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무라 유키아키
1. 개요
다무라 유키아키는 이치노세키 번의 8대 번주 다무라 쿠니유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문을 상속받았으며, 센다이 번의 다테 요시쿠니의 양자가 되면서 다테 쓰네무라, 이후 다테 모치무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1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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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명 | 다무라 씨 → 다테 씨 |
|---|---|
| 이름 | 다무라 쓰우아키/다테 시게무라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 출생 | 가에이 3년 6월 8일 (1850년7월 16일) |
| 사망 | 게이오 3년 6월 16일 (1867년7월 17일) |
| 개명 | 이와지로 (유명), 다무라 쓰우아키, 다테 요오손, 시게무라 |
| 별명 | 소지로, 도오지로 (통칭) |
| 묘소 | 미야기현센다이시다이하쿠구의 다이넨지 |
| 관위 | 종4위하・시종, 미마사카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사다 → 이에모치 |
| 번 | 무쓰이치노세키 번 번주 → 무쓰 센다이 번 세자 |
| 부모 | 아버지: 다무라 구니유키, 어머니: 오카다 씨의 딸, 메 양아버지: 다테 요시쿠니 |
| 자녀 | 양자: 구니히데 |
| 전임 | 다무라 구니미치 |
|---|---|
| 후임 | 다무라 구니요시 |
| 직책 | 이치노세키 번 번주 |
| 대수 | 9 |
| 임기 | 1857년 ~ 186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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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노세키번주 -
다테 무네카쓰 (에도 시대)
다테 무네카쓰는 에도 시대 센다이 번 초대 번주 다테 마사무네의 아들로, 형의 사후 번주를 보좌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다테 소동으로 인해 개역되어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
이치노세키번주 -
다무라 구니미치
에도 시대 이치노세키 번의 8대 번주인 다무라 구니미치는 번교 재흥, 의학관 및 신세이칸 설립, 서양식 군대 도입 등 번정 개혁을 추진하여 명군으로 칭송받았다. -
이치노세키 다무라가 -
다무라 구니미치
에도 시대 이치노세키 번의 8대 번주인 다무라 구니미치는 번교 재흥, 의학관 및 신세이칸 설립, 서양식 군대 도입 등 번정 개혁을 추진하여 명군으로 칭송받았다. -
이치노세키 다무라가 -
다무라 다카아키 (1858년)
다무라 다카아키는 일본 무쓰 이시카와 가문 출신으로 보신 전쟁 후 이치노세키 번을 상속받아 메이지 시대에 지한사와 경시방어용걸을 역임했으나 은거 후 형이 가독을 이었다. -
센다이 다테가 -
다테 마사무네
다테 마사무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이며 센다이 번의 초대 번주로, '독안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슈 지역을 장악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복속, 임진왜란과 오사카 전투에 참전, 센다이 번 건설과 스페인과의 통상 추진, 문화 예술에도 힘썼다. -
센다이 다테가 -
센다이성
센다이성은 다테 마사무네가 축성한 산성으로, 아오바성이라고도 불리며 다테 가문의 거성이자 무쓰국의 행정 중심지였으나, 메이지 시대 이후 파괴되어 현재는 일부 복원되어 국사적 및 일본 100대 명성으로 지정되었다.
2. 생애
가에이 3년(1850년) 6월 8일, 8대 번주 다무라 쿠니유키의 장남으로 이치노세키 관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이와지로(磐二郎)였다.
안세이 4년(1857년) 5월 12일, 아버지 다무라 쿠니유키의 사망으로 다무라 가문의 가독을 상속받았다. 만엔 원년(1860년) 분가인 깃본 다무라 아키마사(田村顕彰)에게 추가로 내분분지를 주어 그의 가록을 2000석으로 늘렸다.
분큐 3년(1863년), 후계자가 없던 종가인 무쓰 센다이 번 주 다테 요시쿠니의 양자가 되면서, 급히 이치노세키 번 주 다무라 가문의 가독을 물려줄 양자를 맞이할 필요에 몰렸다. 처음에는 일문인 와타리 다테가 당주 다테 쿠니나리를 맞이하려 했으나, 와타리의 가로 다무라 아키마사(田村顕允/常盤顕允)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포기하고, 대신 같은 일문인 무쓰 이시카와 요시미쓰의 7남인 케이노신(啓之進)을 맞이했다. 이가 10대 번주 다무라 쿠니사다이다.
