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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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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마데정은 1915년 11월 1일 정으로 승격되어 1925년 4월 1일 오사카시에 편입되어 폐지된 일본의 행정 구역이다. 16세기에는 덴가차야로 불렸으며, 에도 시대에는 농촌 지역으로 면화 재배가 이루어졌다. 1889년 가쓰마 촌으로 발족하여 메이지 시대 후기 오사카시의 발전과 함께 주택지로 변화했으며, 인구 증가로 다마데정으로 승격되었다. 다마데정 시대에는 오사카시 편입을 앞두고 지명 개편 계획이 있었지만, 1925년 오사카시 니시나리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다마데정에는 난카이 철도, 난카이 고야선, 한카이 전기 궤도가 지나갔으며, 오사카 시립 다마데 초등학교 등 3개의 초등학교가 설치되어 교육 시설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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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데정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폐지일1925년 4월 1일
폐지 이유편입 합병
폐지 상세니시나리군·히가시나리군 계 17개 정 27개 촌 → 오사카시 (오사카시 제2차 시역 확장)
현재 자치체오사카시
요미가나たまでちょう (Tamade-chō)
자치체 명칭다마데정
구분
도도부현오사카부
니시나리군
면적1.45
인구16872
인구 출처국세조사
인구 시점1920년
인접 자치체오사카시
이마미야정
덴노지무라
쓰모리무라
고나하마무라
스미요시무라
소재지니시나리군 다마데정 자 아자 나카도리 587-4

2. 역사

16세기에 마을 동부의 가즈마 신가(勝間新家)가 텐가차야라고 불리게 되었다. 덴가차야는 가쓰마 촌(다마데 정), 이마미야촌(이마미야 정), 텐노지촌 3개 촌의 경계 부근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었다.[1]

에도 시대에는 밭밭 여덟 개 촌[1]이라고도 불리는 농촌 지역이었다. 오사카 시가지에 채소를 공급하는 것 외에도 가쓰마 목화라고 불리는 면화 재배가 활발했다. 또한 기즈 촌에서 가쓰마 촌을 거쳐 코나하마로 가는 가즈마 가도가 정을 남북 방향으로 지나 기슈 가도의 우회도로 역할을 하였다.[1]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한때 인접한 쓰모리와 공동으로 마을 행정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1889년 정촌제에 의해 가쓰마 촌이 성립되었다. 메이지 시대 전반까지는 농촌 지대였으나, 메이지 시대 후기에는 오사카 시가지의 발전에 따라 오사카 시와 인접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주택지로 변모하였다.[1]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가쓰마 촌은 1915년 11월 1일에 정으로 승격해 다마데 정이 되었다. 1925년 4월 1일, 오사카 시에 편입되면서 니시나리구가 되어 다마데 정은 폐지되었다.[1]

2. 1. 명칭 유래

13세기에 이 지역을 개발한 가츠마 오무라지(勝間で大連)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옛 명칭인 "가츠타마의 마을"(勝玉の里)이 변형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1] 1915년 11월 1일 정제 시행으로 다마데 정이 되었는데, "다마데"라는 명칭은 가츠마 촌의 소자 중 하나에서 채용되었다.[1]

2. 2. 에도 시대 이전

16세기에는 마을 동부의 가즈마 신가(勝間新家)가 텐가차야라고 불리게 되었다. 덴가차야는 가쓰마 촌(다마데 정), 이마미야촌(이마미야 정), 텐노지촌 3개 촌의 경계 부근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었다.[1]

2. 3. 에도 시대

에도 시대에는 밭밭 여덟 개 촌[1]이라고도 불리는 농촌 지역이었다. 오사카 시가지에 채소를 공급하는 것 외에도 가쓰마 목화라고 불리는 면화 재배가 성행했다. 또한 키즈 촌에서 가쓰마 촌을 거쳐 코나하마로 가는 가즈마 가도가 정을 남북 방향으로 지나 기슈 가도의 우회도로 역할을 하였다.

2. 4.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한때 인접한 쓰모리와 공동으로 마을 행정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1889년 정촌제에 의해 가쓰마촌이 성립하였다. 메이지 시대 전반까지는 농촌지대였으나, 메이지 시대 후기에는 오사카 시가지의 발전에 따라 오사카시에 인접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주택지로 변모하였다.[1]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가쓰마촌은 1915년 11월 1일에 정으로 승격해 다마데정이 되었다. 다마데정의 '다마데'라는 명칭은 가쓰마촌의 소자(小字) 중 하나에서 따온 것이다.[1]

그 후 1925년 4월 1일, 오사카시에 편입되면서 니시나리구가 되어 다마데정은 폐지되었다.[1]

2. 5. 다마데정 시대

16세기에는 마을 동부의 가즈마 신가(勝間新家)가 텐가차야라고 불리게 되었다. 덴가차야는 가쓰마 촌(다마데 정), 이마미야촌(이마미야 정), 텐노지 촌 3개 촌의 경계 부근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에도 시대에는 밭밭 여덟 개 촌[1]이라고도 불리는 농촌 지역이었다. 오사카 시가지에 채소를 공급하는 것 외에도 가쓰마 목화라고 불리는 면화 재배가 활발했다. 또한 키즈 촌에서 가쓰마 촌을 거쳐 코나하마로 가는 가즈마 가도가 정을 남북 방향으로 지나 기슈 가도의 우회도로 역할을 하였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한때 인접한 쓰모리와 공동으로 마을 행정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1889년 정촌제에 의한 가쓰마 촌이 성립하였다. 메이지 시대 전반까지는 농촌 지대였으나, 메이지 시대 후기에는 오사카 시가지의 발전에 따라 오사카 시와 인접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주택지로 변모하였다.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가쓰마 촌은 1915년 11월 1일에 정으로 승격해 다마데 정이 되었다. 다마데 정의 '다마데'라는 명칭은 가쓰마 촌의 소자(小字) 중 하나에서 따온 것이다.

