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테 무라요리
1. 개요
다테 무라요리는 센다이 번의 3대 번주 다테 쓰나무네의 차남으로,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양자가 된 후 5대 당주가 되었다. 그는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지행고를 늘리고 치수 사업에 힘썼다. 이후 나카쓰야마 번의 번주가 되었으나, 사건으로 인해 근신 처분을 받았다. 20년 후 사면되어 출가하였으며, 62세에 사망했다. 그의 장남 다테 무라아키라는 가와사키 다테 가문을 세웠다.
| 씨명 | 다테 씨 (종가, 미즈사와 다테 가문, 가와사키 다테 가문), 다무라 씨 |
|---|---|
| 이름 | 다테 무라카즈 |
| 이명 | 통칭: 쇼겐, 오리베, 가즈에, 사쿄 |
| 휘 | 다테 쓰루치요 (유명), 다무라 아키타카, 다테 아키타카, 무라토, 무라카즈, 조가쿠 (법호) |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중기 |
| 생일 | 간분 원년 8월 25일 (1661년9월 18일) |
| 사망일 | 교호 7년 6월 29일 (1722년8월 10일) |
| 묘소 | 미야기현센다이시아오바구의 도쇼지 |
| 관위 | 종5위 하・미마사카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다테 쓰나무라, 도쿠가와 쓰나요시 |
| 번 | 무쓰센다이 번 번사, 무쓰 나카쓰야마 번 번주 |
| 부모 | 다테 무네카게, 미사와 하쓰코 다테 무네카게 |
|---|---|
| 형제자매 | 쓰나무라, 무라카즈, 무네치카, 나쓰히메, 무라나오, 루이히메, 미히메, 지에히메, 기라히메ほか |
| 배우자 | 미사와 무네나오 딸・오쓰네 신아이인, 세이신인 |
| 자녀 | 무라아키라, 우사부로, 미사와 무라키요, 고마고로, 무라노리, 시호, 리쓰도 무라카게 |
| 미즈사와 다테 가문 당주 | 전임자: 다테 무네카게 후임자: 다테 무라카게 대수: 5 임기: ? ~ 1695년 |
|---|---|
| 나카쓰야마 번 번주 | 후임자: 폐번 임기: 1695년 ~ 1699년 |
-
무쓰국의 번주 -
혼다 다다모치
혼다 다다모치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혼다 다다카쓰의 손자이자 혼다 다다요시의 차남이며, 1662년 영지를 분할받아 아사카와 번의 초대 번주가 되었으나 젊은 나이로 사망하여 동생이 가문을 계승하였다. -
무쓰국의 번주 -
혼다 다다하루
혼다 다다하루는 에도 시대의 무장, 다이묘로 혼다 다다카쓰의 증손이며 아사카와 번, 이보 번을 거쳐 사가라 번의 초대 번주를 지냈고, 번의 재정 안정과 막부의 요직을 역임했다. -
미즈사와 다테가 -
루스 마사카게
루스 마사카게는 다테 하루무네의 아들로 태어나 루스 씨를 계승한 무장으로, 다테 씨를 도와 세력 확장에 기여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다테 군 총대장으로 활약했고, 이후 다테 씨 일문으로 합류하여 이치노세키 2만 석을 받았다. -
미즈사와 다테가 -
다테 무라토시
다테 무라토시는 에도 시대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7대 당주이자 요시다 번의 8대 번주로, 다테 무라카게의 아들이며 다테 무라아키의 양자가 되었으나 26세에 요절했다. -
1661년 출생 -
카를로스 2세 (스페인)
카를로스 2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친혼으로 인한 건강 문제와 후계자 부재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야기하고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종말을 가져온 스페인 국왕이다. -
1661년 출생 -
김주신
김주신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의 아버지이며, 순안현령으로 선정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인원왕후가 왕비가 된 후 영돈녕부사에 제수되고 경은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사후 효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 생애
간분 원년(1661년) 8월 25일, 센다이 번 3대 번주 다테 쓰나무네의 차남으로 에도 시나가와 저택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쓰루치요였다.
간분 11년 12월 19일(1672년 1월), 백부이자 이와누마 번 초대 번주 다무라 무네나가를 에보시 오야로 하여 원복하고, 다무라 아키타카(田村顕孝)로 개명했다.
