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1. 개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창의적인 플레이와 뛰어난 기술로 평가받았다. 1995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여 91경기에서 27골을 기록했고, 1996년 유럽 U-21 선수권 대회 우승,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 UEFA 유로 2000 준우승을 경험했다. 유벤투스 FC에서 19년간 활약하며 세리에 A 6회,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 세리에 A 득점왕, 도움왕 등을 차지했다. 시드니 FC와 델리 다이너모스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사업가,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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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
|---|---|
| 출생일 | 1974년 11월 9일 |
| 출생지 | 코넬리아노, 이탈리아 |
| 키 | 1.74m |
| 포지션 | 공격수 |
| 로마자 표기 | Alessandro Del Piero |
| 애칭 | 알레, 알렉스, 핀투리키오 |
| 유소년 클럽 | 1982-1988: 산벤데미아노 1988-1991: 파도바 |
|---|---|
| 클럽 | 1991-1993: 파도바 (14경기, 1골) 1993-2012: 유벤투스 (513경기, 208골) 2012-2014: 시드니 (48경기, 24골) 2014: 델리 다이나모스 (10경기, 1골) |
| 총 출장 및 득점 | 585경기 234골 |
| 청소년 국가대표팀 | 1991: 이탈리아 U-17 (3경기, 1골) 1992-1993: 이탈리아 U-18 (14경기, 12골) 1993-1996: 이탈리아 U-21 (12경기, 3골) |
|---|---|
| 국가대표팀 | 1995-2008: 이탈리아 (91경기, 27골) |
| FIFA 월드컵 | 2006 독일 우승 |
|---|---|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 2000 벨기에-네덜란드 준우승 |
|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 1996 스페인 우승, 1994 프랑스 우승 |
| UEFA 챔피언스리그 | 1996 로마 우승, 1997 뮌헨, 1998 암스테르담, 2003 맨체스터 준우승 |
| 인터콘티넨탈컵 | 도요타컵 1996 도쿄 우승 |
| 기타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장교 (OMRI) |
| 선호하는 발 | 오른발 |
|---|---|
| 포지션 상세 | CF, SS, 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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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계 사람 -
파트리크 바티스통
프랑스의 은퇴한 축구 선수 파트리크 바티스통은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UEFA 유로 1984 우승과 FIFA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생테티엔, 보르도, 모나코에서 리그 1 우승을 경험했고, 1982년 월드컵 준결승전 충돌 사고로도 알려져 있으며, 은퇴 후에는 유소년 육성 및 이사진으로 활동하며 프랑스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A리그 멘의 이탈리아인 축구 선수 -
알레산드로 디아만티
알레산드로 디아만티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를 소화하며, 왼발 킥, 창의적인 플레이, 리더십으로 알려졌고,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가 되었다. -
인도 슈퍼리그의 지정 선수 -
호베르투 카를루스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강력한 왼발 킥력과 빠른 스피드를 가진 브라질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브라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2. 유년 시절
델 피에로는 베네토 주 코넬리아노에서 전기공 지노와 주부 브루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절에 절친 넬소와 피에르파올로와 함께 집 뒷마당에서 축구를 했다. 세 소년 모두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델 피에로만 축구 선수로 성장했다. 그의 형 스테파노는 삼프도리아에서 잠깐 프로 선수로 활동했지만, 부상으로 일찍 축구화를 벗었다. 스테파노는 이후 남동생 알레산드로의 요원으로 활동했다. 델 피에로 가족은 산 벤데미아노 사콘 면의 시골집에 살았다. 유년 시절에 델 피에로 가족은 형편이 어려워 해외로 가기에 금전적으로 빠듯했기 때문에, 트럭 운전사가 되어 세계일주를 할 생각도 했었다고 회고했다.
산 벤데미아노의 인근 유소년부에서 축구를 할 때, 델 피에로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골키퍼로 출전했었다. 그의 모친은 이 역할을 맡음으로서 그리 많은 땀을 흘리지 않고 부상 당할 염려도 적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형 스테파노는 모친에게 기술적으로 출중한 어린 델 피에로가 공격적인 역할을 맡기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냈고,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이후 공격수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3. 클럽 경력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1981년 산 벤데미아노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3세에 파도바 유소년팀으로 옮겼고, 1991-92 시즌 16세의 나이로 1군에 합류했다. 1992년 3월 15일 메시나와의 세리에 B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1992-93 시즌 11월 22일 테르나나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골을 기록했다. 1993년 잠피에로 보니페르티의 주선으로 5에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1993년 유벤투스로 이적한 델 피에로는 19시즌 동안 활약했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아래 1군 훈련에 참가하면서 안토넬로 쿠쿠레두 감독의 프리마베라 선수단에서 1994 비아레조 토르네오와 1994 U-20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1993년 9월 12일 포자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고, 9월 19일 레지아나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파르마와의 데뷔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1993-94 시즌 유벤투스는 리그 2위를 차지했고, 델 피에로는 리그에서 5골을 포함해 총 14경기에 출전했다.
1994-95 세리에 A 시즌 마르첼로 리피 감독 부임 후, 델 피에로는 로베르토 바조의 부상으로 잔루카 비알리, 파브리치오 라바넬리와 함께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벤투스의 9년 만의 스크데토 획득에 기여했다. 델 피에로는 피오렌티나전 결승골을 포함해 세리에 A에서 8골을 넣었다. 1994-95 코파 이탈리아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지만, 1995 UEFA컵 결승전에서는 파르마에게 패했다. 델 피에로는 기술적, 전술적 특징과 바조의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하여 핀투리키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는 잔니 아넬리 회장이 델 피에로를 라파엘로의 제자였던 르네상스 화가 핀투리키오에 비유하며 붙인 별명이다. 델 피에로는 1995 발롱도르에서 4위를 차지했다.
1995-96 시즌 델 피에로는 AC 밀란으로 이적한 바조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세리에 A에서 6골 10도움을 기록했지만, 유벤투스는 AC 밀란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는 비알리의 결승골을 도와 파르마를 꺾고 우승했다. 1995-96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6골을 넣어 득점 2위를 기록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다음 시즌, 델 피에로는 1996 UEFA 슈퍼컵과 1996 인터컨티넨털컵에서 우승하며 두 결승전에서 모두 득점했고, 특히 인터컨티넨털컵에서는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브라보 어워드를 수상하고 2년 연속 1996 발롱도르에서 4위를 차지했다. 유벤투스와 함께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고,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7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교체 출전하여 백힐 슛으로 골을 넣었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3-1로 패했다. 델 피에로는 1997 FIFA 올해의 선수 6위, 1997 발롱도르 후보에 올랐다.
1997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으로 시작한 1997-98 시즌, 델 피에로는 지네딘 지단, 필리포 인자기와 강력한 공격진을 구성했다. 1997-98 세리에 A에서 21골, 1997-98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10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했다. 준결승전 모나코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유벤투스를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시켰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에게 1-0으로 패했다. 인터 밀란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유벤투스는 세리에 A 25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델 피에로는 데르비 디탈리아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모든 대회에서 32골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최다 득점을 올렸다. 세리에 A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 상을 수상하고 1998 발롱도르 후보에 올랐다. 이 시기 팬들은 델 피에로를 일 페노메노 베로("진정한 현상")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이는 라이벌 인터 밀란 팬들이 "현상"이라는 뜻의 일 페노메노라고 부른 브라질 공격수 호나우두와 비교한 것이다.
1998-99 시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라치오(SS Lazio)에게 패하고, 1998년 11월 8일 우디네세(Udinese Calcio)전에서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을 당했다. 이후 시즌 2골에 그쳤고, 유벤투스는 리그 6위에 머물렀다. 1998-99 UEFA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진출했지만, 준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패했다.
부상 회복 후, 델 피에로는 근력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체중 증가와 신체 발육을 이뤘지만, 도핑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2005년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9-2000 시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부임 후, 델 피에로는 세리에 A 최다 14도움을 기록했지만, 9골에 그쳤다. 유벤투스는 1999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달성했지만, 세리에 A에서는 우승을 놓쳤다. 델 피에로는 2000년 세계 최고 연봉 축구 선수였다.
2000-01 시즌 델 피에로는 나폴리전에서 첫 골을 넣었으나, 이후 다시 부상을 당했다. 2001년 2월 18일 바리전에서 득점 후 아버지에게 바치는 세리머니를 했다. 유벤투스는 AS 로마(AS Roma)에게 우승을 내줬다.
2001-02 시즌 마르첼로 리피 감독 복귀 후, 델 피에로는 주장으로 임명되어 다비드 트레제게, 파벨 네드베드와 함께 16골을 기록했다. 우디네세 원정 경기에서 트레제게와 델 피에로의 득점으로 유벤투스는 26번째 세리에 A 우승을 달성했다. 델 피에로는 모든 대회에서 21골을 기록했으며, 베네치아전에서 유벤투스 100, 101호 골을 기록했다.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 진출했지만, 파르마에 패했다.
2002-03 시즌, 델 피에로는 2002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파르마를 꺾고 2골을 넣으며 우승에 기여했다. 유벤투스는 세리에 A 2연패를 달성했고, 델 피에로는 2003년 4월 27일 브레시아전에서 세리에 A 100호골을 달성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델 피에로는 디나모 키이우전,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서 득점하며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결승전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2003-04 시즌, 유벤투스는 2003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밀란을 승부차기로 꺾었지만, 세리에 A 3위, 챔피언스리그 16강,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에 그쳤다. 리피 감독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칼초폴리"로 인해 유벤투스가 세리에 B로 강등되고, 최근 두 번의 스쿠데토가 박탈되었음에도, 델 피에로는 팀에 남았다. 그는 "진정한 신사는 숙녀를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 후, 델 피에로는 코파 이탈리아 체세나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했다.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2골을 넣었지만, 승부차기 끝에 졌다. 유벤투스는 2006-07 시즌 세리에 B에서 우승하며 세리에 A로 복귀했고, 델 피에로는 20골로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했다. 2006년 10월 21일 프로시노네와의 경기에서 유벤투스 소속 200호 골을 기록했다.
