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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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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3세기는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지배하며 '몽골의 시대'로 불렸다. 칭기즈 칸은 1206년 몽골 부족을 통일하고 몽골 제국을 건국했으며, 이후 호라즘 왕조 정복, 키예프 루스 정복 등 영토를 확장했다. 몽골 제국은 무역을 장려하여 실크로드 발전에 기여했고, 쿠빌라이는 원나라를 건국하여 중국을 통일했다. 그러나 13세기 후반 십자군 전쟁의 쇠퇴, 프랑스와 영국의 왕권 강화, 신성 로마 제국의 분열,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 등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몽골의 일본 침략(원구)과 고려의 몽골 복속, 스콜라 철학의 발전, 대학 설립 등 문화와 사상의 변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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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짜 - 12세기
    12세기는 서기 1101년부터 1200년까지의 기간으로, 유럽, 아시아, 중동 등지에서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잉글랜드의 알턴 조약 체결, 십자군 전쟁, 12세기 르네상스, 북송과 남송의 교체, 가마쿠라 막부 성립 등의 주요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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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지도
기본 정보
시대서기 1201년 ~ 1300년
세기13세기
천년기제2천년기
주요 사건 및 정치
유럽신성 로마 제국: 대공위 시대 (1250년 ~ 1273년)
잉글랜드: 헨리 3세의 통치 기간 (1216년 ~ 1272년), 에드워드 1세의 통치 시작 (1272년)
프랑스 왕국: 루이 9세의 통치 (1226년 ~ 1270년)
이베리아 반도: 레콩키스타의 절정
십자군 전쟁: 제5차 십자군, 제6차 십자군, 제7차 십자군, 제8차 십자군
리보니아 십자군 및 프로이센 십자군의 지속
아시아몽골 제국: 확장, 정복 활동 활발
중국: 남송 멸망 (1279년), 원나라 건국
일본: 가마쿠라 막부 통치
고려: 무신정권 시대
인도]: [[델리 술탄국 확장
동남아시아: 참파, 크메르 제국 등 여러 국가 번성
문화 및 사회
유럽고딕 건축의 전성기
스콜라 철학: 토마스 아퀴나스 등 철학자 활동
대학의 발전
아시아고려청자의 발전
목판 인쇄술 발전
인물
유럽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자, 신학자)
단테 알리기에리 (시인)
마르코 폴로 (탐험가)
루이 9세 (프랑스 왕)
칭기즈 칸
아시아이규보 (고려 문신)
최우 (고려 무신)
과학 기술
항해술나침반 사용 확대
유럽안경의 발명
기타
런던 인구약 40,000명 (1300년경)
파리 인구200,000명 (1300년경)

2. 몽골 제국의 팽창과 팍스 몽골리카

1206년 칭기즈 칸몽골의 대칸으로 선포되면서 몽골 제국이 성립되었다. 몽골 제국은 무역을 장려하고 보호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육로와 해로로 잇는 거대한 무역망(실크로드)이 형성되는 데 기여했다. 유라시아 각지에서 많은 기술과 정보가 교류하며 세계사의 전환기 중 하나가 되었다. 몽골 제국의 팽창으로 1221년 메르브, 헤라트, 니샤푸르가 파괴되었고, 1258년에는 바그다드가 함락 및 파괴되어 아바스 칼리파의 바그다드 시대가 종식되었다.

자바섬에서는 싱가사리 왕국이 일어나 쿠디리 왕국을 무너뜨렸지만, 쿠빌라이 칸의 원정군 파병으로 인해 내부 혼란에 빠져 멸망하였다. 그러나 원의 원정군은 내분 세력과 손을 잡았지만, 결국 배신당하고 자바섬에서 패퇴하였다(1292년, 마자파히트 왕국 성립). 12세기에 중국을 양분했던 남송은 원에 의해 멸망하였다. 일본도 두 차례에 걸친 원의 침공(원구)을 받았으나 이를 격퇴하였다.

2. 1. 칭기즈 칸의 등장과 몽골 제국의 성립

1206년 칭기스칸이 몽골의 대칸으로 선포되었다.[1] 칭기스칸은 몽골 제국을 세우고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지배하여 13세기는 '몽골의 시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몽골 제국은 무역을 장려하고 보호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육로와 해로로 잇는 거대한 무역망(실크로드)이 형성되는 데 기여하였다. 유라시아 각지에서 많은 기술과 정보가 교류하며 세계사의 전환기 중 하나가 되었다.

