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클류세프
1. 개요
니콜라 클류세프는 1927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태어나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북마케도니아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스코페 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마케도니아 과학 예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했다. 1991년 북마케도니아의 초대 총리를 역임하며 유고슬라비아 해체와 유고슬라비아 전쟁 시기에 북마케도니아의 평화로운 독립에 기여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마케도니아 데나르 도입, 마케도니아 육군 창설 등의 정책을 추진했으며,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클류세프는 2008년 사망했으며, 독립 마케도니아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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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니콜라 클류세프 |
|---|---|
| 출생일 | 1927년 10월 2일 |
| 출생지 | 슈티프, 유고슬라비아 왕국 |
| 사망일 | 2008년 1월 16일 |
| 사망지 | 스코페, 마케도니아 |
| 직위 | 마케도니아 총리 |
|---|---|
| 순서 | 초대 |
| 대통령 | 키로 글리고로프 |
| 임기 시작 | 1991년 3월 20일 |
| 임기 종료 | 1992년 9월 5일 |
| 이전 | 없음 |
| 이후 | 브란코 츠르벤코프스키 |
| 소속 정당 | VMRO-DPMNE (199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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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케도니아의 총리 -
흐리스티얀 미츠코스키
흐리스티얀 미츠코스키는 북마케도니아의 정치인이자 현재 총리로, 2017년 VMRO-DPMNE 당 대표로 선출되어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교체했으며, 경제 성장과 EU 가입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
북마케도니아의 총리 -
니콜라 그루에프스키
니콜라 그루에프스키는 북마케도니아의 정치인으로, 재무부 장관, VMRO-DPMNE 대표, 총리를 역임했으며,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헝가리로 망명했다. -
1927년 출생 -
김정례
김정례는 대한민국 제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여성단체 창립 및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정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며 여성계와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여성 정치 진출에 기여했다. -
1927년 출생 -
귄터 그라스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을 비롯한 단치히 삼부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과 나치즘의 영향을 다룬 독일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조각가이며, 무장친위대 복무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치 과거 청산과 사회 정의를 위해 활동하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2008년 사망 -
찰스 틸리
찰스 틸리는 미국의 사회학자, 정치학자, 역사학자로, 역사 사회학, 사회 운동, 국가 형성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관계적, 과정 중심적 접근 방식으로 사회과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2008년 사망 -
에드먼드 힐러리
에드먼드 힐러리는 1953년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등정하고, 남극과 북극을 모두 정복했으며, 히말라야 지역 셰르파족을 위한 자선 활동에도 헌신한 뉴질랜드의 등반가, 탐험가, 자선가이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니콜라 클류세프는 1927년 10월 2일, 유고슬라비아 왕국 (현재 북마케도니아) 슈티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3년 베오그라드 대학교 베오그라드 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1964년 같은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초대 내무부 장관인 요르단 미얄코프의 신랑 들러리였다.
3. 경제학 분야 경력
졸업 후 클류세프는 산업 과학 연구소에서 조교로 경력을 시작했다. 1961년, 그는 스코페 경제 연구소로 옮겨 그곳의 소장을 역임했다. 클류세프는 1968년 스코페 대학교 경제학부 부교수가 되었고, 1972년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1985년 학장으로 선출되어 1987년까지 재임했다. 클류세프는 1988년 마케도니아 과학 예술 아카데미 (MANU)의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인구 연구 위원회를 주재했다. 그는 저서로 SR 마케도니아 산업 설비 활용 (1967), SR 마케도니아 산업 투자 효율성 (1969)을 저술했으며, 연방의 경제 기능 (1970), 반테제 (1994), 관점과 변화 (1995)를 공동 저술했다.
4. 정치 경력
니콜라 클류세프는 1991년 3월 20일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해체와 유고슬라비아 전쟁이라는 격동기에 북마케도니아가 평화적으로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 기여했다. 당시 클류세프는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 총리였다. 그러나 1992년 7월 마케도니아 의회에서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되어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1997년에는 보수 성향의 정당인 VMRO-DPMNE 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류프초 게오르기에프스키 총리 내각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며 공직에 복귀했다. 국방부 장관 재임 기간 동안 그는 북마케도니아의 NATO 가입을 추진하고, 알바니아와의 군사 협력을 지지하는 등 안보 정책에 관여했다.
4.1. 총리 (1991-1992)
클류세프는 1991년 3월 20일 마케도니아 총리가 되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해체와 유고슬라비아 전쟁이라는 혼란한 시기 속에서 북마케도니아가 평화적으로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클류세프는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 총리였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그의 정부는 여러 중요한 정책을 추진했다. 새로운 국가 통화로 데나르를 도입했으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데나르를 당시 안정성이 높았던 독일 마르크에 고정시키는 정책을 시행했다. 또한 국가 방위를 위해 마케도니아 육군을 창설하고, 독립적인 금융 시스템의 기반이 될 국립은행을 설립했다. 경제 안정을 위해 제한적인 재정 및 통화 정책을 운용했으며, 임금과 일부 물가에 대한 동결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2년 7월, 마케도니아 의회는 클류세프 정부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브란코 츠르벤코프스키가 1992년 9월 5일 후임 총리로 취임했다.
4.2. 국방부 장관 (1998-2000)
그는 1997년 VMRO-DPMNE 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류프초 게오르기에프스키 총리가 이끄는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공직에 복귀했다. 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 클류세프는 북마케도니아의 NATO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며, 북마케도니아 영토 내 NATO 군대의 주둔을 지지했다. 또한 알바니아와의 군사 협력을 옹호하기도 했다.
5. 사망과 유산
니콜라 클류세프는 2008년 1월 16일,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의 자택에서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마케도니아 과학 예술 아카데미(MANU)에서 발표했다. 북마케도니아 국회와 MANU는 그를 추모하는 성명을 냈다.
클류세프는 스코페 부텔 묘지의 위인 묘역에 안장되었다. 장례식은 마케도니아 정교회의 수장인 오흐리드의 스테판 대주교가 집전했다. 북마케도니아 정부는 2008년 1월 18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하여 그의 죽음을 기렸다. 그의 딸과 손녀는 고인을 기리기 위해 "니콜라 클류세프 기념 센터" 재단을 설립했다.
독립 북마케도니아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3월 게오르게 이바노프 대통령으로부터 9월 8일 훈장을 추서받았다. 또한, 슈티프 시는 2019년 12월 그에게 사후 "성 니콜라스" 훈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