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발해
1. 개요
대발해는 발해 유민이 세운, 발해 부흥 운동 과정에서 건국된 마지막 국가이다. 1116년, 요나라의 동경 유수 소보선을 공격하여 동경성을 장악한 발해 귀족의 후손 고영창이 대원국을 건국하고 황제를 칭하며 융기 원년이라 하였다. 이후 국호를 대발해국으로 고쳤으나, 같은 해 금나라의 공격으로 고영창이 사망하면서 멸망하였다. 대발해 멸망 이후 발해인들은 금나라에서 귀족으로 대우받았으며, 금나라 황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 현지 이름 | 대발해 |
|---|---|
| 다른 표기 | 大渤海 |
| 존속 기간 시작 | 1116년 |
|---|---|
| 존속 기간 끝 | 1116년 |
| 이전 국가 | 흥료 |
| 이후 국가 | 고려 |
| 수도 | 동경성 |
| 수도 위치 | 중국 동경 |
| 공용어 | 발해어 거란어 퉁구스어 |
|---|
| 정부 형태 | 군주제 |
|---|---|
| 지도자 칭호 | 황제 |
| 지도자 이름 | 고영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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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국 -
후발해
후발해는 926년 발해 멸망 후 유민들이 927년 대광현을 중심으로 압록강 일대에 건국되었으나, 내부 혼란과 정안국 건국으로 938년 멸망하고 일부 유민은 고려로 귀순했다. -
정안국 -
동란국
동란국은 926년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멸망시킨 후 옛 발해 지역에 세운 나라로, 야율배가 왕으로 임명되었으나 요나라의 영향력 아래 놓이며 축소되었고, 발해를 계승하여 일본과의 외교를 유지하려 했다. -
발해 부흥운동 -
후발해
후발해는 926년 발해 멸망 후 유민들이 927년 대광현을 중심으로 압록강 일대에 건국되었으나, 내부 혼란과 정안국 건국으로 938년 멸망하고 일부 유민은 고려로 귀순했다. -
발해 부흥운동 -
동란국
동란국은 926년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멸망시킨 후 옛 발해 지역에 세운 나라로, 야율배가 왕으로 임명되었으나 요나라의 영향력 아래 놓이며 축소되었고, 발해를 계승하여 일본과의 외교를 유지하려 했다. -
만주의 역사 -
만주사변
만주사변은 1931년 일본 관동군이 류탸오후 사건을 자작극으로 일으켜 만주를 침략하고 만주국을 수립한 사건이며, 일본 군국주의 팽창을 가속화하고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
만주의 역사 -
만주국
만주국은 1931년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으로 세운 괴뢰국가로, 푸이를 황제로 옹립했으나 일본 관동군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고, 오족협화와 왕도낙토를 내세웠지만 일본 침략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다 1945년 일본 패망으로 멸망 후 중화인민공화국 영토가 되었다.
2. 역사
1115년 금나라는 1116년 요나라를 정벌하기 전 알로를 시켜 요양을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대발해는 멸망하였다. 대발해는 발해 부흥운동 과정에서 건국된 마지막 나라다.
2.1. 건국 배경
1115년 요(遼)의 부도(副都)인 동경(東京)의 유수(東京 留守) 소보선(蕭保先)이 엄하고 잔혹해서 변고를 당하자 호부사(戶部使) 대공정(大公鼎)이 곧바로 유수의 일을 대신 맡아보았다.
1116년 1월, 발해 귀족의 후손이자 유수의 비장(裨將)인 고영창(高永昌)이 동경 소보처를 토벌하고 옛 발해의 땅인 동경성을 장악했다. 요는 토벌군을 파견해 동경성 탈환을 시도했지만, 고영창은 이를 격퇴하고 대발해 황제에 즉위해 융기(隆基) 원년이라 하였다.
귀덕주(貴德州) 수장(守將) 야율여도(耶律余睹)가 광주발해(廣州渤海)를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고영창에게 귀부하였다.