1227년 칭기즈칸 사망 당시 몽골 제국

2. 2. 몽골의 서방 원정과 유럽에 미친 영향

1237년부터 1240년까지 몽골 제국키예프 루스를 정복하였다.[7] 1241년에는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군을, 레그니차 전투에서 폴란드군을 격파하여 헝가리와 폴란드를 황폐화시켰다.

2. 3. 쿠빌라이 칸과 원나라

쿠빌라이 칸몽골 제국의 제5대 칸이자 원나라의 시조이다. 그는 1260년 칸의 자리에 올라 1294년 사망할 때까지 제국을 통치했다.[1]

1232년, 몽골군은 금나라의 수도 개봉을 포위하여 이듬해 함락시켰고[7], 1234년 금나라는 멸망했다. 1279년, 쿠빌라이 칸은 남송을 정복하여 중국 전체를 통일하고 원나라를 건국했다.

1293년, 쿠빌라이 칸은 자바 섬에 원정군을 파견했지만, 싱하사리 왕국을 공격하다가 격퇴당했다.[14]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났지만, 자바 섬에서는 마자파히트 왕국이 건국되는 계기가 되었다.

13세기는 칭기즈칸이 세운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했기 때문에 '''몽골의 시대'''라고 불린다. 몽골 제국은 무역을 장려하고 보호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육로와 해로로 잇는 거대한 무역망(실크로드)이 형성되는데 기여했다. 유라시아 각지에서 많은 기술과 정보가 교류하며 세계사의 전환기 중 하나가 되었다.

자바섬에서는 싱가사리 왕국이 동부에서 일어나 쿠디리 왕국을 무너뜨렸지만, 몽골 제국(원)의 쿠빌라이 칸의 원정군 파병으로 인해 내부 혼란에 빠져 멸망하였다. 그러나 원의 원정군은 내분 세력 중 일부와 손을 잡았지만, 결국 배신을 당하고 자바섬에서 패퇴했다.

2. 4. 몽골 제국의 분열과 쇠퇴

몽골 제국1206년 칭기즈칸이 몽골의 대칸으로 선포되면서 시작되었다. 칭기즈칸 사후 제국은 급속히 팽창했지만, 1258년 바그다드 함락 및 파괴로 아바스 칼리파의 바그다드 시대가 종식되는 등 정복 과정에서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다.[7] 몽골 제국은 1223년 칼카 강 전투에서 여러 러시아 공국들을 패배시켰고, 1237년부터 1240년까지는 키예프 루스를 정복했다. 1241년에는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 렬그니차 전투에서 폴란드를 패퇴시켜 헝가리와 폴란드를 황폐화시켰다.

1227년 칭기즈칸이 사망한 후, 제국은 여러 칸국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1232년 몽골군이 금나라의 수도 개봉을 포위하고 이듬해 함락시켰다. 1293년에는 원나라쿠빌라이 칸이 몽골의 자바 침공을 통해 싱하사리의 크르타네가라를 공격했지만 격퇴당했다.[14]

이러한 분열과 내부 갈등은 몽골 제국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2. 5. 팍스 몽골리카와 동서 문화 교류

칭기즈칸이 세운 몽골 제국은 무역을 장려하고 보호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육로와 해로로 잇는 거대한 무역망(실크로드)이 형성되도록 하였다. 유라시아 각지에서 많은 기술과 정보가 교류하며 세계사의 전환기 중 하나가 되었다.[13]

3. 십자군 전쟁의 쇠퇴와 중세 유럽의 변화

제4차 십자군(1202년~1204년)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라틴 제국이 들어서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1261년 비잔티움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했지만, 십자군 국가들의 쇠퇴는 계속되었다. 1268년 안티오키아가 이집트 군에게 함락되었고, 1289년 트리폴리 백국이 멸망했다. 1291년 맘루크 왕조가 아크를 함락시키면서 예루살렘 왕국도 멸망하여 팔레스타인 전역이 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제6차 십자군(1228년~1229년)에서 아이유브 왕조 술탄 알-카밀과의 협상을 통해 예루살렘을 양도받았으나, 10여 년 만에 다시 이슬람 세력에 함락되었다.

