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차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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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전차견은 개에게 폭탄을 장착하여 적 전차를 파괴하는 군사적 목적으로 훈련된 개를 의미한다. 1924년 소련에서 처음 아이디어가 제시되어 1930년대에 훈련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군이 독일군에 대항하여 대전차견을 실전에 투입했다. 훈련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하여 개들이 훈련된 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도 있었다. 결국 대전차견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며, 1942년 이후 사용이 급격히 감소했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대전차견을 훈련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안전 문제 등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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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견 | |
---|---|
개요 | |
![]() | |
별칭 | 개 지뢰 대전차견 |
종류 | 군견 |
용도 | 대전차전 자폭 공격 |
원산지 | 소련 |
사용 시기 | 1930년대 ~ 1940년대 |
역사 | |
개발 배경 | 1930년대 소련에서 개발 기갑 부대에 대한 저렴하고 접근 가능한 대안 |
훈련 방법 | 개들은 탱크 밑에서 음식을 찾도록 훈련됨 훈련 중에는 실제 탄약을 사용하지 않음 |
실전 투입 |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에 대항하여 사용됨 효과에 대한 논쟁 존재 |
구조 및 작동 방식 | |
폭탄 장착 방식 | 개 등에 폭탄을 묶어 놓고, 목표 지점에서 폭탄을 터뜨리도록 훈련 |
폭탄 작동 방식 | 개가 탱크 밑으로 들어가면 폭탄의 안전핀이 뽑힘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탄이 폭발 |
효과 및 문제점 | |
효과 | 일부 성공 사례 존재 독일군에게 심리적인 영향을 미침 |
문제점 | 훈련 부족으로 인해 아군 탱크를 공격하는 경우 발생 전장에서의 혼란과 소음으로 인해 개들이 방향 감각을 잃는 경우 발생 개들이 탱크가 아닌 다른 목표물을 공격하는 경우 발생 |
종전 이후 | |
퇴역 | 대전차견 프로그램은 종전 후 폐지됨 |
유산 | 대전차견은 제2차 세계 대전의 특이한 무기로 기억됨 |
기타 | |
관련 연구 | 대전차견의 효과와 윤리성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음 |
2. 배경
1924년, 소련 혁명군사위원회는 개를 이용해 구조, 응급 처치, 통신, 지뢰 및 사람 추적, 전투 지원, 썰매를 이용한 식량, 의약품 및 부상병 수송, 적 목표물 파괴 등 광범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승인했다.[1] 1930년대에 이동식 지뢰를 개에 장착하는 아이디어가 개발되었다. 모스크바주에 특수 개 훈련 학교가 설립되었고, 곧 12개의 지역 학교가 문을 열었으며 그 중 3곳에서 대전차견을 훈련시켰다.[2][3]
노동자·농민 붉은 군대는 1930년대에 전문적인 견(犬) 훈련사가 부족하여 사냥꾼, 경찰, 심지어 서커스 조련사까지 동원했다. 대규모 훈련 프로그램을 체계화하기 위해 여러 저명한 동물 과학자들이 참여했다.[4] 저먼 셰퍼드는 뛰어난 신체 능력과 훈련 용이성 때문에 선호되었지만, 다른 품종들도 활용되었다. 1935년, 대전차견 부대가 정식으로 노동자·농민 붉은 군대에 포함되었다.