세리에 A 복귀 후,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 새 경영진과 계약 문제로 갈등을 겪었지만, 2010년 6월 30일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07-08 시즌 델 피에로는 삼프도리아와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21골로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했다. 파올로 로시 이후 세리에 B·세리에 A 연속 득점왕을 달성했다. 유벤투스는 세리에 A 3위로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델 피에로는 가에타노 시레아 상을 수상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델 피에로가 좋은 시즌을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2008년 8월, 델 피에로는 40세까지 유벤투스에서 뛰겠다고 발표했다. 2008-09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델 피에로는 제니트전 프리킥 결승골, 레알 마드리드전 2골 등 맹활약했지만, 16강에서 첼시에게 패했다.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교체될 때 마드리드 팬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 2008년 11월 29일 레지나와의 경기에서 유벤투스 250호 골을 넣었다. 유벤투스는 세리에 A 2위를 차지했다.
2009년 7월, 델 피에로는 2011년 6월 30일까지 계약을 연장하며 유벤투스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2월 14일 제노아와의 경기에서 잠피에로 보니페르티의 세리에 A 445경기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2010년 3월 14일 시에나전에서 300, 301호 골을 기록했다. 2010년 10월 30일 AC 밀란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보니페르티의 세리에 A 클럽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2011년 2월 5일 칼리아리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보니페르티를 제치고 유벤투스 최다 출전 선수가 되었다. 2011년 5월 5일, 유벤투스와 1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유벤투스는 2011-12 시즌을 끝으로 델 피에로와 결별한다고 발표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 체제에서 델 피에로는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결승 진출을 이끄는 골을 넣었다. 2012년 3월 25일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넣으며 2-0 승리에 기여했다. 4월 11일 라치오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유벤투스 700경기 출전을 자축하고 팀을 세리에 A 선두로 이끌었다. 5월 13일 아탈란타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유벤투스의 28번째 세리에 A 우승과 무패 우승을 자축했다. 이 경기가 델 피에로의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세리에 A 경기였다.
델 피에로의 유벤투스 마지막 경기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 나폴리와의 경기였고, 2-0으로 패했다.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 통산 705경기 290골 134도움을 기록했다. 세리에 A에서는 478경기 188골 108도움을 기록하며 세리에 A 역대 최다 어시스트 3위를 기록했다. 델 피에로는 10번 유니폼 영구 결번 제안을 거절했다. 2012년 6월 30일 유벤투스 팬들에게 감사 편지를 작성했다.
2012년 9월 5일 델 피에로는 시드니 FC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시드니 입단 전 리버풀과 연결되었지만, 헤이젤 참사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드니 FC 입단 후 델 피에로는 "새로운 세계에서 축구를 계속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유벤투스는 델 피에로에게 행운을 빌었고, 프란체스코 토티와 필리포 인자기는 슬픔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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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FC 회장은 델 피에로 영입이 호주 축구 역사상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연맹은 이 영입이 경제적, 기술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언 크룩 감독은 델 피에로에게 자유로운 플레이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델 피에로에게 최상의 기원을 전했다.
2012년 10월 6일 델 피에로는 웰링턴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시드니 FC 데뷔전을 치렀지만, 2-0으로 패했다. 10월 13일 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첫 골을 넣었지만, 3-2로 패했다. 10월 20일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첫 시드니 더비 승리를 이끌었다.
2013년 1월 19일 웰링턴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7-1 승리를 이끌었다. 2월 10일 브리즈번 로어전에서 시즌 11호 골을 넣으며 클럽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경신했다. 24경기 14골을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2월 21일 2014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13-14 시즌 델 피에로는 시드니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10월 11일 뉴캐슬 제츠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결승골과 조엘 치아네세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2013-14 시즌 총 10골로 시드니 FC 골든 부츠를 수상했다. 4월 13일 퍼스 글로리와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파이널 시리즈 진출에 기여한 후, 시드니 FC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멜버른 빅토리와의 엘리미네이션 파이널 경기였고, 2-1로 패했다.
2014년 8월 10일 A-리그 올스타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주장으로 출전했다. 2015년 4월 델 피에로는 시드니 FC 10년 최고 선수와 AFC 10년 최고 선수로 선정되었다.
2014년 8월 델 피에로는 델리 다이나모스와 4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인도 축구 역사상 최고 연봉 선수로 알려졌다. 2014년 10월 14일 푸네 시티와의 경기에서 델리 다이나모스 데뷔전을 치렀다. 2014년 12월 9일 체나이인과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델리 다이나모스에서의 유일한 골을 기록했다. 델 피에로는 10경기에 출전했지만, 델리 다이나모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15년 10월, 델 피에로는 프로 축구 은퇴를 공식 발표하고 감독직을 추구할 의향을 밝혔다.
3.1. 파도바에서의 신고식과 초기 경력(1991–1993)
델 피에로는 1981년에 산 벤데미아노의 유소년부를 시작으로 프로 축구계에 입문했다. 스카우트는 델 피에로를 일찍이 알아보았고, 델 피에로는 불과 13세의 나이에 파도바의 유소년부로 둥지를 옮겼다. 그는 1991-92 시즌에 16세의 나이로 1군에 합류했고, 17세였던 1992년 3월 15일에 메시나와의 세리에 B 경기에서 마우로 산드레아니 감독이 로베르토 푸텔리와 교체하여 프로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1992-93 시즌 11월 22일, 그는 5-0으로 이긴 테르나나와의 경기에서 프로 무대 1호골을 기록했다. 1993년, 잠피에로 보니페르티의 눈에 들어온 델 피에로는 5에 유벤투스로 입단했고, 연봉 1억 5천만 ITL에 계약했다.
3.2. 유벤투스 초년의 국내 및 유럽무대 성공(1993–1998)
델 피에로는 1993년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19시즌 동안 토리노 연고 구단에서 활약했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은 델 피에로를 1군 훈련에 참가시켰지만, 그는 안토넬로 쿠쿠레두 감독의 프리마베라 선수단에 합류하여 1994 비아레조 토르네오와 1994 U-20 선수권 대회 우승에 일조했다. 델 피에로는 1993년 9월 12일, 포자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며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고, 9월 19일 레지아나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해 첫 골을 기록했다. 유벤투스 데뷔전에서는 파르마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후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은 델 피에로는 그 시즌 세리에 A에서 5골을 포함해 유소년 경기, 리그 경기, 코파 이탈리아, UEFA컵을 합쳐 14경기에 출전했고, 유벤투스는 리그 2위를 차지했다.
1994-95 세리에 A 시즌, 마르첼로 리피 감독과 지라우도, 로베르토 베테가, 루차노 모기로 구성된 새 수뇌부가 유벤투스에 부임했다. 델 피에로는 11월 파도바와의 경기에서 로베르토 바조가 부상당하자 잔루카 비알리, 파브리치오 라바넬리와 함께 주전 자리를 꿰차며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유벤투스는 9년 만에 첫 스크데토를 획득했다. 델 피에로는 피오렌티나전 결승골을 포함해 세리에 A에서 8골을 넣었다. 1994-95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시즌 내내 경쟁하던 파르마를 꺾고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지만, 1995 UEFA컵 결승전에서는 파르마에게 패했다. 이 시기 델 피에로는 기술적, 전술적 특징과 바조의 창의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하여 핀투리키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는 전 회장 잔니 아넬리가 델 피에로를 라파엘로의 제자였던 르네상스 화가 핀투리키오에 비유하며 붙인 별명으로, 바조에게 붙였던 별명이기도 하다. 델 피에로는 1995 발롱도르에서 4위를 차지했다.
1995-96 시즌에 델 피에로는 AC 밀란으로 이적한 바조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세리에 A에서 6골 10도움을 기록했지만, 유벤투스는 AC 밀란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는 비알리의 결승골을 도와 파르마를 꺾고 우승했다. 1995-96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6골을 넣어 득점 2위를 기록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다음 시즌, 델 피에로는 1996 UEFA 슈퍼컵과 1996 인터컨티넨털컵에서 우승하며 두 결승전에서 모두 득점했고, 특히 인터컨티넨털컵에서는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브라보 어워드를 수상하고 2년 연속 1996 발롱도르에서 4위를 차지했다. 유벤투스와 함께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고,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6년 11월 20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8강 진출을 확정했는데, 이는 이탈리아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1997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교체 출전하여 백힐 슛으로 골을 넣었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3-1로 패했다. 델 피에로는 1997 FIFA 올해의 선수 6위, 1997 발롱도르 후보에 올랐다.
다음 시즌 1997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으로 시작한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 동료 지네딘 지단, 신입 공격수 필리포 인자기와 강력한 공격진을 구성했다. 1997-98 세리에 A 시즌은 델 피에로의 최고 시즌으로, 세리에 A에서 21골을 넣었고, 1997-98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10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했다. 준결승전 모나코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유벤투스를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시켰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에게 1-0으로 패했다. 그러나 인터 밀란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유벤투스는 세리에 A 25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델 피에로는 논란이 많았던 데르비 디탈리아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1997-98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득점하여 유벤투스를 준결승에 진출시켰고, 모든 대회에서 32골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최다 득점을 올렸다. 세리에 A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 상을 수상하고 1998 발롱도르 후보에 올랐다. 이 시기 팬들은 델 피에로를 일 페노메노 베로("진정한 현상")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이는 라이벌 인터 밀란 팬들이 "현상"이라는 뜻의 일 페노메노라고 부른 브라질 공격수 호나우두와 비교한 것이다.
3.3. 부상으로 인한 침체기(1998–2001)
1998-99 시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라치오(SS Lazio)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하였으나, 경기는 1-2로 패배하였다. 1998년 11월 8일, 우디네세(Udinese Calcio)와의 경기 막판에 왼쪽 무릎의 십자인대 파열을 당하여, 그 이후 시즌 내 2골에 그쳤고, 클럽 또한 리그에서 6위라는 결과에 머물렀다. 또한 1998-99 UEFA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진출하였으나, 준결승에서 같은 시즌 우승을 차지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패하였다.