3. 1. 십자군 전쟁의 전개

제4차 십자군(1202년~1204년)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의 주도로 베네치아에 집결하였으나,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라틴 제국을 성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비잔티움 제국은 일시적으로 단절되었고, 1261년에 미카엘 8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할 때까지 니카이아 제국 등 망명 정권이 이어졌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제6차 십자군(1228년~1229년)에서 아이유브 왕조 술탄 알-카밀과의 협상을 통해 예루살렘을 양도받았으나, 10여 년 만에 다시 이슬람 세력에 함락되었다. 이후 레반트 지역의 십자군 국가는 쇠퇴하였고, 제9차 십자군 이후 1291년 마지막 거점 아크를 상실하며 예루살렘 왕국은 멸망, 팔레스타인 전역은 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3. 2. 십자군 국가들의 쇠퇴와 멸망

제4차 십자군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라틴 제국이 들어서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1261년 비잔티움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했지만, 십자군 국가들의 쇠퇴는 계속되었다. 1268년 안티오키아가 이집트 군에게 함락되었고, 1289년 트리폴리 백국이 멸망했다. 1291년 맘루크 왕조가 아크를 함락시키면서 예루살렘 왕국도 멸망하여 팔레스타인 전역이 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3. 3. 십자군 전쟁의 영향

제4차 십자군 전쟁(1202~1204)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로 이어져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전쟁으로 베네치아자다르를 점령하고 비잔티움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약탈하여 라틴 제국을 건설했다.[1] 1215년에는 존 왕이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여 왕권이 제한되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1240년에는 키예프 루스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동유럽의 정세가 크게 변화했다.

4. 중앙집권화의 시작과 근대 국가의 맹아

13세기에는 중앙집권화가 시작되고 근대 국가의 맹아가 나타났다.

1262년 구조약에 따라 아이슬란드가 노르웨이 지배하에 들어갔다.[4]

시칠리아 섬의 만종.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단절을 계기로 시칠리아 지배에서 지중해 제국 건설을 생각했던 샤를르 당주였지만, 그의 압제적인 지배에 대항하여 봉기한 시칠리아 섬 주민에 의해 그 꿈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림은 이 사건을 그린 조반니 빌라니의 『신연대기』의 삽화이다.







4. 1. 프랑스와 영국의 왕권 강화

1204년, 프랑스 왕 필리프 2세 아우구스투스가 앙주 가문의 손에서 노르망디를 빼앗아, 프랑스에서의 노르망인 지배가 종식되었다.[1] 1248년부터 1254년까지 진행된 제7차 십자군에서 프랑스 국왕 루이 9세는 이집트의 항구 도시 다미에타를 점령하였으나, 결국 포로로 잡힌 후 철군하였다.[2]

영국에서는 1202년 미르보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존과 브르타뉴 공작 아서 1세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후, 1290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국왕은 유대인 추방령을 발표하고 모든 유대인을 잉글랜드 왕국에서 추방하였다.[3]










4. 1. 1. 프랑스

프랑스 왕 필리프 2세는 앙주 가문으로부터 노르망디를 빼앗아, 프랑스 내 노르망인 지배를 종식시켰다.[1] 제7차 십자군에 참여했던 루이 9세는 이집트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결국 철군하였다.[2]

4. 1. 2. 영국

존 왕의 실정으로 1215년 귀족들이 왕에게 권한 제한을 요구하는 문서인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하게 하였다.[11] 이후, 헨리 3세와 시몽 드 몽포르 간의 대립이 있었고, 에드워드 1세는 의회 정치를 발전시켰다. 1290년에는 에드워드 1세유대인 추방령을 발표하여 모든 유대인을 잉글랜드 왕국에서 추방하였다.[12]

4. 2. 신성 로마 제국의 분열과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발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1212년 마인츠에서 로마 왕으로 즉위하고, 1220년에는 로마에서 황제 대관식을 치렀다. 그는 교황과 지속적으로 갈등했는데, 1226년부터 1250년까지는 제2차 롬바르드 동맹과의 분쟁을 겪었다. 파문당한 상태에서도 제6차 십자군을 이끌어 1228년부터 1229년까지 예루살렘십자군 국가에 반환시키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1228년부터 1230년까지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와 첫 번째 충돌을 겪는 등, 황제와 교황 간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약화와 함께 성장했다. 1223년 베네치아 공화국에서는 시뇨리아가 형성되어 총독, 소평의회, 콰란티아의 세 지도자로 구성된 통치 체제가 확립되었다.

