 노동자협회는 1883년 빅토르 율리우스 폰 브리크트가 세운 헬싱키 노동자협회이다. 같은 해 바사 노동자협회가 설립되었고, 1886년에는 오울루 노동자협회가 문을 열었다. 이듬해인 1887년에는 포리, 사본린나, 탐페레, 투르쿠 등지에도 노동자협회가 설립되었으며, 각 협회 산하에는 직능별 분과가 조직되었다. 1895년 무렵에는 핀란드 전역에 30개가 넘는 노동자협회가 활동했다. 이 시기 온정적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아 노동자협회를 설립해나가던 초기 핀란드 노동운동을 브리크트식 노동운동이라고 부른다.
1900년을 전후하여 핀란드에 공장 수가 증가하면서 임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계급의 규모가 커졌다.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성향을 띤 이들 임노동자들은 대도시의 노동자협회부터 시작하여 점차 조직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고, 머지않아 핀란드 노동운동의 주도권은 온정적 자본가에서 노동계급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20세기 초부터 각지의 노동자협회들은 규모가 큰 노동자회관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핀란드 최초의 석조 노동자회관은 1900년에 세워진 탐페레 노동자회관이었다. 1900년대 핀란드의 노동자협회들은 핀란드 최초의 노동자 이익 대변 단체로서 기능하며, 참정권 요구 운동, 10시간 노동제 운동, 그리고 의무교육 및 공립학교 설치 운동 등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전국의 노동자협회 대표들이 모이는 총회는 노동계 전체의 의견을 모으는 중요한 자리가 되었다. 1899년 투르쿠에서 열린 제3회 총회에서는 핀란드노동당 창당이 결의되었고, 이 정당은 1903년에 핀란드 사회민주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에서 노동자협회는 노동조합과는 별개의 노동자 자치 기구로서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노동자체육회, 노동자회관, 협동조합 등을 운영하며 노동운동이 중심이 되는 독자적인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다.
참조
[2]
서적
Die deutsche Arbeiterbewegung
Reclam, Stuttgart
2004
[3]
서적
Svensk arbetarrörelse under hundra år
Stockholm: Tiden
1938
[4]
웹사이트
Arbetareförening
http://runeberg.org/[...]
1876
[5]
간행물
Klass i rörelse: arbetarrörelsen i svensk samhällsutveckling
Arbetarrörelsens arkiv och bibl, Stockholm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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