3. 훈련
초기 훈련은 개가 몸에 폭탄을 싣고 지정된 고정 목표물에 도달하면 이빨로 벨트를 당겨 폭탄을 분리하고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폭탄은 타이머나 원격 조종으로 폭발시킬 수 있었지만, 당시 원격 조종 장치는 매우 드물고 비싸 실용적이지 않았다. 훈련 결과, 대부분의 개들이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단일 목표물에는 잘 반응했지만, 목표물이나 위치가 바뀌면 혼란스러워하며 폭탄을 해제하지 않은 채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실제 상황에서 개와 조작자 모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5]
이후 훈련은 단순화되어, 폭탄은 개에게 고정되었고 목표물과 접촉하면 폭발하여 개가 죽는 방식이었다. 초기에는 특정 목표물을 찾도록 훈련했지만, 적 전차를 찾는 것으로 훈련 목표가 단순화되었다. 개들은 굶주린 상태로 유지되었고, 음식은 전차 아래에 놓였다. 처음에는 정지된 전차로 훈련했지만, 점차 엔진을 작동시키고 불규칙적인 공포탄 발사 등 전투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여 훈련했다. 이는 개들이 전장에서 전차 아래로 달려들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6]
각 개는 10kg에서 12kg의 지뢰를 장착했으며, 개별 맞춤 제작된 두 개의 캔버스 주머니에 넣어졌다. 지뢰에는 배치 직전에 제거되는 안전핀이 있었고, 별도의 표식이나 해제 장치는 없었다. 나무 레버는 주머니에서 약 20cm 높이로 튀어나와 있었다. 개가 전차 아래로 들어가면 레버가 전차 하부에 부딪혀 폭탄이 터지도록 설계되었다. 섀시 하부는 전차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폭발로 전차가 무력화될 것으로 기대했다.[7][9]
3. 1. 훈련의 문제점
개의 훈련에는 조작적 조건화를 이용했다. 전차나 장갑차량 밑에 개의 먹이를 놓고, 배고픈 개가 먹이를 보고 전차 밑으로 들어가도록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실전에서는 배고픈 개를 적 전차 앞에 풀어놓기만 하면 자발적으로 폭탄을 운반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확도는 높다고 할 수 없었다.[1] 훈련받은 개조차도 적 전차가 주행할 때 발생하는 격렬한 소음에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아군 진지로 되돌아가 자폭하는 등 다루기 어려운 병기였다.[1]
처음에는 소련군 전차를 훈련에 사용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조건 반사가 성립되어 독일 전차는 무시하고 훈련받은 대로 소련 전차를 향해 돌진하는 큰 실패도 있었다.[2] 이후 훈련 방법을 개선하여, 소련 전차는 주로 디젤 엔진, 독일 전차는 가솔린 엔진이었기 때문에 가솔린 냄새에 대한 조건 반사를 가르쳤다.[2]
4. 소련군의 운용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1941년과 1942년에 붉은 군대는 대전차견의 사용을 확대했다. 약 40,000마리의 개가 다양한 임무를 위해 배치되었다.[8]
1941년 여름, 30마리의 개와 40명의 훈련사로 구성된 첫 번째 대전차견 그룹이 전선에 도착했다. 그러나 실전 배치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연료와 탄약을 절약하기 위해 개들은 정지 상태의 탱크를 대상으로 훈련받았고, 실전에서 움직이는 탱크 밑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일부 개들은 탱크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사살되거나, 총소리에 겁을 먹고 참호로 돌아와 폭탄을 터뜨려 소련 군인들을 죽이기도 했다. 훈련사들은 돌아오는 개들을 사살해야 했고, 이는 훈련사들이 새로운 개와 일하기를 꺼리게 만들었다.[5] 첫 번째 그룹 중 4마리만이 독일 탱크 근처에서 폭탄을 터뜨렸고, 6마리는 소련 참호에서 폭발하여 사상자를 냈다.[5] 3마리는 독일군에게 사살되었고, 독일군은 노획한 폭발 장치를 통해 대전차견의 원리를 파악했다.[5]
소련군은 독일 탱크가 아닌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소련 탱크로 개를 훈련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개들은 후각에 의존했기 때문에 익숙한 소련 탱크를 찾았고, 낯선 냄새가 나는 독일 탱크는 무시했다.[9][11]
대전차견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소련 측은 약 300대의 독일 탱크가 손상되었다고 주장했지만,[3] 많은 러시아 역사가들은 이를 선전으로 간주한다.[5] 그러나 일부 성공 사례도 기록되어 있다. 흘루히우 근처에서 6마리의 개가 5대의 독일 탱크를 손상시켰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13대의 탱크를 파괴했으며,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16마리의 개가 12대의 독일 탱크를 무력화시켰다.[9][10]
독일군은 1941년부터 소련 대전차견에 대한 방어책을 마련했다. 장갑차 상단 기관총은 효과가 없었고, 모든 독일 군인은 전투 지역에서 개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9][11]
1942년 이후 대전차견 사용은 급격히 감소했고, 훈련 학교는 지뢰 탐지 및 운반견 생산으로 전환했다. 대전차견 훈련은 1996년 6월까지 계속되었다.[12]
1942년에 일어난 전투에서는, 독일군의 화염 방사기 공격을 받은 대전차견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아군 진영으로 도망쳐 자폭하여 붉은 군대 부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결국 철수를 해야만 했다. 이 사건 이후, 대전차견은 실전에서 사라졌다.
5. 다른 나라에서의 사용
다른 나라에서도 대전차견과 유사한 시도를 한 사례들이 있다. 일본 제국 육군과 미군,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서 이러한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일본과 미국의 사례는 각각 일본과 미국 하위 섹션을, 이라크의 사례는 이라크 하위 섹션을 참조하라.