5.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

1206년 칭기즈칸이 몽골 대칸으로 선포되면서[13] 동아시아 정세는 급변했다. 몽골은 금나라남송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고려일본까지 침략하는 등 대대적인 정복 전쟁을 벌였다.

1232년 몽골군은 개봉을 포위, 함락하여 금나라를 멸망시켰다.[7] 고려 역시 몽골의 침략을 받아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비록 일본은 두 차례의 의 침공(원구)을 막아냈지만,[14] 몽골의 등장은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5. 1. 고려와 몽골의 항쟁

1206년 칭기즈칸이 몽골의 대칸으로 선포되었다.[13] 몽골은 이후 고려를 침략하여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5. 2. 남송의 멸망과 원나라의 지배

1232년, 몽골군금나라의 수도 개봉을 포위하여 이듬해 함락시켰다.[7] 이로써 금나라는 몽골에 의해 멸망하였다. 남송은 몽골과 동맹을 맺어 금나라를 협공했지만, 이는 훗날 남송에게 더 큰 위협으로 작용했다.

1276년, 몽골군은 남송의 수도 임안을 함락시켰다. 육수부, 문천상 등은 어린 황제를 옹립하여 저항을 계속했지만, 1279년 애산 전투에서 남송의 잔존 세력마저 궤멸되었다. 이로써 남송은 완전히 멸망하고, 원나라가 중국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일본 역시 원나라의 침략(원구)을 두 차례 받았으나, 이를 모두 격퇴하였다.[14]

5. 3. 일본과 몽골의 침략 (원구)

일본은 두 차례에 걸친 의 침공('''원구''')을 받았으나 이를 격퇴하였다. 이 과정에서 호조 토키무네가 일본 측 지도자로 활약했다.

5. 3. 1. 문영의 역

1231년 몽골 제국고려를 침공하여 여러 차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241년에는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를, 레그니차 전투에서 폴란드를 패배시켜 헝가리와 폴란드는 황폐화되었다. 1293년 쿠빌라이 칸은 자바 섬을 침공했지만 격퇴당했다.[14]

5. 3. 2. 홍안의 역

1274년1281년 두 차례에 걸쳐 몽골 제국일본을 침공했다. 이를 홍안의 역이라 부른다.[14]

일본은 호조 토키무네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섰다. 타케자키 스에나가와 같은 고케닌(무사)들은 몽골군에 맞서 싸웠고, 그 모습은 『몽골습래회사』에 기록되었다.[14]

6. 기타 지역의 역사

1202년 피보나치가 Liber Abacila를 통해 유럽에 아라비아 숫자를 소개하였다.[15] 같은 해 조지아 왕국과 셀주크 투르크 사이에 바시안 전투가, 브르타뉴 공작 아서 1세와 잉글랜드의 존 사이에 미르보 전투가 발생하였다.

1204년 제4차 십자군베네치아를 위해 자다르를 점령하고 비잔티움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약탈하여 라틴 제국을 건설하였다. 같은 해 프랑스 왕 필리프 2세 아우구스투스가 앙주 가문의 손에서 노르망디를 빼앗아, 프랑스에서의 노르망인 지배가 종식되었다.

1209년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프란체스코회를 설립하고, 교황 인노첸시오 3세알비 십자군을 선포하였다.

1220년 마풍구부 왕국이 건국되었고, 프리드리히 2세가 로마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1222년 헝가리의 안드라스 2세가 황금칙서에 서명하여 헝가리 귀족의 특권을 확인했다.

1223년 베네치아 공화국시뇨리아가 형성되었고, 총독, 소평의회, 콰란티아의 세 지도자로 구성되었다.

1225년 쩐타이통 황제가 즉위하면서 베트남의 쩐 왕조가 건국되었다.

1226년–1250년 제2차 롬바르드 동맹과 프리드리히 2세 황제 사이의 분쟁이 있었다.

1228년–1229년 파문당한 프리드리히 2세 황제가 이끄는 제6차 십자군으로, 이집트 술탄 알-카밀과의 협상을 통해 예루살렘십자군 국가에 반환되었다.

1231년 프리드리히 2세 황제가 멜피 헌장을 공포하였다.[7][8]

1237년 프리드리히 2세 황제가 코르테누오바 전투에서 제2차 롬바르디아 동맹의 군대를 사실상 궤멸시켰다.