그 후 1925년 4월 1일, 오사카 시에 편입되면서 니시나리구가 되어 다마데 정은 폐지되었다.

3. 지리

우에마치 대지의 서쪽 저지대에 위치하며, 오사카시가지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1973년 이후의 행정구역 명칭으로는 대체로 니시나리구 기시사토 2~3초메, 센본키타 1초메, 센본나카 1~2초메, 센본미나미 1~2초메, 다마데니시 1초메, 다마데나카 1~2초메, 다마데히가시 1초메 전역과 다마데니시 2초메, 다마데히가시 2초메, 시오지 2초메, 센본키타 2초메, 기시사토히가시 2초메 대부분, 다다치 3초메 일부, 덴가차야 3초메의 일부, 덴진노모리 2초메의 일부, 기시리히가시 1초메의 서부, 다치바나 3초메의 일부, 덴가차야 3초메의 일부, 덴진노모리 2초메의 일부에 해당한다.[1]

메이지 시대 무렵까지는 농촌이었으나, 다이쇼 시대 무렵부터 오사카시로 이어지는 주거지 및 공업지대로 개발되면서 인구가 급증하였다.[1]

3. 1. 위치 및 지형

우에마치 대지의 서쪽에 위치한 저지대이다.[1] 오사카 시가지의 남쪽에 위치했다.[1]

町(정) 내의 지명에 관해서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소자(小字)가 통칭적으로 사용되었지만, 행정상의 공식적인 지명이 아니었고, 다마데정 전역을 단위로 지번 표시를 했다.[1]

3. 2. 행정 구역 변천

1915년 11월 1일 가즈마촌이 정으로 승격하면서 다마데정이 되었고, 1925년 4월 1일 오사카시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오사카시 편입 후, 1927년 1월부터 옛 다마데정 구역에 대한 지명 설정 및 개칭이 실시되었다.[1]

다이쇼 시대에는 택지화로 인해 외지에서 전입자가 급증하면서, 정 전체를 단위로 한 번지 표시가 불편해졌다. 이에 따라 정 이름을 정하려는 계획이 제기되었고, 정 구역 실지 조사를 거쳐 새로운 정 이름 안이 마을 의회에서 심의되었지만 시행은 연기되었다.

4. 교통

다마데정에는 난카이 철도, 고야선, 한카이선 3개 노선이 지나갔다. 난카이 철도는 정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기시노리역과 다마데역을 설치했고, 고야 철도는 가쓰마역(이후 아베노역을 거쳐 기시노리역으로 통합)을 설치했다. 한카이 전기 궤도는 정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가쓰마역과 미야노시타역을 설치했다(미야노시타역은 1960년대까지 휴지·폐지).

4. 1. 철도

난카이 철도(현 난카이 본선), 고야선(현 난카이 고야선), 한카이선(현 한카이 전기 궤도 한카이선)의 3개 노선이 지나고 있었다.

난카이 철도는 정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정내에는 기시노리역과 다마데역의 2개 역이 설치되었다. 기시노리역과 다마데역은 모두 현재의 기시노사토다마데역의 전신이다.

다마데역은 1907년 9월 가즈마촌의 요청으로 설치되었다. 난카이 철도는 당초 역 설치 계획이 없었지만, 촌이 역 부지를 난카이 철도에 기부하면서 역이 설치되었다. 또한 기시노리역에 대해서도 역 주변 지주가 역 설치 비용 6000JPY을 기부해 1913년 7월에 설치되었다.

고야철도(1922년 난카이 철도 고야선)는 1900년 9월 가쓰마역을 설치했다. 가쓰마역은 1903년 2월 아베노역으로 개칭되었고, 아베노역은 1925년 3월 기시노리역으로 통합되었다.

한카이 전기 궤도(1915년 난카이 철도 한카이선)는 정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미야노시타역과 가쓰마역의 2개 역이 설치되었다. 미야노시타역은 1960년대까지 휴지・폐지되었고, 가쓰마역은 현재의 히가시타마데 정류장에 해당한다.

5. 교육

오사카 시립 다마데 초등학교(구 오사카 시립 다마데 제1심상초등학교), 오사카 시립 키시사토 초등학교(구 오사카 시립 다마데 제2심상초등학교), 오사카 시립 센본 초등학교(구 오사카 시립 다마데 제3심상고등초등학교) 3개교가 설치되었다.

다마데 초등학교는 1873년 2월 15일, 제6대구 제1구 제3번 초등학교로 설치되었다. 당시 니시나리군 전역에서도 최초로 설치된 초등학교로 여겨진다. 개편 등을 거쳐, 메이지 시대 중기에는 다마데심상고등초등학교가 되었다.

다이쇼 시대에 들어 아동 수가 급증함에 따라 1913년에 다마데 제2심상초등학교를 설치했고, 1920년에는 다마데 제3심상고등초등학교를 설치했다. 다마데 제3교 개교 시, 고등과를 다마데교에서 다마데 제3교로 이관하고, 다마데교는 심상과 단독 설치가 되어 다마데 제1심상초등학교로 개칭했다.

또한 당시 정역 내 유일한 유치원으로서 사립 개화 유치원(1913년 개원)이 설치되었다[2]

참조

[1] 문서 西成郡吉右衛門肝煎地・西高津村・難波・難波村・木津村・今宮村・勝間村・中在家村・今在家村
[2] 문서 開花幼稚園は後年、現在の堺市堺区へ移転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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