시즌 중 부상 이후, 델 피에로는 근력 강화 프로그램을 받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강인함의 필요성에도 적응하여, 속도와 민첩성을 잃은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회복 프로그램으로 인한 체중 증가와 신체 발육의 결과, 당시 세리에 A에서 만연했던 도핑 의혹을 받게 되었으나, 장기간에 걸친 조사 결과, 2005년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어진 1999-2000 시즌에는 카를로 안첼로티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델 피에로는 주로 어시스트로 활약하며 세리에 A에서 시즌 최다인 14개의 어시스트, 모든 대회를 통틀어 2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전 시즌 부상의 영향으로 득점은 9골에 그쳤고, 그중 8골은 세트피스에 의한 것이었으며, 나머지 1골도 페널티킥을 기점으로 한 것이었다. 또한 시즌 후반에는 그때까지 호조를 보였던 인자기와의 연계도 흔들리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인자기의 개인 플레이나, 두 선수의 경기장 안팎에서의 긴장감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되었다. 같은 시즌 유벤투스는 1999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달성하였으나, 세리에 A에서는 아쉽게도 우승을 놓쳤다. 델 피에로는 2000년, 급여, 보너스, 광고 수익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축구 선수였다.
2000-01 시즌에는 AS 로마(AS Roma)에게 우승을 내주고 다시 한번 우승을 놓쳤다. 델 피에로는 9월 30일 나폴리(SSC Napoli)전에서 첫 골을 넣고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후 다시 부상을 당하여 득점과 멀어졌다. 그러나 2001년 2월 18일 원정 경기였던 바리(FC Bari 1908)전에서 다시 득점을 하였고, 델 피에로는 이 골을 직전에 사망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형식으로 기뻐했다. 시즌 후반이 되자 델 피에로는 다시 컨디션을 회복하였으나, 선두 로마와의 최종 승부에서 득점을 올리는 등 했지만, 우승을 이끌지는 못했다.
3.4. 다시 정상으로(2001–2004)
2001-2002 시즌, 마르첼로 리피가 유벤투스 감독으로 복귀했고, 델 피에로는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다비드 트레제게와 파벨 네드베드와 함께 강력한 공격진을 형성하여 16골과 다수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시즌 최종전 우디네세 원정 경기에서 트레제게와 델 피에로의 득점으로 2-0 승리를 거두며, 로마와 인터 밀란을 각각 1점 차로 제치고 역전 우승, 26번째 세리에 A 우승을 달성했다.
델 피에로는 국내컵 대회와 대륙 대회를 포함한 모든 대회에서 21골을 기록했으며, 2001년 8월 26일 베네치아전에서 유벤투스에서의 100호골과 101호골을 기록했다. 코파 이탈리아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파르마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2-2003 시즌, 델 피에로는 2002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파르마를 꺾고 2골을 넣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유벤투스는 세리에 A 타이틀을 방어하며 2연패를 달성했고, 델 피에로는 2003년 4월 27일 브레시아전에서 세리에 A 100호골을 달성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E조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 디나모 키이우, 페예노르트와 한 조가 되었고, 델 피에로는 9월 24일 디나모 키이우전에서 네드베드와 마우로 카모라네시와의 연계 플레이로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으며 UEFA 대회 첫 골을 기록했다.
이어진 뉴캐슬과의 홈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유벤투스의 선두 유지를 도왔고, 2차 조별리그에 진출했다. 2차 조별리그에서는 FC 바젤과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를 제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함께 16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바르셀로나를 마르셀로 살라예타의 연장골로 꺾었고, 준결승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맞붙어 합계 4-3으로 승리했다. 결승전에서는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무득점으로 승부차기에 돌입, 델 피에로는 PK를 성공시켰으나, 유벤투스는 3-2로 패했다.
2003-2004 시즌, 유벤투스는 2003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밀란을 승부차기로 꺾으며 시작했지만, 세리에 A 3위,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라치오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시즌 후, 리피 감독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3.5. "칼초폴리"와 강등(2004–2006)
유벤투스가 세리에 B로 강등되고, 최근 획득한 두 번의 "스쿠데토"(scudetti)가 박탈되었음에도, 델 피에로는 주장으로서 구단에 남을 것을 선언했다. 그는 "아녤리 가문도, 지지자들도, 새 이사진도 우리가 필요하다"라며 선수들을 설득했다. 파비오 칸나바로, 이메르송, 잔루카 참브로타, 파트리크 비에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릴리앙 튀람 등 많은 핵심 선수들이 팀을 떠났지만,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에 남아 세리에 A 복귀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진정한 신사는 숙녀를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유벤투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 이후 델 피에로의 첫 경기는 2006년 8월 23일 체세나와의 코파 이탈리아 경기였다. 당시 유벤투스는 세리에 B 소속이었기 때문에 UEFA컵 진출권이 걸린 코파 이탈리아 경기가 더욱 중요했다. 휴가 직후였던 델 피에로는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지만, 1-1로 팽팽하던 후반 74분 교체 투입되어 9초 만에 결승골을 기록했다.
8월 27일 나폴리와의 코파 이탈리아 경기에서도 교체 투입된 델 피에로는 두 골을 넣으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델 피에로는 득점에 성공했지만 유벤투스는 결국 4-5로 패배했다.
유벤투스는 리그 농단 스캔들로 인해 승점 9점 감점된 채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2006-07 시즌 세리에 B에서 우승하며 세리에 A로 복귀했다. 델 피에로는 20골로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했다. 2006년 10월 21일 프로시노네와의 경기에서는 유벤투스 소속 200호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3.6. 세리에 B 우승(2006–2007)
델 피에로는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 후, 2006년 8월 23일 체세나와의 코파 이탈리아 경기에서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유벤투스는 2006-07 시즌 세리에 B에서 뛰게 되어 UEFA컵 출전권을 얻으려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이 중요했다. 델 피에로는 74분에 교체 투입되어 9초 만에 결승골을 넣어 유벤투스의 승리에 기여했다. 8월 27일 나폴리와의 경기에서도 61분에 교체 투입되어 2골을 넣었지만, 승부차기 끝에 5대 4로 졌다. 유벤투스는 승부 조작 징계로 -9점 감점을 받고 시즌을 시작했지만, 세리에 B에서 우승하며 세리에 A로 승격했다. 델 피에로는 세리에 B에서 20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2006년 10월 21일 프로시노네와의 경기에서는 유벤투스 소속 200번째 골을 기록하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3.7. 세리에 A 복귀와 "칼초폴리" 이후의 시련(2007–2011)
유벤투스의 세리에 A 복귀 후,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의 새 경영진과 새로운 계약 체결을 두고 수개월간 불화가 있는 협상을 진행했다. 2010년 6월 30일까지 새로운 계약을 성공적으로 협상한 후, 그는 첫 아이의 탄생 소식을 접했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그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에 의해 피오렌티나와의 세리에 A 경기에서 제외되었고, 그 후 로베르토 도나도니의 이탈리아 대표팀 명단에서 조지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경기에서 제외되었다.
2007년 12월 15일, 델 피에로는 라치오 원정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고, 2주 연속 세리에 A 이주의 팀에 선정되었다. 2008년 2월, 그는 프리킥으로 로마와의 세리에 A 홈 경기에서 유벤투스의 결승골을 넣었다. 2008년 4월 6일,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가에타노 시레아의 이전 기록인 552경기를 넘어서며 유벤투스의 새로운 출전 기록을 세웠다. 4월에는 아탈란타 원정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포함하여 5경기에서 7골을 기록했다.
2007-08 시즌 마지막 주말에 델 피에로는 삼프도리아와의 경기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2골을 넣었다. 이 두 골로 그는 시즌 21골을 기록하며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세리에 A 카포카니오네레 상을 수상했고, 파올로 로시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세리에 B·세리에 A 연속 득점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유벤투스는 같은 시즌 세리에 A를 3위로 마치며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7월 26일, 델 피에로는 시레아 상을 수상했다.
시즌 전, 유벤투스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델 피에로가 전 시즌만큼 또는 그 이상의 좋은 시즌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8월, 델 피에로는 40세가 될 때까지 유벤투스에서 프로 축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3시즌 만의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된 2008-09 시즌, 유벤투스는 조별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BATE 보리소프와 같은 H조에 편성되었다.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의 세리에 A 복귀 후 첫 경기인 홈에서의 제니트전에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어 1-0 승리에 기여했다. 그 후 한 경기를 건너뛰고 세 번째 경기인 10월 21일 홈에서의 레알 마드리드전에서는 경기 시작 5분 만에 장거리 그라운드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이어진 원정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2차전에서는 2득점을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었던 베른트 슈스터의 칭찬을 받았다. 후반 추가시간 파올로 데 체리에와 교체되어 벤치로 물러날 때는 마드리드 팬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원정팀 선수가 기립 박수를 받은 것은 디에고 마라도나나 호나우딩요 등 몇 안 되는 경우였다. 그러나 유벤투스는 16강에서 첼시에게 패했고, 델 피에로는 홈에서의 2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지만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다.
2008년 11월 29일, 델 피에로는 레지나와의 홈 경기에서 4-0 승리 속에 페널티킥으로 유벤투스에서 250번째 골을 넣었다. 리그에서는 유벤투스가 주로 밀란과 2위, 챔피언스리그 자동 진출권을 놓고 경쟁했다. 특히 델 피에로는 시즌 마지막에서 두 번째 경기에서 시에나를 3-0으로 이기도록 유벤투스를 이끌었는데, 그는 2골을 넣고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에게 시즌 3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세리에 A에서 7경기 연속 무승 행진을 마무리 지었다. 유벤투스는 이후 라치오를 2-0으로 꺾고 세리에 A에서 밀란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상대 전적에 따라 결정되었다.
2009년 7월 17일, 델 피에로는 프리시즌 훈련 중 핀졸로에서 2011년 6월 30일까지 1년 더 계약을 연장하며 사실상 프로 생활을 시작한 클럽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확정했다. 계약 연장 당시 그는 "나는 유벤투스에서 행복하고 우리는 경쟁력이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계속 뛰고 싶고 적어도 2년 동안은 최고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2010년 2월 14일, 델 피에로는 제노아와의 경기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보니페르티가 보유했던 종전 기록을 깨고 세리에 A 445번째 출전 기록을 세웠다. 델 피에로는 모든 대회에서 250골 이상을 넣고 유벤투스에서 공식 경기 600경기 이상 출전하며 시레아의 출전 기록을 깨고 유벤투스 역대 최다 득점 선수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0년 3월 14일, AC 시에나전에서 커리어 통산 300득점을 달성했다.