10월 9일, 쓰네아키(通顕)는 요시쿠니(慶邦)의 양자가 되어 다테 쓰네무라(伊達庸村)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고(요시쿠니(慶邦)의 이름인 코지무라(寿村)에서 '무라(村)' 한 글자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19일, 14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에게 오메미(御目見)하고, 偏諱를 받아 다테 모치무라(伊達茂村)로 개명하였다. 종사위하(従四位下)·시종(侍従)·미사쿠노카미(美作守)에 서임되었지만, 다테 모치무라(伊達茂村)는 다테 요시쿠니(伊達慶邦)보다 먼저 게이오 3년(1867년) 6월 16일 에도의 하마야시키(浜屋敷)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18세였다.
2.1. 이치노세키 번주 가문 시절
가에이 3년(1850년) 6월 8일, 8대 번주 다무라 쿠니유키의 장남으로 이치노세키 관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이와지로(磐二郎)였다.
안세이 4년(1857년) 5월 12일, 아버지 다무라 쿠니유키의 사망으로 다무라 가문의 가독을 상속받았다. 만엔 원년(1860년) 분가인 깃본 다무라 아키마사(田村顕彰)에게 추가로 내분분지를 주어 그의 가록을 2000석으로 늘렸다.
분큐 3년(1863년), 후계자가 없던 종가인 무쓰 센다이 번 주 다테 요시쿠니의 양자가 되면서, 급히 이치노세키 번 주 다무라 가문의 가독을 물려줄 양자를 맞이할 필요에 몰렸다. 처음에는 일문인 와타리 다테가 당주 다테 쿠니나리를 맞이하려 했으나, 와타리의 가로 다무라 아키마사(田村顕允/常盤顕允)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포기하고, 대신 같은 일문인 무쓰 이시카와 요시미쓰의 7남인 케이노신(啓之進)을 맞이했다. 이가 10대 번주 다무라 쿠니사다이다.
2.2. 센다이번 양자 입적
안세이 4년(1857년) 5월 12일, 아버지 다무라 구니유키(田村邦行)의 사망으로 다무라 가문의 가독을 상속받았다. 만엔 원년(1860년) 분가인 깃본 다무라 아키마사(田村顕彰)에게 추가로 영지를 주어 그의 가로쿠를 2000석으로 늘렸다.
분큐 3년(1863년), 후계자가 없던 센다이번(仙台藩)주 다테 요시쿠니(伊達慶邦)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급히 이치노세키번(一関藩) 주 다무라 가문의 가독을 물려줄 양자를 맞이해야 했는데, 처음에는 와타리 다테 가문의 다테 구니나리(伊達邦成)를 맞이하려 했으나 와타리의 가로 다무라 아키마사(田村顕允/常盤顕允) 등의 반발로 포기하고, 대신 이시카와 요시미쓰(石川義光)의 7남인 케이노신(啓之進)을 다무라 구니사다(田村邦栄)로 맞이했다.
10월 9일, 요시쿠니(慶邦)의 양자가 되어 다테 쓰네무라(伊達庸村)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고(요시쿠니(慶邦)의 이름인 코지무라(寿村)에서 '무라(村)' 한 글자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19일, 14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에게 오메미(御目見)하고, 偏諱를 받아 다테 모치무라(伊達茂村)로 개명하였다. 종사위하(従四位下)·시종(侍従)·미사쿠노카미(美作守)에 서임되었지만, 다테 모치무라(伊達茂村)는 다테 요시쿠니(伊達慶邦)보다 먼저 게이오 3년(1867년) 6월 16일 에도의 하마야시키(浜屋敷)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18세였다.
2.3. 사망
안세이 4년(1857년) 5월 12일, 아버지 구니유키(邦行)의 사망으로 다무라 가문의 가독을 상속받았다. 만엔 원년(1860년) 분가인 깃본 다무라 아키마사(田村顕彰)에게 추가로 내분분지(内分分知)를 주어 그의 가로쿠를 2000석으로 늘렸다.
분큐 3년(1863년), 후계자가 없던 종가인 무쓰(陸奥) 센다이 번 주 요시쿠니(伊達慶邦)의 양자가 되면서, 급히 이치노세키 번 주 다무라 가문의 가독을 물려줄 양자를 맞이할 필요에 몰렸다.
모치무라(茂村)는 요시쿠니(慶邦)보다 먼저 게이오 3년(1867년) 6월 16일 에도의 하마야시키(浜屋敷)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18세였다.
3. 가계
* 다무라 쿠니유키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오카다씨이다.
* 다테 요시쿠니를 양아버지로 두었다.
* 이시카와 요시미쓰의 아홉째 아들인 다무라 쿠니사다를 양자로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