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 다다토키 (초대)
1. 개요
도다 다다토키는 1637년에 태어나 1712년에 사망한 인물로, 아시카가 번의 초대 번주이다. 1680년에 메츠케가 되었고, 1682년에는 후시미 봉행을 거쳐 하타모토가 되었다. 이후 코쇼구미 반토, 고후 번주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가로를 역임했으며, 1705년 아시카가 번주가 되었다. 1708년에는 가독을 아들 도다 타다소노에게 물려주고 은거했다.
| 씨족 | 도다 씨 |
|---|---|
| 이름 | 도다 다다토키 |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중기 |
| 출생 | 간에이 14년 ( 1637년 ) |
| 사망 | 쇼토쿠 2년 7월 24일 ( 1712년8월 25일 ) |
| 이명 | 구주로 사부로자에몬 하치로효에 (어린 시절 이름, 통칭) 다다토시 (별명) |
| 계명 | 도쿠오젠류호코인 |
| 묘소 | 도쿄도신주쿠구 우시고메의 쇼겐지 |
| 관위 | 종5위하 종4위하 나가토노카미 오이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번 | 시모쓰케아시카가 번주 |
| 부모 | 아버지: 도다 다다쓰구 어머니: 반 다다요시 딸 |
| 형제자매 | 다다마사 다다토키 구제 히로유키 정실 미즈노 사다카쓰 실 |
| 배우자 | 정실: 쓰치야 도시쓰구의 딸 |
| 자녀 | 다다카쓰 마쓰다이라 다카요시 다다요시 다다소노 딸 (도다 다다쓰네 실) |
-
아시카가번주 -
도이 도시나가
도이 도시나가는 에도 시대 무장으로, 아버지 도이 도시카쓰와 형 도이 도시타카로부터 영지를 상속받아 미카와국 니시오 번의 번주가 되었으며, 은거 후 양자에게 가독을 물려주었다. -
후시미 봉행 -
나이토 마사쓰나
나이토 마사쓰나는 미즈노 타다미츠의 아들이자 나이토 마사쿠니의 양자이며 오오카 타다마사의 딸을 정실로 맞이하여 마사요시, 노리히로, 마사아츠, 노부타미를 포함한 여러 자녀를 두었다. -
후시미 봉행 -
가노 히사토모
가노 히사토모는 가노 히사토모와 우에무라 이에나가의 딸 사이에서 태어나 다카기 마사타케의 딸을 정실로 맞이하여 가노 히사아키를 포함한 여러 자녀를 두었다. -
에도 막부 소바요닌 -
다누마 오키쓰구
다누마 오키쓰구는 에도 시대 후기 쇼군의 신임을 얻어 로주에 올라 막부 재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부정부패와 농촌 황폐화로 비판받으며 실각한 인물이다. -
에도 막부 소바요닌 -
다누마 오키마사
다누마 오키마사는 에도 시대 인물로 다누마 오키쓰구의 아들이자 미즈노 다다토모의 양자이며, 아버지 실각 후 가문 재건을 위해 노력하여 옛 영지로 복귀했고 막부에서 오반가시라와 와카도시요리를 역임했다.
2. 생애
도다 다다토키는 에도 시대 전기의 하타모토이자 후기의 다이묘이다. 하타모토 도다 타다츠구의 차남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가문을 계승하였고, 메츠케, 후시미 봉행 등 여러 관직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이후 고후번주 도쿠가와 츠나토요(후의 도쿠가와 이에노부)의 가로로 발탁되었으며, 츠나토요가 쇼군 후계자가 되자 오소바슈로서 막부 정치에 참여하였다. 말년에는 공적을 인정받아 시모쓰케국 아시카가번의 초대 번주가 되어 1만 1천 석의 영지를 다스리는 다이묘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가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거하여 1712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1. 초기 생애
1637년, 오코쇼구미 반사로 200표의 녹봉을 받던 하타모토 도다 타다츠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타다츠구는 미카와 타하라번의 초대 번주 도다 타카츠구의 다섯째 아들이었다. 타하라번 번주 자리는 타다츠구의 형인 타다요시가 이었으나, 그에게 자식이 없어 타다츠구의 장남 타다마사를 양자로 삼았다. 이로 인해 1640년 타다츠구가 사망하자, 차남인 다다토키가 4세의 어린 나이로 가문을 계승하게 되었다.