2010년 10월 30일, AC 밀란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이는 세리에 A에서의 179번째 득점이었고, 잔피에로 보니페르티가 보유한 세리에 A 클럽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2011년 2월 5일, 칼리아리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전 유벤투스 레전드 잠피에로 보니페르티를 제치고 유벤투스 최다 출전 선수가 되었다. 당시 델 피에로는 하비에르 사네티와 프란체스코 토티에 이어 세리에 A에서 세 번째로 많은 경기에 출전한 활동 선수였다. 2011년 5월 5일, 그는 유벤투스 아레나에 남기 위해 1년 계약을 더 체결했다. 그의 이전 계약은 2011년 6월 30일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2011년 5월 24일, 델 피에로와 유벤투스는 전 잉글랜드 수비수 게리 네빌의 자선 경기에서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친선 경기를 치렀다. 델 피에로는 65분 만에 교체되어 유나이티드 팬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유벤투스는 2011년 10월 18일에 2011-12 시즌을 끝으로 델 피에로가 구단과 결별할 것임을 확정지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새로이 취임한 2011-12 시즌에 전 유벤투스 동료들은 로마에서 공격수 미르코 부치니치가 입단하고 나서 델 피에로의 출전 기회가 줄고, 교체 위주로 출전한 것을 목격했다. 유벤투스는 9월 11일에 안방에서 파르마를 상대로 시즌을 시작했는데, 델 피에로는 4-1로 이긴 경기에서 시모네 페페의 골을 도왔다. 델 피에로는 2012년 1월 24일에 3-0으로 이긴 로마와의 코파 이탈리아 8강전에서 유벤투스 경기장에서의 1호골을 기록했다. 그 시즌 말, 델 피에로는 안드레아 아녤리 유벤투스 회장이 그에게 새 계약을 제의하지 않은 점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벤투스의 밀란과의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 2차전에서 델 피에로는 영리하게 파고들어 2-2 무승부를 쟁취하고 합계 4-3으로 결승행를 이끌었다. 3월 25일,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가 인테르나치오날레를 2-0으로 꺾는 추가골이자, 2011-12 시즌 첫 세리에 A 득점을 성공시켰다. 4월 11일, 유벤투스와 라치오 간 경기에서 후반전에 델 피에로가 부치니치와 교체되어 들어가 유벤투스 700번째 경기를 치렀고, 뒤이어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작렬해 2-1 승리를 도왔다. 이 경기 승리로 유벤투스는 세리에 A 선두로 복귀했다.
5월 13일, 델 피에로는 아탈란타와의 유벤투스 리그 최종전에 출전했는데, 이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구단의 통산 28번째 세리에 A 우승을 자축했다. 경기 시작 27분 후, 델 피에로는 페널티 구역 귀퉁이에서 공을 잡아 조르조 프레촐리니를 넘겨 차넣어 2-0으로 앞서나가는 추가골을 기록했고, 유벤투스는 세리에 A 시즌을 무패로 마감했다. 그가 59분에 교체되어 나갈 때 양측 선수들과 지지자들은 감격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는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아 자축했다. 이 경기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유벤투스에서 출전한 마지막 세리에 A 경기였다.
3.8.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시즌과 무패우승(2011–2012)
유벤투스는 2011년 10월 18일 2011-12 세리에 A가 델 피에로의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 유벤투스 동료였던 안토니오 콘테 감독 체제 하에서 델 피에로는 여름에 AS 로마에서 영입한 공격수 미르코 부치니치의 합류로 인해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 기회가 제한되었다. 2011년 9월 11일 파르마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그는 시모네 페페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4-1 홈 승리에 기여했다. 2012년 1월 24일, 코파 이탈리아 8강전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3-0 승리 속에 새로운 유벤투스 스타디움에서 첫 골을 넣었다. 시즌 후반,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 회장 안드레아 아넬리가 새로운 계약을 제안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한 발표에 놀랐다고 말했다.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전 AC 밀란과의 2차전에서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의 공격을 마무리하며 2-2 무승부를 만들었고, 합계 4-3으로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2012년 3월 25일, 델 피에로는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넣으며 2-0 승리에 기여했는데, 이는 그의 세리에 A 시즌 첫 골이었다. 4월 11일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델 피에로는 후반전에 부치니치를 대신하여 출전하며 유벤투스에서 700번째 경기에 출전했고, 프리킥으로 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결과로 유벤투스는 세리에 A 선두로 복귀했다.
2012년 5월 13일, 델 피에로는 아탈란타와의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28번째 세리에 A 우승을 자축하며 골을 넣었다. 경기 시작 27분 만에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공을 받아 조르조 프레졸리니 골키퍼를 제치고 2-0을 만들었고, 유벤투스는 그 시즌 세리에 A에서 무패를 기록했다. 59분에 교체되어 나가면서 양팀 선수와 팬들로부터 환호를 받았고, 그는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세리에 A 출전이었다.
델 피에로의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2012년 5월 20일 나폴리와의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이었고, 나폴리가 2-0으로 승리했다. 델 피에로는 67분에 부치니치와 교체되면서 유벤투스에서의 커리어가 끝났으며, 유벤투스와 나폴리 팬들 모두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 경기 후 그는 19년간의 유벤투스 생활 후 은퇴 계획이 없다고 확인했고, 클럽을 떠나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총 705경기에 출전하여 290골을 넣고 13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클럽 기록을 세웠다. 세리에 A에서는 478경기에 출전하여 188골을 넣고 10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이는 세리에 A 역대 최다 어시스트 3위에 해당한다 (토티와 로베르토 바조 다음).
델 피에로는 그의 명예를 위해 10번 유니폼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자는 구단의 제안을 거절하며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얻었기에 10번 유니폼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아이들이 언젠가는 그 유니폼을 입는 것을 꿈꿀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012년 6월 30일,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 팬들에게 감사하는 공개 서한을 작성하여 거의 20년간의 지지에 감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도 팬들이 남았습니다. 유벤투스인 여러분이 바로 유벤투스입니다. 제가 사랑했고 항상 사랑할 그 유니폼, 제가 원했고 존경했던 그 유니폼… 내일부터 저는 더 이상 유벤투스 선수가 아니지만, 항상 여러분 중 한 명일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고, 19년 전처럼 저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3.9. 시드니(2012–2014)
Alessandro Del Piero영어는 2012년 9월 5일 시드니 FC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첫 두 시즌 동안 약 3500를 받아 호주에서 뛴 선수 중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시드니에 입단하기 전 델 피에로는 리버풀과 연결되었지만, 후에 헤이젤 참사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 클럽으로 이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드니 FC 입단 후 델 피에로는 "오늘은 저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시드니 FC와 2년 계약을 체결하게 되어 기쁩니다. 새로운 세계에서 제 경력을 계속하고, 중요한 기여를 하고, 제가 사랑하는 축구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저에게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라고 말했다. 유벤투스는 델 피에로의 시드니 FC 이적 발표 후, 전 주장에게 행운을 빌었다. 프란체스코 토티와 필리포 인자기는 그의 이적으로 슬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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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벌로우 시드니 FC 회장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영입은 이 클럽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며, 호주 축구 역사상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약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이것은 호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 스포츠 계약이며, 언급된 숫자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연맹 최고 경영자인 벤 버클리는 이 영입이 경제적, 기술적으로 호주 축구 발전에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언 크룩 시드니 FC 감독은 이탈리아 선수를 중심으로 공격진을 구성할 것이며, 그에게 자유로운 플레이를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여기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에서 19년 동안 10번 또는 9번 포지션에서 뛰었습니다. 우리는 그 점을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FIFA 회장인 제프 블래터는 델 피에로와 그의 새 클럽에 최상의 기원을 전했다.
2012년 10월 6일, 델 피에로는 웰링턴 피닉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시드니 FC 소속으로 A-리그에 데뷔하여 2-0으로 패했다. 10월 13일 시드니에서의 첫 홈 경기에서 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첫 골을 넣었지만, 팀은 3-2로 패했다. 뉴캐슬과의 경기에서는 히어로캠이 사용되어 경기 내내 한 대의 카메라로 델 피에로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었다. 10월 20일, 델 피에로는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1-0) 첫 시드니 더비의 첫 골을 기록했다.
2013년 1월 19일, 델 피에로는 웰링턴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7-1 승리를 거두며 4골을 넣고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는 그가 한 경기에서 3골 이상을 넣은 것은 처음이었으며, 교체된 후 팬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2월 10일, 델 피에로는 브리즈번 로어와의 홈 경기에서 시즌 11호골을 넣으며 클럽의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경신했다. 24경기에서 14골을 기록했지만, 델 피에로는 시즌 종료 후 시드니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2월 21일, 델 피에로는 2014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델 피에로는 2013-14 시즌 시드니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10월 11일, 델 피에로는 2013-14 A-리그 시즌 개막전에서 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2-0 승리를 거두었고, 조엘 치아네세의 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다. 델 피에로는 2013-14 시즌 시드니 FC에서 총 10골을 넣어 시드니 FC 골든 부츠를 수상했다. 그는 4월 13일 퍼스 글로리와의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 2-1 홈 승리를 거두며 팀의 두 골을 모두 어시스트하여 팀의 파이널 시리즈 진출에 기여한 후, 시드니 FC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4월 18일 멜버른 빅토리와의 엘리미네이션 파이널에서 도클랜드 스타디움에서 열렸으며, 귀 핑클러의 추가 시간 결승골로 2-1로 패했다.
2014년 8월 10일, 델 피에로는 ANZ 스타디움에서 5만 5천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열린 현대 A-리그 올스타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주장으로 출전했다. 델 피에로는 경기 63분에 데이비드 윌리엄스와 교체되어 기립 박수를 받았다.