엔포 3년(1675년) 3월, 미즈사와 다테씨 4대 당주 다테 무네카게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형 다테 쓰나무라의 뜻에 따라 미즈사와 다테 가문에 입양되었다. 윤4월 15일, 가독을 상속하여 5대 당주가 되었고, 다테 아키타카로 이름을 고쳤다. 엔포 5년(1677년) 9월 18일, 미즈사와 요새에 입부하면서 형 쓰나무라에게서 한 글자를 받아 무라토(村任)로 개명했다. 같은 해, 미사와 무네나오의 딸 오쓰네(어머니 쪽 사촌 여동생)와 정실 부인으로 결혼했다. 무라토는 번주 쓰나무라의 동복 동생으로서 가독 상속 이후 여러 차례 가증되어, 조쿄 원년(1684년) 3월에는 지행고가 21,635석에 달했다. 이는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역대 최대 석고였다.
무라토는 늘어난 소령의 정비에 힘썼으며, 특히 센다 둑, 쥬안 제방 개수 등 치수 사업에 힘썼다. 겐로쿠 3년(1690년) 1월 11일, 『루스 가문 조항』 8개 조항을 제정하여 가문 내부를 단속했다.
겐로쿠 8년(1695년) 7월 6일, 형 쓰나무라로부터 3만 석을 분할받아 나카쓰야마 번의 번주가 되었고, 무라와로 개명했다.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가독은 조카인 키치노스케에게 물려주고 미즈사와를 떠나 에도로 갔다. 같은 해 12월 18일, 종5위하 미사카 수호에 서임되었다.
무라와는 겐로쿠 9년(1696년) 도쿠가와 이에쓰나의 17주기 제례에서 공가 접대역을 맡는 등 활동했다. 그러나 겐로쿠 12년(1699년) 9월 9일, 에도 성으로 등성하는 행렬 앞을 가로막은 하타모토 오카 다카쓰네에게 수행원이 부상을 입힌 사건(도키마치 사건)으로 인해, 9월 26일 근신 명령을 받았다. 10월 28일에는 형 쓰나무라의 청원으로 개역되었다. 결국 무라와는 한 번도 번청인 나카쓰야마 진야에 들어가지 못했다.
무라와의 신병은 형 쓰나무라에게 맡겨졌고, 미야기군 노무라에서 칩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매년 금 200냥과 쌀 2000석을 지급받았다. 칩거 처분은 20년에 달했고, 교호 4년(1719년) 12월 18일, 겨우 죄를 사면받았다. 이듬해 교호 5년(1720년) 9월 24일, 출가하여 조가쿠라고 칭했다.
교호 7년(1722년) 6월 29일 사망했다. 향년 62세. 같은 해 9월, 장남인 무라아키라가 일문의 가문에 속해 가와사키 요새를 하사받아 2000석을 다스렸으며, 자손들은 막말까지 그곳을 다스렸다(가와사키 다테 가문).
2.1. 탄생부터 미즈사와 다테 가문 시대
간분 원년(1661년) 8월 25일, 센다이 번 3대 번주 다테 쓰나무네의 차남으로 에도의 시나가와 저택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쓰루치요이다.
간분 11년 12월 19일(1672년 1월), 백부이자 이와누마 번 초대 번주 다무라 무네나가를 에보시 오야로 하여 원복하고, 다무라 아키타카(田村顕孝)라고 이름을 지었다.
엔포 3년(1675년) 3월, 미즈사와 다테 가문 4대 당주 다테 무네카게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형 다테 쓰나무라의 뜻에 따라 미즈사와 다테 가문에 입양되었다. 윤4월 15일, 가독을 상속하여 5대 당주가 되었고, 이름을 다테 아키타카로 고쳤다. 엔포 5년(1677년) 9월 18일, 미즈사와 요새에 입부하면서 형 쓰나무라에게서 한 글자를 받아 무라토(村任)로 개명했다. 같은 해, 미사와 무네나오의 딸 오쓰네(어머니 쪽 사촌 여동생)를 정실 부인으로 맞이했다. 무라토는 번주 쓰나무라의 동복 동생으로서 가독 상속 이후 여러 차례 가증되어, 조쿄 원년(1684년) 3월에는 지행고가 21,635석에 달했다. 이는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역대 최대 석고였다.
무라토는 늘어난 소령의 정비에 힘썼으며, 특히 센다 둑, 쥬안 제방의 개수 등 치수 면에 힘썼다.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가신단은 루스 가문 대대로 내려온 가신뿐만 아니라, 이후 다테 가문, 구로카와 가문, 고쿠분 가문 등에서 참여한 가문도 많아 파벌 간의 항쟁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겐로쿠 3년(1690년) 1월 11일, 『루스 가문 조항』 8개 조항을 제정하여 가문 내부를 단속했다.