5. 1. 일본
일본 제국 육군은 동맹국인 독일로부터 약 25,000마리의 군견을 받았고, 일본과 난징에 여러 개의 군견 훈련소를 조직했다.[13]5. 2. 미국
1943년, 미군은 요새를 상대로 무장견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했다. 목표는 폭탄을 싣고 벙커로 달려가 타이머에 의해 폭탄이 터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비밀 프로그램의 군견들은 포트 벨보아에서 훈련받았다. "파괴 늑대"라고 불린 군견들은 벙커로 달려가 들어가 가짜 폭발을 기다리는 동안 앉도록 훈련받았다. 각 군견은 러시아 방식과 같이 몸에 캔버스 주머니에 묶인 폭탄을 휴대했다. 이 프로그램은 안전 문제로 인해 1943년 12월 17일에 종료되었다. 훈련 중 군견들은 벙커에 들어가지 않거나, 실제 사격 상황에서 아군 사상자를 발생시킬 수 있는 시간 동안 기다리지 않고 훈련병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전투에서 적의 사격에 겁을 먹고 군견들이 훨씬 더 자주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1944년과 1945년에 이 프로그램을 계속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13]5. 3. 이라크
2005년, 이라크 전쟁에서 반군은 폭탄을 장착한 군견을 사용하려 시도했으나, 군견은 피해를 입히지 않고 폭파되었다.[14]2007년경, 이라크 전쟁의 대규모 전투 종결 후 반정부 무장 세력이 폭탄견을 사용했다. 이들은 개에게 폭약을 짊어지게 하고 원격으로 기폭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식용 외의 목적으로 생물을 살해하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6. 독일군의 대응
독일군은 대전차견을 Hundeminede(훈데미네, 독일어로 "개 지뢰"라는 뜻)라고 부르며 경계했다. 소형이고 빠른 개는 전차포나 기관총의 최저 앙각보다 아래로 이동하기 때문에, 시인하더라도 공격을 막기 어려웠고, 위협적이었다. 대항책으로 전차에 화염 방사기를 탑재하여 대전차견을 불태우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경계한 나머지, 단순히 개를 보고 독일군 측이 총격을 가해 적에게 발각되어 기습에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화염 방사기의 공격을 받은 대전차견 중 몇 마리는 훈련대로 적 전차를 격파했지만, 동물은 본능적으로 불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전차견은 도주하거나, 아군 진영으로 돌아와 자폭하는 등, 붉은 군대(적군)의 피해가 확대되었다.
특히 1942년에 일어난 전투에서는, 독일군의 화염 방사에 노출된 대전차견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아군 진영으로 도망쳐 자폭하여 붉은 군대 부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결국 철수를 해야만 했다. 이 사건 이후, 대전차견은 실전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Soviet Anti-Tank Dog
https://historyofyes[...]
2020-09-12
[2]
웹사이트
http://uznal.info/ra[...]
[3]
웹사이트
Из истории военного собаководства (History of military dog training)
http://www.dog-shkol[...]
[4]
간행물
The Exploding Anti-Tank Dogs of World War II
https://www.youtube.[...]
2015-09-02
[5]
웹사이트
http://army.armor.ki[...]
[6]
웹사이트
Soviet-Empire.com - The Soviet Anti-Tank Dog Mine
https://web.archive.[...]
[7]
웹사이트
General Specifications
https://web.archive.[...]
[8]
웹사이트
Our Allies...The Soviet Union and Their Use Of War Dogs
https://web.archive.[...]
[9]
서적
The Red Army of the Great Patriotic War, 1941–45
https://books.google[...]
Osprey Publishing
1989
[10]
서적
http://www.amyat.nar[...]
М.: Воениздат
[11]
서적
The Encyclopedia of Weapons of World War II: The Comprehensive Guide to Over 1,500 Weapons Systems, Including Tanks, Small Arms, Warplanes, Artillery, Ships and Submarines
Sterling Publishing Company, Inc.
2002
[12]
서적
Soviet Tanks in Combat 1941–45: The T-28, T-34, T-34-85, and T-44 Medium Tanks
Concord Publication
[13]
서적
War Dogs: A History of Loyalty and Heroism
https://books.google[...]
Brassey's
[14]
웹사이트
Terrorists tie bomb belt to dog in Iraq
https://www.telegrap[...]
2005-05-26
[15]
문서
개를 굶긴 뒤 탱크 밑에 먹을 음식을 숨겨놓고 개들이 이것을 찾게 만들었다.
[16]
문서
소련군은 당시 탱크에 [[디젤]] 엔진을 주로 사용했지만, 독일군은 [[휘발유|가솔린]] 엔진을 사용해, 대전차견은 소련 탱크의 디젤 냄새에 적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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