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호
1. 개요
교호(享保)는 1716년 8월 9일부터 1736년 6월 7일까지 사용된 일본의 연호이다. 7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구의 사망으로 시작되었으며,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교호 개혁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에도의 인구가 110만 명을 돌파하여 세계 최대 도시가 되었으며, 교호 대기근과 같은 사건도 발생했다.
| 시대 이름 | 교호 |
|---|---|
| 일본어 | 享保 (きょうほう) |
| 연호 | 넨고 (年号) |
| 천황 | 나카미카도 천황 (나카미카도 천황) / 사쿠라마치 천황 (사쿠라마치 천황) |
| 시작 | 쇼토쿠 6년 6월 22일 (1716년 7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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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료 | 겐분 원년 4월 28일 (1736년 6월 7일) |
| 출전 | 《서경》의 "하늘은 백성을 세우고, 임금을 세우시니, 모름지기 도울 만한 이를 주시어 능히 '향(享)'하게 하고 '보(保)'하게 하셨다."에서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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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 -
폐번치현
폐번치현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봉건적인 번 제도를 해체하고 현 제도를 도입하여 중앙 집권화와 재정 안정을 목표로 실시한 개혁으로, 1871년 칙령을 통해 260여 개의 번을 3부 302현으로 개편하고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현령을 임명하여 현재 일본 행정 구역 체계의 기반이 되었다. -
에도 시대 -
사가번
사가번은 히젠국을 지배하며 사가성을 번청으로 둔 번으로,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실권을 장악한 후 성립되었고, 에도 시대 나가사키 경비 부담 대신 산킨코타이 단축 특혜를 받았으며, 막말에는 나베시마 나오마사의 주도로 근대화를 추진, 메이지 유신에는 삿초토히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
일본의 연호 -
다이쇼 시대
다이쇼 시대는 1912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의 연호로,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국제 연맹 이사국 진출, 국내 사회 변화, 민주주의 사상 발전 등을 특징으로 하며, 1920년대 후반 세계 경제 불황의 영향을 받았다. -
일본의 연호 -
쇼와 시대
쇼와 시대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연호로, 히로히토 천황의 치세 동안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태평양 전쟁, 패전 후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겪었으며, 쇼와 천황의 사망으로 헤이세이 시대로 전환되었다.
2. 연호 제정
쇼토쿠 6년 6월 22일(1716년 8월 9일), 7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구가 사망하자 이를 이유로 개원하였다. 교호 21년 4월 28일(1736년 6월 7일), 겐분으로 개원되었다.
이 개원은 막부가 주도하여 날짜까지 지정한, 사실상 쇼군 취임을 기념하는 개원이었다. 이는 이후 막부 권력 쇠퇴로 인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출전은 『후주서』의 「享茲大命、保有万国」이다.
3. 교호 시대의 주요 사건
* 1717년(교호 2년):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교호 개혁을 지시하고 감독했다.
* 1718년(교호 3년): 바쿠후가 천황의 능묘를 수리하고, 헤이안쿄의 마치 부교 사무소에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目安箱일본어를 설치했다.
* 1720년(교호 5년): 니치렌 쇼슈의 제26대 최고 승려 닛칸 쇼닌이 고혼존을 새겼다.
* 1721년(교호 6년): 에도의 인구가 110만 명을 돌파하여 세계 최대 도시가 되었다.
* 1730년(교호 15년): 도쿠가와 막부가 오사카의 도지마 쌀 시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쌀 거래 관련 증권 거래소가 발전했다.
* 1732년(교호 17년): 교호 대기근 발생. 메뚜기 떼로 인해 서일본 지역을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 1733년(교호 18년): 일본에서 재배된 인삼이 시장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 1735년(교호 20년): 고구마가 일본 식단에 도입되었다.
3.1. 교호 개혁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추진한 교호 개혁은 에도 막부의 재정난을 극복하고 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일련의 정책이었다.
* 교호 4년(1719년) 11월 9일,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상대제령을 발령하여 참근교대 기간을 단축하고, 대신 쌀을 상납하게 하여 재정 수입을 늘리고자 했다.
* 교호 7년(1722년) 12월 21일, 메아스바코 투서를 계기로 고이시카와 양생소를 설치하여 빈민 구휼 정책을 펼쳤다.
* 교호 9년(1724년) 4월 14일, 오사카에서 교호 대화재(묘치 불)가 발생했다.
* 교호 15년(1730년) 8월 3일, 교토에서 교호 대화재(니시진 불)가 발생했다.
* 교호 17년(1732년), 교호 대기근이 발생하여 서일본을 중심으로 250만 명이 넘는 아사자가 발생하고, 농촌 사회가 피폐해졌다.
* 교호 20년(1735년), 도사 번에서 다보사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교호 개혁은 재정 재건, 농업 생산성 향상, 상업 통제, 신분제 강화 등을 목표로 했으나, 지나친 신분제 강화와 농민 통제는 비판받을 여지도 있다.
3.2. 기타 사건
* 1724년(교호 9년) 4월 14일: 교호 대화재(묘치 불)가 오사카에서 발생했다.
* 1730년 8월 3일(교호 15년, 6월 20일): 교호 대화재(니시진 불)가 교토 무로마치에서 발생하여 가옥 3,790채와 니시진의 직조기 3만 대 이상이 소실되었다. 막부는 쌀을 배포했다.
* 1735년(교호 20년): 도사 번(현재의 고치현)에서 다보사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4. 교호 시대의 인물
교호 시대에 활동한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출생 |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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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출생
* 1719년(교호 4년): 다누마 오키쓰구 (에도 막부 측근·로주, 사가라 번 초대 번주), 이이 나오하루 (요이타 번 제2대 번주)
* 1720년(교호 5년): 호소카와 시게카타 (구마모토 번 제7대 번주)
* 1723년(교호 8년): 이케노 타이카 (화가)
* 1728년(교호 13년): 히라가 겐나이
* 1730년(교호 15년): 모토오리 노리나가 (의사)
* 1733년(교호 18년): 칸인노미야 스케히토 친왕 (고카쿠 천황의 친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