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계서원 (봉화군)
1. 개요
도계서원 (봉화군)은 1610년 순흥부와 봉화군의 사림들이 이수형이 은거하던 공북헌 근처에 건립한 서원이다. 처음에는 견일사 또는 상절사로 불리다가 사액을 받아 도계서원이 되었으며, 금성대군, 이보흠, 이여빈 등을 추가로 배향했다. 묘우인 견일사, 강당인 공극루, 주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수형이 일생을 보낸 공북헌과 괴화나무 등이 있다. 1814년에는 공극루가 건립되었고, 이수형의 아들 이대근이 금성대군을 추모하는 금성단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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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의 교육 -
경상북도봉화교육지원청
경상북도봉화교육지원청은 봉화군 내 교육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관할 구역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및 분교 현황 정보를 제공한다. -
조선의 사회 -
천민
천민은 전통 사회 최하층 계급으로 세습되었으며 특정 직업에 종사하며 사회적 차별을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사회적 상승이 어려웠지만, 직업에 근거한 차별의 잔재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조선의 사회 -
검계
검계는 조선 시대에 장례 비용 마련을 위해 시작되어 폭력적인 성향을 띠며 사회 문제를 일으켰으며, 숙종, 영조, 순조 시대에 걸쳐 나타나 살인, 폭행, 약탈 등의 반사회적 행위를 일삼았던 집단이다. -
경상북도의 서원 -
매림서원
곽수강과 오선기를 배향하고 고령 매림재소장판목을 보관하는 매림서원은 서원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는 중요한 서원이다. -
경상북도의 서원 -
영주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1542년 주세붕이 안향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서원으로, 한국 최초의 사액서원이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2. 생애
(내용 없음)
3. 도계서원
도계서원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도촌 이수형(1435년 ~ 1528년)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이수형의 자는 영보(英甫), 호는 도촌(桃村)이며, 아버지는 군자감주부 이경창, 어머니는 순흥 안씨로 직제학 증 좌참찬 안구의 딸이다. 부인은 예안 김씨로 문절공 김담의 딸이며, 이수형은 김담의 문인이자 사위이기도 하다.
이수형은 18세에 음보로 관직에 올라 선교랑 전생서령을 거쳐 조봉대부 평시서령이 되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자 관직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영천 도촌으로 낙향하였다. 단종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자, 어계 조여, 관란 원호 등과 함께 영월 수주의 요석정에 모여 단종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이후 원주 치악산 정상에 올라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바위에 이름을 새기고 내려왔다.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하고 단종이 사사되자, 3년상을 치른 뒤 산속에 들어가 평생 은거하였다. 그가 머문 집은 삼면이 벽으로 막혀 있고 북쪽으로만 문이 하나 나 있었는데, 이는 단종의 능인 장릉이 있는 방향을 향한 것이었다. 세조가 여러 차례 음식과 땅을 내렸으나 모두 거절하였고, 성종 때 다시 관직 임명장을 내려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1610년(광해군 2년) 순흥과 봉화군의 사림들이 뜻을 모아 이수형이 은거하던 공북헌 근처에 서원을 세웠다. 처음에는 견일사(見一祠) 또는 상절사(尙節祠)라 불렸으나, 후에 나라로부터 이름을 받아 도계서원이 되었다.
3.1. 추가 배향
후대에 단종 복위 운동을 일으켰다가 노비의 밀고로 체포되어 희생된 금성대군 이유와 순흥 부사 이보흠의 위패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이후 1715년 (숙종 41년)에는 전은설과 광해군의 폐모살제의 부당함을 논하다가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이수형의 4대손 취사 이여빈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3.2. 서원의 구성
서원의 주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묘우(廟宇)와 학문을 강론하는 강당, 그리고 부속 건물인 주소(廚所) 등이 있었다. 묘우의 이름은 견일사(見一祠) 또는 상절사(尙節祠)로 불렸으며, 강당은 공극루(拱極樓)라고 하였다. 서원 건물 옆에는 이수형이 평생을 보낸 공북헌이 자리하고 있으며, 공북헌 담장 밖에는 이수형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괴화나무가 있다.
4. 기타
(내용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