1244년 아이유브 왕조와 1231년부터 1246년 사이의 호라즘 군대가 라 포르비 전투에서 십자군과 그들의 아랍 동맹군을 패퇴시켰다.

1249년 아폰수 3세가 포르투갈의 알가르브를 정복하면서 무어인(알-안달루스)에 대한 포르투갈의 레콩키스타가 종결되었다.

1248년1254년 제7차 십자군이 이집트의 아이유브 왕조 항구 도시 다미에타를 점령했지만, 프랑스 국왕 루이 9세가 포로로 잡힌 후 결국 철군하였다. 마멜루크가 아이유브 왕조를 멸망시켰다.

1250년경, 무역을 통해 펜사콜라 문화가 해안 콜스 크릭 문화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10]

1261년 비잔티움 제국의 미카엘 8세가 십자군베네치아로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였다.

1262년 구조약에 따라 아이슬란드노르웨이 지배하에 들어갔다.

1265년 도미니크 수도회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을 쓰기 시작하였다.

1272년1274년 리옹 공의회(제2차)에서 동로마 제국의 교회와 로마 교회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1277년 주교 템피에르에 의해 파리 사상규탄 중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 통과되어 여러 아리스토텔레스적 명제들이 금지되었다.

1282년 시칠리아 섬의 만종 사건 이후 아라곤 왕국시칠리아 섬을 얻었다.

1284년 엘리 주교 휴고 드 발샴에 의해 케임브리지 피터하우스 대학이 설립되었다.

1290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국왕이 유대인 추방령을 발표하고 모든 유대인을 잉글랜드 왕국에서 추방하였다.

1291년 우리주, 슈비츠, 운터발덴이 연합하여 스위스 연방이 형성되었다.

1296년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1297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마조르 콘세지오'' 또는 베네치아 대평의회의 회원 자격이 확정되고, 향후 명단에 이름이 기록된 가문만이 회원이 될 수 있도록 제한되었다.

1299년 오스만 1세에 의해 오스만 제국이 건국되었다.

1300년 투르쿠 대성당이 투르쿠에서 봉헌되었다.[15] 같은 해 스리 라자무라 루마야가 필리핀 제도의 세부 섬에 인도화된 세부 라자나테를 건국했다.

6. 1. 동남아시아

1233년 간터 전투에서 켄 아록이 케디리의 마지막 왕 커르타자야를 물리치고 싱하사리 왕국을 건설하였다.[9] 켄 아록은 이샤나 왕조의 통치를 끝내고 자신의 라자사 왕조를 시작하였다. 1238년 수코타이수코타이 왕국의 첫 수도가 되었다.

1292년 케디리의 공작 자야카트왕이 반란을 일으켜 크르타네가라를 죽이고 싱하사리 왕국을 멸망시켰다. 같은 해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페르시아로 가는 항해 중 수마트라를 방문하여 수마트라 북부에 페를렉, 사무드라 및 람브리 등 6개의 무역항이 있었다고 보고한다.[13] 1293년 원나라쿠빌라이 칸이 싱하사리의 크르타네가라를 공격하지만 격퇴당한다.[14] 같은 해 11월 10일, 나라리아 상그라마위자야의 즉위식이 거행되며 자바 동부에 힌두교 왕국인 마자파히트가 건국된다. 1300년 이슬람교가 아체 지역에 확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아지 바타라 아궁 데와 삭티가 테피안 바투 또는 쿠타이 라마에 쿠타이 카르타네가라 왕국(쿠타이 술탄국)을 건국한다.

마자파히트 왕국 초대 왕 라덴 위자야(쿨타라자사 자야왈다나)의 초상을 기반으로 한 하리하라(시바비슈누의 집합신) 상.

6. 2. 남아시아


  • 1204년: 박티야르 칼지가 벵골을 이슬람화하고 동인도에서 불교를 탄압하였다.[1]
  • 1206년: 맘루크 왕조가 인도 북부에 델리 술탄국을 세웠다.[1]
  • 1210년: 델리 술탄국의 초대 통치자 꾸뜨브웃딘 아이박이 라호르에서 폴로와 유사한 경기인 초브간을 하던 중 말에서 떨어져 사망하였다.[1]
  • 1216년: 마라바르만 순다라 판디안이 남인도에서 판디아 왕조를 재건하였다.[1]
  • 1258년: 자타바르만 순다라 판디얀 1세 황제가 인도 동부와 스리랑카 북부를 침공하였다.[1]
  • 킬지 왕조가 델리의 맘루크 왕조를 무너뜨렸다.[1]
  • 쿠틉 미나르는 노예 왕조의 아이바크가 13세기 초 델리에 세운 인도 최고의 미나렛이다. 후대에 일부 파손되었으나,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72.5m 높이를 자랑한다.[1]