2015년 4월, 델 피에로는 시드니 FC의 10년 최고 선수와 AFC 10년 최고 선수로 선정되었다.
3.10. 델리 다이너모스(2014)
2014년 8월 23일, 인도 슈퍼리그(ISL) 첫 시즌에 참가할 예정이었던 인도 클럽 델리 다이나모스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접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의 형 스테파노 델 피에로는 "최근 몇 주 동안 인도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여러 팀으로부터 문의를 받았습니다. 알레산드로에게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8월 28일, 델 피에로는 델리 기반의 팀과 4개월 계약을 공식적으로 체결했다. 그는 인도 축구 역사상 최고 연봉 선수로 알려져 있다.
델 피에로는 2014년 10월 14일, 그의 전 유벤투스 동료 다비드 트레제게가 뛰고 있던 푸네 시티와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델리 다이나모스 데뷔전을 치렀다. 2014년 12월 9일, 델 피에로는 체나이인과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득점하며 자신의 델리 다이나모스에서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골을 기록했고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델 피에로는 시즌 내내 10경기에 출전했지만, 델리 다이나모스는 5위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단 한 점 차이로 실패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1995년 3월 25일 에스토니아와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통산 27골을 기록하여 로베르토 바조와 함께 역대 득점 공동 4위에 올랐다. FIFA 월드컵에는 3회(1998년, 2002년, 2006년),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유로)에는 4회(1996년, 2000년, 2004년, 2008년) 연속 출전했다.
유로 1996에서는 U-21 대표팀에서 발탁되었으나, 첫 경기인 러시아전에서 부상을 당해 전반전만 뛰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한 부상 여파로 로베르토 바조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유로 2000 결승전에서는 프랑스를 상대로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쳐 비판을 받았다. 1998년 11월에 당한 큰 부상 이후 부진하면서, 2000년대부터는 프란체스코 토티에게 등번호 10번을 양보했다. 델 피에로는 "나는 '7'번이 더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는 5골을 기록했지만, 본선 직전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의 전술 변경으로 선발에서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멕시코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월드컵 데뷔골을 넣으며 팀을 탈락 위기에서 구했다. 이 골은 개막 전에 사망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세리머니였다.
유로 2004 예선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본선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과 부상으로 인해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유벤투스 시절 은사인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신임을 받아 23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준결승 독일전에서 연장전에 교체 투입되어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의 패스를 받아 "델 피에로 존"에서 쐐기골을 넣었다. 결승전 프랑스전에서는 후반 교체 출전하여 승부차기 4번 키커로 나서 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유로 2008 본선 출전은 불투명했으나, 2007-2008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하며 4번째 유로 대회 출전을 달성했다.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은 델 피에로를 중용하지 않았지만, 조별 리그 2차전 루마니아전에서 주장으로 선발 출전했다.
4.1. 유로 1996과 1998년 월드컵(1995–1998)
델 피에로는 1995년 3월 25일 아리고 사키 감독의 지휘 아래 에스토니아와의 유로 1996 예선전에서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러 4-1 승리에 기여했다. 같은 해 리투아니아와의 유로 1996 예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하며 4-0 승리를 이끌었다. 유로 1996 본선에서는 러시아와의 조별 리그 1차전에 등번호 14번을 달고 좌측 미드필더로 전반전에 출전했으나, 후반 시작과 함께 로베르토 도나도니와 교체되었고 이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듬해인 1997년, 델 피에로는 체사레 말디니 감독의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열린 투르누아 드 프랑스에 참가했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2골,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90분에 페널티킥으로 득점하는 등 총 3골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지만, 이탈리아는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1998년 월드컵에서는 유벤투스 소속으로 1998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하여 입은 부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로베르토 바조와 주전 공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델 피에로는 칠레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2-2 무)에 결장했고, 바조가 그를 대신하여 출전했다. 카메룬과의 조별 리그 2차전(3-0 승)에서는 등번호 10번을 달고 후반전에 바조와 교체되어 들어가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쐐기골을 도왔다. 오스트리아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처음으로 선발 출전하여 프리킥으로 비에리의 선제골을 도왔고, 2-1 승리로 조 1위를 차지하며 16강에서 전 대회 우승국 브라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이 경기 후반전에 바조와 교체되었다. 이탈리아는 노르웨이를 1-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는데, 델 피에로는 이 경기에서도 비에리와 함께 선발로 출전했고, 77분에 엔리코 키에사와 교체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개최국이자 훗날 우승을 차지하는 프랑스와 0-0으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델 피에로는 이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비판을 받았고, 후반전에 다시 바조와 교체되었다.
4.2. 유로 2000 준우승과 이후의 시련(1998–2004)
디노 초프 감독의 부름을 받아 유로 2000 본선에 참가한 델 피에로는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비록 주로 프란체스코 토티와 스테파노 피오레의 후보 선수였으나, 대회 전 경기에 등번호 10번을 달고 출전했다. 6월 11일, 델 피에로는 2-1로 승리한 튀르키예와의 B조 1차전에서 30분에 피오레와 교체 투입되어 프리킥으로 위쪽 골대를 강타했다. 스웨덴과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두 선수를 제치고 골문 앞으로 쇄도한 뒤 왼발로 위쪽 구석을 적중시켜 결승골을 기록했고, 같은 경기에서 루이지 디 비아조의 골을 코너킥으로 연결하기도 했다. 공동 개최국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전에도 선발 출전하여 연장전 끝에 0-0 무승부를 거두고 승부차기로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 후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두 번이나 놓치면서 프랑스에 1-2로 패배, 이탈리아 언론의 맹비판을 받았다.
유벤투스에서 "방패"를 달고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2년 월드컵에 참가한 델 피에로는 헝가리와의 예선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에콰도르와의 조별 리그 1차전에서는 교체 출전하여 잠시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멕시코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는 교체 투입 직후 헤딩 동점골을 기록, 이탈리아의 조별 리그 탈락을 막았다. 그러나 16강전에서 대한민국에 골든골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유로 2004 예선전에서 6경기 5골을 기록한 델 피에로는 유로 2004 본선에 참가했다. 불가리아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뛰며 카사노의 추가 시간 결승골에 기여했지만, 이탈리아는 스웨덴, 덴마크와 승점 5점으로 동률을 이루며 상대 전적에서 밀려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4.3. 월드컵 우승과 그 후(2004–2008)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델 피에로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부름을 받아 5경기에 출전했으며, 조별 리그 3경기 중 2경기에 나왔다. 그는 1-0으로 이긴 오스트레일리아와의 16강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다. 7월 4일, 델 피에로는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연장전 막판에 쐐기골을 넣어 이탈리아를 2-0 승리로 이끌었다. 결승전은 연장전 끝에 1-1로 비겼으나, 델 피에로는 승부차기에서 골을 넣어 이탈리아의 통산 4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어린 시절 꿈이 월드컵 우승이었다고 밝혔다.
2008년을 기준으로 델 피에로는 유로 2008 본선을 포함하여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7번 주장 완장을 찼다. 그는 파올로 말디니와 초프 감독 임기에 주로 등번호 10번을 달았지만, 유로 2000을 기점으로 토티에게 넘기고 2002년 월드컵부터 현역 초기에 달았던 등번호 7번을 받았다. 2007년 7월에 토티가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등번호 10번이 공석이 되었지만, 델 피에로는 등번호 10번을 다시 받는 데 관심이 없다고 밝혔고, 등번호 7번을 달고 뛰는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5월, 그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서 열린 유로 2008에서 9개월 만에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복귀했고, 파올로 말디니에 이어 7번의 주요 대회(유로 1996, 2000, 2004, 2008 / 월드컵 1998, 2002, 2006)에 참가한 선수가 되었다.
유로 2008에서 델 피에로는 후보 선수로 기용되었지만, 루마니아와의 조별 리그 2차전에서 주장으로 선발 출전했다. 네덜란드와의 1차전에서는 안토니오 디 나탈레와 교체되어 들어가 문전을 노렸으나, 경기의 판도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이탈리아는 0-3으로 완패했다. 이탈리아는 루마니아와 프랑스를 제치고 조 2위로 네덜란드와 함께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 델 피에로는 나중에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연장전에 교체로 출전했고, 결과는 0-0 무승부, 승부차기에서 2-4로 패했다.
2008년 8월 20일, 델 피에로는 오스트리아와의 친선전에서 리피 감독의 지휘 하에 90번째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를 치러,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역대 5번째로 90경기 출전을 돌파한 선수가 되었다. 비록 불혹까지 현역으로 뛸 의사를 밝혔지만, 델 피에로는 리피의 2010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델 피에로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2-0으로 이긴 조지아와의 2008년 9월 10일 2010년 월드컵 예선전 경기였다. 그는 이 경기에서 56분에 디 나탈레와 교체되어 들어가 다니엘레 데 로시의 추가골을 도왔다.
2013년, 체사레 프란델리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은 델 피에로를 2014년 FIFA 월드컵 명단에 포함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언급했지만, 델 피에로는 결국 브라질에서 열린 대회 본선의 이탈리아 선수단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5. 선수 특징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창의적인 경기 방식, 골 결정력, 우아함, 기술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판타지스타"(fantasista이탈리아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공격에 창의성을 불어넣고, 많은 골을 도우며, 스스로 골문을 열기도 하는 등 "골 사냥꾼"과는 다른 선수로 평가받았다.
델 피에로는 지원형 공격수 역할을 선호했으며, 연계 플레이와 1대2 대응 능력을 극대화했다. 그는 역동적이고 마무리가 깔끔하여 전방 어디에서든 뛸 수 있는 전술적인 다재다능함을 갖춘 공격수였다. 현역 시절 많은 골을 넣은 공격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주로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 중간의 "3/4부"(trequartista이탈리아어)에서 플레이메이커형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 시야, 패스, 볼 컨트롤, 드리블(특히 1대1 상황) 능력을 극대화했지만, 이 역할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밝혔다. 디디에 데샹 감독은 2006년에 델 피에로를 "9.5번"이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미셸 플라티니가 이전에 로베르토 바조를 묘사할 때 사용했던 표현으로, 델 피에로가 스트라이커(전통적으로 등번호 9번)와 공격형 미드필더(전통적으로 등번호 10번) 사이, 즉 후방 공격수로 배치되는 그의 특징을 나타낸다. 델 피에로는 이 자유로운 역할에서 측면으로 빠지거나 안쪽으로 쇄도해 주발인 오른발로 골문을 노리기도 했다. 그는 기술적, 공격적, 창의적 역량 외에도 양발을 모두 잘 다루고 수비에도 효율적이었으며, 패스도 정확했다.
