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메스나제르
1. 개요
니콜라 메스나제르는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으로, 법학을 공부하여 루앙 의회의 변호사가 되었다. 1700년 파리에서 열린 상업 평의회에 루앙 대표로 파견되었고, 1704년과 1705년에는 스페인에 재정 관련 협상을 위해 세 번 파견되었다. 1711년 런던 밀사로 파견되어 잉글랜드의 반 프랑스 동맹 탈퇴를 주선하고 위트레흐트 조약의 기반이 된 8개 조항을 받아들이도록 했으며, 1712년 위트레흐트 조약 체결을 위한 프랑스 전권 대사 중 한 명이 되었다. 1713년 조약 체결에 성공한 후 대사 지위를 누리고 프랑스 왕으로부터 저택을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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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사망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714년 사망 -
마리 안 망시니
마리 안 망시니는 마자랭 추기경의 조카로서 프랑스 궁정에서 살롱을 운영하며 문인들을 후원하고 프랑스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며, 남편 독살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루이 14세의 관대한 처분으로 사회에 복귀한 후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망한 17세기 프랑스의 문화 후원자이다. -
프랑스의 외교관 -
알렉시 드 토크빌
알렉시 드 토크빌은 19세기 프랑스의 정치 사상가이자 역사가로, 미국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저술했으며, 프랑스 정계에서 활동하며 자유주의 정치 전통을 대표했다. -
프랑스의 외교관 -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은 프랑스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작가이자 정치가로, 소설을 집필하고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며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옹호하다가 1848년 혁명 중에 사망했다. -
1658년 출생 -
이이명
이이명은 조선 숙종, 경종, 영조 시대의 문신으로, 노론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연잉군(영조)을 지지했고, 서양 문물에 개방적인 입장을 보였다. -
1658년 출생 -
김창업
김창업은 조선 시대 문인이자 화가로,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이며 기사환국 이후 은둔하며 시문과 그림에 몰두했고, 단원 김홍도의 스승 중 한 명이자 숙종 때 연행록을 저술했다.
2. 생애
니콜라 메스나제르는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여 루앙 의회의 변호사가 되었다. 1700년 파리에서 열린 상업 평의회에 루앙 대표로 파견되었고, 1704년과 1705년에는 스페인에 재정 관련 협상을 위해 세 차례 파견되었다. 1711년 8월 런던에 밀사로 파견되어 잉글랜드를 반 프랑스 동맹에서 탈퇴시키고 위트레흐트 조약의 기반이 된 8개 조항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1712년 1월 위트레흐트 조약을 체결한 프랑스 전권 대사 3명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이듬해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대사 지위를 누렸으며 프랑스 왕으로부터 저택을 하사받았다.
2.1. 초기 생애
메스나제르는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법을 공부하기 위해서 상업에 종사하는 길을 포기하였고, 루앙 의회의 변호사가 되었다.
2.2. 외교 활동
1700년 루앙 대표로 파리에서 열린, 교역 확대를 위해 설립된 상업 평의회에 파견되었다. 여기서 주목받은 그는 1704년과 1705년 스페인에 재정 관련 협상을 위해 세 차례 파견되었다. 1711년 8월 메스나제르는 런던에 밀사로 파견되어 잉글랜드를 반 프랑스 동맹에서 탈퇴하도록 주선하였으며, 위트레흐트 조약의 근간이 된 8개 조항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메스나제르는 1712년 1월 위트레흐트 조약을 체결한 3명의 프랑스 전권 대사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이듬해 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하였다.
2.3. 위트레흐트 조약
니콜라 메스나제르는 1711년 8월 런던에 밀사로 파견되어 잉글랜드를 반 프랑스 동맹에서 탈퇴하도록 주선하였으며, 위트레흐트 조약의 근간이 된 8개 조항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그는 1712년 1월 위트레흐트 조약을 체결한 3명의 프랑스 전권 대사 중 한 명이 되어 이듬해 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하였다.
2.4. 이후 생애
메스나제르는 1712년 1월 위트레흐트 조약을 체결한 3명의 프랑스 전권 대사 중 한 명이었으며, 이듬해 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대사 지위를 누렸으며 프랑스 왕으로부터 저택을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