쿠투브 미나르. 노예 왕조의 아이바크에 의해 13세기 초에 델리에 세워진 인도 최고의 미나렛으로, 후세에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72.5m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 오리사는 이 시기 이슬람교도 노예 왕조와 힌두교도 동간가 왕조가 격돌하는 무대였다. 동간가 왕조의 나라싱하 데바 1세는 코나라크의 수르야 사원에 바퀴 디자인의 기단을 세웠다.[1]

6. 3.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1206년 맘루크 왕조에 의해 인도 북부에 델리 술탄국이 건설되었다.[1] 1210년 델리 술탄국의 초대 통치자 쿠투브딘 아이바크는 라호르에서 폴로와 비슷한 초브간을 하던 중 말에서 떨어져 안장 손잡이에 갈비뼈가 찔려 즉사하였다.[1]

1258년 몽골바그다드를 함락 및 파괴하여 아바스 칼리파의 바그다드 시대를 종식시켰다.[1] 1221년 몽골 제국은 콰레즘 샤 왕조 정복 과정에서 메르브, 헤라트, 니샤푸르를 파괴했다.[1] 자랄루딘은 인더스 강변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도 몽골에 계속 저항하였다.[1] 1223년 몽골 제국은 칼카 강 전투에서 여러 러시아 공국들을 패배시켰다.[1]

1260년 몽골은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맘루크(이집트)에게 처음으로 크게 패배하였다.[1] 1250년 이집트에 맘루크 왕조가 건국되었다.[1]

이븐 알나피스는 의학 저술을 남겼다.[1] 1206년 알자자리는 『정교한 기계 장치에 관한 지식의 책』을 저술하여 오토마타 기술을 구사한 "코끼리 시계" 등을 소개했다.[1] 루미에 의해 수피즘이라 불리는 이슬람 신비주의가 대성되었다.[1]

6. 4. 동유럽과 러시아

1202년 리가에 리보니아 검의 기사단이 창설되었다.[15]

1205년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칼로얀 아센이 이끄는 불가리아 제국군이 라틴 제국군에 대승하여 라틴 황제 보두앵 1세가 포로가 되었다.

1216년 러시아 여러 공국 간의 리피차 전투(Battle of Lipitsa)가 벌어졌다.

1222년 헝가리의 안드라스 2세가 헝가리 귀족의 특권을 확인하는 황금칙서에 서명했다.

1223년 몽골 제국이 칼카 강 전투에서 여러 러시아 공국들을 패배시켰고, 같은 해 볼가 불가리아는 사마라 굽이 전투에서 몽골 제국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1227년 리보니아 원정 기간 동안 에스토니아인들이 마침내 독일 십자군 지배하에 복속되었다.[15]

1237년1240년 몽골 제국키예프 루스를 정복하였다.

1240년 러시아군이 네바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패퇴시켰다.[15]

1241년 몽골 제국이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 레그니차 전투에서 폴란드를 패퇴시켜 헝가리와 폴란드는 황폐화되었다.

1242년 러시아군이 페추스 호수 전투에서 튜턴 기사단을 패퇴시켰다.[15]

빙상의 전투. 「네바 강의 승리자」로서 스웨덴군을 격파한 노브고로드 공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1242년에는 새로운 적 독일 기사단을 얼어붙은 추드 호수에서 맞아 싸워 용맹함을 떨쳤다. 그림은 20세기에 만들어진 「빙상의 전투」 모자이크화이다.

7. 문화와 사상

13세기에는 스콜라 철학이 발전하고, 서양 음악에서는 아르스 안티콰 전통의 모테트 형식이 나타났다. 유럽에서는 사본 문화가 발전하면서 책의 중심지가 수도원에서 도시로 이동했고, 이탈리아와 파리 대학교에서는 책 복사를 위한 페키아 시스템이 발전했다. 1298년 중국에서는 관리 왕전이 목판 활자 인쇄를 발명했다.

