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디 토마소
1. 개요
다비드 디 토마소는 프랑스의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AS 모나코에서 프로 데뷔하여 리그 1 우승을 경험했으며, CS 스당 아르덴, FC 위트레흐트에서 뛰었다. 위트레흐트에서는 팬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프랑스 U-17, U-21 대표팀으로 활약했으며, 2005년 심정지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사망 이후 FC 위트레흐트는 등번호 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고, 매년 올해의 선수에게 "디 토마소 트로피"를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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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다비드 디 엘리아 알레무 토마소 |
|---|---|
| 출생일 | 1979년 10월 6일 |
| 출생지 | 에시롤 |
| 사망일 | 2005년 11월 29일 |
| 사망지 | 데메른 |
| 키 | 1.83m |
| 포지션 | 중앙 수비수 |
| 유소년 클럽 | 1992–1994: 에시롤 1994–1995: SC 그르노블 |
|---|---|
| 프로 클럽 | 1995–2001: 모나코 (14경기, 0골) 2001–2004: 스당 (77경기, 2골) 2004–2005: 위트레흐트 (44경기, 1골) |
| 총 출장 및 득점 | 135경기, 3골 |
| 청소년 국가대표 | 1996–1997: 프랑스 U-17 (5경기, 0골) 1999–2002: 프랑스 U-21 (8경기, 0골) |
|---|
| 메달 | 남자 축구 |
|---|---|
| 대회 | UEFA 유럽 U-21 축구 선수권 대회 |
| 결과 | 준우승 (2002년 스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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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1의 축구 선수 -
조지 웨아
조지 웨아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이자 전 축구 선수이며, 선수 은퇴 후에는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
리그 1의 축구 선수 -
에마뉘엘 프티
에마뉘엘 프티는 프랑스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AS 모나코, 아스널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등에서 뛰었고, 특히 아스널과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요 우승을 차지했으며, 은퇴 후 축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
2005년 사망 -
윌리엄 렌퀴스트
윌리엄 렌퀴스트는 미국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보수주의 성향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좁은 해석, 연방 정부 권한 축소 및 주 정부 권한 확대를 주장했으며, `부시 대 고어` 사건과 빌 클린턴 탄핵 재판에 관여했다. -
2005년 사망 -
잭 킬비
잭 킬비는 미국의 전자 공학 기술자이자 집적 회로의 공동 발명가로, 1958년 단일 반도체 재료에 회로 부품을 집적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1959년 최초의 집적 회로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으며,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심근 경색으로 죽은 사람 -
에드먼드 힐러리
에드먼드 힐러리는 1953년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등정하고, 남극과 북극을 모두 정복했으며, 히말라야 지역 셰르파족을 위한 자선 활동에도 헌신한 뉴질랜드의 등반가, 탐험가, 자선가이다. -
심근 경색으로 죽은 사람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다비드 디 토마소는 프랑스의 AS 모나코 유소년 팀을 거쳐 1998년 1군에 합류하며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모나코 소속으로 리그 1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후 CS 스당 아르덴으로 이적하여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이 시기 프랑스 U-21 대표팀에 발탁되어 2002년 UEFA U-21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FC 위트레흐트로 이적하여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하며 팬들의 인정을 받았다.
2.1. AS 모나코 (1998-2001)
디 토마소는 1998-99 시즌에 모나코 1군으로 승격되었다. 그는 1999년 1월 16일, 클로드 퓌엘 감독 아래에서 랑스와의 경기에서 후반에 욘 아르네 리세와 교체되어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 이후, 줄리앙 로드리게스와 함께 파리 생제르맹, 르 아브르, 스타드 렌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총 4경기를 소화했다. 그는 리그 1 1999-00 시즌 우승팀의 일원이었다. 이후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했으며, 프랑스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2.2. CS 스당 아르덴 (2001-2004)
디 토마소는 2001년 스당으로 이적했다. 그는 2001-02 시즌에 24경기에 출전했다. 2002년에는 부상당한 줄리앙 에스퀴데를 대신하여 프랑스 U-21 대표팀에 발탁되어 포르투갈과의 경기에 나섰다. 그는 대표팀 소속으로 2002년 UEFA U-21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경험했다.
2002-03 시즌은 디 토마소에게 좋은 시작을 알렸다. 2002년 10월 6일 보르도와의 원정 경기에서 개인 통산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2-2 무승부에 기여했다. 하지만 시즌은 곧 강등권 싸움으로 이어졌고, 스당은 부진을 면치 못하며 리그 1 19위로 시즌을 마감, 결국 강등되었다.
리그 2에서 맞이한 2003-04 시즌에도 디 토마소는 주전 자리를 지키며 26경기에 출전했다. 이 시즌 동안 샤모아 니오르테와의 경기에서 즉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2004년 3월 27일 아미앵과의 경기에서는 양 팀 합쳐 3장의 레드 카드가 나오는 거친 경기 속에서 개인 통산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디 토마소는 팀이 리그 5위를 기록하는 데 기여한 뒤 클럽을 떠났다.