축구 매체에서는 "델 피에로의 골"(Gol alla Del Piero)을 측면에서 공을 몰아 가운데로 쇄도한 뒤 문전 영역 밖에서, 정확히 감아 발등으로 던지듯 반대편 위쪽 골 구석으로 주발로 차 넣는 골로 정의하고 있다. 델 피에로가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를 "델 피에로의 영역"(Zona Del Piero)으로 수식한다.
델 피에로는 프리킥과 페널티킥(페널티킥으로 62골) 전문가였다. 그는 세리에 A 역사상 페널티킥으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 3위이며, 61번의 시도 중 50골을 성공시켰다. 델 피에로의 독특한 프리킥 기술은 보통 높이 솟아오른 후 골대 상단 구석으로 갑자기 떨어지는 커브 킥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는 현재 모든 대회를 통틀어 이탈리아 역대 프리킥 최다 득점자이다 (52골: 클럽 레벨 46골,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6골). 그는 또한 세리에 A 역대 프리킥 최다 득점 3위이며, 22골을 기록했다.
5.1. 경기 방식
델 피에로는 창의적인 경기 방식, 골을 노리는 시선, 우아함, 기술력이 결합된 선수로, 이탈리아에서 "판타지스타"(fantasista)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격에 창의성을 불어넣어, 많은 골을 돕거나, 스스로 골문을 열어, "골 사냥꾼"과는 다른 선수로 평가받았다. 델 피에로는 이러한 경기 방식, 연계력, 1대2 대응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원형 공격수 역할을 가장 선호했다. 역동적이고, 마무리가 깔끔해 전방 어디든 맡을 수 있는 전술적으로 다재다능한 공격수로서 현역 시절에 많은 골을 넣은 공격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주로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 중간의 "3/4부"(trequartista)에 플레이메이커형 공격 미드필더를 맡아 시야, 공넘김, 공 제어, 공몰이(특히 1대1 상황)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그는 반복해서 이 역할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디디에 데샹은 2006년에 델 피에로가 공격수(전통적으로 등번호 9번)와 공격형 미드필더(전통적으로 등번호 10번) 사이, 후방 공격수로 배치되는 그의 특징을 착안해 "9.5"번이라고 칭했다. 델 피에로는 이 자유로운 역할을 맡아 측면으로 빠지거나 안쪽으로 쇄도해 주발인 오른발로 골망을 조준하기도 했다. 델 피에로는 기술적, 공격적, 창의적 역량 외에도 양발을 모두 잘 다루는 것은 물론 수비에서도 효율적이며, 공배급도 정확했다. 그는 선수들, 평론가들, 그리고 감독들로부터 당대 손꼽히는 위대한 선수로 평가되었고, 역대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로도 거론되었다. 그는 몇몇 평론가로부터 유벤투스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5.2. 위상과 평가
델 피에로는 창의적인 경기 방식, 골을 노리는 시선, 우아함, 기술력이 결합된 선수로, 이탈리아에서 "판타지스타"(fantasista이탈리아어)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근면하게 경기에 임하며 공격에 창의성을 불어넣어, 많은 골을 돕거나, 스스로 골문을 열어, 단순한 "골 사냥꾼"과 대척점을 이루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델 피에로는 이러한 경기 방식, 연계 능력, 1대2 대응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원형 공격수 역할을 가장 선호했다. 그는 역동적이고 마무리가 깔끔하여 전방 어디든 맡을 수 있는 전술적으로 다재다능한 공격수였으며, 현역 시절 많은 골을 넣은 공격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주로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 중간의 "3/4부"(trequartista이탈리아어)에 플레이메이커형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되어 시야, 패스, 볼 컨트롤, 드리블(특히 1대1 상황) 능력을 극대화했지만, 이 역할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밝혔다. 디디에 데샹은 2006년에 델 피에로를 "9.5번"이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미셸 플라티니가 이전에 로베르토 바조를 묘사할 때 사용했던 표현으로, 델 피에로가 스트라이커(전통적으로 등번호 9번)와 공격형 미드필더(전통적으로 등번호 10번) 사이, 즉 후방 공격수로 배치되는 그의 특징을 나타낸다. 델 피에로는 이 자유로운 역할에서 측면으로 빠지거나 안쪽으로 쇄도해 주발인 오른발로 골문을 노리기도 했다. 그는 기술적, 공격적, 창의적 역량 외에도 양발을 모두 잘 다루고 수비에도 효율적이었으며, 패스도 정확했다.
델 피에로는 선수, 평론가, 감독들로부터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고, 역대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도 거론되었다. 그는 몇몇 평론가로부터 유벤투스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유소년 시절부터 축구에 두각을 나타낸 델 피에로는 마르첼로 리피의 4-3-3 포메이션에서 잔루카 비알리, 바조, 파브리치오 라바넬리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루어 스트라이커나 왼쪽 윙어로 배치되었다. 지네딘 지단이 플레이메이커로 합류하면서 유벤투스는 4-4-2 포메이션으로 변경되었고, 델 피에로는 크리스티안 비에리나 필리포 인자기와 함께 최전방에서 스트라이커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1998년 부상으로 폭발적인 주력, 판단 속도, 우아함, 민첩성이 떨어지면서, 델 피에로는 근육 강화 훈련을 통해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시절 3-4-1-2 포메이션에서 플레이메이커 지단과 함께 자유로운 역할로 공격형 미드필더 앞, 주포 인자기 뒤에 서는 창의적인 역할을 맡았다. 일부 언론은 부상 후 득점력이 떨어져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비판했지만, 그는 창의적인 공격으로 골을 돕는 역할로 성공적으로 전향했다.
2001년 리피 감독의 두 번째 임기 동안 유벤투스의 경기 방식이 바뀌면서, 델 피에로는 지단의 대체자로 합류한 파벨 네드베드와 함께 유동적인 4-4-2 포메이션에서 지원형 공격수로 다비드 트레제게 뒤에 섰다. 그는 파비오 카펠로와 그 이후의 감독들 밑에서도 유사한 역할을 맡았고, 주포로서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간혹 맡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교체 투입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델 피에로는 아리고 사키 감독 시절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4-4-2 포메이션의 측면 미드필더로 출전하기도 했다.
로베르토 베칸티니는 델 피에로에 대해 "잊을 수 없는 골과 놀라운 도움을 만들어내는 몽상가"와 "1998년 부상 이후 고군분투하며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선수"라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델 피에로가 유벤투스에서의 활약과 달리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특히 주요 국제 대회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델 피에로는 오랜 선수 생활 동안 꾸준한 득점력과 30대 후반에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며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그는 재능과 축구 실력 외에도 유벤투스에서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내성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주장직을 역임했다. 그는 경기장에서의 페어플레이와 올바른 행동으로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델 피에로는 직접 프리킥과 페널티킥(62골 성공)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세리에 A 역사상 최다 페널티킥 득점에서 프란체스코 토티와 로베르토 바조에 이어 3위(61회 시도, 50골 성공)를 기록했다. 델 피에로 특유의 프리킥 기술은 벽을 높이 넘기는 감아차기로, 급격하게 골문 상단으로 꺾여 들어갔다. 그는 로베르토 바조와 유벤투스에서 함께 훈련하며 바조의 전술을 연구했고, 미셸 플라티니의 프리킥 기술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유망주 시절부터 그의 프리킥 기술은 플라티니와 비교되었으며, 골문 약 20미터 앞에서 동료가 공을 먼저 건드리기 전에 직접 차넣는 것을 선호했다. 델 피에로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이탈리아 선수 중 프리킥으로 가장 많은 득점(52골, 소속 구단 46골,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6골)을 기록했다. 그는 22골로 세리에 A 프리킥 역대 최다 득점 3위에 올라 있으며, 안드레아 피를로와 시니샤 미하일로비치만이 그보다 더 많은 프리킥 득점에 성공했다.
5.3. 맞춤 전술
델 피에로는 창의적인 경기 방식, 득점력, 우아함, 기술을 겸비한 선수로, 이탈리아에서 "판타지스타"(fantasista)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근면하고 공격에 창의성을 불어넣어 많은 골을 돕거나 직접 득점하여, 단순한 "골 사냥꾼"과는 다른 선수로 평가받았다. 델 피에로는 이러한 경기 방식, 연계 능력, 1대2 대응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원형 공격수 역할을 가장 선호했다. 역동적이고 마무리가 깔끔하여 전방 어디든 맡을 수 있는 전술적 다재다능함을 갖춘 공격수로서 현역 시절 많은 골을 넣은 공격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주로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 중간의 "3/4부"(trequartista)에서 플레이메이커형 공격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 시야, 패스, 볼 컨트롤, 공몰이(특히 1대1 상황) 능력을 극대화했지만, 이 역할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밝혔다. 델 피에로의 전 유벤투스 동료이자 감독이었던 디디에 데샹은 2006년에 미셸 플라티니가 로베르토 바조의 역할을 설명할 때처럼, 델 피에로가 공격수(9번)와 공격형 미드필더(10번) 사이, 후방 공격수로 배치되는 특징을 착안해 "9.5"번이라고 묘사했다. 델 피에로는 이 자유로운 역할에서 측면으로 빠지거나 안쪽으로 쇄도해 주발인 오른발로 골망을 노리기도 했다. 델 피에로는 기술적, 공격적, 창의적 역량 외에도 양발을 모두 잘 다루고 수비에서도 효율적이었으며, 공 배급도 정확했다.