1680년에는 메츠케로 임명되어 종6위에 서임되었다. 1682년 정월에는 후시미 봉행으로 임명되어 1,000석의 하타모토가 되었다. 1683년 12월에는 종5위하 나가토노카미에 서위 및 임관하였다. 1686년에는 코쇼구미 반토가 되었고, 1689년 7월에는 고후번주 도쿠가와 츠나토요(후의 도쿠가와 이에노부)의 가로로 발탁되어 8,000석이 추가되었다. 이후 츠나토요가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후계자가 되어 이름을 이에노부로 바꾸고 에도성 니시노마루로 들어가자, 다다토키도 함께 소환되어 오소바슈로서 다시 막부의 신하로 복귀했다.
1705년, 고령을 이유로 직무에서 물러났으나, 3,000석을 추가로 받아 시모쓰케국의 아시카가군, 카와치군, 츠가군 3개 군에 걸친 1만 1,000석의 영지를 받아 아시카가번을 세우고 번주가 되었다. 관위도 오이노카미로 바뀌고 종4위하로 승격되었으며,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로부터 주인장(朱印状)을 받았다.
1708년 6월 29일, 넷째 아들 타다소노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1712년 7월 24일에 사망했으며, 향년 76세였다.
2.2. 관직 생활
엔포 8년(1680년), 메츠케에 임명되어 종6위에 서임되었다. 텐와 2년(1682년) 정월에는 후시미 봉행으로 임명되어 1000석의 하타모토가 되었다. 텐와 3년(1683년) 12월에는 종5위하・나가토노카미에 서위 및 임관했다. 조쿄 3년(1686년), 코쇼구미 반토가 되었고, 겐로쿠 2년(1689년) 7월에는 고후번주 도쿠가와 츠나토요(후의 도쿠가와 이에노부)의 가로가 되어 8000석이 가증되었다. 츠나토요가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후계자가 되어 이름을 이에노부로 고치고 에도성 니시노마루에 들어가자, 다다토키도 소환되어 오소바슈로서 다시 막부의 신하로 복귀했다.
호에이 2년(1705년), 고령으로 인해 직무 수행은 면제되었으나, 3000석의 가증을 받고 시모쓰케국 아시카가군・카와치군・츠가군 3개 군 내 1만 1000석 영지를 받아 아시카가번을 세우게 되었다. 관위도 오이노카미로 바뀌고 종4위하로 승격했으며, 도쿠가와 츠나요시로부터 주인(朱印)을 받았다.
호에이 5년(1708년) 6월 29일, 가독을 넷째 아들 타다소노에게 물려주고 은거했다. 쇼토쿠 2년(1712년) 7월 24일에 사망했으며, 향년 76세였다.
2.3. 아시카가 번주
엔포 8년(1680년), 메츠케가 되었고, 텐와 2년(1682년) 정월에는 후시미 봉행에 임명되어 1000석의 하타모토가 되었다. 텐와 3년(1683년) 12월에는 종5위하・나가토노카미에 서위되었다. 조쿄 3년(1686년), 코쇼구미 반토가 되었고, 겐로쿠 2년(1689년) 7월에는 고후번주 도쿠가와 츠나요시(후의 도쿠가와 이에노부)의 가로가 되어 8000석이 추가되었다. 츠나요시(이에노부)가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후계자가 되어 이름을 이에노부로 바꾸고 에도성 니시노마루로 들어가자, 다다토키도 오소바슈로서 다시 막부 신하로 복귀했다.
호에이 2년(1705년), 나이가 많아 직무 수행은 면제받았지만, 3000석을 추가로 받아 시모쓰케국의 아시카가군, 카와치군, 츠가군 3개 군 내 영지 1만 1000석을 받아 아시카가번을 세우고 초대 번주가 되었다. 이때 관위도 오이노카미로 바뀌고 종4위하로 승급했으며,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로부터 주인(朱印)을 받았다.
호에이 5년(1708년) 6월 29일, 넷째 아들 타다소노에게 번주 자리를 물려주고 은거했다. 쇼토쿠 2년(1712년) 7월 24일에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3. 가계
* 부모
아버지: 도다 타다쓰구
어머니: 반 타다요시의 딸
* 정실
쓰치야 도시쓰구의 딸
* 자녀
장남: 도다 타다카쓰 (생모는 정실)
마쓰다이라 다카노리 (생모는 정실)
도다 타다요시 (생모는 정실)
넷째 아들: 도다 타다조노 (생모는 정실)
딸: 도다 타다쓰네의 부인