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베시얼 워너
1. 개요
대니얼 베시얼 워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라이베리아의 제3대 대통령이었다. 그는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났으며, 라이베리아로 이주하여 하원 의장과 상원 의원을 역임했다. 워너는 라이베리아 국가의 가사를 썼으며,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내륙 지역 원주민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1868년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후, 1880년 몬로비아에서 사망했다.
| 이름 | 대니얼 베시얼 워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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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재임 기간 | 1864년 1월 4일 ~ 1868년 1월 6일 |
|---|---|
| 부통령 | 제임스 M. 프리스트 |
| 이전 대통령 | 스티븐 앨런 벤슨 |
| 다음 대통령 | 제임스 스프릭스 페인 |
| 부통령 재임 기간 | 1860년 1월 2일 ~ 1864년 1월 4일 |
| 대통령 | 스티븐 앨런 벤슨 |
| 이전 부통령 | 베벌리 페이지 예이츠 |
| 다음 부통령 | 제임스 M. 프리스트 |
| 제3대 국무장관 재임 기간 | 1854년 ~ 1856년 |
| 이전 국무장관 | 존 N. 루이스 |
| 다음 국무장관 | 제임스 스키브링 스미스 |
| 대통령 | 조지프 젱킨스 로버츠 |
| 출생일 | 1815년 4월 19일 |
| 출생지 |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카운티, 미국 |
| 사망일 | 1880년 12월 1일 |
| 사망지 | 라이베리아 |
| 정당 | 공화당 (라이베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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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의 부통령 -
스티븐 벤슨
스티븐 벤슨은 라이베리아의 제2대 대통령으로, 메릴랜드 아프리카 식민지를 라이베리아에 합병하고 여러 국가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얻었으며 라이베리아 원주민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
라이베리아의 부통령 -
윌리엄 톨버트
윌리엄 톨버트는 라이베리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으나, 쿠데타로 살해당하면서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의 정치적 지배가 종식되었다. -
메릴랜드주 출신 -
매슈 헨슨
매슈 헨슨은 로버트 피어리의 북극 탐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탐험가로, 뛰어난 항해술과 이누이트 문화 이해를 바탕으로 탐험에 기여했으나 인종차별로 인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업적이 재평가되었다. -
메릴랜드주 출신 -
존 로저스 (1812년)
존 로저스 (1812년)는 1812년 메릴랜드에서 태어나 지중해, 세미놀 전쟁, 남북 전쟁 등에 참전하고 신미양요에서 미국 함대를 지휘했으며, 미국 아시아 분함대 사령관과 해군 천문대장을 역임하다가 1882년에 사망한 미국의 해군 장교이다. -
1815년 출생 -
오토 폰 비스마르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9세기 후반 독일 통일의 주역인 프로이센 왕국 출신 정치가로, 철혈 정책을 통해 독일 제국을 건설하고 초대 총리가 되어 강력한 국가를 건설했지만, 국내 정책과 외교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
1815년 출생 -
에이다 러브레이스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영국의 귀족이자 수학자로, 찰스 배비지의 해석기관 연구를 통해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여겨지는 베르누이 수 계산 알고리즘을 고안하고 해석기관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제시한 선구자이다.
2. 생애
대니얼 베시얼 워너는 아메리카-라이베리아인 엘리트의 일원으로, 대통령 재임 전에는 라이베리아 하원 의원(1848년~1849년)과 라이베리아 상원 의원을 역임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1877년에는 미국 식민 협회의 에이전트가 되었다.
그는 라이베리아 국가의 가사를 썼으며, 라이베리아는 1847년 미국 식민 협회로부터 독립한 후 이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1880년 12월 1일 몬로비아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묘는 몬로비아의 캠프 존슨 로드와 워렌 스트리트 사이에 있다.
2.1. 미국에서의 초기 생애
대니얼 베시얼 워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카운티의 훅스타운 로드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이자 노예였으며, 워너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자유를 얻었다.
워너의 출생일은 불분명하다. 일부 기록에는 1815년 4월 19일에 태어난 것으로 나와 있다. 미국 식민 협회 문서에는 그가 1823년 볼티모어에서 친척 8명과 함께 오스웨고호를 타고 라이베리아로 이주할 당시 9세로 기록되어 있다.
2.2. 라이베리아 정치 입문
대니얼 베시얼 워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카운티의 훅스타운 로드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이자 노예였으며, 워너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자유를 얻었다.
워너의 출생일은 불분명하다. 일부 기록에는 1815년 4월 19일에 태어난 것으로 나와 있다. 미국 식민 협회 문서에는 그가 1823년 볼티모어에서 친척 8명과 함께 오스웨고호를 타고 라이베리아로 이주할 당시 9세로 기록되어 있다.
아메리카-라이베리아인 엘리트의 일원이었던 그는 대통령 재임 전에 라이베리아 하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848년부터 1849년까지 하원의장을 역임했고, 라이베리아 상원에서도 활동했다.
2.3. 대통령 재임 (1864년 ~ 1868년)
워너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는 정부와 이 지역 원주민, 특히 국가 내륙 지역의 원주민들과의 관계였다. 1868년, 그는 내륙 지역으로의 첫 정착민 원정대를 조직했다. 벤자민 J. K. 앤더슨이 이끈 이 원정대의 결과로, 아메리카-라이베리아 정부와 오늘날 기니 공화국의 무사두 공동체 간에 조약이 체결되었다. 앤더슨은 그가 통과한 지역의 사람, 관습, 천연 자원에 대한 주의 깊은 기록을 남겼고, 결국 자신의 여정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정보를 활용하여, 워너 정부는 내륙 지역에 대한 제한적인 통제를 행사하려 했다.
2.4. 대통령 퇴임 이후
미국 식민 협회의 에이전트가 1877년에 되었다. 1880년 12월 1일 몬로비아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묘는 몬로비아의 캠프 존슨 로드와 워렌 스트리트 사이에 있다.
3. 업적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하기 전, 아메리카-라이베리아인 엘리트의 일원이었던 워너는 라이베리아 하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848년부터 1849년까지 하원의장을 역임했고, 라이베리아 상원 의원으로도 활동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1877년에 그는 미국 식민 협회의 에이전트가 되었다.
워너는 라이베리아 국가의 가사를 썼으며, 라이베리아는 1847년 미국 식민 협회로부터 독립한 후 이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4.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1859년 선거 | 라이베리아의 부통령 | 5대 | 무소속 | 0% | -표 | 1위 | |
| 1861년 선거 | 라이베리아의 부통령 | 5대 | 무소속 | 0% | -표 | 1위 | |
| 1863년 선거 | 라이베리아의 대통령 | 3대 | 공화당 | 0% | -표 | 1위 | |
| 1865년 선거 | 라이베리아의 대통령 | 3대 | 공화당 | 0% | -표 | 1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