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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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회덕군, 진잠군, 공주군 현내면을 통폐합하여 신설된 행정 구역이다. 1931년 대전면이 대전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35년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됨과 동시에 대전군은 대덕군으로 개칭되었다. 현재 대전군은 대전광역시 동구, 중구, 서구, 유성구, 대덕구, 계룡시 신도안면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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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군은 1935년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하며 대전군의 잔여 지역이 개칭된 곳으로, 1989년 대전직할시에 편입되어 폐지되었으며, 현재의 대전광역시와 계룡시 행정구역 형성에 기여했다. - 대전광역시의 역사 - 망이·망소이의 난
망이·망소이의 난은 1176년 고려 명종 때 명학소에서 망이와 망소이가 일으킨 민중 봉기로, 특수 행정 구역 차별과 경제적 불만에 대한 반발로 공주를 함락시켰으나, 관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고려는 특수 행정 구역을 폐지하기 시작했다. - 충청남도의 폐지된 행정 구역 - 남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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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이종명과 김유영의 발기로 결성된 문학 단체인 구인회는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조용만, 이태준, 김기림, 정지용 등 당대 문인 9명이 참여하여 순수 문학을 지향하며 1930년대 한국 문단에서 문학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데 기여했고, 주요 작가들의 친목 도모와 문학적 교류를 통해 조선 문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2. 역사적 배경
1895년 5월 26일 대한제국 고종이 전국을 23부로 나누면서 공주부 산하에 회덕군, 진잠군을 관할하게 하였다. 1906년 월경지 정리령에 의해 청주군 주안면을 회덕군에 편입하였다.
2. 1.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 시기
1895년 5월 26일 고종이 전국을 23부로 나누면서 공주부 산하에 회덕군, 진잠군을 관할하게 하였다. 1906년 월경지 정리령에 의해 청주군 주안면을 회덕군에 편입하였다.2. 2. 일제강점기
1914년 4월 1일 일제는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회덕군, 진잠군과 공주군 현내면을 '''대전군'''으로 통폐합하였다.[3] 이 과정에서 12면(진잠면, 기성면, 유천면, 유성면, 내남면, 탄동면, 구즉면, 외남면, 대전면, 산내면, 북면, 동면)으로 구성되었다.당시 행정구역 변화는 다음과 같다.[3]
1917년 10월 1일 내남면이 회덕면으로 개칭되었다.[4] 1931년 4월 1일에는 대전면이 대전읍으로 승격되었고,[5] 1935년 10월 1일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됨과 동시에 대전군은 '''대덕군'''으로 개칭되었다.
2. 3. 광복 이후
1914년 4월 1일 회덕군, 진잠군과 공주군 현내면을 '''대전군'''으로 통폐합하였다.[3] 당시 대전군은 진잠면, 기성면, 유천면, 유성면, 내남면, 탄동면, 구즉면, 외남면, 대전면, 산내면, 북면, 동면의 12면을 관할했다. 1917년 10월 1일 내남면은 회덕면으로 개칭되었으며,[4] 1931년 4월 1일에는 대전면이 대전읍으로 승격하였다.[5]1935년 10월 1일,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되면서 대전군은 '''대덕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5]
3. 1914년 행정구역과 현재 행정구역 비교
(大田面)
동구
중구
(外南面)
동구
(東面)
(山內面)
중구
(柳川面)
서구
(杞城面)
(鎭岑面)
유성구
(儒城面)
(炭洞面)
(九則面)
(內南面)
(北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