2.3. FC 위트레흐트 (2004-2005)
2004년, 디 토마소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클럽 FC 위트레흐트에 합류했다. 그는 일본 클럽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한 파트리크 스바안스바이크의 후계자로 여겨졌다. 디 토마소는 이적 즉시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2004-05 시즌에 리그 31경기에 출전했다. 첫 시즌 활약을 바탕으로 팬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2005-06 시즌에도 꾸준히 선발로 출전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2005년 11월 27일, 위트레흐트의 주요 라이벌 중 하나인 AFC 아약스와의 경기였으며, 이 경기에서 위트레흐트는 1-0으로 승리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프랑스 U-17 대표팀과 U-21 대표팀 경력이 있다. 1996년에는 UEFA U-17 유럽 선수권 대회(당시 U-16)에, 2002년에는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4. 갑작스러운 죽음과 추모
2005년 11월 29일, 디 토마소는 네덜란드 데 메언에 있는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사망했다. 이틀 뒤 실시된 부검 결과 사인은 심정지로 밝혀졌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남겼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2005년 12월 1일 FC 위트레흐트의 홈구장인 스타디온 갈겐waard에서 추모식이 열렸고, 최소 14,000명의 팬들이 참석했다. 얀 빌렘 반 도프 회장, 푸케 보위 감독, 주장 장 폴 드 용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디 토마소의 친척들과 위트레흐트 선수단 외에도 클럽의 모든 유소년 팀 선수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위트레흐트는 디 토마소가 사용했던 등번호 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전 소속팀이었던 스타드 드 랭스와 스당 아르덴 역시 디 토마소가 각 클럽에서 사용했던 등번호 29번을 영구 결번 처리한다고 밝혔다.
사망 후 첫 리그 경기였던 2005년 12월 11일 FC 흐로닝언과의 원정 경기에서도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 흐로닝언 팬들을 포함한 경기장의 많은 관중이 검은 옷을 입고 참석했으며, 경기 시작 전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2007년 3월 23일에는 스타디온 갈겐waard에서 "다비드 디 토마소 기념 경기"가 열렸다. 위트레흐트와 디 토마소의 전 소속팀인 AS 모나코가 경기를 치렀으며, 수익금 전액은 그의 유족에게 전달되었다. 모나코 시절 팀 동료이자 절친이었던 가엘 지베와 세바스티앵 스킬라치가 이 자선 행사를 주도했으며, 지베는 파비앵 바르테즈, 사무엘 에토,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등 유명 선수들의 유니폼을 모아 경매에 부쳐 수익금을 보탰다.
2013년 5월 12일, 스타디온 갈겐waard의 서포터 스탠드인 "분니크사이드(Bunnikside)" 입구 위에 그의 흉상이 세워져 영구적으로 그를 기리게 되었다.
또한, 2006년부터 FC 위트레흐트의 올해의 선수상은 다비드 디 토마소를 기리기 위해 "디 토마소 트로피(Di Tommaso Trophy)"로 명명되었고, 팬들의 투표로 수상자가 결정된다.
5.1. 클럽
모나코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1999-00 시즌에는 리그 1 우승을 달성했으며, 2000년에는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컵도 들어 올렸다.
2001년, CS 스당 아르덴으로 이적했다.
2004년에는 네덜란드의 FC 위트레흐트로 팀을 옮겼다. 이적 첫 해부터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2004년 요한 크루이프 실드 우승에 기여했고, 시즌 종료 후에는 팬들이 뽑은 팀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5년 11월 27일 아약스와의 경기가 그의 마지막 공식 경기가 되었다.
6. 기타
2005년 12월 1일, 디 토마소를 기리기 위해 스타디온 갈겐waard에서 지지자들의 추모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최소 14,000명의 팬이 참석했으며, 얀 빌렘 반 도프 회장, 푸케 보위 코치, 장 폴 드 용 주장이 연설했다. 디 토마소의 친척들과 FC 위트레흐트 선수단 외에도 클럽의 모든 유소년 팀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FC 위트레흐트는 디 토마소가 사용했던 등번호 4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발표했다. 디 토마소의 전 소속팀인 랭스 역시 그가 클럽에서 뛰던 시절 사용했던 등번호 29번을 영구 결번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사망 이후 첫 리그 경기였던 2005년 12월 11일 FC 흐로닝언과의 경기에서도 디 토마소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정 팬을 포함한 대부분의 관중은 검은색 옷을 입고 경기장을 찾았으며, 경기 시작 전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2007년 3월 23일에는 스타디온 갈겐waard에서 "데이비드 디 토마소 기념 경기"가 열렸다. FC 위트레흐트는 프랑스 클럽 AS 모나코 FC와 경기를 치렀으며, 이 경기의 순수익은 디 토마소의 유족에게 전달되었다. 모나코 구단 역시 가엘 지베를 통해 파비앵 바르테즈, 사무엘 에토,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등 유명 선수들의 축구 유니폼을 모아 클럽 웹사이트에서 경매를 진행하며 기여했다.
2013년 5월 12일, 스타디온 갈겐waard의 유명 관중석인 "분니크사이드" 입구 위에 디 토마소의 흉상이 설치되어 영구적으로 그를 기리게 되었다.
또한, 2006년부터 FC 위트레흐트의 올해의 선수상은 데이비드 디 토마소를 기리기 위해 "디 토마소 트로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상은 팬들의 투표로 수상자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