7. 1. 스콜라 철학의 발전

1265년 도미니크회 수도자이자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을 쓰기 시작했다.[11]

7. 2. 과학 기술의 발전

13세기 초, 남송의 화가 샤 구이는 '초가집에서 바라본 12경치'를 그렸다. 이 그림은 현재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넬슨-애킨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17] 서양 음악에서는 아르스 안티콰 전통의 모테트 형식이 나타났다. 유럽에서는 사본 문화가 발전하면서 책의 중심지가 수도원에서 도시로 이동했다. 이탈리아 대학 도시에서는 책 복사를 위한 페키아 시스템이 발전했고, 13세기 중반에는 파리 대학교에서도 이를 채택했다. 1298년 중국에서는 관리 왕전이 목판 활자 인쇄를 발명했다. 전쟁에 사용하기 위한 최초의 로켓, 지뢰, 권총이 중국에서 제작되었다. 또한 중국은 이슬람 세계로부터 풍차를 받아들였다. 남송 시대에는 관요 꽃병이 제작되었는데, 이는 현재 런던 중국미술 퍼시벌 데이비드 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1250년경 메사 베르데의 클리프 팰리스를 비롯한 선조 푸에블로 건축 단지가 절정에 달했다.[17] 1280년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안경이 발명되었다. 13세기 후반 가마쿠라 시대에 제작된 '산조궁 야습'은 현재 보스턴 미술관에, 래이고 삼폭 병풍 '아미타 삼존 하강'은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시기에는 신아람어 계열 언어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7. 3. 문학과 예술



모테트 형식이 아르스 안티콰 전통의 서유럽 음악에서 유래되었다. 유럽 도시에서 사본 문화가 발전하여, 책의 중심지가 수도원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변화를 보였다. 이탈리아 대학 도시에서 책 복사의 페키아 시스템이 발전하여, 13세기 중반 파리 대학교에서도 채택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스콜라 학파를 대표하는 도미니코 수도회 신학자로, 『신학대전』을 집대성하여 「천사 박사」라는 칭호를 얻었다.


13세기 초, 샤 구이가 남송 시대에 '초가집에서 바라본 12경치'를 그렸다. 이 그림은 현재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넬슨-애킨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280년대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안경이 발명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문화 교류. 알폰소 10세 시대에 편찬된 『성모 마리아 찬가집(Cantigas de Santa Maria)』 삽화에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의 합주가 그려져 있다.


13세기 후반, 가마쿠라 시대에 제작된 '산조궁 야습'은 현재 보스턴 미술관에, '아미타 삼존 하강'은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아람어 계열 언어가 이 세기 동안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8. 주요 인물

칭기스 칸, 쿠빌라이, 토마스 아퀴나스, 에드워드 1세 등 13세기를 대표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있었다. 13세기는 칭기즈칸이 세운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했기 때문에 '''몽골의 시대'''라고 불린다.[9] 몽골 제국은 무역을 장려하고 보호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육로와 해로로 잇는 거대한 무역망(실크로드)이 형성되었다. 유라시아 각지에서 많은 기술과 정보가 교류하며 세계사의 전환기 중 하나가 되었다.

자바섬에서는 싱가사리 왕국이 동부에서 일어나 쿠디리 왕국을 무너뜨렸지만, 원나라 쿠빌라이의 원정군 파병으로 인해 내부 혼란에 빠져 멸망하였다. 그러나 원의 원정군도 내분 세력 중 일부와 손을 잡았지만, 결국 배신을 당하고 자바섬에서 패퇴한다(1292년, 마자파히트 왕국 성립).[9] 12세기에 중국을 양분했던 금과 남송은 원에 의해 멸망하였다. 또한 일본도 두 차례에 걸친 원의 침공('''원구''')을 받았으나 이를 격퇴하였다.[9]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콜라 학파를 대표하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신학자로, 이성과 신앙을 잇는 장대한 저서 『신학대전』을 집대성하여 「천사 박사」라는 칭호를 얻었다.[10]

8. 1. 정치, 군사 지도자

13세기에는 여러 나라에서 뛰어난 정치, 군사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8. 1. 1. 몽골 제국

1206년 칭기스 칸이 몽골의 대칸으로 선포되면서 몽골 제국이 시작되었다.[9] 몽골 제국은 무역을 장려하고 보호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육로와 해로로 잇는 거대한 무역망(실크로드)이 형성되었다. 유라시아 각지에서 많은 기술과 정보가 교류하며 세계사의 전환기 중 하나가 되었다.