축구 매체에서는 "델 피에로의 골"(Gol alla Del Piero)을 측면에서 공을 몰아 가운데로 쇄도한 뒤 문전 영역 밖에서, 정확히 감아 발등으로 던지듯 반대편 위쪽 골 구석으로 주발로 차 넣는 골로 정의하고 있다. 델 피에로의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를 "델 피에로의 영역"(Zona Del Piero)으로 수식한다. 이는 델 피에로가 마르첼로 리피 감독 임기 처음 2년 동안, 특히 유벤투스가 1995-96 시즌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할 때 이 위치에서 델 피에로의 골을 공격 전개 상황이나 맞춤 전술로 좌측에서 쇄도해 오른발로 성공시킨 데에서 유래했다. 델 피에로는 현역 시절동안 계속해서 비슷한 방식으로 득점에 성공했고, "델 피에로의 골"이라는 표현은 다른 선수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골을 성공시킬 때에도 동일하게 수식되었다.
델 피에로는 프리킥과 페널티킥(페널티킥으로 62골) 전문가였다. 그는 세리에 A 역사상 페널티킥으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 3위이며, 61번의 시도 중 50골을 성공시켰다. 이는 프란체스코 토티와 로베르토 바조에 이어 두 번째이다. 델 피에로의 독특한 프리킥 기술은 보통 높이 솟아오른 후 골대 상단 구석으로 갑자기 떨어지는 커브 킥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는 세트피스에서의 능력을 유벤투스 시절 함께 훈련하면서 로베르토 바조를 연구한 시간 덕분이라고 말하며, 그의 우상 중 한 명인 플라티니의 프리킥 기술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그의 프리킥 기술은 프랑스인 플라티니의 기술과 비교되었는데, 그는 동료 선수가 먼저 터치하는 것보다 20미터 정도 거리에서 직접 킥으로 공을 차는 것을 선호했다. 델 피에로는 현재 모든 대회를 통틀어 이탈리아 역대 프리킥 최다 득점자이다 (52골: 클럽 레벨 46골,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6골). 그는 또한 세리에 A 역대 프리킥 최다 득점 3위이며, 22골을 기록하여 안드레아 피를로와 시니사 미하일로비치에 이어 두 번째이다.
6. 축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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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피에로는 축구 외적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선글라스 브랜드 "AIRDP Style"과 이탈리안 레스토랑 "N10"을 운영하고, 미국 내에 축구 학교를 개설하는 등 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모국 이탈리아에서는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2021년에는 이탈리아 축구 연맹 감독 라이선스 강습을 수강했다.
모터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아, Moto-GP 레이서 가토 다이지로에게 사인을 받기도 했다. 2013년에는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ALMS)에 참전하는 뎀프시 레이싱의 공동 오너로 취임했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직접 선곡한 곡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델 피에로 셀렉션」을 제작했다. 오아시스의 원더월을 첫 곡으로 선정했고, 골드 디스크 시상식에는 친구인 노엘 갤러거가 직접 참석했다.
델 피에로는 친일적인 행보로도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일본을 주제로 발표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캡틴 츠바사의 작가 다카하시 요이치에게 "어릴 적에 캡틴 츠바사를 읽었습니다"라고 말했고, 아카시야 산마로부터 받은 다카하시 요이치 직필 일러스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FC 기후 경기에 참석하기도 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팬으로, 월드 프로레슬링을 즐겨 시청했으며, 후지나미 타츠히로, 안토니오 이노키 등의 팬이다. TV 아사히 인터뷰에서 후지나미 타츠히로와 만나 드래곤 슬리퍼를 시전받기도 했다. 루팡 3세의 팬이기도 하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자선 티셔츠를 판매하여 수익금 2300을 기부했다. 2002 FIFA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캠프지였던 센다이시의 참상에 깊은 슬픔을 표했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2012 J리그 스페셜 매치에 참가하여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3년 방일 당시에는 "도쿄 이외의 지역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6.1. 사생활
델 피에로는 코넬리아노에서 전기공 지노와 주부 브루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절에 절친 넬소와 피에르파올로와 함께 집 뒷마당에서 축구를 했었다. 세 소년 모두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델 피에로만 축구 선수로 성장했다. 그의 형 스테파노는 삼프도리아에서 잠깐 프로 선수로 활동했지만, 부상으로 은퇴했다. 스테파노는 이후 동생 알레산드로의 요원으로 활동했다. 델 피에로 가족은 산 벤데미아노 사콘 면의 시골집에 살았다. 유년 시절에 델 피에로 가족은 형편이 어려워 해외로 가기에 금전적으로 빠듯했기 때문에, 델 피에로는 트럭 운전사가 되어 세계일주를 할 생각도 했었다고 회고했다.
산 벤데미아노의 인근 유소년부에서 축구를 할 때, 델 피에로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골키퍼로 출전했었다. 그의 모친은 이 역할을 맡음으로서 그리 많은 땀을 흘리지 않고 부상 당할 염려도 적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형 스테파노는 모친에게 기술적으로 출중한 어린 델 피에로가 공격적인 역할을 맡기에 적합하다 의견을 건냈고, 델 피에로는 이후 공격수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델 피에로는 득점 후 양팔을 벌리고 혀를 내밀며 마이클 조던처럼 자축하거나, 주먹을 쥐고 공중으로 뛰어오르거나, 관중들에게 열정적으로 연호하며 무릎으로 미끄러지는 세레머니를 했다. 2008년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공중제비를 도는 기쁨짓을 선보이기도 했고, 몇몇 경우에는 득점하고 하늘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2000-01 시즌 바리전이나 2002년 FIFA 월드컵 멕시코전 득점 후처럼 작고한 부친에게 골을 바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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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선글라스 브랜드 "AIRDP Style"과 로스앤젤레스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N10"을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 내에 자신의 축구학교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투자를 하는 실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모국 이탈리아에서는 축구 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이탈리아 축구 연맹의 감독 라이선스 강습을 수강했다고 밝혔다.
모터스포츠 관람도 취미 중 하나이다. 2003년에 사망한 Moto-GP 레이서 가토 다이지로에게 생전에 사인을 받은 적이 있다. 2013년 1월에는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ALMS)에 참전하는 뎀프시 레이싱의 공동 오너에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음악을 좋아하며, 그가 선곡한 곡들을 모은 「델 피에로 셀렉션」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했다. 1번째 곡에는 영국의 록 밴드 오아시스의 원더월을 선곡했고, 골드 디스크 수여식에는 친구인 노엘 갤러거 본인이 직접 참석했다.
델 피에로는 일본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해외 국가 하나를 선택하여 발표하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우연히 일본을 선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캡틴 츠바사의 작가인 다카하시 요이치는 2000년 유럽을 방문했을 때 델 피에로로부터 "어릴 적에 캡틴 츠바사를 읽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 2011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아카시야 산마로부터 받은 다카하시 요이치 직필 일러스트를 공개하는 등, 현재도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캡틴 츠바사 일러스트가 들어간 FC 기후 유니폼을 FC 기후로부터 받은 것을 계기로 FC 기후 경기에 참석하기도 했다.
*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열렬한 팬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이탈리아에서도 TV 방영되었던 『월드 프로레슬링』을 어린 시절 자주 시청했다고 한다. 특히 후지나미 타츠히로, 안토니오 이노키, 기무라 겐고, 타이거 마스크의 팬이며, 2005년 TV 아사히 인터뷰에서 후지나미 타츠히로와 만났을 때는 기뻐하며 그의 기술 중 하나인 드래곤 슬리퍼를 요청하여 시전받았다.
* 애니메이션 『루팡 3세』 팬이다.
* 2011년 3월 일본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참사 소식을 듣고, 자선용으로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이탈리아 국기에 일장기를 겹쳐놓고 "友"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를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복구를 위해 기부할 것을 발표했다. 특히 피해가 컸던 센다이시는 2002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의 캠프지였으며, 그 참상을 보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고 한다. 그 티셔츠를 나가토모 유토도 착용했다. 또한 자선 사업 수익금으로 2300을 기부했다.
* 2012년 7월 21일 일본의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2012 J리그 스페셜 매치에 직접 참가를 신청하여 게스트 플레이어로 참가했다. 'J리그 TEAM AS ONE'(피해 지역 클럽·출신자 선발팀)의 일원으로 플레이하여 후반 25분에는 미들 슛으로 직접 득점을 기록했다.
* 2023년 9월 방일 당시에는 방일 이벤트가 도쿄에서 개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도쿄 이외의 지역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6.2. 자선 사업
AIRDP Style영어 선글라스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N10"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미국 내에 자신의 축구학교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투자를 하는 실업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6.3. 텔레비전, 오락, 공식 출연
델 피에로는 2006년 동계 올림픽 성화가 토리노를 통과할 때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했다. 그는 축구 외에도 농구 등 다른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으며, NBA 스타 스티브 내시와 사이클 선수 에디 머크스 등 유명 스포츠 스타들도 그의 팬이라고 밝혔다.
델 피에로는 음악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앨범을 몇 장 발매하기도 했다. 마르코 마테라치와 함께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 직후 밀라노에서 열린 롤링 스톤스 공연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음악가이자 가수인 노엘 갤러거와 절친하며, 그의 전 밴드 오아시스의 팬이기도 하다. 델 피에로는 앤서니 스키트와 함께 오아시스의 뮤직비디오 "Lord Don't Slow Me Down"에 출연했다. 어린 시절 그의 영웅 중 하나는 일본 축구 만화 캡틴 츠바사였다.
2012년 델 피에로는 스포츠계 부패에 대항하는 '세이브 더 드림'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스포츠 청렴 심포지엄에서 파리 대학교에서 이에 대해 연설했다.
모터스포츠 관람도 그의 취미 중 하나이다. 2003년에 사망한 Moto-GP 레이서 가토 다이지로에게 생전에 사인을 받은 적이 있다. 2013년 1월에는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ALMS)에 참전하는 뎀프시 레이싱의 공동 오너에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며, 그가 선곡한 곡들을 모은 「델 피에로 셀렉션」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했다. 1번째 곡에는 영국의 록 밴드 오아시스의 원더월을 선곡했고, 골드 디스크 수여식에는 친구인 노엘 갤러거 본인이 직접 참석했다.
