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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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단양 적성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 위치한 석축 산성이다. 길이는 923m, 면적은 88,648m²이며, 삼국 시대 산성으로는 큰 규모에 속한다. 1978년 단국대학교 학술조사팀에 의해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제198호)가 발견되면서 그 중요성이 알려졌다. 신라가 고구려 영토였던 이곳을 점령한 후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비석을 세웠으며, 삼국 시대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 고려 시대 유물도 발견되어 고려 후기까지 읍성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양 적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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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적성비
유형사적
지정 번호265
지정일1979년 7월 26일
시대신라
면적88,648m2
주소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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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치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 위치하고 있다. 길이는 923m이고 면적은 88,648m2이다. 적성산성은 석축성으로 성의 길이가 923m이지만 대부분 붕괴되었고 북동쪽 내외 협축한 부분의 안쪽벽 높이 2 ~ 3m, 폭 1m의 석축이 일부만 남아 있다.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신라고구려 세력관계 변동을 알아 보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3. 역사

적성산성은 성산성이나 산성으로 불리다가 1978년 1월 인근 성내에서 단국대학교 학술조사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비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비석은 높이 93cm, 상단폭 109cm, 하단폭 53cm의 화강암으로 전면에는 1.5cm, 3cm의 예서체로 모두 282자가 음각돼 있다. 발견된 비는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제198호)'로 명명되었다.

이는 신라 시대의 비석으로, 신라고구려의 영토인 이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 놓은 것이다. 비석 외에 삼국 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 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 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 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3.1. 신라 시대

적성산성은 성산성이나 산성으로 불리다가 1978년 1월 인근 성내에서 단국대학교 학술조사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비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비석은 높이 93cm, 상단폭 109cm, 하단폭 53cm의 화강암으로 전면에는 1.5cm, 3cm의 예서체로 모두 282자가 음각돼 있다. 발견된 비는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제198호)'로 명명되었다.

이는 신라 시대의 비석으로, 신라고구려의 영토인 이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 놓은 것이다. 비석 외에 삼국 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 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 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 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3.2. 고려 시대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