2.2. 나카쓰야마 번주 시대부터 사망까지
겐로쿠 8년(1695년) 7월 6일, 형인 쓰나무라로부터 3만 석을 분할받아 나카쓰야마 번의 번주가 되었고, 무라와로 개명했다. 미즈사와 다테 가문의 가독은 조카인 키치노스케에게 물려주고 미즈사와를 떠나 에도로 갔다. 같은 해 12월 18일, 종5위하 미사카 수호에 서임되었다.
무라와는 겐로쿠 9년(1696년) 도쿠가와 이에쓰나의 17주기 제례에서 공가 접대역을 맡는 등 활동했다. 그러나 겐로쿠 12년(1699년) 9월 9일, 에도 성으로 등성하는 행렬 앞을 가로막은 하타모토 오카 다카쓰네에게 수행원이 부상을 입힌 사건(도키마치 사건)으로 인해, 9월 26일 근신 명령을 받았다. 10월 28일에는 형 쓰나무라의 청원으로 개역되었다. 결국 무라와는 한 번도 번청인 나카쓰야마 진야에 들어가지 못했다.
무라와의 신병은 형 쓰나무라에게 맡겨졌고, 미야기군 노무라에서 칩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매년 금 200냥과 쌀 2000석을 지급받았다. 칩거 처분은 20년에 달했고, 교호 4년(1719년) 12월 18일, 겨우 죄를 사면받았다. 이듬해 교호 5년(1720년) 9월 24일, 출가하여 조가쿠라고 칭했다.
교호 7년(1722년) 6월 29일 사망했다. 향년 62세. 같은 해 9월, 장남인 무라아키라가 일문의 가문에 속해 가와사키 요새를 하사받아 2000석을 다스렸으며, 자손들은 막말까지 그곳을 다스렸다(가와사키 다테 가문).
3. 계보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다테 쓰나무네 | 1640년 ~ 1711년 |
| 어머니 | 미사와 하쓰코 | 1640년 ~ 1686년, 미사와 기요나가의 딸 |
| 양아버지 | 다테 무네카게 | 1651년 ~ 1675년 |
| 정실 | 오토 | 미사와 무네나오의 딸 |
| 측실 | 신아인 | |
| 측실 | 세이신인 | |
| 형제자매 | 이름 | 비고 |
| 장남 | 다테 쓰나무라 | 1659년 ~ 1719년 |
| 차남 | 다테 무라카즈 | |
| 삼남 | 다테 무네아키 | 1665년 ~ 1711년 |
| 장녀 | 나쓰히메 | 기요코, 다테 모토자네 정실, 후 다테 무라타카 정실 |
| 사남 | 다테 무라나오 | 1666년 ~ 1709년 |
| 차녀 | 루이히메 | 다테 무라모토 정실 |
| 삼녀 | 미히메 | 나카무라 나리요시의 처 |
| 사녀 | 센히메 | 요절 |
| 오녀 | 치에히메 | 다치바나 사다아키 정실, 후에 이혼 |
| 육녀 | 키라히메 | 다테 쓰나무라의 양녀, 혼다 야스노리 정실 |
| 칠녀 | 나레이히메 | 요절 |
| 오남 | 다테 기쿠노신 | 요절 |
| 팔녀 | 무스히메 | 요절 |
| 육남 | 다테 키치주로 | 요절 |
| 구녀 | 유후히메 | 요절 |
| 십녀 | 타카히메 | 요절 |
| 자녀 | 이름 | 비고 |
| 장남 | 다테 우사부로 | 정실 소생 |
| 차남 | 미사와 무라키요 | 1707년 ~ 1765년, 미사와 무라타메의 양자, 정실 소생 |
| 장녀 | 시호 | 시라카와 무라히로의 처, 정실 소생 |
| 차녀 | 릿도 | 리츠, 다테 무라아키의 양녀, 다테 무라토시 정실, 정실 소생 |
| 장남 | 다테 무라아키 | 1697년 ~ 1744년, 가와사키 다테 가문 초대 당주, 측실 신아인 소생 |
| 장남 | 다테 코마고로 | 측실 세이신인 소생 |
| 장남 | 다테 무라토모 | 1715년 ~ 1742년, 도메다테 무라나가의 양자, 측실 세이신인 소생 |
| 양자 | 이름 | 비고 |
| 장남 | 다테 무라카게 | 1690년 ~ 1753년, 와쿠야다테 무라모토의 차남. 미즈사와 다테 가문을 상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