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야나기번
1. 개요
다카야나기 번은 에도 시대에 존재했던 번으로, 미노국 이와무라 번의 번주 니와 우지오토가 가문 소동으로 문책을 받아 에치고국 다카야나기로 전봉되면서 1702년에 시작되었다. 다카야나기 번은 무성 다이묘이자 정부 다이묘로 격하되었으며, 2대 번주 니와 시게우지 시대에 오사카 정번에 임명되어 기나이 인근으로 영지가 옮겨짐에 따라 1739년 폐지되었다. 이후 기나이 인근 영지가 하리마로 옮겨지면서 미쿠사 번으로 계승되었다. 다카야나기 번은 니와 우지오토와 니와 시게우지가 통치했으며, 니와 가문은 후다이 다이묘로 1만 석을 받았다.
| 국가 | 일본 |
|---|---|
| 지방 | 호쿠리쿠 지방 |
| 폐번치현 | 1869년 |
| 등급 | 후다이 |
|---|---|
| 석고 | 1만 석 |
| 번주 성씨 | 호리 가문 |
| 현재 지명 |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 다카야나기 정 |
|---|
| 설립 | 간에이 16년 (1639년) |
|---|---|
| 해체 | 메이지 2년 (18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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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시키 니와씨 -
니와 시게우지
니와 시게우지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니와 우지토시의 양자가 되어 다카야나기 번주를 이은 후 오사카성 정번을 거쳐 미쿠사 번으로 옮겨갔다. -
잇시키 니와씨 -
니와 우지오토
니와 우지오토는 이와무라 번의 4대 번주였으며, 재정 개혁을 시도했지만 가혹한 세금 징수로 인해 발생한 소동으로 인해 이봉되고 폐문 칩거되었다가 사면된 인물이다. -
에치고국의 번 -
다카다번
다카다번은 에치고국에 위치했던 번으로, 마쓰다이라 다다테루가 다카다 성을 건설하며 시작되어 여러 다이묘 가문이 통치하다가 사카키바라 씨를 거쳐 폐번치현되었고, 간분 대지진과 에치고 소동, 보신 전쟁 등의 사건을 겪었다. -
에치고국의 번 -
소미번
소미 번은 미조구치 요시카쓰가 개창한 에도 시대의 번으로, 요시카쓰의 자손들이 번주를 이어가다 마사치카 대에 영지가 몰수되어 폐지되었다. -
일본의 번 -
부번현 삼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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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번 -
판적봉환
판적봉환은 1868년부터 1871년까지 일본에서 시행된 제도로, 봉건적 막번 체제를 개혁하고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기 위해 각 번의 토지와 백성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 번의 역사
미노국 이와무라 번의 5대 번주 니와 우지오토는 막부로부터 가문 소동으로 인한 문책을 받고, 2만 석에서 1만 석으로 영지가 반감된 뒤, 겐로쿠 15년(1702년)에 에치고국 구비키군(頸城郡) 다카야나기로 전봉되었다. 이때 니와가는 성주 다이묘에서 무성(無城) 다이묘로 격하되었고, 산킨코타이를 행하지 않는 에도 정부(定府) 다이묘가 되었다.
호에이 2년(1705년) 니와 우지오토의 양자가 된 니와 시게우지는 2대 번주가 되었다. 겐분 4년(1739년) 니와 시게우지는 오사카 정번(大坂定番)에 임명되었고, 기나이 인근(가와치국·하리마국·미마사카국)으로 영지가 옮겨지게 되면서 다카야나기 번은 폐지되었다. 이후 엔쿄 3년(1746년)에 기나이 인근의 영지가 하리마로 옮겨지면서 미쿠사 번(三草藩)이 성립되었다.
2.1. 성립 배경
미노국 이와무라 번의 5대 번주 니와 우지오토는 막부로부터 가문 소동으로 인한 문책을 받고, 2만 석에서 1만 석으로 영지가 반감된 뒤, 겐로쿠 15년(1702년)에 에치고국 구비키 군(頸城郡일본어) 다카야나기로 전봉되었다. 이때 니와가는 성주 다이묘에서 무성(無城) 다이묘로, 게다가 산킨코타이를 행하지 않는 에도 정부(定府) 다이묘로 격하되었다.
2.2. 니와 시게우지 시대와 번의 폐지
미노국 이와무라 번의 5대 번주 니와 우지오토는 막부로부터 가문 소동으로 인한 문책을 받고, 2만 석에서 1만 석으로 영지가 반감된 뒤, 겐로쿠 15년(1702년)에 에치고국 구비키 군(頸城郡일본어) 다카야나기로 전봉되었다. 이때 니와 가문은 성주 다이묘에서 무성(無城) 다이묘로, 게다가 산킨코타이를 행하지 않는 에도 정부(定府) 다이묘로 격하되었다.
양자로서 호에이 2년(1705년)에 2대 번주가 된 니와 시게우지는 겐분 4년(1739년) 오사카 정번(大坂定番)에 임명되어, 기나이 인근(가와치국·하리마국·미마사카국)으로 영지가 옮겨지게 되어 다카야나기 번은 폐지되었다. 이후 엔쿄 3년(1746년)에 기나이 인근의 영지가 하리마로 옮겨지면서 미쿠사 번(三草藩)의 성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2.3. 미쿠사 번으로의 계승
니와 우지오토는 막부로부터 가문 소동으로 인한 문책을 받고, 2만 석에서 1만 석으로 영지가 반감된 뒤, 1702년(겐로쿠 15년)에 에치고국 구비키군(頸城郡) 다카야나기로 전봉되었다. 이때 니와 가문은 성주 다이묘에서 무성(無城) 다이묘로, 게다가 산킨코타이를 행하지 않는 에도 정부(定府) 다이묘로 격하되었다.
양자로서 1705년(호에이 2년)에 2대 번주가 된 니와 시게우지는 1739년(겐분 4년) 오사카 정번(大坂定番)에 임명되어, 기나이 인근(가와치국·하리마국·미마사카국)으로 영지가 옮겨지게 되어 다카야나기 번은 폐지되었다. 이후 1746년(엔쿄 3년)에 기나이 인근의 영지가 하리마로 옮겨지면서 미쿠사 번(三草藩)이 성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