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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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질랜드 진보당은 1999년 노동당과의 연합에서 분리되어 창당된 정당으로, 진보주의를 이념으로 좌파~중도좌파적 노선을 표방했다. 완전 고용, 무상 교육, 무상 의료 등을 주요 정책 목표로 삼았으며, 금융 거래세 도입, 상품 및 서비스세 폐지 등을 주장했다. 2002년 총선에서 2석을 얻어 노동당과의 연립 정부에 참여했으며, 이후 2005년과 2008년 총선에서 각각 1석을 확보했으나, 2011년 총선 불출마 후 2012년 등록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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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진보당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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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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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 | 짐 앤더튼 |
창립일 | 2002년 7월 27일 |
해산일 | 2012년 3월 9일 |
분리 | 얼라이언스 |
이념 | 진보주의 민주사회주의 |
정치적 위치 | 중도좌파 ~ 좌익 |
본부 |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스프레이던 셀윈 스트리트 296 |
상징색 | 회색 및 버건디 |
웹사이트 | www.progressive.org.nz |
의회 의석수 | |
하원 의원 | ImageSize = width:100 height:25 PlotArea = left:0 bottom:0 top:0 right:0 TimeAxis = orientation:horizontal format:yyyy Period = from:0 till:122 TimeAxis = orientation:horizontal id:gray value:rgb(0.85,0.85,0.85) id:darkgray value:rgb(0.27,0.27,0.27) id:midgray value:rgb(0.57,0.57,0.57) id:blue value:rgb(0.07, 0.44, 0.76) id:green value:rgb(0.38, 0.73, 0.27) id:orange value:rgb(1, 0.55, 0) id:red value:rgb(0.80,0, 0) bar:Wikipedias bar:Wikipedias from:0 till:122 color:gray width:0.2in text:/122 bar:Wikipedias from:0 till:1 color:red width:0.2in text:1 |
관련 | |
관련 항목 | 사회주의 |
2. 당 이념 및 노선
진보당은 진보주의를 주요 이념으로 삼고, 좌파~중도좌파적 정치 노선을 표방했다. 한국의 노동당이나 녹색당과 유사하게, 다른 진보 정당들보다 급진적인 성향을 띠었다.[3]
2. 1. 주요 정책
경제적으로, 당은 중도좌파였으며 경제 발전에 특히 주목했다.일자리 창출에 특별히 중점을 두었으며, 완전 고용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다른 정책 목표로는 무상 교육 및 무상 의료, 연 4주 유급 휴가, "반(反)마약" 정책, 법인세율 30% 인하 등이 있었다. 또한 광범위한 금융 거래세를 선호하며 상품 및 서비스세 폐지를 옹호했으며, 통화 정책 개혁도 주장했다. 선거 구호는 "일을 성사시키자"였다.[3]
3. 역사
진보당은 의회에 의석이 없는 좌파 정당으로, 한때 의회에서 세 번째로 큰 정당이었던 연합에서 분리되어 창당되었다.[4] 1999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10석을 획득한 연합은 노동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짐 앤더튼을 부총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의회 임기 말, 당내 갈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앤더튼과 당 대표 맷 맥카튼 사이에 심각한 분쟁이 발생했다. 맥카튼은 연합이 노동당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앤더튼의 지도 방식이 독재적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앤더튼은 이러한 비판이 극단적이며 정부 정책에 대한 당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고 반박했다. 결국 앤더튼은 당 집행부의 사임을 요구했다.
당 조직은 앤더튼과 그의 지지자들을 제명했고, 앤더튼은 새로운 정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러나 선거법 때문에 앤더튼은 공식적으로 연합을 탈퇴할 수 없었다. 탈당하면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기 때문이다. 앤더튼과 그의 지지자들은 선거 때까지 기술적으로 연합 소속으로 남아있다가, 선거에서 공식적으로 새 정당을 창당했다.
연합의 구성원이었던 민주당이 새로운 정당에 합류하기 위해 탈퇴했지만, 2002년 뉴질랜드 총선 직전에 당명은 "짐 앤더튼의 진보 연합"으로 변경되었다. 앤더튼은 이는 새 정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후 민주당이 탈퇴하면서 "진보당"이라는 당명이 확정되었다.
새 정당은 연합에서 온 앤더튼 지지자들을 당 명단 상위에 배치했다. 2002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진보당은 연합, 노동당과 경쟁하여 1.7%의 득표율을 얻었고, 앤더튼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승리하여 의석을 유지했다. 이로써 진보당은 부대표 맷 롭슨을 포함하여 2석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반면 연합은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진보당은 노동당의 소수 연정 파트너로서 연합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의석 수가 적어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앤더튼은 경제 개발부 장관직을 유지했지만, 부총리직은 노동당의 마이클 컬렌에게 넘겨주었다. 롭슨은 이전 정부에서 여러 장관직을 역임했지만, 새 내각에서는 각료직을 잃었다.
2005년 뉴질랜드 총선 직전, 당명은 다시 "짐 앤더튼의 진보"로 변경되어 유권자 인식을 높였다. 해당 선거에서 진보당의 득표율은 소폭 감소했지만, 앤더튼은 지역구 의석을 지켰다.
2008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진보당은 0.91%의 득표율을 얻었다. 앤더튼은 지역구 의석을 유지하며 당 대표로 의회에 남았다. 특이하게도 앤더튼은 야당임에도 노동당과의 연정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짐 앤더튼은 2011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진보당은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고, 2012년 3월 9일, 자진 등록 취소되었다.[1][2]
3. 1. 선거 결과
2002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진보당은 1.7%의 득표율로 2석을 획득,[7] 노동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8] 짐 안데르톤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고, 부대표 맷 롭슨은 비례대표로 의회에 진출했다.2005년 뉴질랜드 총선에서는 1.16%의 득표율로 1석을 획득,[9] 노동당과의 연립 정부에 잔류했다. 안데르톤은 지역구 의석을 유지했다.
2008년 뉴질랜드 총선에서는 0.91%의 득표율로 1석을 유지했으나,[10] 국민당 중심의 정부 구성으로 야당이 되었다. 안데르톤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짐 안데르톤은 2011년 총선에 불출마했고, 진보당은 2012년에 자진 등록 취소되었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