몽골 제국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이름설명
칭기스 칸몽골 제국의 창시자(1162년 - 1227년)[9]
바투
쿠빌라이몽골 제국 제 5대칸, 원 세조(1215년 - 1294년)
바이바르스



1221년 몽골 제국은 콰레즘 샤 왕조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메르브, 헤라트, 니샤푸르를 파괴했다.[9] 1223년에는 칼카 강 전투에서 여러 러시아 공국들을 패배시켰으나,[9] 볼가 불가리아에게 사마라 굽이 전투에서 패배하기도 했다.[9] 1227년 칭기즈칸이 사망했다.[9]

1232년 몽골군은 개봉 포위전에서 금나라의 수도 개봉을 포위하여 이듬해 함락시켰다.[9] 1237년부터 1240년까지는 키예프 루스를 정복했다.[9] 1241년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 레그니차 전투에서 폴란드를 패퇴시켰으며, 헝가리와 폴란드는 황폐화되었다.[9]

1258년 몽골은 바그다드를 함락 및 파괴하여 아바스 칼리파의 바그다드 시대를 종식시켰다.[9]

8. 1. 2. 유럽

프리드리히 2세1212년 마인츠에서 로마 왕으로 즉위하고, 1220년에는 로마에서 대관식을 치렀다.[7][8] 1228년부터 1229년에는 파문당한 상태에서 제6차 십자군을 이끌고 이집트 술탄 알-카밀과의 협상을 통해 예루살렘십자군 국가에 반환받았다. 1231년에는 멜피 헌장을 공포하여 대륙 유럽 국가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7][8] 1250년 12월 13일에 사망했다.

루이 9세는 1248년부터 1254년까지 제7차 십자군을 이끌었으나 이집트에서 포로로 잡혀 결국 철군했다. 1259년에는 잉글랜드의 헨리 3세와 파리 조약을 체결했다.

에드워드 1세는 1271년 아크레에 도착하여 제9차 십자군을 시작했다. 1290년에는 유대인 추방령을 발표하여 모든 유대인을 잉글랜드 왕국에서 추방했다.

8. 1. 3. 고려

8. 1. 4. 일본

호조 도키무네가마쿠라 막부집권으로, 두 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략(원구)을 격퇴한 일본 측 지도자였다. 승려 일편과 가마쿠라 칠구 중 하나인 고부쿠사카(현재의 쿄후쿠로자카)에서 대면하는 모습이 『일편상인영이』에 묘사되어 있다.[14]

8. 2. 종교, 사상가

토마스 아퀴나스(1225년-1274년)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신학자로, 1265년부터 『신학대전』을 쓰기 시작했다.[10]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1209년에 프란체스코회를 설립하였다.

참조

[1] 웹사이트 Samudra Pasai worthy to be world historical site https://republika.co[...] 2020-01-24
[2] 서적 The Indianized States of Southeast Asia University of Hawaii Press
[3] 웹사이트 St. Thomas Aquinas https://www.newadven[...] 2023-12-09
[4] 서적 Western Civilization: A Concise History NSCC Libraries Pressbooks
[5] 서적 Korea and East Asia: The Story of a Phoenix https://books.google[...] Greenwood Publishing Group
[6] 웹사이트 Greater London, Inner London Population & Density History http://www.demograph[...] 2023-02-10
[7] 서적 The Emperor Frederick II of Hohenstaufen: Immuntator Mundi Oxford
[8] 서적 Frederick the Second, 1194–1250 https://archive.org/[...] Frederick Ungar
[9] 백과사전 Ken Angrok https://www.britanni[...] 2010-07-25
[10] 학술지 The spread of shell-tempered ceramics along the northern coast of the Gulf of Mexico http://www.coastalen[...]
[11] 서적 Empire of steppes, Wars in Japan, Indochina and Java https://archive.org/[...] Rutgers University Press
[12] 서적 Modern Times https://books.google[...] Brill Archive 1981-12-31
[13] 웹사이트 History of Aceh http://www.indonesia[...]
[14] 서적 Genghis khan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Random House
[15] 웹사이트 Kenelle kellot soivat? – Kiipeä 360-videon avulla Turun tuomiokirkon torniin https://yle.fi/a/3-9[...] 2023-02-10
[16] 웹사이트 Qutb Minar and its Monuments, Delhi https://whc.unesco.o[...] 2023-02-10
[17]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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