7. 경력 통계
| 시즌 | 구단 | 리그 | 컵 | 대륙 | 기타 | 합계 | ||||||
|---|---|---|---|---|---|---|---|---|---|---|---|---|
| 리그명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파도바 | 1991–92 | 세리에 B | 4 | 0 | 0 | 0 | — | — | 4 | 0 | ||
| 1992–93 | 10 | 1 | 0 | 0 | — | — | 10 | 1 | ||||
| 합계 | 14 | 1 | 0 | 0 | — | — | 14 | 1 | ||||
| 유벤투스 | 1993–94 | 세리에 A | 11 | 5 | 1 | 0 | 2 | 0 | — | 14 | 5 | |
| 1994–95 | 29 | 8 | 10 | 1 | 11 | 2 | — | 50 | 11 | |||
| 1995–96 | 29 | 6 | 2 | 1 | 11 | 6 | 1 | 0 | 43 | 13 | ||
| 1996–97 | 22 | 8 | 4 | 0 | 6 | 4 | 3 | 3 | 35 | 15 | ||
| 1997–98 | 32 | 21 | 4 | 1 | 10 | 10 | 1 | 0 | 47 | 32 | ||
| 1998–99 | 8 | 2 | 1 | 0 | 4 | 0 | 1 | 1 | 14 | 3 | ||
| 1999–2000 | 34 | 9 | 2 | 1 | 9 | 2 | — | 45 | 12 | |||
| 2000–01 | 25 | 9 | 2 | 0 | 6 | 0 | — | 33 | 9 | |||
| 2001–02 | 32 | 16 | 4 | 1 | 10 | 4 | — | 46 | 21 | |||
| 2002–03 | 24 | 16 | 0 | 0 | 13 | 5 | 1 | 2 | 38 | 23 | ||
| 2003–04 | 22 | 8 | 4 | 3 | 4 | 3 | 1 | 0 | 31 | 14 | ||
| 2004–05 | 30 | 14 | 1 | 0 | 10 | 3 | — | 41 | 17 | |||
| 2005–06 | 33 | 12 | 4 | 5 | 7 | 3 | 1 | 0 | 45 | 20 | ||
| 2006–07 | 세리에 B | 35 | 20 | 2 | 3 | — | — | 37 | 23 | |||
| 2007–08 | 세리에 A | 37 | 21 | 4 | 3 | — | — | 41 | 24 | |||
| 2008–09 | 31 | 13 | 3 | 2 | 9 | 6 | — | 43 | 21 | |||
| 2009–10 | 23 | 9 | 1 | 2 | 5 | 0 | — | 29 | 11 | |||
| 2010–11 | 33 | 8 | 2 | 0 | 10 | 3 | — | 45 | 11 | |||
| 2011–12 | 23 | 3 | 5 | 2 | — | — | 28 | 5 | ||||
| 합계 | 513 | 208 | 56 | 25 | 127 | 51 | 9 | 6 | 705 | 290 | ||
| 시드니 | 2012–13 | A-리그 | 24 | 14 | — | — | — | 24 | 14 | |||
| 2013–14 | 24 | 10 | — | — | — | 24 | 10 | |||||
| 합계 | 48 | 24 | — | — | — | 48 | 24 | |||||
| 델리 다이너모스 | 2014 | 인도 슈퍼리그 | 10 | 1 | — | — | — | 10 | 1 | |||
| 경력 합계 | 585 | 234 | 56 | 25 | 127 | 51 | 9 | 6 | 777 | 316 | ||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골 |
|---|---|---|---|
| 이탈리아 | 1995 | 7 | 1 |
| 1996 | 4 | 2 | |
| 1997 | 6 | 4 | |
| 1998 | 8 | 3 | |
| 1999 | 2 | 0 | |
| 2000 | 13 | 4 | |
| 2001 | 6 | 3 | |
| 2002 | 11 | 5 | |
| 2003 | 4 | 2 | |
| 2004 | 6 | 1 | |
| 2005 | 4 | 0 | |
| 2006 | 9 | 2 | |
| 2007 | 5 | 0 | |
| 2008 | 6 | 0 | |
| 합계 | 91 | 27 | |
| #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최종결과 | 대회 |
|---|---|---|---|---|---|---|
| 1 | 1995년 11월 15일 | 이탈리아 레조 에밀리아 질리오 | 리투아니아 | 1–0 | 4–0 | 유로 1996 예선전 |
| 2 | 1996년 1월 24일 | 이탈리아 테르니 리베르타티 | 웨일스 | 1–0 | 3–0 | 친선경기 |
| 3 | 1996년 5월 29일 | 이탈리아 크레모나 조반니 치니 | 벨기에 | 1–2 | 2–2 | 친선경기 |
| 4 | 1997년 1월 22일 | 이탈리아 팔레르모 렌초 바르베라 | 북아일랜드 | 2–0 | 2–0 | 친선경기 |
| 5 | 1997년 6월 8일 | 프랑스 리옹 제를랑 | 브라질 | 1–0 | 3–3 | 친선경기 |
| 6 | 3–1 | |||||
| 7 | 1997년 6월 11일 | 프랑스 파리 파르크 데 프랭스 | 프랑스 | 2–2 | 2–2 | 친선경기 |
| 8 | 1998년 1월 28일 | 이탈리아 카타니아 안젤로 마시미노 | 슬로바키아 | 2–0 | 3–0 | 친선경기 |
| 9 | 1998년 10월 10일 | 이탈리아 우디네 프리울리 | 스위스 | 1–0 | 2–0 | 유로 2000 예선전 |
| 10 | 2–0 | |||||
| 11 | 2000년 2월 23일 | 이탈리아 팔레르모 렌초 바르베라 | 스웨덴 | 1–0 | 1–0 | 친선경기 |
| 12 | 2000년 6월 19일 |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필립스 스타디온 | 2–1 | 2–1 | 유로 2000 | |
| 13 | 2000년 10월 11일 | 이탈리아 안코나 코네로 | 조지아 | 1–0 | 2–0 | 2002년 월드컵 예선전 |
| 14 | 2–0 | |||||
| 15 | 2001년 3월 28일 |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네레오 로코 | 리투아니아 | 2–0 | 4–0 | 2002년 월드컵 예선전 |
| 16 | 4–0 | |||||
| 17 | 2001년 10월 6일 | 이탈리아 파르마 엔니오 타르디니 | 헝가리 | 1–0 | 1–0 | 2002년 월드컵 예선전 |
| 18 | 2002년 2월 13일 | 이탈리아 카타니아 안젤로 마시미노 | 미국 | 1–0 | 1–0 | 친선경기 |
| 19 | 2002년 6월 13일 | 일본 오이타 오이타 경기장 | 멕시코 | 1–1 | 1–1 | 2002년 월드컵 |
| 20 | 2002년 9월 7일 | 아제르바이잔 바쿠 토피크 바흐라모프 | 아제르바이잔 | 2–0 | 2–0 | 유로 2004 예선전 |
| 21 | 2002년 10월 12일 | 이탈리아 나폴리 산 파올로 | 유고슬라비아 연방 | 1–1 | 1–1 | 유로 2004 예선전 |
| 22 | 2002년 10월 16일 | 웨일스 카디프 밀레니엄 경기장 | 웨일스 | 1–1 | 1–2 | 유로 2004 예선전 |
| 23 | 2003년 6월 11일 | 핀란드 헬싱키 헬싱키 올림픽 경기장 | 핀란드 | 2–0 | 2–0 | 유로 2004 예선전 |
| 24 | 2003년 9월 6일 | 이탈리아 밀라노 주세페 메아차 | 웨일스 | 4–0 | 4–0 | 유로 2004 예선전 |
| 25 | 2004년 9월 8일 | 몰도바 키시너우 레푸블리칸 | 몰도바 | 1–0 | 1–0 | 2006년 월드컵 예선전 |
| 26 | 2006년 3월 1일 | 이탈리아 피렌체 아르테미오 프란키 | 독일 | 4–0 | 4–1 | 친선경기 |
| 27 | 2006년 7월 4일 | 독일 도르트문트 베스트팔렌슈타디온 | 2–0 | 2–0 | 2006년 월드컵 |
* 유벤투스 통산 역대 최다 경기 출전(705경기)
* 유벤투스의 세리에 A 역대 최다 경기 출전 2위(478경기)
* 유벤투스의 이탈리아 리그 역대 최다 경기 출전 2위(세리에 A 및 세리에 B 도합 513경기 출전)
* 유벤투스의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역대 최다 경기 출전(2017년 8월 13일 기준 8경기)
* 유벤투스 역대 최다 득점자(290골: 전개 상황에서 186골, 페널티킥으로 62골, 프리킥으로 42골)
* 유벤투스 역대 최다 결승골 득점자(135골)
* 유벤투스의 경기 역대 최장 시간 출전 2위(48,363분)
* 유벤투스의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역대 최다 대회 출전 2위(6회)
* 유벤투스의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다 경기 출전 2위(92경기)
* 유벤투스의 역대 최다 유럽 축구 연맹 구단 대항전 경기 출전 2위(124경기)
* 유벤투스의 역대 최다 국제 경기 출전(130경기)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역대 최다 득점 2위(사뮈엘 에토, 안드리 셰우첸코, 카를로스 테베스와 동률 - 3골)
* 시드니 단일 시즌 역대 최다 득점(14골)
* 세리에 A 역대 최다 페널티 킥 득점 3위(50골)
* 세리에 A 최다 프리킥 득점 3위(22골)
* 이탈리아에서 역대 최다 프리킥으로부터 득점 연결(52골, 소속 구단에서 46골, 국가대표팀에서 6골)
* 이탈리아 역대 단일 시즌 통산 10골 이상 최다 시즌 (17시즌)
*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교체 투입 경기 득점(5골)
*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공동 4위(27골, 로베르토 바조와 동률)
8. 수상
| 클럽 | |
|---|---|
| 유벤투스 프리마베라 | |
| 유벤투스 | |
| 국가대표 | |
| 이탈리아 U-21 | |
| 이탈리아 | |
| 개인 | |
| 서훈 | |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 기사장 : 2000 | |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 장교장 : 2006 | |
| 이탈리아 국가 올림픽 위원회 "스포츠 공로 금메달": 20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