요 천조제(天祚帝)가 소을설(蕭乙薛)과 고흥순(高興順)을 보내어 고영창을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흥요국 멸망 후, 발해 유민은 독자적인 정권을 잃었지만, 동아시아에서 강대한 세력을 자랑했던 거란족의 쇠퇴에 따라, 여진족과 함께 발해인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1115년, 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금을 건국했다. 완안부의 조상은 발해 왕의 대씨라고 칭하며, 또한 "여진과 발해는 한 가족"이라고 공언하는 등, 문화적으로 미숙했던 여진의 신정권은, 중원 문화에 통달한 발해 출신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2.2. 건국과 멸망
1115년 요(遼)의 부도(副都)인 동경(東京)의 유수(東京 留守) 소보선(蕭保先)이 엄하고 잔혹해서 변고를 당하자 호부사(戶部使) 대공정(大公鼎)이 곧바로 유수의 일을 대신 맡아보았다.
1116년 1월, 발해 귀족의 후손이자 유수의 비장(裨將)인 고영창(高永昌)이 동경 소보처를 토벌하고 옛 발해의 땅인 동경성을 장악했다. 요는 토벌군을 파견해 동경성 탈환을 시도했지만, 고영창은 이를 격퇴하고 대발해 황제에 즉위해 융기(隆基) 원년이라 하였다.
귀덕주(貴德州) 수장(守將) 야율여도(耶律余睹)가 광주발해(廣州渤海)를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고영창에게 귀부하였다.
요 천조제(天祚帝)가 소을설(蕭乙薛)과 고흥순(高興順)을 보내어 고영창을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1115년 건국된 금나라는 1116년 요나라를 정벌하기 전 알로를 시켜 요양을 공격하였다.
대발해는 발해 부흥운동 과정에서 건국된 마지막 나라다. 1116년 1월, 발해 귀족의 후손으로 요나라의 헌상관이었던 고영창이 요나라의 동경유수소보선을 공격하여 동경성(요양)에서 대원국을 건국했다. 거란은 토벌군을 파견하여 동경 탈환을 시도했지만, 고영창은 요나라 군을 격퇴했다. 그 후, 요양에서 국호를 대원국에서 "대발해국"으로 고치고, 황제를 칭하며 연호를 "융기" 원년으로 했다.
같은 해 5월, 금나라의 요양 공격에 패배한 고영창은 금군에 의해 살해되었고, 대발해는 멸망했다.
2.3. 멸망 이후
1115년, 여진 완안씨의 아골타가 금을 건국했다. 완안부의 조상은 발해 왕의 대씨라고 칭하며, 또한 "여진과 발해는 한 가족"이라고 공언하는 등, 문화적으로 미숙했던 여진의 신정권은 중원 문화에 통달한 발해 출신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1116년 1월, 발해 귀족의 후손이자 유수의 비장(裨將)인 고영창(高永昌)이 동경 소보처를 토벌하고 옛 발해의 땅인 동경성을 장악했다. 요는 토벌군을 파견해 동경성 탈환을 시도했지만, 고영창은 이를 격퇴하고 대발해 황제에 즉위해 융기(隆基) 원년이라 하였다.
귀덕주(貴德州) 수장(守將) 야율여도(耶律余睹)가 광주발해(廣州渤海)를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고영창에게 귀부하였다.
요 천조제(天祚帝)가 소을설(蕭乙薛)과 고흥순(高興順)을 보내어 고영창을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1115년 건국된 금나라는 1116년 요나라를 정벌하기 전 알로를 시켜 요양을 공격하여 대발해는 멸망하였다.
1125년, 금나라는 요 (거란)를 멸망시켰다. 금나라에서 발해인 귀족들은 계속해서 귀족으로 대우받았으며, 대신과 황후를 배출했다. 또한 역대 발해인 왕조의 중심지였던 요양에서는 발해인에 의한 불교 신앙이 지속되었다. 금나라 제4대 황제 해릉왕의 어머니인 대씨는 발해 왕족의 후손이며, 제5대 황제 세종의 어머니인 이씨는 발해 귀족의 후손이었으며, 그 외에도 종실 완안씨와 연관된 발해인들이 존재하여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